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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1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최근연재일 :
2022.09.20 19:45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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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수 :
451,055

작성
21.01.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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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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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1화

DUMMY

61.


“그래.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유리가 물러난 걸 확인한 노인은 만들고 있던 검에 다시 망치질을 시작했다.

다시 불에 달구고 두드리기 반복해 모양을 만들었다.

또 불에 달군 다음 작두로 정확한 모양을 만들고 담금질을 했다.


‘꼴에 대장장이라고 진지하기는 하군.’


마지막으로 연마를 한 뒤 완성품을 확인하고 검을 정리했다.

노인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냉수를 들이켰다.


“캬! 땀 흘린 뒤에 먹는 냉수는 천국 그 자체지.”


물을 유리를 향해 들이밀며 입을 열었다.


“마실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음 말고.”

“여유 부리지 말고 빨리 문을 열기나 해.”

“잉. 젊은 놈이 마음만 급해가지고는.”


노인은 물을 내려놓고 대장간의 입구를 잠근 다음 문에 다가가 자물쇠를 하나씩 풀었다.

저번과 달리 정신이 멀쩡해 빠르게 자물쇠를 풀어갔다.

얼마 안 가 자물쇠가 다 풀리며 노인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유리도 뒤따라 들어갔다.


“자물쇠를 다시 걸어야 하니 잠시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유리는 그의 말을 무시하며 먼저 길을 따라 움직였다.


“거, 성격이 뭐 이리 급해!”


노인은 서둘러 자물쇠를 잠근 뒤 앞서간 유리를 향해 뛰어갔다.

방금까지 작업을 해서 그런지 조금밖에 뛰지 않았는데 그는 숨을 거칠게 쉬었다.


“조금 기다리라니까! 왜 사람 말을 무시해.”

“갈 길이 급해서 말이야.”

“어차피 내가 가야 문을 열 수 있다는 거 저번에 와서 알고 있잖아.”

“베어버리면 되는데 너를 기다릴 이유는 없잖아.”

“지밖에 생각 안 하는 아주 이기적인 새끼였어.”


그는 신경 쓰지 않고 유리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좀 천천히 가!”


둘 사이의 거리가 빠르게 멀어지자 노인이 크게 소리쳤다.


“미안. 내가 이기적인 새끼라서 말이야.”

“아 진짜! 사과할게, 미안해 미안하다고!”


그제야 유리의 걸음걸이 살짝 느려졌다.

노인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그를 앞장섰다.


“그런데 말이야.”


등불의 빛에 의지해 걷는 와중 고요한 동굴 안에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왜 그러지?”

“아니, 내가 취하지 않은 이상은 이렇게 조용한 건 버티기 힘들어서 말이야. 혹시 재미난 얘기 같은 건 없어?”

“없지는 않지.”

“그래? 조용하고 이상한 놈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 봐. 그럼 심심하니 좀 들려줘 봐봐.”

“죽을 뻔한 얘기. 죽이는 얘기. 크게 다친 얘기. 세 개 중에 하나 골라봐봐.”


유리를 바라보는 노인의 인상이 크게 구겨졌다.


“지금 그게 재밌는 얘기라고 하는 거야?”

“그것 말고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지 않아서 말이야. 아, 하나 더 있었네.”

“또 비슷한 거 아니야?”

“달라. 이건 바퀴벌레를 먹은 얘기니까.”

“얘기만 들어도 토할 것 같은데. 그런 거 말고 인생 얘기나 해봐.”

“내가 왜?”

“심심하니까 그렇지.”

“그럼 먼저 너부터 해.”

“에이. 난 됐고.”

“그럼 나도 안 해.”


노인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질문은 해도 되나?”


고개를 앞으로 돌리기를 잠시 다시 유리에게로 향하며 입을 열었다.


“질문할 수 있는 건 답해줄게.”

“그럼 일단 길 양반이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옛날 파트너였어.”

“그럼 지금은 왜 같이 안 다니지?”

“어떤 부탁을 들어줬어. 대신 연을 끊기로 했지. 약점을 이용해서 감당하기 힘든 일을 시켰거든.”

“그 부탁이라는 건 역시 말해주지 않겠지?”


유리는 입꼬리를 내리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좀 아쉽네. 그 얘기는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쪽 입장에서는 별로 재미없을걸? 앞서 말했던 세 가지가 다 들어가 있는 얘기니까.”

