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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1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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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최근연재일 :
2022.09.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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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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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055

작성
21.01.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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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62화

DUMMY

62.


‘시간이 꽤 많이 지났어.’


대장간의 문을 열고 나간 그의 눈에 들어온 황도는 주홍빛에 물들어 있었다.


‘해가 지고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는데. 서둘러 움직여야겠어.’


“이 양반아! 작작 좀 치고 다녀!”


뒤에서 들려오는 노인의 호통은 무시한 채 기운을 가라앉히고 서둘러 발을 움직였다.


‘내가 황도에 들어와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을 거야.’


그 생각에 유리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서쪽 상가를 지나가고 있어 사람들과 어깨가 부딪히며 그들에게서 불평이 일어났으나 무시하고 그저 앞으로만 움직였다.


“치고 갔으면 사과를 해야지 않겠어?”


덩치 큰 남자가 유리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아니 이 새끼가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사과야?”


성의가 느껴지지 않았는지 남자는 더 성을 내며 손에 힘을 줬다.


‘쓸데없이 발 길이나 붙잡고 있어.’


유리는 어깨를 붙잡은 남자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살포시 올렸다.


“지금 뭐.”

“가던 길이나 가라.”

“예.”


남자는 흐릿한 눈빛과 함께 손을 내리고 몸을 돌려 상가를 가로질러 움직였다.

유리도 신경을 끄고 다시 움직였다.

전처럼 가면을 쓰고 거리를 움직이는 이가 있는지 살펴보며 속도를 올렸다.

하지만 평소의 거리와 변함이 없었다.

다른 점은 발견하지 못한 채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끄럽군.’


밖으로 새어 나오는 소음에 미간을 찌푸린 채 벌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벌써부터 거나하게 취한 이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몸을 똑바로 가누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뭐야? 못 보던 얼굴인데 처음 오는 거야?”


유리는 몸을 틀어 그를 피하고 바텐더 앞으로 갔다.


“사장은 안에 있지?”


바텐더는 건네려던 술잔을 다시 가져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베르트를 부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를 유리가 손을 들어 말렸다.


“됐어. 이 정도 인원이 빠져나가는 데는 시간도 꽤 걸리니까 내가 방으로 갈게.”


그의 말에 바텐더는 품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건넸다.


“이곳도 박쥐랑 방법은 똑같아?”


바텐더는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오른손과 왼손을 차례로 든 다음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알겠어. 복잡하지는 않네.”


유리가 테이블에 기댔던 몸을 일으키자 바텐더가 길을 터주고 문 하나를 열어줬다.

그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고 얼마 가지 않아 나온 문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리고 왼쪽으로 2번, 오른쪽으로 3번 돌린 뒤 열쇠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고 두 번 더 돌린 뒤 빼냈다.


‘이제야 마나가 좀 부드럽게 도는군.’


동시에 손에 힘을 주자 그제야 손잡이가 돌아가며 문이 열렸다.

안에는 유리가 올 것을 생각지도 못한 길베르트가 돈뭉치로 부채질을 하며 연초를 피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별다른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주 살판이 났어.”

“왔어···.”


그는 힘없는 목소리와 함께 살짝 풀린 눈으로 유리를 바라봤다.


“또 약하고 있냐.”


유리는 손을 휘저어 연기를 날리며 가까이 다가갔다.

길베르트가 앉아있는 의자를 뒤로 당기고 몸을 숙여 서랍을 하나씩 열었다.


“어디 놔뒀어.”

“오른쪽 가운데 서랍···.”

“아무것도 없는데.”

“아래를 들추면 나올 거야.”

“아래라.”


그 말에 손을 집어넣고 몇 번 움직이자 아래에 깔려있었던 판이 잡혔다.

판을 잡고 들어 올리자 숨겨진 공간이 드러나며 알약이 담긴 유리병이 나타났다.

유리는 그것을 집어 들고 몸을 일으켜 길베르트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이거 맞아?”

“어···.”

“몇 알 줘?”

“둘.”


유리는 뚜껑을 열고 길베르트의 빈손을 억지로 가져와 그 위에 약 두 개를 올렸다.

계속해서 입에 물고 있던 연초도 뺏어 불을 끄고 재떨이에 올렸다.


‘여전히 방에는 물이란 걸 찾아볼 수가 없군.’


어쩔 수 없이 배낭에서 물을 꺼내 뚜껑을 열고 길베르트의 손에 들려줬다.


“혼자서 먹을 수는 있지?”


길베르트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 물과 약을 입에 넣고 한 번에 삼켰다.


