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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럭굥

나를 죽인놈도 같이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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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0.05.13 18:38
최근연재일 :
2020.06.19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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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5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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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빛줄기

DUMMY

반짝거리는 햇살. 하늘색 쉬폰 커튼.


커튼을 밀고 들어오는 햇빛. 느리게 움직이는 고양이의 꼬리.


얌전히 잠들어 있는 이브의 얼굴이 흔들리는 햇빛에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왼팔로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고 신음하는 이브.


"스읍, 하아······. 악! 아······."


김이연이 침대 옆 창가에 서서 빛줄기로 하프 줄이라도 퉁기듯이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이제야 깼네. 세상이 저 때문에 시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녀는 신음하는 이브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실장님... 지금 몇 시죠? 제가 늦잠을 잤나요?"

"늦잠이라······."


김이연은 가슴까지 내려오는 목걸이의 시계 펜던트의 덮개를 열었다. 바늘이 없는 시계.


"스케줄이 어떻게 됐죠? 6시 반에 일어나서 운동을 한 다음, 간단히 아침을 먹고 콘서트장으로 이동하는 거... 맞나요?"


비몽사몽한 이브였지만 자신에게 스케줄을 물어보는 실장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수첩도 확인하지 않고 왜 저러시지?)


이브는 사람 탈을 쓴 구미호라도 보는 듯이 미심쩍은 눈으로 김이연을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질문은 언제나 이브의 일이었고 실장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 정답만을 말해주는 쪽이었다.


"네... 그럴 걸요? 그래서... 지금 몇 시인데요?"

"6시 3십...7분이네요."

"아, 3분이면 준비하고 나갈 수 있어요."


이브는 말은 그렇게 하고는 3분이 30분이라도 되는 듯이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깨 통증 때문이었다.


"6시 30분을 기준으로 하면 7분 늦잠을 잔거네요."


김이연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말했다.


"죄송해요. 1분이면 돼요."


이브는 진열장에서 마음에 드는 모자를 하나 꺼내 깊게 눌러 쓴 뒤 휴대폰을 찾았다.


"휴대폰을 어디다 놨더라. 어?"


이브는 순간 어지럼증을 느꼈다. 여전히 꿈속인건가 의심이 들었다. 꿈에서 깬 줄 알았는데 다시 꿈이었다는 걸 인지하는 그런 꿈을 꾸고 일어난 뒤였다.


"실장님······. 제가... 또 꿈을 꾸고 있나요?"

"저도 이게 다 꿈이면 좋겠어요."


김이연은 여전히 눈을 깜박이지 않고 말했다.


"근데... 왜 호텔이 아니라 제 방에 있는 거죠? 콘서트 전날 저는 호텔에······."


김이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매니저가 이브를 호텔에서 발견한 게 이틀 전 6시 37분이었어요. 늦잠을 잤냐고요? 네. 96시간하고 7분을 더 잤네요. 나흘 전 6시 30분을 기준으로 하면요."


이브는 침대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게... 어떻게... 제 콘서트는요? 팬들은요? 언론에다가는 뭐라고 하셨어요? 저희 부모님하고는 통화하셨나요? 아... 제 폰, 제 폰은 어디 있죠?"


김이연은 침묵했다. 덕분에 이브는 질문을 쏟아내고 난 뒤 빠르게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다시 어깨통증이 극심해졌다.


"아... 아악!"


오른 어깨뼈를 부술 듯이 세게 움켜쥔 이브.


"하아... 하아... 실장... 실장님······. 저 진통제좀 갖다 주세요, 거기... 거기 서랍장 안에 보시면······."


그는 등을 둥글게 말고 침대 아래로 굴렀다.


침대 옆에 빨간 철제로 된 서랍장이 있었다. 김이연은 본체만체하고 천장을 보고 누워 헐떡거리고 있는 이브에게 다가갔다.


"이브, 정신 차려요······. 이제 당신은 그 어떤 마약성 진통제도 허락되지 않아요. 알아듣겠어요?"


그녀는 허리를 약간 숙여 이브를 내려다보고 속삭이듯 말했다.


"네? 실장님... 뭐라고 하셨어요? 안들려요... 실장님, 빨리... 서랍장에서 약... 약 좀 가져다주세요!"


이브는 마지막엔 신경질적으로 화를 냈다.


김이연은 무기나 다름없는 하이힐로 이브의 오른 어깨를 즈려 밟았다. 눈 한 번 깜박거리지 않았다.


"아아악!"


이브의 눈에 실장은 천장이 낮아 허리를 굽혀야 할 정도로 거대해 보였다.


이브는 기둥만큼 거대해진 그녀의 힐을 젓가락만한 자신의 팔로 밀어내려 노력했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자신의 어깨가 당장 으스러지지 않는 게 용할 따름이었다.


***


"네?"


"죄송한데, 주문 취소할게요."


샌드위치 가게에서 막 주문을 마쳤던 윤아라는 포스에 아이템을 찍고 있던 종업원에게 다급하게 말한 뒤 서둘러 가게를 나섰다.


