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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30 22:53
연재수 :
245 회
조회수 :
11,053
추천수 :
683
글자수 :
1,304,125

작성
23.03.15 13:06
조회
23
추천
2
글자
10쪽

167. 기억 하나

DUMMY

나는 짙은 어둠 속을.

끈적한 어둠 속을 부유하고 있다.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속으로 수십, 수백, 아니 수천 번을 되뇌어봐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 힘이 필요해? 그러면...

- 내 손을 잡아.

- 너에게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을 줄게.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가 내게서 마법을 빼앗기에 빼앗긴 것을 다시 찾으려 했을 뿐이다.

그저 사랑하는 자들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혁명단을.

엄마 아빠를.

세슈람과 딜람을.

듀시아를.

그들을 지킬 힘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뿐이다.


기만에게 내 몸을 빼앗길 거란 것도.

기만이 내게서 빼앗은 몸으로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칼을 들이밀 것이란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힘을 준다니 애써 모른척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지.


"듀시아는 무사할까?"


육체와 내 영혼 사이에 이어져있던 실낱같은 연결도 끊긴지 오래였다.

다른 사람들은 듀시아가 잘 내보내는 것을 확인했지만 듀시아는 아니었다.

그 멍청이는 어쩌자고 혼자 남은 것인지.

마지막으로 본 듀시아는 정말이지 많이 다쳐서 죽기 일보직전의 상태였다.


"글쎄. 걔가 과연 지금까지 살아있을까?"

"..."


또다.

잊을만하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녀석.

기만이었다.


정말이지 상종하고 싶지 않은데 무시하기 힘든 질문들을 던지기에 나도 모르게 답을 하는 중이었다.


"아니 뭐. 죽었든 살았든 배신자가 어떤지 중요해?"

"... 배신자라니."

"어? 뭐야. 설마 모르는 거야?"

"... 이상한 말 하지 말고 꺼져."


신경이 무지하게 쓰였지만 이것도 나를 속이려고 하는 말이 분명하다.


"듀시아가 왜 배신자가 아니라고 생각해?"

"듀시아는! 나를 사랑해. 나도 걔를 사랑... 하고."

"사랑?"


기만이 기분 나쁘게 킬킬거렸다.


"그게 과연 사랑이긴 했어?"

"뭐. 뭐라는 거야."

"생각해봐. 떼르 듀시아. 그 애가 정말 이렇게 될 걸 몰랐을까? 내가 네 몸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

"사람이 살다보면 조금 삐뚤어질 수도 있지. 근데 걔는 네가 좀 엇나간다 싶으면 이상하리만큼 과하게 반응했어. 그렇잖아. 화가 나면 화를 낼 수도 있지. 왜 못하게 하냐고. 지들은 얼마나 완벽하다고."


뒤에 따라붙는 욕은 무시한다고 해도.

그 전의 말은 확실히 그럴듯했다.

중간중간 벌어졌던 일들을 다시 떠올리면 듀시아는 나보다 아는 것이 더 많은 눈치긴 했다.

아니.

듀시아뿐만이 아니라 다른 혁명단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중요하다며 신경써주는 척했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나는 빼놓고 저들끼리 일을 꾸미고 있었다.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도 마찬가지다.

말하는 것을 보면 다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내게 말하지 않았다.


만약 그게 내가 파편에 먹힐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라면.

그래서 정보가 넘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면.


"설마... 내가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어?"

"알고만 있었을까?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도 이미 알고 있는 자일텐데."

"그런데 왜... 숨긴 거야?"


파편이 내 몸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난 나를 유혹하는 목소리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완벽해 보이는 나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내가 들어가서 사는 사람을 바꾼다면 힘을 많이 소비해서 이전보다 많이 약해져."

"잠깐. 잠깐만."

"뭐. 나를 없애야하는 혁명단 입장에서는 힘이 약해지는 때가 절호의 기회긴 했겠지."


뭐야.

그러면 나는 일종의 미끼같은 거였어?


"일종의 미끼가 아니라 대놓고 미끼였지. 너 하나를 바쳐서 기만이라는 거대한 두 파편 중 하나를 없앤다? 완전 남는 장사지."


순식간에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내게 보인 친절이, 애정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아니. 잠깐만. 그랬다면 그 사람들이 듀시아가 나를 위해 목숨을 걸 이유가 없잖아?"

"목숨을 언제 걸었는데? 목숨을 걸었다는 자들이 지금 어디 있는데? 상대가 안된다는 걸 깨닫자마자 도망쳤잖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듀시아는 남았어."

"남고 싶어서 남은 건 맞아? 그냥 여력이 안되어서 어쩔 수 없이 희생한 거 아니야?"

"그건..."


방금까지 신나서 조롱하던 기만의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걱정하는 기색의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그만해도 되잖아. 사람들을 믿었다가 배신당하는 그 비극의 악순환 말이야."

"..."

"태어날 때부터 넌 혼자였어.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쭉 혼자일 거야."

"하지만."

"정신차려. 저주받은 마법사의 후손인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어. 심지어 네 아비도 어미도 너를 한낱 미끼로 키운게 현실이야."


기만은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를 이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내 기억이었다.

나의 시작.

비극의 시작.


나는 태어나고 있었다.


울부짖는 여인.

절망에 빠진 사내.

그들을 보며 핏빛 장발의 사내가 서있었다.


"저거 봐. 저 인간은 이전까지 아이들을 죽여오던 자였어."


