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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럭굥

나를 죽인놈도 같이 회귀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519
작품등록일 :
2020.05.13 18:38
최근연재일 :
2020.06.19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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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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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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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DUMMY

푸우우우우웅.


유미는 강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일반 사람이었다면 아파트 6층 높이에서 강으로 떨어지는 순간 꿈에서 깼을 테지만 유미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물속에서 눈을 뜨지 못했다. 숨을 쉬든 안 쉬든 상관이 없는데도 본능적으로 숨을 참았다. 차라리 자신이 원래 있던 그 곳, 암흑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드러운 무언가가 그녀의 손에 닿았다. 저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시야가 희뿌예서 잘 보이지 않았다. 어떤 남자가 자신의 손을 잡고 강바닥을 달리기 시작했다. 물의 저항 때문에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지만, 남자는 유미를 물 밖으로 나오게 도왔다.


수면 위로 올라온 게 아니라 강바닥을 달리다보니 어느새 육지였다.


그녀를 육지로 이끈 남자는 다름 아닌 구연모였다.


"오, 오빠?"

"괜찮아?"


흠뻑 젖은 구연모가 유미의 젖은 머리칼을 귀에 꽂아주며 물었다.


(아, 기억났다. 이 장면······.)


연모네와 유미네 가족이 함께 계곡에 놀러갔을 때였다. 그들의 부모는 바위 위에서 고기를 구우며 식사 중이었고, 연모가 유미를 태운 고무튜브를 밀고 계곡 반대편까지 갔다.


연모가 물안경을 쓰고 다슬기를 잡으려 잠수한 사이, 유미가 타고 있던 고무튜브가 뒤집어지면서 물에 빠졌다.


연모가 바로 유미를 건져주었지만 이미 물을 잔뜩 먹은 후였다.


"케헥. 쿨럭, 켁."

"괜찮아?"

"켁, 어, 괜찮아."


연모의 흰 티가 젖어 몸에 착 달라붙었다. 유미는 옷 위로 드러난 그의 가슴과 배의 근육을 보고 부끄러워졌다. 자신도 속옷과 실루엣이 비치겠거니 생각하자 얼굴이 뜨거워져서 양팔을 엇갈리게 해서 가슴을 가려보았다.


연모는 옷을 좀 잡아서 물기를 짠 뒤, 계속 기침을 하고 있는 유미에게로 다가와 등을 두드려줬다.


"진짜 괜찮아?"


그가 차가운 손으로 젖어있는 유미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을 때, 유미는 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빠지는 시간은 그정도면 충분했다.


"으, 응······. 오빠."

"얼굴이 빨개졌는데, 귀도 빨갛고. 여기 다시 타 봐. 부모님 계신 데로 가자."


유미가 고무튜브에 엉덩이를 넣고 앉자 연모가 수영을 하며 튜브를 밀었다.


(쿵쾅쿵쾅. 아, 어떡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현실이 아닌 꿈속인 지금 이 순간에도 유미는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그만... 심장아, 나대지 마······.)


유미의 머리칼을 넘겨 준 연모는 유미를 빤 히 쳐다보았다.


유미는 얼굴에 뭐라도 묻어 있나 해서 손으로 얼굴을 닦아보았다.


"왜... 오빠?"


유미가 부끄러워하며 묻고는 애써 피했던 시선을 연모의 눈에 고정시켰다. 유미는 그에게서 영혼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의 눈동자는 빛이 없었다.


유미는 손을 연모의 가슴에 갖다 대었다. 심장이 뛸 리 없었다.


연모는, 그의 허상은 유미의 눈물과 함께 사라졌다.


***


ㅇㅇ병원 입원실.


검찰 조사를 받다가 쓰러졌던 강인성은 결국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그의 폐는 여전히 암세포로 뒤덮여 있었으며, 교도소 의료과장이 항암치료를 제안했으나 그는 거부했다.


"에... 강인성... 아니네요, 전주한 씨, 물론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요양하면서도 오래 생존하는 환자들도 있지만, 보통 항암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존기간을 3개월로 보고 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3개월? 1년? 그게 아니면 항암치료를 받다가 죽을 수도 있죠. 그렇지 않습니까? 흐흐. 생명이 얼마나 연장되느냐는 관심 없습니다."