“그럼 됐어. 근데 무슨 인생에 그런 거밖에 없어?”

“길베르트의 파트너였던 사람한테 뭘 바래.”

“그 양반도 똑같았어?! 맨날 찾아가면 약한 듯이 뿅 가버린 행동만 취해서 단순히 이상한 놈인 줄 알았는데 인생에 굴곡이 많았구먼.”

“뒷골목 새끼들이 다 거기서 거기지. 너 같은 놈이랑 다를 바 없어. 좀 더 독하고 뒷일을 생각 안 하는 거? 그게 다야.”

“돈은 많이 벌잖아.”

“아첨 잘하고 뒤통수만 잘 패면 돼.”


유리의 설명에 노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난 맘이 약해서 그런 건 못해.”

“그러면서 이 일은 잘도 하네.”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야. 빚만 아니었으면 이 지랄도 안 했어.”

“빚이 얼마길래?”

“100만 골드.”

“이자 빼고.”

“10만.”

“일개 평민 대장장이가 잘도 그런 큰돈을 만질 생각을 했군.”

“성공했으면 난 지금쯤 남작님이었어.”

“돈 없는 남작님이었겠지.”

“딱히 반박은 못 하겠네.”


노인은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 속도를 올렸다.


“체력이 좋아.”

“닥쳐!”


그는 어깨가 한껏 솟아오른 채로 움직였다.

유리도 말없이 그의 뒤를 여유롭게 따라갔다.

둘은 그 대화 이후로 말없이 걷기만 했다.


“내가 걸으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말없이 걷기를 한 시간째 참지 못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뭘 생각했는데.”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왜 나한테 반발하는 거야? 내가 적어도 너보다 나이가 대략 40은 많을 텐데 예의가 아니잖아. 심지어 너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말했잖아.”

“네가 존댓말을 들을 만한 인물은 아니잖아. 빚쟁이에 알코올 중독자에 이런 일까지 하고 말이야.”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일하는 모습을 보면 꼴에 진지한 것 같기는 한데 그 순간이 다던데? 평소 모습을 보니 내 입에서 존댓말이 나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마.”

“씨발···.”


노인은 욕을 내뱉은 이후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걸어야 하지?”


하지만 이번엔 유리가 먼저 말을 걸어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4시간에서 5시간 정도.”

“그럼 이 굴은 지상이랑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지?”


그 말에 노인이 유리를 잠시 흘겨봤다.


“너 정도 크기의 사람 3명에서 4명 정도? 아마 그 정도 깊이일 거라고 생각되는데?”

“딱 좋네.”

“뭐가.”


유리를 쳐다보려 한 노인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은은하게 빛을 흘리는 유리의 손이 그의 머리에 닿자 눈이 풀리며 정신이 몽롱해 졌다.


“너는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보지 못하고 기억에서 지우는 거다.”


그의 뇌리에 박히듯이 유리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노인은 힘없이 말을 내뱉었다.


“예.”

“그럼 너는 길 따라서 움직이고 있어.”

“예.”


그의 명령에 노인은 힘 없이 대답을 하고 그대로 길을 따라 움직였다.

유리는 그가 멀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이 정도 거리면 죽지는 않겠어.’


서로의 거리를 계산한 유리는 마지막으로 남은 시약을 꺼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천장을 향해 던졌다.

유리는 곧바로 움직여 자리를 벗어났다.

유리병은 깨지자마자 폭발을 일으키며 천장을 무너뜨렸다.


‘생각보다 폭발이 크긴 하지만 많이 깊으니 괜찮겠지.’


천장이 무너지며 흙먼지가 일어나 로브로 코와 입을 가렸다.

그 상태에서 멀리 걸어가고 있는 노인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순식간에 그의 옆에 도착한 유리는 그를 멈춰 세우고 입을 열었다.


“방금 일어난 큰 소리에 놀라며 지금 시점부터는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씨팔! 이건 뭔 소리야!?”

“천장이 무너지기라도 했나 보지.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뒤질 뻔했을 수도 있으니 당연히 놀라지. 안 놀라는 네가 비정상인 거야.”

노인은 말하기를 잠시 울상을 지었다.


“그보다 길 양반한테는 뭐라 말해야 하냐.”

“그냥 무너졌다고 말하면 되잖아.”

“계약서를 쓸 때 술에 꼴은 상태여서 나중에 내용을 확인했는데 이 동굴의 책임은 모두 나한테 와있어.”

