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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1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최근연재일 :
2022.09.20 19:45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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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51,055

작성
21.01.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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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7화

DUMMY

67.


‘잡초가 많이 자랐네.’


유리는 정원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천천히 걸었다.


‘주변을 완전히 통제해준 덕분에 편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로브를 넘겨 얼굴을 드러내고는 편하게 움직였다.

저택 안으로 들어간 유리는 가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리고 손가락을 확인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먼지가 많이 쌓였어.’


손가락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부서진 문을 통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금이 가고 부서진 벽, 떨어진 찻장과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유리 조각들, 부서지고 널브러져 있는 가구 등.

망가져 있는 주방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때랑 바뀐 건 없네.’


유리는 발걸음을 옮기기를 잠시 발을 멈추더니 몸을 숙여 바닥을 문질렀다.


‘여기서 내가 정신을 잃었었지.’


그는 몸을 일으키고 손에 묻은 먼지를 털며 주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시 발을 옮겨 2층으로 올라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래도 여기는 멀쩡하네.’


여러 인형과 아기자기한 물건들과 그리고 아이용 가구들.

그곳은 딸의 방이었다.

유리는 책상에 올려져 있는 책을 들고 한 장씩 천천히 넘겼다.


‘황실 마법사 이야기. 마리아가 좋아하던 얘기였지.’


이제 책은 덮고 방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여기가 당신의 딸의 방인가요? 가구나 인형을 제외하고는 아이의 분위기에는 맞지 않는 방이군요.”


유리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방만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 아이는 레이스 같은 것들은 싫어해서 말이야.”

“하지만 죽기 전에 입고 있던 옷은 레이스가 달려 있던걸요?”


인형을 한 번씩 두드리며 그가 입을 열었다.


“그거는 총단장님께 선물을 받았으니까.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입고 다녔지. 뭐, 움직이기에 편한 것도 있었고.”


유리는 가구를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보다 뺨에 생긴 상처는 어때? 내가 이쁘게 만들어줬잖아.”

“당신을 볼 때마다 아려옵니다.”

“그래도 실금하지 않는 부분만큼은 칭찬해줄 만해.”


그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하지만 여자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보다 황궁에서 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있으신 거죠?”


그저 자기가 할 말만 했다.

유리는 손을 내리고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왜? 너희의 폐하께서 내 행동 때문에 많이 불안하기라도 하신가 봐?”

“묻는 것에만 답해주시죠.”

“내가 그래야 할 이유는 없잖아. 그런데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너희는 왜 자꾸 찾아오는 거지? 지겹지도 않나 봐?”

“글쎄요? 저 같은 범인이 어떻게 위대한 분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그래?”


유리는 책을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그녀를 지나치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는 곧바로 유리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안 싸울 거면 떠나면 안 되나? 혼자 있고 싶은데 말이야.”

“어머, 혹시 제가 방해되는 건가요?”

“그럼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와 내 가족의 집에 외부인이 허락 없이 들어왔는데 반가울 리가 있나.”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그 가족은 세상에서 살아졌는걸요?”


유리는 무시하며 어느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따라온 여자는 방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곳이 당신 방인가 보군요.”


유리는 대답하지 않고 서랍을 열어 나온 자루를 배낭에 넣었다.


“그 자루는 뭔가요?”

“돈인데 필요한가?”

“그닥요. 그보다 저를 죽이시지는 않으시는 건가요? 당신의 심기를 계속 거스르고 있는데 말이죠.”

“너를 죽인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이곳에서 피를 보기는 싫어서 말이야. 뭐, 내 앞에서 입방정을 떠는 놈이 루테프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말이야.”

“그 말은 듣기에 불쾌하군요.”


여자는 자신의 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럼 말로만 불쾌하다고 하지 말고 덤벼. 상대해 줄 테니까.”


푸르게 빛나는 유리의 눈동자가 여자를 향했다.

그녀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입을 열었다.


“질 싸움은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럼 분위기 망치니까 주둥이 닫고 옆에서 그냥 지켜보고만 있어.”