내가 기억 속의 트리아트 율레 치안군 대장보다 더 젊은, 대원 시절의 율레는 손에 쥔 기준과 씨앗에 억지로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랬던 인간이 왜 일부러 씨앗을 터트렸겠어?"


날이 지나며 빛을 잃었어야 할 기준과는 젊은 율레에 의해 원래 시간보다 더 이른 시간에 그 빛을 잃고 말았다.


"알고 있던 거지. 네가 옛말의 아이란 것을."


빛이 꺼지고 내가 태어났다.

앞으로 펼쳐질 비극에 몸서리치며 울어젖히는 내가 그곳에 있었다.

저주받은 마법사 트리아트 셋의 이름을 이어받은 내가 넷이 되는 순간이었다.


장면이 빠르게 지나가더니 다음으로 내가 서있는 곳은 혼자 남은 율레 대원의 앞이었다.

그는 검은 고양이와 함께 있었다.


- 투실라고. 네 말대로 살렸다.

- 잘 하셨습니다.




장면이 멈추고 여지없이 기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처음부터 나와 함께 죽을 희생양으로 태어났어."

"..."

"크크큭 물론 그 잔인한 계획은 훨씬 강력한 나로 인해 실패했지만 말이야."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벅찬 진실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도망치는 것이었다.


"어? 벌써 가? 더 안 봐?"


기만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갈래."

"킥. 그래. 어디로 데려다 줄까?"

"그냥 아무도...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갈래."


다시 눈을 뜨니 내눈에 펼쳐진 것은 이전보다 더 짙은 어둠이었다.


***


일곱 빛깔의 형형색색의 빛무리가 터지며.


"헉... 헉."


넷이 떠난 자리에 누군가 뒤늦게 나타났다.

평소 얌전히 넘기고 다니던 흑발은 헝클어져 있었고 그의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방금까지 여기에 있었던 거 같은데... 한 발 늦었나."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떼르 듀시아였다.

듀시아는 그가 들어선 곳을 둘러보았다.

검은 고양이, 투실라고와 젊은 시절의 율레 대장이 그곳에 서있었다.


듀시아는 흘러가야할 장면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기만의 검은 힘을 보았다.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는 곧 벼락을 쏘아내 장면을 멈춘 검은 힘을 태워버렸다.

멈췄던 젊은 시절의 율레가 말을 이어갔다.


- 앞으로도 3일에 태어난 아이들을 다 살리면 되는 건가?

- 예. 맞습니다.

-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내가 살린다고 해도 다른 많은 아이들은 여전히 죽을 것이다. 그 중에서 겨우 몇 명을 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이다.

- 의미가 없어보이는 일인데 율레님께서는 제 말을 왜 따르신 겁니까?

- 네가 말하지 않았나. 내게 마법을 가르쳐 줄테니 너의 부탁을 들어달라고.

- 단지 그뿐입니까?

- ...

- 따라오시죠. 율레님께서 걸어야 할 길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죽음의 숲 속으로 사라졌다.

듀시아는 이 장면을 기만이 왜 굳이 넷에게 보여줬으며 왜 중간에 억지로 장면을 멈췄던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 목적이 좋은 쪽이 아니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었다.


"빨리 찾아야겠어."


그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하는 순간이었다.

사방에서 검은 기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거 참... 빨리 가야하는데 질척거린단 말이지."


이윽고 몰려든 기운이 넷의 형상을 이루었다.


"귀찮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해봐야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거 같아?"


그가 맨 처음 넷의 기억으로 들어와 마주했던 넷이 태어날 때의 기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래가지 않아 넷의 형상을 한 기만이 나타나더니 그를 공격해오기 시작했고 그는 곧바로 싸워야 했다.

다행인 점은 소포르를 마셔 마법을 쓸 수 없던 것과 다르게 영혼의 세계에서 그는 마법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귀찮으면 네가 날 죽이면 되는 거 아니겠어? 이 파편 쪼가리야."


파편 쪼가리.

넷이 기만을 부를 때 쓰던 말이었는데 의외로 입에 착 달라붙는 것이었다.


"흥. 아까도 겨우 도망쳤으면서 입만 살았구나."

"겨우 도망쳤다고 하기에는 너도 꽤나 많이 다치지 않았던가?"


과연 그의 말대로 넷의 형상을 한 기만의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남아있었다.

기만 앞에서 허무하리만큼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던 것이 혁명단의 단원들이었다.

그런데 듀시아가 그것도 혼자서 기만과 싸워서 살아남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가 버틸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그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것이었다. 


또롱 또로롱


무지개 빛깔의 빛무리가 듀시아의 몸에 스며들었다.


"가시죠.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님."


파지지직


사방으로 전기가 튀며 그의 몸 주변에 벼락이 둘러졌다.


우르르릉

쾅쾅


기만이 뿜어내는 어둠과 듀시아의 벼락이 맞부딪히며 사위가 명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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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176. 오 권능자 비상 사태 큰일났다 23.03.31 3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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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174.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23.03.28 31 2 11쪽
173 173. 들어는 봤나 23.03.27 28 2 11쪽
172 172. 어떻게 이름이 +1 23.03.23 2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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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169.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23.03.20 28 3 11쪽
168 168. 말이 너무 많은 사람 23.03.16 38 2 12쪽
» 167. 기억 하나 23.03.15 24 2 10쪽
166 166. 황금곰 +1 23.03.14 32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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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164. 불씨 한 톨 꽃 한 송이 23.03.10 3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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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8. 상상도 못한 정체 23.02.28 3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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