“쿨럭! 쿨럭!”

“그러게 왜 약을 해가지고는.”


유리는 그의 등을 몇 번 두드려주고 손에 들려있는 물을 가져온 다음 밖으로 나가 바텐더에게 말을 걸었다.


“이것 좀 태워줘. 물도 함부로 버리지 말고. 길베르트가 입을 댔어.”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받았다.

그리고 유리가 다시 길베르트에게 돌아가니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힘차게 대답을 했다.


“왔어?”

“온 지 좀 지났어. 그보다 약은 언제 끊을래.”

“언젠가 끊겠지. 그리고 나도 끊고는 싶어. 뭐, 그 얘기는 넘어가고 물건 때문에 온 거지?”

“그럼 뭐 때문에 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 겸사겸사 다른 일도 있겠지. 그래도 네가 말한 물건은 빠짐없이 다 준비했어.”

“밖에 있는 저거야? 화약 냄새가 은연중에 나기는 하던데.”

“쓸데없이 감각이 좋아서는. 맞아. 밖에 있는 거 전부 다 그 물건이야.”

“양은 충분하네. 대신 냄새는 좀 지워. 그때에 비해 화약 냄새가 좀 심해. 그리고 화상약 같은 거 있어?”

“그건 왜?”

“화상을 좀 크게 입어서.”


다쳤다는 말에 길베르트가 놀란 눈빛을 지었다.


“누가 너를 다치게 한 거야? 이왕이면 나한테 소개 좀 시켜주라.”

“닥치고 화상약 있냐고.”


유리의 살벌한 분위기에 그는 몸을 움츠리며 질문에 답했다.


“밖에서 말하면 치료해 줄 거야.”

“그래. 그럼 나중에 다시 찾아올 테니까 물건은 잘 보관하고 있어.”


볼일을 다 본 유리가 일어난 뒤 나가려고 하자 갑자기 길베르트가 말을 걸었다.


“야.”

“왜.”

“혹시 화났어?”

“네 눈에는 내가 화난 거 같냐?”

“너는 이 약을 혐오하니까 혹시 몰라서···.”

“이제 의미 없어. 그보다 저것들 조금이라도 흠 생기면 다 엎어버릴 테니까 그런 걸로 알고 있어.”


그 말을 남기고 방에서 나와 바텐더를 찾아갔다.


“화상약 있나?”


바텐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 오른팔 좀 치료해줘. 생각보다 상처가 심해서 말이야. 지금 상황에 내가 치료원에 갈 수가 없어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따라오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유리는 조용히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 구비되어있는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 앉은 그를 확인한 바텐더는 팔을 보여달라는 듯이 행동을 취했다.

유리가 로브를 걷어내며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새하얬던 붕대가 누런 진물에 물들고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바텐더가 손을 활짝 펼쳤다.


“5분?”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의료용품과 의자를 끌고 와 유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꽤 빨리 끝나네. 그럼 조심 좀 해줘.”


바텐더는 눈웃음을 지으며 붕대에 손을 올리고 조심히 뜯어냈다.

굳은 진물이 바닥에 떨어지고 피부에 달라붙어있던 붕대가 조금씩 떨어졌다.


“흠···.”


유리의 숨소리에 그가 잠깐 머뭇거리기는 했으나.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빨리 치료해줘. 아직 갈 곳이 있어.”


그 말에 언제 머뭇거렸다는 듯이 거침없이 붕대를 뜯어내고 오른팔을 치료했다.

치료원도 아니고 전문의도 아니기에 응급처치 수준밖에 되지 않았으나 확실히 통증이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붕대를 고정하는 것을 끝으로 응급처치가 끝이 났다.


“고마워. 아까보다 확실히 움직이기가 편해졌어.”


유리의 인사에 바텐더가 눈웃음을 지으며 수화를 사용했다.


“꼭 치료받을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리고 나 말고 네 사장이나 챙겨. 너도 저 약이 얼마나 안 좋은지는 잘 알고 있잖아.”


그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 그 자식이 네가 충고한다고는 해도 들을 놈은 아니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어쨌든 그놈 옆에서 고생 좀 해라.”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 빠르게 벌집을 벗어났다.

그리고 방향을 틀어 오두막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가 가게를 나왔을 때는 해가 지고 어두워져서 그런지 거리를 거니는 사람이 많이 줄어있었다.

덕분에 편하게 오두막까지 움직일 수 있었고 코볼트를 통해 콜크와 마주했다.


