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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럭굥

나를 죽인놈도 같이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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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0.05.13 18:38
최근연재일 :
2020.06.19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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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3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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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감

DUMMY

동이 터오는 새벽.


김이연은 온 몸을 덜덜 떨며 잠에서 깼다. 잠이라기보다는 살인범 강인성의 꿈과 '접몽'을 하기 위해 억지로 눈을 붙였다.


식은땀까지 흘린 그녀는 한기를 느꼈고 이불을 그러모아 턱밑까지 덮었다. 그리고 손을 더듬어 시계 펜던트 목걸이를 찾았다. 펜던트를 열어보니 바늘이 5시 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휴우."


베개 밑에서 수첩을 빼냈다. 파란 펜이 끈으로 수첩과 연결돼 있었다. 그녀는 흩어지는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첩에 재빨리 휘갈겨 적었다.


38구경 리볼버

오른손 엄지

인정요양병원


두통이 밀려왔다.


김이연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부엌으로 가서 아스피린 한 알을 물에 탔다. 아스피린이 거품을 내며 투명했던 물을 뿌옇게 만들었다.


벌컥벌컥.


휴대폰 전화번호부에서 독고PD를 검색하여 통화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아 네, 제가 잠을 깨운 건 아니죠? 네... 잘됐네요. 저, 제보 드릴게 있어요."


목은 아직 잠겼어도 특종의 냄새를 맡은 피디의 흥분이 스피커를 통해 전달됐다. 그는 사회 이슈나 의뭉스러운 사건을 파헤치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경력 많은 피디였다.


김이연은 전 세계 정상급 싱어송라이터 이브의 소속사 홍보실장이다. 이브가 콘서트를 몇 시간 남기고 돌연취소한 일로 국내외가 며칠째 떠들썩했다.


"18년 전 생방송 무대 중에 걸그룹이 총에 맞았던 사건 기억하시죠?"

"네? 아... 알죠. 공소시효 만료되는 해에, 3년 전인가 그때 한 번 프로그램에서 다룬 적이 있어요. 근데 그 사건은 왜······."


독고PD는 이브가 잠수한 일과 관련된 제보인 줄 알았다가 전혀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어 의아했다.


"그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요."

"네?"

"지금 어디에 있는 지도 알고요."


김이연은 PD와 만날 약속을 한 뒤 전화를 끊고 바로 욕실로 향했다. 흰색 실크 슬립을 입은 그녀는 변기커버를 닫고 그 위에 잠시 앉아 넋을 놓았다.


다시 휴대폰을 켜서 이브의 전담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고 있었어요? 깨워서 미안해요."


미안하지 않았다. 예의상 흘려 말한 뒤 곧바로 본론을 이어갔다.


"독고피디 알죠? 네, 그 시사프로그램 피디. 그 분이랑 안양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준비하고 오세요."

"연예매체도 아닌데 왜 그 피디님이랑 만나러······."

"매니저님? 이건 이브하고 관련이 없는 일이에요. 그럼 끊습니다."


김이연은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었다. 슬립과 속옷이 차례로 욕실바닥에 떨어졌다.


전화가 끊어지자 매니저는 무안했다. 게다가 이브와 관련 있는 일도 아닌데 자신을 오라마라하는 김실장이 탐탁지 않았다. 그러나 곧 얼마 전 회의에서 그녀가 장담했던 말이 떠올랐다.


"일단 대중들의 관심을 돌려야죠. 10명 중 9명이 관심 있는 뉴스가 있어요. 바로 살인사건이죠."


***


3일 전. 이브의 월드 투어 마지막 콘서트 다음 날.


[이브, 콘서트 당일 돌연 취소 팬들 '분통']

[월드투어 마지막 날인데... 이브 증발?]

[이브 소속사, 팬들께 거듭 죄송...공연료 전액환불]

[소속사 경고에도 이브 '마약중독' 루머 확산]


국내외 연예뉴스는 온통 콘서트를 연 당사자가 '노 쇼(no show)'를 한 전무후무한 일로 떠들썩했다.


안티팬들은 '우리 삼촌이 경찰인데······.' 혹은 '친구 엄마가 간호산데······.' 로 시작해서 그럴싸한 각종 루머들을 퍼트렸다.


[벨소리]


휴대폰이 울리자 김이연은 통화종료 버튼을 손끝으로 밀었다.


"실장님, 사실대로 공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실장은 폰을 탁자에 올려놓고 매니저를 정면에서 노려봤다. 매니저가 190cm 장신이라 김이연과 40cm 가까이 키차이가 났지만, 매니저가 앉아있고 김이연이 서 있는 지금은 눈높이가 맞았다.


