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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야(紅夜) 님의 서재입니다.

무당파 막내사형이 요리를 너무 잘함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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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5.11 22:08
최근연재일 :
2023.06.0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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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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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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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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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금제(禁制)

DUMMY

“서호초어(西湖醋魚), 그리고 청증무창어(清蒸武昌鱼)입니다.”


접시를 내려 놓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특히 서호초어는 한눈에 봐도 구효기의 것과 수준의 차이가 있었다.


“과연, 저게 같은 요리 맞소?”


“구 대사부가 만든 것도 모양이 그럴싸 했지만, 도우께서 만든 건 마치 보석을 녹여 부은 듯 빛깔이 아름답소.”


중년의 도사가 감탄한 가운데, 백산은 청증무창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청증무창어는 우리가 시킨 것이 아닌데···”


“잘못에 대한 저희의 사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구 대사부도 곤란했을 거요. 누가 사과를 하고 받아주고 할만한 일은 아니라 칩시다.”


인상 좋은 중년의 도사가 손사래를 치며 상황을 정리했다. 나는 그처럼 정중하고 이해심이 넓은 손님을 본 적이 없어 호감이 갔다.


‘조일명의 기억에 의하면 화산파 도사들은 분명 깍쟁이들이었는데 모두가 그렇진 않군.’


분위기는 한층 밝아졌다. 가소소는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백산, 항주의 초어가 호북의 무창어에게 질까봐 두려운 게냐?하하하!”


“백동(白東) 사형! 사형도 저만큼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군요.”


이제 보니 백동이란 자의 고향이 호북인 모양이었다.

그 역시 고향의 음식인 청증무창어가 먹고 싶었던 것이다.


장문인이 젓가락을 들자 모두가 음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솔직히 찬탄이 터져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첫 조각을 음미하고, 생선을 바꿔 두 번째 조각을 음미하기까지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젓가락질은 사문 어르신들을 모시고 하는 식사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치열해졌다.


특히 백동과 백산은 도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식탐이 강했다.


“어허, 백산, 너는 벌써 초어의 반을 먹지 않았느냐? 이제 그만 먹어라.”


“사숙, 누가 반을 먹었다 하십니까? 저는 이제 두 조각 먹었습니다. 백동 사형은 무창어를 드십시오.”


“나는 아직 무창어 한 조각 밖에 먹지 못했다 이것아. 네가 초어 자랑을 그리했으니 나도 맛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


“쳇···알겠어요. 초어에 반하지나 마시라구요.”


말은 밉게 했지만 백산은 백동에게 큼지막한 초어 조각을 떠서 접시에 덜어주었다. 초어며, 무창어며 눈에 띄게 양이 줄었다.

백산은 백천의 접시에 눈독을 들였다.


“맞다. 백천, 너는 밑에서 몇 조각 얻어 먹고 왔지?”


“아··· 아니예요! 저도 지금 먹어요! 제 꺼 빼앗아 가지 마세요. 백산 사형!”


자기 그릇에 놓인 생선 조각마저 빼앗기자 막내 백천은 작은 눈을 찡그리며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유귀로 살아갈 당시, 얼마나 이런 모습이 그리웠던가.

맛있는 음식과 평범한 식사


모든 생선이 뼈를 드러내고 나서야 화산파의 식사는 멈췄다.

배불리 식사를 한 것은 아닌 지라 모두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특히 막내 백천은 얼마 먹지 못해 구효기가 만든 서호초어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가소소는 그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저 도리질은 또 다시 바닥을 치우기 싫다는 뜻이겠지?’



화산파 장문인은 좌중을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백산을 불렀다.


“백산은 저 도우께서 청증무창어와 서호초어를 동시에 내온 이유를 알겠느냐?”


“잘만든 서호초어를 제대로 맛보라는 뜻에서 비교 차원으로 가져온 게 아닐까요??”


“무창어는 맛이 없더냐?”


“그건 아니었습니다··· 담백한 맛이 생선 본래의 맛을 잘 살려주더군요.”


“그래, 먹고 나니 무엇을 느꼈느냐? 확실히 초어가 무창어보다 낫다 할 수 있겠느냐? 서호초어의 시고 단맛이 무창어의 깔끔하고 담백한 맛을 압도하더냐?”


“그건··· 아니었습니다. 둘은 우열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맛이 좋았습니다. 백동 사형이 추천한 이유가 있더라구요.”


백산이 백동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백동은 역시 그가 순순히 인정하는 것에 놀란 눈치였다.