그가 관심 있는 것은 육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그의 의식은 남아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느냐였다. 자각몽을 시작으로 이전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꿈속에서 체험하면서, 그는 자신의 의식 혹은 영혼이라고도 부르는 그것으로의 삶을 희망하기 시작했다.


"저도 제 나름대로 살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에... 민간요법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오히려 그게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강인성은 오른 엄지손가락 흉터를 긁었다.


"전 살아있는 게 더 위험합니다. 영원히 잠드는 게 저에겐 사는 길입니다."


의료과장은 자신이 들은 말을 의심했다. 죄를 지었건 안 지었건, 누구나 살고자 하는 법이거늘 눈앞에 재소자는 삶을 포기한 듯한 발언을 하고 있었다.


"전주한 씨 뜻이 정 그렇다면...에... 앞으로는 입원한 상태에서 방문조사가 이뤄질 수도 있어요, 예······."

"상관없습니다."


교도소 의료과장이 홀로 복귀하는 사이 강인성 사건 담당 검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예, 검사님.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있으니 에... 앞으로 이삼개월 더 산다고 봐야겠죠."

"2002년까지 저지른 살인은 공소시효가 만료돼서 처벌은 안 되지만, 이 사이코패스 특성상 그 이후에도 살인을 저질렀을 확률이 높지 않습니까. 오랜 시간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고, 그래서 여죄를 찾아내서 어떻게든 처벌을 내리려고 하는데 이거 뭐 그 전에 사망하게 생겼군요."

"에... 점점 진통제로는 버틸 수 없는 고통이 올 겁니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걸로 이...하늘이 단죄한 셈으로 쳐야겠지요."

"글쎄요... 유가족들도 그렇게 받아들일지 모르겠군요."


***


"사형제도가 다시 부활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헌법에 최고형은 사형이라고요. 그런데 사형이 10년 넘게 이뤄지고 있지 않아서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이라고 하더라고요. 강인성 같은 살인범들이 버젓이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데, 왜 사형을 안 시킵니까? 나라가 대신 안 해줄 거면, 이 XX 내가 가서 죽여줄 거예요!"


SSS방송국 편집실에서 독고PD와 작가가 강인성이 살해한 12명의 소년 중 일부 유가족의 인터뷰를 보면서 편집점을 의논하고 있다.


"폐암말기라서 곧 죽는다면서요. 피해자를 포함해서 유가족들만 몇 명인데 지금 그 사람이 병들어 뒈지는 걸로 분이 풀릴 거 같아요?"

"지금이야 살인죄에 대해서 공소시효가 없다지만, 2007년 이전에 살해당한 사람들은 왜 적용안해줍니까? 똑같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는데, 누구는 오래 전에 죽었으니 없던 일로 해도 되는 겁니까? 유가족들의 슬픔은 죽어서야 만료되는 겁니다! 공소시효 만료? 웃기지 말라고 하세요!"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인터뷰를 하는 PD가 법을 제정하는 사람이라도 되는 양 화를 내고 있었다. 그들은 강인성의 존재가 드러나자, 자신의 가족이 최근에 살해당한 것처럼 다시 흥분했다. 트라우마. 당시의 감정이 다시 이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휴우······. 저도 제가 피해자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청부살인이라도 하고 싶었을 거예요. 살인은 진정 어린 사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컷, 여기서 컷 할게요."


작가가 모니터를 보며, 편집자에게 주문했다.


"이러니 18세기에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을 아직까지 언급하는 거겠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동해(同害) 복수법이 어쩌면 지금 사회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부모를 구타한 아들은 그 손목이 잘려져야 한다'고 돼 있었으니, 직관적이지만 그만큼 확실한 처벌도 없으니까."


독고PD는 뒤에 서서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러게요. 지금 그 법대로 처벌했다면 어땠을까요? 범죄율이 줄어들었을까요?"

"'징벌자', '철권통치자' 라고 불리는 필리핀의 두테르테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 범죄율이 감소했다고는 하는데 그로인해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점도 무시할 수 없지.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억울하게 처벌을 받는 경우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일어나니까."


이번엔 최고의 형사가 법최면 수사를 받는 장면이 이어졌다.


"총소리는 강인성 쪽에서 들린 게아니에요. 누군가 강인성을 향해 총을 쐈어요."

"스탑, 스탑!"