은근히 흘러나오는 거친 기세에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유리는 그녀를 무시하고 기운을 가라앉히며 조용히 집을 좀 더 둘러본 뒤 밖으로 나갔다.

여자는 말없이 그를 따라갔다.

그는 여자가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손으로 목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어째···서···.”


여자는 반응하지 못하고 손쉽게 붙잡혔다.


“집 밖이니까. 그보다 아까는 잘도 지껄이던데 지금도 해봐.”


여자는 고통과 함께 공중에 뜬 채 허우적거릴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유리의 팔을 붙잡았으나 그게 다였다.

그녀의 힘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쿨럭! 쿨럭!”


유리는 여자를 집어 던지고 고통스러워하는 건 신경 쓰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지금 그 가면을 통해서 루테프가 듣고 있는지는 모르니 네가 직접 가서 전해. 네가 몇백 년에 걸쳐 준비한 계획 내가 다 부숴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그는 그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걷고 걸어 도착한 곳은 벌집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간 유리는 바텐더의 맞은편에 앉았다.


“추천할만한 술 있어? 가격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 말에 바텐더는 아래에서 술병을 꺼내 술잔에 따랐다.

적갈색의 술로 가득 찬 잔이 유리의 앞에 놓였다.

그는 향을 맡고 음미하며 금세 술잔을 비웠다.


“좋네. 얼마야?”


바텐더는 그가 내려놓은 술잔에 술을 따르고 수화를 했다.


“그래?”


유리는 술잔을 들어 기울이며 술을 바라봤다.


“좋은 술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많이 나가네. 이거 구하느라고 여간 힘든 게 아니었을 거 같은데.”


바텐더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한숨을 쉴 정도면 말 다 한 거지. 딱 봐도 길베르트가 무리한 것도 같고. 그 구두쇠가 잘도 이런 거금을 썼네.”


그는 술을 들이켜고 배낭에서 자루를 꺼내 바텐더에게 건넸다.

바텐더는 즉시 자루를 풀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다른 건 아니고 길베르트한테 치러야 할 대금이야. 이자까지 두둑이 챙겨줬으니 고마우면 약 좀 끊으라고 전해줘.”


바텐더는 자루를 다시 묶고 테이블 아래 집어넣고는 빈 술잔에 술을 따랐다.

유리는 한 모금 들이켜고 얘기를 이어갔다.


“길베르트도 약 한지 꽤 오래됐지?”


바텐더는 술잔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니까 옛날보다 한 번에 흡입하는 양이 많아졌더라고. 지금이야 알약이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점점 그 약의 효력도 먹히지 않는 시기가 올 거야. 자칫 잘못하다가는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니 잘 확인해줘.”


아직 술이 남아있지만, 바텐더는 술잔에 술을 채워 넣었다.

유리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 약의 부작용은 너도 알다시피 몸속에 계속 쌓이고 수명을 깎는 거니까.”

“뭐야?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여길 또 왔어? 그리고 웬일로 네가 여기서 술을 다 마시고 있다.”


유리가 술을 홀짝이는 사이 길베르트가 한쪽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유리의 맞은편에 앉고는 술잔을 하나 꺼내고 술을 따랐다.


“이 술, 맛 좋지 않아?”

“좋기는 좋은데 가격에 비해서는 좀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어.”

“어쩔 수 없는 게 이 술은 이 대륙에서 만들 수 없는 술이니까. 타 대륙에서 만든 걸 들여오는 거라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걸?”

“수집욕이 강한 귀족들이나 너 아니면 콜크 말고는 사 먹을 사람은 없어 보이는데. 이것도 귀족들에게 납품하다가 힘들게 받아낸 거 아니야?”


길베르트는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


“크, 좋다. 뭐 비슷하지. 내 돈 주고 사 먹기에는 조금 아까우니까. 가격이 워낙 비싸야지.”


길베르트는 빈 잔에 술을 따르고 유리를 향해 내밀었다.

