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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1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최근연재일 :
2022.09.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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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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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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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68화

DUMMY

68.


‘언제 잠든 거지···.’


그가 눈을 떴을 때 주위는 어두웠고 창문으로는 달빛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유리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살기가 느껴지는 것도 없고 딱히 위험하다고 할 만한 것도 없으니.’


눈을 감고 몸을 편안하게 눕힌 다음 남아있는 잠기운에 의지해 잠에 빠져들었다.


‘흠, 막상 다시 자려 하니 잠이 오질 않네.’


유리는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켜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달빛에 의해 은은하게 빛나는 황고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한 3시간 정도는 잔 것 같은데.’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허리에 검을 차고 천천히 굳은 몸을 풀었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밖에서 그러고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 문도 안 잠겨있어.”


손잡이가 돌아가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마나도 사용하지 않길래 모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네.”

“마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기본적으로 남들보다는 감각이 발달해서 말이야. 그보다 황도에 들어오자마자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꽤 늦었네, 안나.”


유리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둘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너처럼 한가하지를 않으니까. 네가 기사단에서 나간 덕분에 너한테 가야 할 업무까지 우리가 분담하고 있거든.”


안나는 가운데 비치되어있는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유리도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은 미안하게 생각해. 그래도 라이라가 빈자리를 잘 채워주고 있지 않아?”

“그건 그렇지. 워낙 잘하는 아이니까. 그래도 아직 배워가는 과정이니까.”

“시간 지나면 더 잘하겠지. 그보다 혼자서 왔어? 이번에는 루테프랑 같이 안 왔나? 저번에는 손잡고 같이 나타났잖아.”

“폐하를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아 줄래?”

“나는 시체는 섬기지 않아서 말이야.”

“입이 험하네.”


안나는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녀에게서 미약하게나마 살기도 흘러나왔다.


“그렇게 살기 흘리지 마. 다른 기사들이 찾아오면 어떡해.”

“이 시간대는 아직 그들과 거리가 있어서 괜찮아. 너도 그걸 알고 이곳에 자리를 잡은 거 아니야?”

“뭐,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 하지만 그게 검을 뽑아도 상관없다는 말은 아니야. 그리고.”


유리는 검을 들어 안나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검을 뽑아도 못 이기잖아. 죽기 싫으면 가만히 있지?”

“그 검은!”

“안 돼. 이건 내 검이야.”


안나는 유리의 손에 들린 검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그는 뒤로 물러나며 손을 피해냈다.


“내놔!”

“내가 그래야 할 이유는 없어. 이 검은 단장님이 나에게 주신 검이니까.”

“할아버지를 죽이고 뺏은 검이겠지!”

“그렇게 말하면 유언, 안 가르쳐 준다?”

“유언이 아니라 할아버지에게서 뜯어낸 정보겠지.”


안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검날에 맴도는 푸른 빛이 방안을 밝혔다.


“안 믿네.”

“너 같으면 가족을 죽인 사람의 말을 믿겠어? 마주치면 죽이고 싶어지는 게 정상 아니야?”


유리는 검을 정리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너는 그 마음을 알면서 왜 마리아를 죽였어. 왜 그날 마리아를 데려간 거야?”

“왜냐고? 다 폐하를 위해서니까. 폐하께서 다시 살아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물이니까.”


말을 하는 안나의 얼굴에는 냉소가 그려져 있었다.


“그럼 우리에게 보여준 말, 행동, 표정 전부 연기였어?”

“연기는 아니야. 전부 진심이지.”


유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왜 루테프를 위해서 움직이는 거지? 지금의 올도프는 아스 폐하의 나라잖아.”

“그분의 정책도 일단은 올도프가 틀린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우리랑 가는 길과는 다른 길이니까.”

“그 길이 피범벅이어도?”

“그게 폐하가 가고자 하는 길이라면 두말없이 따라가야지.”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해서 떠들어 봤자 의미는 없겠어.”

“그럼 얌전히 할아버지의 검이나 내놔.”


안나가 그를 향해 검을 들이밀었다.

유리는 검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단장님께서 내게 주신 유품이야. 너는 유언이나 듣고 돌아가.”

“유언? 그럼 어디 한번 말해봐. 그게 네 유언이 될 테니까.”

“자신 때문에 네가 이렇게 됐으니 너를 미워하지 말고 자신을 미워하라더라고.”

