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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럭굥

나를 죽인놈도 같이 회귀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519
작품등록일 :
2020.05.13 18:38
최근연재일 :
2020.06.19 06:19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249
추천수 :
114
글자수 :
160,445

작성
20.06.07 01:42
조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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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1그램

DUMMY

<19화>

구연모 박사 집의 초인종을 울린 건 김이연이 아니라 임 슬이었다.


"네가 이 시간에 왜······.?"

"어, 교수님들 회식이 있어서 초저녁부터 술 좀 마셨어. 들어가도 되지?"


임 슬이 구연모를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갈 때 짙은 향수 냄새와 알코올 냄새가 섞여 그의 코를 찔렀다.


"슬아, 오늘은 안 돼. 손님이 오시기로 했어."

"이 시간에? 누가?"

"암튼, 오늘은 돌아가."


구연모는 임 슬의 팔목을 잡았다.


"여자야?"

"하아······. 김이연 씨."

"김이연 씨가 왜?"

"다음에 얘기해줄게. 너 취했어. 돌아가."


임 슬은 긴 머리를 이마 위로 쓸어 넘겼다.


"후우······. 그럼 더 못 가지."


임 슬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달칵.


구연모의 침실이자 연구실로 들어온 그녀는 술이 깨는 것 같았다.


"이게... 뭐야?"


킹사이즈 베드에 누워있어야 할 그의 아내가 나무로 된 관 안에 들어가 있었다.


"임 슬. 친구로서 부탁할게. 그만 가줘."

"아니! 나 그만한 권리 있어! 유미 씨 의식 찾게 도와달라고 손 내민 건 너였잖아. 김이연 씨가 취직하겠다고 작업을 멈췄을 때 그때 네가 울면서 부탁했잖아. 이제 기술 밖에 없다고, 과학자가 필요하다고!"


임 슬은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몸을 반쯤 돌렸다가 다시 구연모 쪽을 향해 섰다.


"나도 유미 씨를 8년을 봐왔어. 너 만큼은 아니더라도 누구보다 유미 씨가 깨어나길 바라는 사람이야. 차라리 깨어나서 너 이제 정신 차리라고 말해줬음 좋겠어. 유미 씨가 깨어나면, 깨어나면 다 해피엔딩이 될 거라 생각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 유미 씨가 아니라, 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안 해봤니?"


구연모는 임 슬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처음엔 유미를 깨우는 게 목적이었지만, 야속하게도 18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언젠가는 그녀가 깨어나리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생활이 되어버렸다.


그는 그 희망 때문에 살아왔고, 소위 껍데기라고 부르는 육신과 지내왔다. 그녀와는 그 흔한 대화도, 감정의 교류도 없이 사랑을 했다.


솔직히 그는 그녀를 사랑한 게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온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똑똑]


노크를 하고 문이 열리자 김이연이 들어왔다.


"집 앞에서 해나를 만났어요. 학원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라더군요."

"네, 잘됐네요."


김이연이 임 슬을 보고 가볍게 목례했다.


"두 분 아직 말씀 안 끝나신 거면 잠시 나가 있을까요?"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저도 오늘 작업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할 거예요."


김이연이 시선을 임 슬에게서 구연모로 옮겼다.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구연모는 포기한 듯 말했다.


"이게... 저울인가요?"

"네, 께름칙하겠지만 관 안에 들어가서 준비해야 해요."

"돈 주고 입관 체험한다는데, 이번에 공짜로 한 번 해보죠, 뭐."


김이연은 농담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두 박사의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했다. 아무도 반응하진 않았다.


곧이어 김이연은 재킷을 벗었다. 검은 블라우스 위에 시계 펜던트가 명치까지 내려와 있다.


그녀는 유미가 누워있는 관과 나란히 놓인 빈 관에 들어가 누웠다. 관 밑에는 산업용 저울이 각각 놓여있었는데, 이들의 무게가 소수점 세자리까지 찍혔다.


키가 160cm도 안 되는 김이연은 몸무게가 45.496kg 이었고, 164cm인 소유미는 그보다 훨씬 적은 38. 023kg 이었다.


[똑똑]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온 해나가 문을 두드렸다.


"아빠~."


구 박사가 문 밖으로 나갔다.


"안녕, 해나야! 점점 예뻐지네?"


뒤따라 나온 임 슬이 반갑게 인사했다.


"술 드셨어요?"

"어? 어떻게 알았어?"

"볼이 붉어서요. 술 냄새도 나고요."


해나가 손등으로 코를 가렸다.


"인사했으니 그만 들어가."