유리는 말없이 자신의 술잔을 그의 술잔에 부딪혔다.

둘은 동시에 술을 들이켰다.


“좋다, 좋아.”

“그러게.”

“그보다 우리 이렇게 마주 보고 술 마시는 게 얼마 만이지?”

“4년. 마리아가 그때 생겼으니 그때 이후로는 마신 적이 없지.”

“그때 연도 끊었고 말이야.”


유리는 어깨를 으쓱이고 바텐더가 따라준 술을 홀짝였다.

길베르트도 술을 홀짝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도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이러는 거냐?”

“뭐가?”

“아니, 연도 끊은 놈이 사근사근 대하지를 않나,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나랑 같이 술을 마시지 않나. 네가 생각해도 지금 상황이 이상하지 않냐?”

“딸을 내 손으로 묻어서 이제는 다 의미 없어졌거든.”

“그런 거였냐. 걔를 위해 갖은 고생을 했으니 이럴 만도 하다. 그보다 언제 발견한 거야?”


유리가 술잔을 내밀자 바텐더가 술을 따랐다.

그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질문에 답했다.


“여기서 황도를 벗어날 수 있는 통로 물어봤을 때 있지. 그날 밤에 발견했어.”

“신도 매정하네. 부모 앞에 그런 모습을 보이게나 하고 말이야.”

“매정한 거는 진즉에 알고 있었잖아. 우리 둘 어릴 때만 봐도 답은 나오지 않냐.”


길베르트는 술을 홀짝이며 허탈한 웃음소리를 냈다.


“좃같은 유년 시절이었지. 그래도 그때 그 임무 덕에 우리 둘 다 높은 위치까지 올라왔다.”

“활동하는 구역은 다르지만 말이야.”

“나는 너처럼 검이나 싸움에는 재능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스승님 아래서 배운 경제를 이런 방식으로 써먹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기는 해.”

“머더러즈에 있는 자체가 미친 짓인데 그게 뭐 힘들다고.”

“그리고 시간 날 때 옛날 길드 좀 불태워 없애봐. 아직도 작동하더라.”


길베르트는 놀란 눈빛으로 유리를 바라봤다.


“와···, 그게 아직도 작동한다고? 진짜 징하다, 징해.”

“그러니 빨리 처리해. 아니면 네가 물건들을 챙기던가. 안에 있는 물건들이 다른 길드 손에 들어가면 골머리 좀 썩힐걸?”


유리의 말에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네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빨리 처리하기는 해야겠네. 사이드 길드 같은 놈들 손에 들어가면 많이 복잡해지기는 하겠어. 시간 날 때 직접 움직여야겠는데.”


유리는 남은 술을 다 들이켜고 몸을 일으켰다.


“가려고?”

“아무래도 오래 있었으니까. 여기서 밤을 셀 수는 없잖아.”

“뭐, 나도 밤에는 여기는 피하니까. 돈은 필요 없으니까 그냥 가도 돼.”

“너 같은 구두쇠가 웬일이냐?”

“오랜만에 파트너랑 술 마셔서 그런지 취했나 보지 뭐.”


옆에서 바텐더가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길베르트가 쳐다보자 그는 다시 소리를 죽이고 컵을 닦았다.


“뭐, 나야 상관없지만. 그리고 내일 이후로는 제국에서 날 볼일은 없을 거야.”

“그건 또 뭔 소리냐?”

“가족, 집, 일자리 모든 걸 잃었는데 더 이상 제국에 있을 필요는 없잖아.”

“일리는 있네. 너야 뭐 알아서 잘 살기야 하겠다만 굶어 죽지만 마라. 안녕은 빌어줄게.”

“너는 약이나 끊어라.”


유리는 그 말을 남기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가게 안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 황도는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발걸음을 옮겨 여관에 도착했다.


“제일 위층으로 주십쇼.”


돈을 지불하고 열쇠를 받은 유리는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잠을 잘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보다 끝이 다가오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더 차분해 져.’


창밖으로 해가 지며 점점 어두워지는 황도를 바라보며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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