작가가 요청하자, 리클라이너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최형사의 모습을 담은 화면이 멈췄다.


"선배, 어떻게 할까요? 제대로 된 제보도 없고 아직 진전된 게 없는데, 이번 주에 내보내면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요? 강인성보다는 유미를 쏜 또 다른 인물을 찾는 걸로 얘기가 흐려질 수 있잖아요."

"그렇지. 지금은 일단 2002년 이후 그가 또 다른 죄를 지은 건 없는 지 찾아내는 게 중요하니까. 최면 장면은 들어내자."


편집자는 해당 비디오 클립을 프로젝트에서 삭제했다.


다음은 프로파일러의 인터뷰 장면.


"분명 여죄가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범인이 특정지어지지 않은 살인사건에 대해서 다시 검토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강인성 사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한정된 노동력을 가지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강인성이 사망하고 나서 밝혀진다고 하면 의미가 있나 회의적인 생각도 드네요."

"의미는 충분히 있지. 원수가 누구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천지차이니까."


잠시 생각해보는 작가.


"음, 그러네요. 결국 끝까지 범인을 찾아내려는 건,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


구연모는 고등학교 입학식 때 자신이 찍어준 유미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너는... 지금 17살인 거니? 그래,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도 좋겠어. 만약 모든 기억이 돌아온다면 네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구연모는 사진을 내려놓고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는 유미를 한참동안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은발 머리 그녀는 스퀘어 넥라인 원피스 잠옷을 입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창백하고 앙상한 손과는 어울리지 않게 꾸며진 화려한 네일아트.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유미 옆에 걸터앉은 그는 그녀의 얼굴부터 가슴, 배까지 손끝으로 훑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그녀의 오른손을 부여잡았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사랑하는 너는 누굴까? 너의 육신 없이, 형체가 없어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구연모는 사람의 정신을 컴퓨터에 이식하는 마인드 업로딩 연구에 유미를 참여시킬 것인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실험이 성공해서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고 한다면, 그때 자신과 대화를 나눈 상대는 과연 누구일까.


"너의 모습이 변할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이 변할까봐 두렵다. 유미야······."


유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식물인간이라고 해서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신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타이밍에 흘리는 눈물이라 구연모는 흥분했다.


"유미야! 유미야, 내 말 들리니? 내가 하는 말 듣고 있었던 거야? 그래? 그런 거니?"


어떤 대답도 줄 수 없는 그녀를 보면서 그는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전화기를 들고 상대방이 받을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리는 그.


"네, 구박사님."

"저울이... 도착했습니다. 이연 씨."

"알겠어요. 일 마무리하는 대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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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사죄의 이유 +2 20.06.16 16 1 11쪽
28 비밀 +2 20.06.15 19 1 12쪽
27 너였어 +2 20.06.14 24 2 12쪽
26 작업 +2 20.06.13 24 2 12쪽
25 낯선 사람 +3 20.06.12 25 3 11쪽
24 불안 +2 20.06.11 29 2 12쪽
23 커피콩 +4 20.06.09 22 2 12쪽
22 더블 타이틀 +8 20.06.08 31 3 12쪽
21 상상력 20.06.08 19 0 12쪽
20 21그램 20.06.07 18 1 12쪽
» 두려움 20.06.06 21 1 11쪽
18 세기말 20.06.05 18 1 12쪽
17 내 꿈에 들어와 20.06.03 32 0 11쪽
16 변하지 않는 것 20.05.30 29 1 12쪽
15 다시, 너를 +1 20.05.29 28 1 13쪽
14 너의 이름 +2 20.05.28 29 2 13쪽
13 후회 20.05.26 41 0 11쪽
12 보여줄게 +2 20.05.26 43 4 12쪽
11 히프노시스 20.05.24 29 2 13쪽
10 마지막 기억 20.05.24 39 3 12쪽
9 네가 없다면 +2 20.05.23 28 1 13쪽
8 타타타 +2 20.05.22 35 2 11쪽
7 빛줄기 20.05.15 35 3 13쪽
6 꿈 그리고 꿈 20.05.14 41 3 13쪽
5 호접몽 20.05.13 48 3 14쪽
4 20.05.13 57 2 12쪽
3 오로라는 사라지고 20.05.13 74 6 12쪽
2 어떤 직감 +1 20.05.13 130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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