"어, 어. 얼굴 봤으니 됐어. 안녕~ 또 보자!"


임 슬이 방안으로 떠밀리듯 들어갔다.


"오늘은 이연이 언니랑, 슬이 이모랑 작업을 해야 해. 해나 잘 자라는 인사하러 못 갈 수도 있겠다."

"괜찮아. 나 문제집 좀 더 풀고 12시쯤엔 누울 거예요."

"그래, 지금이 9시 반이니까 2시간만 더 하다 자."

"네, 아빠 내일 아침에 봐요!"

"그래."


구연모는 딸이 제 방으로 가 문을 닫을 때까지 지켜봤다. 복도가 환해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후우······."


구연모가 방으로 들어왔을 때 김이연은 자기 최면을 마치고, 두 손을 모아 배위에 올려놓고 잠에 들기 시작했다.


"근데 저울은 왜 갖다 놓은 거야? 설마, 영혼의 무게 재는 실험 하려는 거야?"

"...맞아."


임 슬은 한 손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잡았다.


"그 실험은 피실험자가 겨우 6명이었어. 그리고 그 중 단 한 명만이 죽는 순간 몸무게의 21그램을 손실했을 뿐, 비과학적이라고 비난 받았던 실험이야."

"나도 알고 있어. 실험을 진행했던 던킨 맥두걸 스스로도 이 실험은 수차례 반복돼야 한다고 했을 정도니까."

"그래서, 네가 증명이라도 해 보이겠다는 거야?"

"그게 과학자가 하는 일이니까."

"이미 의사에 의해 이 실험의 유효성은 부정당했어. 사망 시 체온의 급격한 상승 때문에 발한이 일어나고, 21그램은 쉽게 줄어든다고 설명했지."

"······."

"던킨 맥두걸은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증명해보이려고 개를 15마리나 죽인 또라이야!"


구연모는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멈췄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잠이 들면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나간다고 믿었어. 나는 죽었을 때가 아니라 잠이 들었을 때를 가정해서 가설을 세운 거야. 만약 김이연 씨가 유미의 꿈에 도킹했을 때, 김이연 씨의 질량은 줄어드는 대신 유미의 질량이 늘어난다면······. "

"나는 종교도 없고, 사후세계도 안 믿어. 그러나 이 세상엔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도 일어나······. SF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일들을 배척할 생각은 없어. 네가 김이연 씨의 도움으로 유미 씨의 의식을 깨우겠다고 했을 때도······."


임 슬은 눈을 길게 감았다가 떴다.


"시간은 걸렸지만 이해하려고, 믿으려고 노력했어. 나는 네가 하려는 이 실험도! ...도울거야. 그래, 도울 거야. 말도 안 되지만 도울 거야. 너를 잃고 싶지 않으니까."


임 슬은 아무렇지 않게 눈물을 훔쳤다.


"미안해. 네가 나한테 또라이라고 욕하고 지금 나간다 해도, 나는 너랑 싸울 생각 없어. 너는 나의 좋은 친구니까."


임 슬은 '친구'라는 말이 '헤어지자'는 말보다 더 가슴 아프게 들렸다.


***


"유미 씨? 소유미 씨?"


김이연은 소유미를 만나기 전에 왔었던 섬에서 눈을 떴다. 이곳은 이브의 '꿈 지도'에 있는 장소였지만, 이제는 김이연의 지도에도 연결되었다.


사람들은 각자 꿈속에서 이동할 수 있는 지도가 있고, 자각몽을 꾸는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지도와 연결 및 확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 위에 보이는 블랙홀과도 같은 검은 지점은, 마치 내비게이션에도 표시되지 않는 미지의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유미 씨! 들리세요?"


김이연이 하늘을 보며 소리를 쳐 보았지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그림 같은 섬에서 그녀는 어쩐지 외로웠다.


(딱, 이브 같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고급 휴양지 같지만 알고 보면 세상 외로운 섬······.)


김이연은 습관처럼 시계 펜던트를 손에 꼭 쥐고 날아오를 준비를 했다.


그녀의 몸이 비누거품에 실린 듯 두둥실 위를 향해서 올라갔다.


빙글.


위를 향하는 줄 알았는데 공간이 뒤집어지면서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기분.


김이연은 검은 물질 속으로 가라앉았다.


(죽는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들어갔던 지난번과는 다르게 이번엔 벌써부터 겁이 났다.


(또 강인성이 보이면 어쩌지...? 아니야, 이건 그냥 꿈이야, 꿈. 아무리 무서워도 결국엔 깨게 되어 있어.)