“여기는 또 무슨 일이야? 나한테 케륵, 맡긴 의뢰는 없을 텐데.”

“다른 게 아니라 네가 가지고 있는 황도의 지도 좀 다 보여줬으면 해서.”

“지도는 뭐 하려고.”

“가져오라고 하면 토 달지 말고 그냥 가져와.”


유리가 소파에 몸을 기대앉았다.

콜크는 눈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망할 태도하고는. 케르쿠르락 키르가락 카륵.”


콜크의 말에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코볼트 한 마리가 문을 열고 울어댔다.


“게르 카르쿠룩.”

“케르락.”


잠깐의 대화가 끝나자 코볼트가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런 거는 길베르트한테 가면 될 텐데 뭐 하려고 이곳까지 왔지.”

“이미 갔다 왔어.”

“그럼 그쪽에서 일을 보면 됐잖아.”

“약을 거하게 빨았더라고.”

“타이밍이 좋지 않았군.”

“그래. 약을 먹이기는 했지만 금방 잠에 빠질 거니까. 게다가 내가 지금 지도를 찾는 게 납치사건을 끝내려고 하는 거라서 말이야.”

“딱 길베르트가 돈 냄새를 맡을 만한 일이야.”

“그러니 여기 왔지. 너희는 이런 일은 안 하잖아.”

“안 한다기보다는 못하는 거지. 어떻게 우리가 몸을 드러내고 다니겠어.”

“그것도 그렇지. 마침 왔네.”


유리가 탁자의 가운데에 놓인 술병을 따고 들이키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케르쿠르락.”


콜크의 울음소리에 문이 열리더니 코볼트 하나가 말린 종이가 가득 담긴 상자를 놓고 물러났다.

유리는 상자 가까이 다가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배낭에서 소크테라에게 받은 종이를 꺼낸 다음 지도를 하나씩 펼쳤다.

콜크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곁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그 종이는 뭐지?”

“이 종이에 맞는 축척의 지도를 찾아야 해. 그래야 장소가 나와.”

“신기하군. 혹시 나한테 이 사람을 소개해 줄 수 있나?”


유리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지도만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이종족인데?”


이종족이라는 단어에 콜크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못들은 걸로 해줘. 구루락. 구역질이 다 나는군.”

“애초에 알려줄 생각도 없었어.”


콜크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지도를 펼치고 종이와 맞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18번째 지도를 펼치고 종이를 맞댔다.


‘찾았다!’


종이의 가운데에 그려진 원과 황도의 크기가 딱 맞아떨어졌다.

유리는 콜크에게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펜. 빨리!”


그의 다급함에 콜크는 질문도 하지 않고 펜을 건넸다.

유리는 펜을 종이에 대고 거침없이 줄을 그었다.

그리고 줄이 교차하는 지점에 펜을 강하게 내려찍었다.


“케르락! 그렇게 행동하지 말라고 했잖아. 설마 바닥까지 뚫린 건 아니겠지?”


콜크의 말을 무시하며 펜을 뽑아내고 지도를 들어 의식이 이뤄지는 위치를 확인했다.


“바닥! 바닥이! 유리! 이 나무가 얼마나 비싼 건지 알기나 해!?”


콜크가 아래에서 유리를 노려보며 성을 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도를 확인했다.


‘이 근처에 마을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지도 없이는 장소를 찾기가 상당히 애매해. 게다가 오늘 쓸데없이 날린 시간도 있으니.’


그는 말없이 지도와 종이를 말고 콜크에게 건넸다.


“배상해줄 테니까 잠시 들고 있어 봐.”

“배상을 안 해주면 세상 끝까지 애들을 보내서라도 널 찾을 거니까 도망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그 부분에 관해서는 걱정 안 해도 돼. 이래 봬도 전직 제국 기사단 부단장에 준남작이라 모아둔 돈은 많아. 다른 것보다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고기 방패는 얼마나 있어?”


콜크는 애써 화를 억누르며 질문에 답했다.


“못해도 대충 이백 정도는 될 거다.”


콜크는 손을 들고 검지와 엄지를 오므려 원을 만들었다.


“하지만 사용하려면 돈이 꽤 많이 드는 데 감당이 가능한가 보지.”

“얼마나 드는데.”

“2000골드.”

“그 정도면 충분해. 그럼 나중에 보자고.”


그 말을 하며 품에서 단검을 꺼내더니 곧바로 목을 깊게 그었다.


“케르락!”


그 행동에 놀란 콜크가 울부짖었으나 유리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유리는 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쏟아내며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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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4화 21.01.15 2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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