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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럭굥

나를 죽인놈도 같이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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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0.05.1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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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9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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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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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프노시스

DUMMY

"자~ 세타파로 진입했습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리클라인 의자에 최고의 형사가 몸을 기대어 가수면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법최면 수사관이 낮은 음성으로 천천히 말을 끌며 최면을 진행했다.


"앞에 내려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계단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가 보겠습니다~ 천천히~ 발을 딛고 내려가면 문이 보입니다~ 이제~ 그 문을 열고~ 나가보겠습니다~"


최고의 형사는 18년 전 강인성을 뒤쫓았던 유일한 형사로 그날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강인성이 조사 과정에서 '누군가 총을 쏘았다'고 진술함에 따라 그를 담당했던 프로파일러는 목격자의 법최면을 제안했다.


만에 하나라도 그날 그 자리에 총을 든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고, 그래서 그날 희생자는 다른 사람의 범행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강인성에게 희생당한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소년이었다는 점. 총기 살해는 그의 살해수법과도 맞지 않는데다 그가 순순히 자백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볼 때 그의 발언이 거짓이라고 속단하지 않기로 했다.


최면수사가 이뤄지는 장면은 카메라에 녹화 되고 있었다. 옆방에선 연결된 모니터로 독고PD와 작가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최면수사를 직접 보기는 처음이네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작가는 노트에 최고의 형사가 하는 말을 메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 난 4년 전엔가 뺑소니 사건 목격자한테 이 포렌식 히프노시스 하는 걸 지켜봤었어."


독고PD는 펜을 노트에 탁탁탁탁 치면서 조금은 불안한 모습으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정확하지가 않잖아요. 같은 사건을 두고도 목격자들 각자 기억하는 게 다를 수 있는데... '라쇼몽 효과'라고 하던가."


독고PD가 탁탁 치던 펜을 멈추었다.


"응. 맞아.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 '라쇼몽'에서 따온 말이지. 그래서 법최면은 직접증거는 안 되지만 보조증거로 활용되고 있어."


작가는 틈틈이 메모를 하면서도 PD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히프노시스(hypnosis)라고 하니까 잠의 신 히프노스가 갑자기 떠오르네요. 학창시절에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은 달고 살았었는데······. 히프노스의 형제가 죽음의 신 타나토스, 아들이 꿈의 신 모르페우스······."


작가가 신의 이름을 나열했다.


독고PD는 팔짱을 끼고 잠시 모니터에서 최대한 멀리 등을 밀어보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죽음을 영원한 잠으로 봤으니까. 참 낭만적이지 않아? '영원히 잠든다' 라는 말."

"어? 잠깐 잠깐 잠깐."


작가가 소리를 더 잘 들어보려고 이어폰을 지그시 눌렀다. 모니터에 최고의 형사가 몸을 움찔 하는 게 보인다.


"총소리가 들려요. 제가 몸을 최대한 낮췄는데... 강인성... 강인성도 바닥에 엎드렸어요······. 총소리는 강인성 쪽에서 들린 게 아니에요. 누군가 강인성을 향해 총을 쐈어요."


작가와 독고PD는 천천히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놀란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


[타-앙!]


최고의 형사는 동물적인 본능으로 총소리가 난 곳을 돌아봤다. 2층 객석이다.


(망토?)


폭죽이 거의 동시에 펑펑펑 소리를 내며 터졌지만 최형사는 총소리를 구별할 수 있었다. 자신이 최면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토록 잡고 싶었던 강인성을 뒤로 하고 총소리가 난 곳으로 이동했다.


18년 전 가수들의 생방송 공연이 있던 그날 올림픽경기장은 인파가 대단했지만, 지금은 마치 공연이 끝나고 대다수가 빠져나간 것처럼 한산하다.


최형사는 후드까지 뒤집어 쓴 망토를 입은 사람을 뒤쫓기 시작했다.


(K2 소총이잖아!)