김이연은 허우적거리며 유미의 이름을 불렀다. 한참을 부른 것 같은데 어디에서도 기척이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시계 펜던트를 눈앞으로 가져왔다. 시계바늘은 없었다.


(하아······. 점점 숨 쉬기가 힘들어지는 기분이야······.)


한편 구연모는 김이연이 올라간 저울에서 정확히 21.3그램이 줄어드는 광경을 목격하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잠시 후 그의 가설대로 소유미 쪽 저울에서는 21.3그램이 더해졌다.


"말도 안 돼."


그는 집중할 때만 쓰는 안경을 벗었다. 임 슬 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그녀는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구연모는 이번에야 말로 김이연이 아내를 깨울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머리에 과부하가 온 듯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관 속에 들어가 있는 아내가 당장이라도 눈을 뜰 것만 같아 설렜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곧 걱정으로 바뀌었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 어느덧 시계는 자정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구연모는 두 사람의 뇌파를 확인했다.


아내의 뇌파는 활발하게 움직이는 반면, 김이연의 뇌파는 정적으로 변해 있었다.


"별일 없을 거야······. 믿자."


구연모는 뜬 눈으로 밤을 샜다. 동이 틀 때쯤 그는 고개를 떨궜다.


구연모의 머리가 책상에 고꾸라지는 소리에 임 슬이 잠에서 깼다.


자신의 등에 덮여진 담요를 발견하고 구연모의 등에 덮었다.


"아직 안 깼나 보네······."


김이연은 여전히 자세 한 번 바꾸지 않고 누워있었다.


구연모 책상에서 차트를 집어 읽어보는 임 슬.


"설마..."


임 슬은 저울의 계기판을 확인했다. 분명 줄어 있었다. 이번엔 유미 쪽 저울을 확인했다. 21.3그램이 늘어 있었다.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말 영혼이 있단 뜻...일까?"


두통이 온 그녀는 한쪽 얼굴을 찌푸렸다.


갈증이 찾아왔다. 조용히 문을 열고 1층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 사이 해나가 아빠 방으로 들어갔다.


"흐읍! 엄...마...."


해나는 관속에 들어간 엄마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옆에 나란히 관속에 누워있는 김이연을 보며 머리를 굴려봤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예전에도 이연언니가 엄마 꿈에 도킹하는 건 봤지만······. 왜, 하필 관속에······.)


1층에서 임 슬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자 해나는 재빨리 제 방으로 돌아가 살짝 문을 닫았다.


"하아······."


침대에 다시 누운 해나는 손톱 끝을 앞니로 잘근 씹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향초에 불을 켰다.


옆으로 누워 촛불에 시선을 고정한 채, 김이연의 꿈에 도킹해보려 집중했다. 그녀의 회사도 떠올려보고, 자신의 집도 떠올렸지만 이런 곳에 김이연이 나타날 리 없었다.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지?)


해나는 김이연이 자신의 엄마를 만나러 갔을 테니, 자신이 유일하게 엄마를 볼 수 있는 그곳, 2002년 월드컵 경기장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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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작업 +2 20.06.13 25 2 12쪽
25 낯선 사람 +3 20.06.12 27 3 11쪽
24 불안 +2 20.06.11 30 2 12쪽
23 커피콩 +4 20.06.09 23 2 12쪽
22 더블 타이틀 +8 20.06.08 32 3 12쪽
21 상상력 20.06.08 21 0 12쪽
» 21그램 20.06.07 19 1 12쪽
19 두려움 20.06.06 21 1 11쪽
18 세기말 20.06.05 19 1 12쪽
17 내 꿈에 들어와 20.06.03 34 0 11쪽
16 변하지 않는 것 20.05.30 30 1 12쪽
15 다시, 너를 +1 20.05.29 28 1 13쪽
14 너의 이름 +2 20.05.28 29 2 13쪽
13 후회 20.05.26 41 0 11쪽
12 보여줄게 +2 20.05.26 45 4 12쪽
11 히프노시스 20.05.24 30 2 13쪽
10 마지막 기억 20.05.24 39 3 12쪽
9 네가 없다면 +2 20.05.23 28 1 13쪽
8 타타타 +2 20.05.22 36 2 11쪽
7 빛줄기 20.05.15 36 3 13쪽
6 꿈 그리고 꿈 20.05.14 41 3 13쪽
5 호접몽 20.05.13 49 3 14쪽
4 20.05.13 58 2 12쪽
3 오로라는 사라지고 20.05.13 75 6 12쪽
2 어떤 직감 +1 20.05.13 130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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