“지어내지 마!”


안나가 들고 있는 검의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빨리 할아버지에게서 어떤 정보를 불게 했는지나 대답해.”

“믿든 안 믿든 그건 네 자유야. 대신 오늘은 싸울 생각은 없으니까 이만 돌아가. 어차피 내일부터 바빠질 텐데 말이야.”

“그딴 건 상관없어. 해가 뜨기 전에 너한테서 검을 뺏고 돌아가면 그만이니까.”

“아예 들을 생각을 안 하는군.”


유리는 검을 뽑지는 않았다.

그저 진정시켰던 마나를 강하게 일으키고 거칠게 살기를 풍겼다.

삽시간에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지며 강대한 기운이 가득 채워졌다.


“너도 느껴지니까 알잖아? 그러니 이만 돌아가. 너 하나로는 안 돼.”


안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검을 내리지 않고 유리만 바라봤다.

유리는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갔다.


“단장님 말씀대로 너를 미워할 생각은 없어. 그러니 싸우지도 않을 거고.”


그는 일으켰던 기운을 진정시켰다.


“다만 루테프를 죽이는 걸 방해하면 그때는 나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니 그 점은 참고해.”


걸어놨던 로브를 두르고 짐을 챙겼다.


“이제 기운을 느낀 기사들이 곧 있으면 도착할 거야. 나는 여기를 떠날 거니 따라오고 싶으면 따라오고 아닌 거라면 너는 내일 출정이나 준비해.”


유리는 안나를 지나치며 방을 나가 아래로 내려갔다.

카운터에 열쇠를 돌려주며 여관을 나서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라.”


기사 몇이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빠르긴 빨라. 벌써 주변 통제까지 완벽히 끝냈어. 길목은 귀찮겠군.’


유리는 배수구 구멍을 열어내고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물소리도 내지 않은 채 지하수로를 천천히 움직였다.


‘지금 시간에는 마땅히 갈 데가 없으니···. 그냥 집으로 가야겠는데.’


중간마다 나오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배수구를 통해 밖을 확인했다.

몇 번 그런 식으로 확인하고 집 근처의 골목이 눈에 들어오자 주위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유리는 유유히 정원을 걸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집이 제일 편하긴 해. 안에 들어온 것만으로 긴장이 풀려.’


유리는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편하게 침대에 몸을 눕혔다.


‘내일 아침에 기사단은 출정식을 하고 세 장소로 움직일 거야. 과연 안나가 세 곳 중 한곳으로 갈지 아니면 루테프 곁에 있을지···.’


생각하기를 잠시 고개를 돌려 커튼이 처져있는 창을 바라봤다.


‘며칠 전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괜찮아.’


유리는 눈을 감았다.


***


“다른 건 다 상관없는데 내가 2주 전에 너한테 줬던 편지는 보냈겠지?”

“나를 도대체 뭐로 보고 있길래 그런 얘기를 하냐? 너도 많이 일 해봐서 알잖아.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하다는 거.”

“그건 그렇지.”


유리는 물을 홀짝였다.

길베르트는 술을 홀짝이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너 갈데없어? 술도 안 마실 거면 뭐 하려고 이 새벽에 우리 가게에 찾아왔냐?”

“집도 무너지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깼는데 다시 못 자서 말이야.”

“너도 참. 기사단에서 안 나왔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잘 알고 말해. 딸이 있었으면 애초에 기사단에서 나오지도 않았어.”

“뭐 그것도 그렇지.”


길베르트는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이번에 준 것도 확실하게 보낼 테니까 걱정하지마. 쓰읍. 아오, 아파라.”

“갑자기 왜 이래.”

“혀 씹었어. 씨바 겁나게 아프네.”

“돈도 많이 버는 놈이. 고기 좀 사 먹고 다녀. 안 먹으니 고깃덩어리인 줄 알고 혀를 씹지.”

“안 어울리게 무슨 말장난이냐? 설마 재밌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지?”


유리는 말하지 않고 그저 물만 홀짝였다.

길베르트는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진짜 가관이다, 가관이야.”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보다 고생해라, 간다. 앞으로 마주치지 말자.”

“그래. 너도 어디 가서 굶어 죽지만 마라.”


가게 밖으로 나간 유리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한 달, 길었어. 서쪽을 갔다가 동쪽으로. 다시 서쪽으로 간 뒤 또 동쪽으로.’