"매니저님, 수도애딕션(Pseudo-addiction), 위중독이라잖아요. 실제 중독된 건 아니지만 증상은 중독자랑 다를 게 없다죠. 지금 이 사실이 알려지면 곧이곧대로 대중들이 이해할 것 같나요? 가뜩이나 마약하는 거 아니냐고 의심하는데, 거짓중독이건 뭐건 결국엔 마. 약. 중. 독. 으로 연예계에서 아주 퇴출되기 십상이라고요."

"악플러들이 날뛰기 시작했어요. 자살이라는 프레임까지 씌우려고 드는데 믿을만한 기자분과 의논해서······."


매니저가 그래도 기죽지 않고 목소리를 키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윤아라가 끼어들었다. 윤아라는 이브의 이종사촌이자 소속사 대표이사다. 그녀의 아빠 윤중천이 대표로 있다.


"기담이 가족으로선 '자살'이라는 프레임도 끔찍하지만, 대표이사로선 '마약'은 역시 비켜가는게 좋지 싶네요. 어깨 수술을 했어야 했는데······. 연습생시절부터 8년을 진통제만 먹으면서 미루고 미뤄왔으니······."


윤아라 그녀도 한 때는 연예계 데뷔를 꿈꿨다. 사기를 당해 데뷔는 무산됐다. 방송기자였던 윤중천이 사표를 내고 직접 엔터테인먼트를 세웠다. 딸만을 위한 회사였다. 그런데도 윤아라는 연예인이 되길 끝내 포기했다.


대신, 막내이모의 아들 권기담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공황장애 발작으로 쓰러진 걸로 돼 있긴 한데 이브가 빨리 깨어나지 않으면 그의 상태가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죠. 기자들이며 극성팬까지 이브가 입원해있는 병원에 위장잠입하고 있는 마당이니까요. 내일이면 의식을 잃은 지 나흘째에요. 아침이 되어도 깨어나지 못할 경우... 김실장님 계획 있어요?"


책상 앞에 앉아있는 윤아라는 순발력을 테스트하는 면접관 같았다.


"대중들의 시선을 돌려야죠."


윤아라의 책상 앞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스포츠신문을 괜히 뒤적거리던 윤대표가 마침내 신문을 덮었다.


"선거기간도 아닌데 이런 때 뭐로 시선을 돌려? 정치적 음모? 섹스 스캔들?"


실장은 손이 저리는지 양손을 두어 번 쥐었다 폈다.


"그런 스캔들은... 10명 중 절반 이상... 그러니까 과반수가 관심이 있다고 해두죠. 10명중 9명이 관심 있어 하는 뉴스가 있어요."


"그게 뭐죠?"


매니저가 실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물었다.


"살인사건."


실장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관심이 없는 1명은... 그러니까 희생자예요."


***


인정요양병원이라는 마크가 찍힌 핑크색 유니폼을 입은 중년의 요양사가 흰색 슬리퍼를 질질 끌며 201호 앞에 섰다. 그녀가 들고 있는 작은 쟁반에는 여러 개의 알약과 물 한 컵이 놓여 있었다.


똑똑.


"강인성님. 약먹을 시간이에요."


요양사가 문을 열자 하얀 책상에 앉아 성경책을 읽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 보였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쿨럭쿨럭. 쿨럭."


강인성은 팔 전체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했다.


"아직 40대면 젊은데 항암치료를 받는 게 낫지 않겠어요? 가족 분들은······."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여기 있는 건 아무도 모릅니다. 어차피 얼마 살지 못하는 거 출장 간다고 하고 나왔어요. 쿨럭."


강인성은 요양사가 건네주는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물을 삼켰다.


"어머나······. 그래도 그게 아니죠. 가족들이 나중에 이 사실을 알아봐요. 얼마나 슬퍼해······."

"아니요, 지금부터 제가 죽는 날까지 슬퍼하는 것보다 제가 죽고 나서 슬퍼해도 늦지 않거든요."


강인성은 짧게 목례를 한 뒤 다시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럼 쉬세요."


마음이 측은해진 요양사는 빈 쟁반을 챙겨 방을 나섰다.


강인성은 평온한 얼굴을 하고 성경책을 집중해서 읽어나갔다.


똑똑.


"네."


그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요양사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강인성님. 누가 찾아오셨어요."


요양사는 어쩐지 곤란한 표정이다. 강인성은 그제야 성경책에서 눈을 떼고 문 쪽을 바라봤다.


문이 열리면서 낯익은 중년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직감. 그가 나를 심판하러 왔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43년 평생 처음 읽어 본 성경책 속 예수가 부활해서 내 앞에 나타났구나.


강인성은 어쩌면 18년 전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날만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18년 전 그날, 스물다섯이었던 그에게는 38구경 리볼버가 있었다.


고막을 떨리는 음악소리. 광신도 같은 학생들의 고함.


올림픽 경기장 돔 위로 붉은 노을이 졌다.


강인성의 심장은 손에 넣은 권총 때문인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기 때문인지 터질 듯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우하하! 으하하하!"