“그래, 같은 재료라 할지라도 누가 어떻게 요리 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격을 보이기도 하고, 전혀 다른 개성의 요리라 할 지라도 극한을 추구하다보면 서로의 우열을 나눌 수 없기도 하다.”


장문인의 말에 화산파의 어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백자 배 2대 제자들은 끝 없이 이어지는 요리 칭찬에 의아한 눈치였다.

나 또한 낯 뜨거운 칭찬에 민망함을 참기 어려웠다.


‘양념이 다르니 번갈아 먹을 때 덜 질리더라’


사실 나는 이 정도의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하하하, 역시 배운 도사들은 다르구나.’


속으로 웃긴 했지만, 화산파 장문인의 말은 내 의도와 거의 일치했다.

의도적으로 나는 두 음식의 수준을 비슷하게 맞췄던 것이다.


어선방에서는 늘 세밀할 정도로 음식의 맛과 수준을 조절해야 했었다.

예법, 상선감의 조리법을 존중하면서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맛.

그러면서 같이 나오는 요리들과 어울려야 하는 어려움 사이에서 말이다.


지금 내가 조일명의 몸으로 이것을 해낸다면, 나는 또다시 요리사로 살아갈 수 있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바닥부터 노력을 했겠지만 말이야.’


인상 좋은 중년 도사가 제자들을 향해 한마디 덧붙였다.


“장문인은 지금 무리(武理,무공의 이치)에 대해 이야기 하신거다. 백산!”


“네! 사부님.”


“너는 언제나 실리(實理)를 추구하기보다는 변칙적이고 화려한 초식을 쫓는 경향이 있다.”


그의 지적에 백산은 아픈 곳을 찔린 듯 고개를 숙였다.


“백동”


“네, 사부님”


“너는 장중함을 미덕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좀처럼 남을 잘 믿거나 인정하지 않고, 무공에 있어서도 새로움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백동은 그다지 타격이 없는 표정이었다.

다만, 내 쪽을 한번 바라보며 불편해 하는 눈빛을 보냈다.


‘외인 앞에서 자파의 무공에 대해 논하는 건 어딜가나 금기다. 빨리 자리를 뜰 걸 그랬군.’


“백천”


“네, 사부님 하명 하십시오.”


“너는 사형들을 언제나 이겨 먹으러 들기에, 위력이 강한 후반 초식 연구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네 사형들이 기본도 없이 엉터리라면 뻔히 맞아주겠으나, 초반 초식을 차근히 수련해 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네 후반 초식을 대처할 수 있는 방법도 있는 것이다. 알겠느냐?”


백천의 태도에 어른들은 대견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마 화산파에서 백천은 실력으로 꽤나 귀여움을 받고 있을 것이다.


“네, 새겨 듣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백하(白河)"


이제까지 가장 말 없이 있던 사내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헛갈릴 정도로 고운 얼굴 선에 먹으로 그은 듯 반듯하고 진한 눈썹이 인상적이었다.


"너는 낯가림이 너무 심하다. 언젠가 너도 문파의 중책을 맡게 될 터인데, 사람 만나는 것을 그리 어려워하면 어떻게 하겠는냐? 앞으로 일정에 다른 문파 사람들과 마주할 일이 아주 많다. "


"... 노력해 보겠습니다."


백하(白河). 기억 속에 그 이름이 문득 떠올랐다. 화산 매화검수 중 으뜸이라 했던가.


'그렇기에 백하. 그자의 무공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빼 두었군.'


“현우도장(玄宇道長)이 잘 말해주었다. 우리의 이번 강호행은 단순한 외유(外流)에 그치는 것이 아닌, 매순간 배움이 있음을 잘 깨달아주기 바란다.”


인자한 얼굴의 중년인의 도호는 '현우'였다.

화산파의 면면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조일명의 기억 속에 현우도장의 도명은 분명 있었다.


'저자가 화산파 일대 기재(技材)라는 취검(臭劍) 현우도장이구나!'


그의 무공 실력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인망이 좋고 제자를 잘 키워내기로 유명했다. 제자들의 위명이 높다 보니 자연스레 스승의 이름도 알려진 것이다.


화산파 장문인의 말로 식사는 종료되는 듯 싶었다.

나 역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퇴장할 차례였다.

사실 화산파 내부 이야기가 오고가기 전에 나가는게 순서였다.

다만, 음식에 대한 평들이 듣고 싶어 조금 더 남아 있던 바람에 때를 놓치고 어정쩡해 버렸다.