왼손을 들어 팔찌와 두 개의 반지를 바라봤다.


‘이제 이것도 한 번만 사용하면 끝인가.’


유리는 손을 내리고 하늘을 바라봤다.

동이 트기 전이라 어둡지만 서도 맑은 하늘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끝이 다가와서 그런지 오만 생각이 다 드는군.’


고개를 내리고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해를 등진 황궁을 바라봤다.


‘슬 시작하겠어.’


그는 망원경을 들어 황궁을 확인했다.


***


“총원 차렷! 총단장님께 대하여 경례!”

“그래. 다들 고생한다.”

“바로!”


기사단이 정자세로 돌아가자 롬은 목을 한 번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기사단 총원. 오늘 우리가 모인 이유는 다들 들어 알고 있겠지.”

“예!”

“그래. 너희들이 알고 있다시피 우리는 오늘 현 제국의 분위기를 흐린 납치범들을 벌하러 간다. 조사 중 그들은 하나의 거대한 조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판명됐고 마나 사용자가 있는 것으로 인해 우리 제국 기사단이 출정 하게 됐다. 그들은!”


우렁찬 롬의 목소리에 일대에 흐르던 잡소리가 말끔히 사라지고 고요함만이 자리 잡았다.


“제국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아이들을 붙잡아 입에 담지도 못할 모습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중 한 아이는! 우리가 좋아했고 경외를 품고 존경한 기사, 유리 리버스의 딸이기도 하다.”


기사들의 대열 사이로 긴장감과 비장함이 맴돌았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지켜야 했던 이들을 못 지켰다는 것에 대한 무력함과 누군가에게는 친구 또 누군가에게는 목표 또는 상관, 부관 그리고 제자였던 이에 대한 복수감을 담아 검을 휘둘러야 한다. 기사단 전원은 검을 휘두름에 있어 단 하나의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

“예!”

“총단장인 나는 자네들의 방금 대답을 믿고 가장 선두에서 길을 뚫을 테니 제군들에게는 내 뒤를 맡긴다. 전 기사단은 출정하라!”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뿔피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롬은 준비되어있는 말에 올라타고 말을 몰아 먼저 움직였다.

기사들은 대열을 맞춰 그의 뒤를 따랐다.


“각 단장들.”


듀크, 레니안, 단테가 재빨리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황궁을 나서는 순간 바로 말을 몰 터이니 부하들에게 전달하도록.”

“예.”


롬을 선두로 해서 제국기사단은 유유히 황궁을 빠져나왔다.

거리에는 기사단의 출정 소식을 들은 제국민들이 대로변에 모여있었다.

그들의 눈에 담긴 감정은 하나하나 다 달랐으나 모두 기도하듯이 두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기사단은 그 사이를 말없이 움직였다.


“하루스 후작님!”


한 여성이 인파를 뚫고 나와 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황급히 말을 멈춰 세웠다.


“왜 그러느냐.”


롬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후작님, 후작님의 앞길을 막는 죽을 죄를 지었으나 이 부탁 하나만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말에서 내려와 눈높이를 맞췄다.


“죄인 것을 알면서도 막은 거면 다 이유가 있을 터. 내가 가능한 것이면 들어줄 터이니 말해 보거라.”

“예. 저는 죽은 아이 중 한 아이의 엄마입니다. 제 아이는 커서 꼭 후작님 같은 기사가 되겠다고 항상 말하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아이의 꿈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 위에서 제 아이가 후작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싸워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내 명예를 걸고 그대의 아이가 볼 수 있게 용맹하게 싸워 주겠다.”


롬이 일어나자 기사 하나가 다가와 여자를 부축해 인파로 옮겼다.

그는 말에 올라타고 검을 높이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올도프의 국민들이여! 올도프 제국 기사단 총단장 롬 하루스의 이름을 걸고 자네들의 분노, 슬픔, 좌절감 등 모든 감정이 사라지도록 이 검과 함께 모든 것을 베어내겠다! 그러니 부디 우리 기사단의 안녕을 빌어주길 바란다.”


그들은 하나같이 눈을 감고 기사들을 위해 기도를 했다.

롬은 검을 정리하며 다시 말을 몰았다.


***


‘평소처럼 행동하고 계시네. 그리고 안나는···.’


기사들이 황도를 벗어나며 빠르게 거리가 멀어지자 망원경을 정리하고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건물에서 내려와 발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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