막내이모로부터, 이브 그러니까 기담이가 깨어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가게 앞에 정차돼 있던 노란색 스포츠카를 끌고 기담이의 집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입원해 있었지만 기자들과 사생팬들이 병원을 드나드는 것도 곤란하기 때문에 재택치료를 선택했다. 무엇보다 곧 정신이 돌아올 줄만 알았다.


기담이는 나흘이 지나도록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 사이 미국에 계시는 기담이 어머니이자 그녀의 막내이모가 도착했다.


기담이 집 앞에 다다르자 골목엔 눈에 익은 차들이 줄지어 주차돼 있었다.


"뭐야... 외삼촌도 오셨어?"


윤아라가 집에 들어오자 막내이모가 밝은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환갑도 지난 막내이모는 여전히 고운외모를 자랑했다. 기담이의 수려한 외모는 순전히 이모의 유전자 덕분이리라.


이모보다 6살 어린 외삼촌 역시 반반한 외모의 소유자였지만 인성은 외모만큼 훌륭하지 못했다. 사기 전과도 있는데다 이젠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설레발을 치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이브가 데뷔한 후 외삼촌은 조카의 유명세를 이용해 또다시 사기행각을 벌이려다 들통이나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다시 돌려주는 것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런 외삼촌에게 윤아라의 감정은 좋을 리가 없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오랜만에 누님 얼굴도 보고 조카도 걱정돼서 왔지. 너는 어릴 때부터 귀여운 구석이라곤 없더니만 여전히 쎄하구나."


'어릴 때 외삼촌이 저를 몇 번이나 보셨다고!'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으나 참았다.


외삼촌은 윤아라의 돌아가신 엄마 즉 사별한 누나와도 생전 돈 문제가 아니고서야 왕래가 잦은 편도 아니었으므로, 조카 따위야 자기 알 바 아니었다.


"이모, 의사선생님은 아직 계셔?"

"응. 의식은 돌아온 것 같다는데 영 눈을 뜨질 못하네."


윤아라는 막내이모를 양팔로 감싸 안듯이 부축하며 기담이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담당의와 인사를 나눈 뒤 이모를 두고 따로 면담을 요청했다. 거실에는 외삼촌이 위스키를 따라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손님방으로 의사를 안내했다.


"원장님. 그때도 여러 검사를 받았고 정상으로 나왔잖아요. 다른 더 정밀한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왜 아직도 의식이 없는 거죠? 솔직히 이제는 불안해요. 영영 저러다 못 깨어나는 건 아닌지······. 당연히 그럴 일은 없겠죠?"

"좀 더 지켜봅시다."

"벌써 나흘이 지났어요. 원장님. 최소한 일주일이면 일주일, 보름이면 보름, 기한이 있어야지 계속 지켜봐야한다고만 하시니······."


윤아라는 기담이 깨어나지 못하는 게 마치 의사의 잘못인 양, 애먼 사람에게 언성을 높이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죄송해요. 속이 너무 갑갑해서······."

"원하신다면 뇌신경과학자를 소개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식물인간을 연구하는데······."

"식물인간이요? 우리 기담이가...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단 말씀이세요?"

"아직 그렇게 판단하기는 이릅니다. 지금은 어떤 이유에선지 잠을 길게 자고 있다고 해두죠. 말을 바꿀게요. 의식을 잃은 환자를 연구하고 있으니 그가 도움이 될 것 같군요."

"좋아요. 원장님이 무당을 소개해 주신다고 해도 연락할 참이에요."


윤아라는 자신이 뱉은 말에 불현듯 떠오른 게 있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그녀는 의사를 배웅한 뒤 김이연을 호출했다.


김이연이 이브의 집에 당도했을 때 슈트를 입은 중년 남성이 술이 올라 붉어진 얼굴로 현관을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누구지?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 이브의 엄마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눌 때도 낯이 익었다.


(이브랑 닮아서 그럴지도.)


"김실장님 기사 막느라 바쁜데 여기까지 또 오라고 해서 미안해요. ㅇㅇ경제지에서 마지막 콘서트 불발로 손해 본 금액이랑 잡혀있던 일정 소화 못했을 때 위약금 등등 아주 없는 것까지 만들어서 손실을 부풀려놨던대. 주주총회도 다가오고 아주 머리아파 죽겠다. 그쵸?"

"다과 좀 들어요."


이브의 엄마가 홍차와 비스킷 그리고 과일을 조금 내주었다.


"이모, 나한테 시켜요 이런 건."

"네가 해주는 거나 받아먹을 줄 알지, 손님 대접을 해 네가? 그럼 얘기 나눠요."


이브의 엄마가 자리를 비켜줬다.


윤아라의 표정을 살피는 김이연.


"잔소리 들었는데도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흠······. 네, 잔소리······. 잔소리도 그리워질 수 있는 가봐요."


윤아라는 홍차에서 나는 달콤한 향을 맡았다.


"저한테 엄마나 다름없어요. 엄마 여의고 오랜 시간 돌봐주셨거든요."