강인성은 긴장이 될 때마다 크게 웃는 버릇이 있었다. 주변에 몇몇 학생들이 소곤거렸을 뿐 그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걸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다.


그를 뒤쫓고 있던 형사만이 그가 연쇄살인을 저지른 유력한 용의자라는 걸 알았다.


강인성은 인파 사이로 형사의 모습을 보았다.


쿵쿵쿵, 심장이 가슴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거처럼 그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펑! 펑! 펑!]


무대에서 불꽃효과가 터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을 연호하던 학생들이 놀라서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강인성과 형사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형사는 하마터면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내 아무라도 겨냥할 뻔 했다. 강인성은 머리를 감싸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형사는 그를 시야에서 놓쳤다.


강인성은 형사가 자신에게 총을 쏜 것이라고 믿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운동화를 신은 남성의 다리가 보였다.


(형사다.)


아직은 형사와 만날 때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에 다시 이 형사를 만나게 된다면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으리라.


***


지난 18년간 형사 최고의는 일을 관두고 싶을 때마다 눈앞에서 놓쳐버린 용의자를 떠올렸다. '그 놈'을 잡은 뒤에 그만둬야 한다고, 그래야 나중에 저세상에서 희생자들을 볼 면목이 생기리라 믿었다.


최고의는 몸이 유독 피곤했던 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독고PD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가 강인성에 대해 취재할 때 알았으니 3년 만이었다.


"믿을 만한 제보원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형사님, 이번엔 잡으셔야죠."


마치 어제까지도 연락했던 사람처럼 독고PD는 안부인사도 생략하고 넉살좋게 말을 시작했다.


최형사는 독고PD가 헛소리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형사 경력 21년이면 반 점쟁이나 다름없었다.


(독고PD······. 돌아가는 법이 없이 직진······.)


최형사는 독고PD와 통화하며 그의 추진력은 '촉'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그는 독고PD라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촉을 믿어보기로 했다.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인정요양병원.


최형사는 그곳에서 독고PD를 만났다. 카메라맨 한 명, 작가 한 명도 같이 있었다.


카메라는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


김이연은 차창 밖 형사의 얼굴을 알아봤다.


"세월엔 장사 없네······."


희끗하게 센 머리와 줄어든 덩치를 보며 김이연은 애잔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독고PD에게 전화를 걸었다.


독고PD는 김이연이 차에서 내리지 않고 자신에게 전화를 거는 이유가 궁금해 하며 전화를 받았다.


"왜 안 내리시고······. 네? 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차로 갈게요."


김이연은 까맣게 썬팅이 돼있는 창문을 내렸다. 선글라스를 쓴 채다.


먼저 차에서 내린 매니저가 손을 내밀며 독고PD와 세상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반면 김이연은 웃을 수가 없었다.


"PD님, 저는 범인도 형사도 볼 자신이 없어요. 너무 무섭거든요. 사실 여기도 올까말까 고민 했는데 저 믿고 여기까지 출동해주시는 걸아니까 집에만 있을 수도 없어서······."


"김실장님, 일이 끝나면 제가... 아니면 작가가 전화를 드릴 거예요. 실장님, 다 잘 될 거예요. 걱정 마시고 계세요."


걱정 말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아 김이연은 애써 웃어보였다. 그리고 형사와 함께 요양원 건물로 들어가는 일행들을 보자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강인성이 당장이라도 38구경 리볼버를 쏴대며 모두를 죽일 것만 같은 끔찍한 상상을 했다.


"아!..."

"괜찮으세요?"


그녀의 뇌가 간밤에 맞은 총알의 파괴력을 기억했다.


작가의말

1화 수정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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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더블 타이틀 +8 20.06.08 32 3 12쪽
21 상상력 20.06.08 21 0 12쪽
20 21그램 20.06.07 19 1 12쪽
19 두려움 20.06.06 21 1 11쪽
18 세기말 20.06.05 19 1 12쪽
17 내 꿈에 들어와 20.06.03 34 0 11쪽
16 변하지 않는 것 20.05.30 30 1 12쪽
15 다시, 너를 +1 20.05.29 28 1 13쪽
14 너의 이름 +2 20.05.28 29 2 13쪽
13 후회 20.05.26 41 0 11쪽
12 보여줄게 +2 20.05.26 45 4 12쪽
11 히프노시스 20.05.24 30 2 13쪽
10 마지막 기억 20.05.24 39 3 12쪽
9 네가 없다면 +2 20.05.23 28 1 13쪽
8 타타타 +2 20.05.22 36 2 11쪽
7 빛줄기 20.05.15 36 3 13쪽
6 꿈 그리고 꿈 20.05.14 41 3 13쪽
5 호접몽 20.05.13 49 3 14쪽
4 20.05.13 59 2 12쪽
3 오로라는 사라지고 20.05.13 75 6 12쪽
» 어떤 직감 +1 20.05.13 131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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