나가려던 나를 화산파 장문인이 불러 세웠다.


“그런데, 도우(道友). 내가 식사 중에 백천에게 듣기론 흙탕물에 엉망이 된 초어를 굶긴 뒤 식초까지 먹였다 들었소. 그렇게 살려낸 것이 이 초어라고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기엔 굶고 굶다가 산을 들이 마시고 몸속에 뻘을 모두 뱉어낸 이 초어가···”


“...”


“어찌 마치 태을(太乙) 조일명, 자네 같다 생각이드네.”


억지로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조일명의 기억이 무당파와 마주하는 것을 꺼리게 만들고 있었다.


“태을 조일명이라면··· 무당파에서 파문당했다던··· 2대 제자!”


“저자가 무당파였다니? 왜 식당에서 일을···”


나에 대한 호의는 순식간에 사라진 후였다.

화산파 앞에서 무당파는 마치 금기처럼 울리는 단어였다.


“장문인 앞에서는 숨겨지지 않는군요. 어떻게 저를 어찌 알아보셨습니까?”


“금제를 보고 알았다네.”


파문당한 제자는 사문에서 배운 내공을 사용할 수 없도록 혈도를 막는다. 무당파에서는 제자의 성취도에 따라 막는 혈도가 달랐는데, 하수의 경우 회음(會陰)을, 고수는 인당(困窮)을 막는다.


회음은 하단전, 인당은 상단전과 연관이 있는 혈.

하단전은 축기와 관련이 있어 무공을 배워 나가는데 관련이 있고, 상단전은 신선이 되는 관문이라 하여 도문에서는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었다.


‘인당에 금제가 걸렸다는 건 알고 있었다. 기억 속에서 머리가 깨어지는 듯한 충격이 남아 있으니까. 이제까지 눈이 지져지고 목뼈가 꺾이는 것이 제일의 고통인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큰 고통이 남아 있어 놀랐지.’


두통은 금제의 후유증이었다. 그러나 그리 단순한 고통은 아니었나 보다.


“인당에 금제를 당하면 서서히 미치게 된다네. 두통이 점차 심해지고 이를 잊으려 술을 찾게 되지 않았는가?”


'...!'


미치다니.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술에 취해 있던 날들이 뒤죽박죽 떠올랐다.

분노를 참기 힘들어 누군가를 두들겨 팬 적도 많았던 것 같다.


기억을 들여다 보는 행위. 즉, 내 안의 나를 관조할 수록 의도치 않게 상단전을 자극하게 된다. 그때마다 고통이 따라오니 어떻게 되겠는가.

지난 기억들을 모두 잃던가, 앞으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아마도...저는 주화입마가 찾아 오겠군요.”


이제 다시 요리사의 삶을 찾았나 싶었다.

부처는 나에게 그 기회를 쉽게 주지 않았다.


그때, 화산파 장문인이 말했다.


“내가 금제를 해결해주지. 자네, 화산파에 입문하겠는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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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십사수매화검법(十四手梅花劍法) 23.06.05 62 2 13쪽
19 복마전(伏魔殿) 23.06.02 71 2 13쪽
18 유귀지도(劉貴之刀) 23.06.01 88 3 15쪽
17 유채론(劉菜論) 23.05.30 96 4 15쪽
16 송가난전(宋家亂廛) 23.05.28 121 3 13쪽
15 북숭소림 남존무당(北崇少林 南尊武当) 23.05.27 126 3 14쪽
14 삼재검법(三才劍法)_오타수정 23.05.26 151 2 13쪽
13 오륜금시(五輪金匙) 23.05.25 157 2 11쪽
12 무당논검(武當論劍) 23.05.24 181 2 15쪽
11 양의검(兩儀劍) 23.05.23 183 4 12쪽
» 금제(禁制) 23.05.22 198 6 11쪽
9 청증무창어(清蒸武昌鱼) 23.05.20 194 4 13쪽
8 화산파(華山派) 23.05.19 221 4 14쪽
7 순장(殉葬) 23.05.18 211 5 12쪽
6 백유판압(白油板鴨) 23.05.17 174 5 15쪽
5 장강 전어(长江鲥鱼) 23.05.16 188 4 15쪽
4 동파육(東坡肉)_2 +2 23.05.15 225 5 14쪽
3 동파육(東坡肉) 23.05.14 244 3 16쪽
2 철과단(鐵鍋蛋) 23.05.13 293 3 13쪽
1 서. 서호초어(西湖醋魚) 23.05.12 389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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