"그렇구나. 아까 저 오기 전에 어떤 남성분이 나오시던데 이브 아버지세요?"

"아, 아녜요. 이모부는 미국에 계세요. 그 분은 외삼촌인데... 암튼 신경 쓰지 마요."

"어디서 뵌 분 같아요."

"그래요? 혹시 김실장님 사기 당한 적 있어요?"

"사기요? 아니요? 갑자기 왜요?"

"아, 아님 말고요. 아~ 기담이가 외탁했거든요. 그래서 그런거 아닐까요?"

"네, 아마도. 근데 왜 이리로 부르셨어요?"


윤아라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찻잔을 내려놓았다.


"기담이... 이브가 지금 긴 잠을 자고 있는 거라면, 실장님이 그 애 꿈속으로 좀 들어가 줘요."

"네?"

"왜요? 안되나요? 저번에 가능하다고 했잖아요. 본인은 훈련된 루시드 드리머라면서."

"네······. 그게 그렇지 않아도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녜요."

"그러셨어요? 그런데요?"

"본인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걸아는 것 같았어요."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깨울 수는 없는 건가요?"

"일반적으로는 악몽이 되면 방어기제가 생겨서 꿈이 유지되지 못하고 금방 깨게 되어있죠. 그래서 나름 아픈곳을 건드린다고 건드렸는데······. 오늘 보니 이 정도로는 깰 수 없는 가봐요."

"하아······."


윤아라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재킷 주머니에서 메모 하나를 꺼내 김이연에게 건넸다.


"원장님이 이분이 뇌신경 과학자라면서 연락을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 알아요. 구박사님."

"이분 유명하신 분이셨어요?"

"루시드 드림... 훈련시켜주신 분이세요."


***


주택가 골목길.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있어 낮같이 밝다.


이브와 소녀가 나란히 걷고 있다.


"어? 이 신발······."

"신발? 신발이 왜요?"


소녀의 시선이 하얀 호텔 가운을 입은 채 팔짱을 낀 이브를 훑어 발까지 내려갔다.


"이 슬리퍼 잃어버렸었거든.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 놀이터에서 맨발로 놀다가 벗어둔 걸 누가 가져갔는지 못 찾아서 결국엔 맨발로 집으로 돌아갔어. 엄마한테 엄청 혼났지. "

"저 놀이터에서요?"


눈앞에 놀이터가 나타났다.


"어라, 길 건너에 있었는데······."

"여긴 현실이 아니라니까요. 이 공간 안에 실재하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공간이야 그렇다 쳐도, 너랑 나는? 너랑 나는 여기 이렇게 있잖아. 심지어 대화까지 나누면서! 우리도 허구야?"


소녀는 놀이터로 앞서 갔다.


"대답해 봐. 그러니까 나... 죽은 거야? 아무리 꿈에서 깨 봐도 또다시 꿈이고, 지금도 꿈이고, 어쩌면 이게 꿈이 아니라 내가 죽어서 영혼만 남은 게 아닌가 싶어졌어."


이브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이게 꿈이라면... 아니, 꿈에서 깨려면 육체가 있어야 하는데 돌아갈 몸이 더 이상 없는 거지. 맞아? 내가 종교는 없지만... 여기가 천국처럼 보이지는 않고······. 지옥은 설마... 아니겠지?"


소녀는 그네에 앉아 턱을 괴고 이브의 얼굴을 감상했다. 사신을 대면하고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망자나 할법한 억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음, 할 수 없네요. 이제야 감이 좀 잡히시는 것 같은데 정확히 말씀드릴게요."


그네에서 일어 선 소녀는 키가 180cm이 넘는 이브에게 키를 낮춰달라는 손짓을 했다. 그가 엉거주춤 자세를 낮추자 소녀가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죽었... 어요."


작가의말

6화 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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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상상력 20.06.08 21 0 12쪽
20 21그램 20.06.07 19 1 12쪽
19 두려움 20.06.06 21 1 11쪽
18 세기말 20.06.05 19 1 12쪽
17 내 꿈에 들어와 20.06.03 34 0 11쪽
16 변하지 않는 것 20.05.30 30 1 12쪽
15 다시, 너를 +1 20.05.29 28 1 13쪽
14 너의 이름 +2 20.05.28 29 2 13쪽
13 후회 20.05.26 42 0 11쪽
12 보여줄게 +2 20.05.26 46 4 12쪽
11 히프노시스 20.05.24 31 2 13쪽
10 마지막 기억 20.05.24 39 3 12쪽
9 네가 없다면 +2 20.05.23 28 1 13쪽
8 타타타 +2 20.05.22 37 2 11쪽
» 빛줄기 20.05.15 37 3 13쪽
6 꿈 그리고 꿈 20.05.14 41 3 13쪽
5 호접몽 20.05.13 49 3 14쪽
4 20.05.13 59 2 12쪽
3 오로라는 사라지고 20.05.13 75 6 12쪽
2 어떤 직감 +1 20.05.13 131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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