“별 지랄을 다 하는군. 나이는 헛으로 먹었어.”

“너 진짜 자꾸 어른한테 그럴래! 으이!”


유리는 대답은 하지 않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게 이제는 아예 대답도 안 하네. 됐어 나도 이제 말 안 하련다.”

“맘대로.”


노인은 입을 굳게 다물고 발만 움직였다.

이제 동굴에는 둘의 발걸음과 물이 떨어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노인의 의지는 오래가지 않았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말 안 한다고 한 지 30분밖에 안 됐는데 참을성이 없네.”

“조용한 건 못 버티겠더라고. 그래서 물어봐도 돼?”

“하고 싶으면 해. 답을 해줄지 말지는 내가 듣고 정하면 되니까.”

“그럼 길 양반 약점을 좀 가르쳐 줄 수 있어?”

“그걸로 협박해서 빚이라도 어떻게 해보려고?”

“당연하지. 나이 70의 일개 평민 대장장이가 100만 골드라는 돈을 어떻게 갚아. 역시 동료였던 적이 있어서 말을 해줄 수가 없나?”

“아니. 그 녀석한테 이제는 별다른 감정이 없어서 말해줄 수 있어. 일단 돈이랑 권력에 약하지.”

“그건 내가 안 돼.”


노인은 손사래를 쳤다.


“뭐 다음은 겁 많고 싸우기 싫어하고 싸움도 못 하고. 대충 너보다 훨씬 젊지만 돈 계산이 빠르고 악랄하다? 그냥 그런 놈이야. 어딘가의 머리 잘 굴리는 쓰레기 그 이상 이하도 아니지.”


유리의 말에 턱에 손을 괴고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노인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이왕이면 빨리 걸으면서 생각하지.”

“미안, 미안. 그럼 내가 그 양반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가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지.”

“왜? 아까는 돈 계산 빠르고 악랄할 뿐인 애새끼라며?”

“사람의 본질이 그렇긴 하지만 상황이 다르잖아.”


유리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그래도 놈은 이쪽 세계에서는 거의 왕이나 다름없어. 웬만한 살인 길드들도 길베르트는 건드리지 않아. 세력도 세력인 데다 귀족들과 인맥도 있다 보니 찾아오는 후폭풍을 감당할 수가 없는 거지.”

“귀족이나 다름없군.”

“돈이나 부하들을 보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 그리고 암살을 하고 싶어도 아마 힘들 거야.”

“애초에 그런 걸 할 강심장도 아니라 생각도 안 해봤지만 그건 또 왜?”

“부하 중 하나가 쌔.”

“얼마나.”

“웬만한 기사들이랑 붙어도 호각으로 싸울 수 있을 정도?”

“그럼 그놈만 구슬리면 되는 거 아냐?”

“할 수 있음 해봐. 아마 힘들걸?”


노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놈도 나처럼 그 양반한테 빚을 지거나 약점을 장난 아니게 잡혀나 봐.”

“아니? 걔는 자기 스스로 길베르트의 밑에서 일해. 같이 일한 지는 한 10년 정도 됐을걸?”

“그딴 놈의 밑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고?”

“어. 길베르트의 오른팔이라고 생각하면 돼. 지금까지 무보수로 일하고 있지.”

“독한 양반. 오른팔한테 돈도 안 주고.”

“걔가 안 받는 거야. 귀족 중 하나가 실력을 보고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고 돈을 쥐여줬는데도 거부하고 그놈 곁에 남아있으니까.”

“독한 놈 옆에 미친 놈이 붙었네. 그럼 내가 길 양반의 밑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은.”

“없어. 죽을 때까지 밑에서 일해야지. 게다가 못 갚은 빚은 네 몸뚱어리로 대체될 거야.”

“괜히 물었고 괜히 들었어.”

“그럼 걷기나 해. 앞으로 4시간 정도를 더 걸어야 하는데 여기서 굼뜨기에는 일러.”


노인은 말없이 걸었다.


‘충격이 큰가 보군. 뭐 나 같아도 저런 놈이면 길베르트 밑에서 평생을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다 나는군.’


노인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였다.

덕에 유리는 계획을 정리하며 조용히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몇 시간을 걷고 나서야 문 앞에 도착했다.

노인은 빠르게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열었다.


“아나 진짜.”


유리는 노인을 밀치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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