군대에서 쓰는 소총을 한 쪽 어깨에 멘, 검은 망토를 입은 사람은 마치 유령처럼 미끄러지듯이 공연장을 빠져 나갔다.


"사람이... 사람이 아닌가?"


최형사를 모니터로 지켜보고 있던 독고PD와 작가는 또 한 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인성 말고 총을 쏜 사람이 또 있다고 한 충격이 채 가시기 전이었다.


"사람이 아닌가요? 사람이 아니면 무엇인가요?"


법최면 수사관이 차분하게 물었다.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이 안 보여요. 귀신같기도 하고, 저승사자 같기도 하고······."

"그럼 그 귀신같은 사람이 강인성을 향해 총을 쏘았나요?"

"네. 그런 것 같아요. K2 소총을 갖고 있어요."

"지금 그 사람은 어디 있죠? 보이나요?"

"아니요. 쫓아갔는데 사라졌어요."

"좋습니다. 자 이제 거기서 나오도록 할게요. 앞에 계단이 보입니다. 이제 그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열면 잠에서 깨어납니다."


최형사는 그의 주문대로 눈앞에 계단 위로 발을 디뎠다.


"이봐!"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본 형사.


그 자리엔 강인성이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타- 앙!]


경기장을 울리는 총성과 함께 최형사가 쓰러졌다.


독고PD와 작가는 이제 최면이 끝난 줄 알고 긴장을 늦추고 있다가 그가 경기하듯 몸을 떠는 모습에 자리에서 번쩍 일어섰다.


수사관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최형사는 답하지 않았다.


수사관이 다시 최면을 종결시키려 암시를 주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수사가 이뤄지던 방으로 독고PD와 작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못 깨어나신 거예요?"


독고PD가 최형사의 안위부터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아무래도, 깨어나기 직전에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입니다. 그 일을 해결해야겠다는 의지가 각성을 방해한 것 같은데······."


작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수사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최면에서 못 깨어 날 수도 있나요? 최형사님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수사관은 염려 말라는 얼굴로 작가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방에서 나갔다.


"최면에서 안 풀리는 일은 없어. 이제 잠을 주무시고 깨어나실 거야."


독고PD가 대신 대답했다.


"그럼 다행이고요······. 근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아까 진짜 깜짝 놀랐어요."

"글쎄. 잠에서 깨어나시거든 여쭤봐야지."


두 사람도 이내 방에서 나왔다.


***


강인성은 총을 자신의 야상잠바 안주머니에 깊이 찔러 놓고는 달아났다.


털썩.


최고의 형사는 귀를 잡고 신음했다. 하마터면 총알이 그의 이마 정중앙에 박힐 뻔했다.


총에 맞아본 적은 없지만 조폭들을 상대하면서 칼에 맞은 적이 있던 그는 귀가 칼에 베이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곧 그는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했고, 그러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귀가 멀쩡해졌다.


정신을 차린 그는 강인성을 쫓아 올림픽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경기장 밖은 하얀 도화지처럼 아무것도 없다가 검은 망토를 쓴 이의 뒷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최형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방금 빠져나온 올림픽경기장도 사라졌다. 다시 강인성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강인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으나 또 사라져버렸다.


허탈감에 양 무릎에 손을 집고 몸을 숙이고 있는데 응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최고의! 최고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그는 올림픽 경기장 안에 유도복을 입고 서 있다.


청색도복을 입은 상대편 선수의 얼굴은 뭉개져 있다. 스코어보드를 보니 자신이 지고 있는 상황.


최형사는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어 자신의 주특기인 조르기를 재빨리 진행했다. 죽일 듯이 온힘을 다해 팔뚝으로 상대의 목을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말도 안 되는 괴력으로 최형사를 메쳐버렸다. 한판승.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그였지만 자신이 너무 늙어버렸음을 깨닫자 처음부터 불공정한 게임이었다는 생각에 억울했다.


파란색 안전지대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한다.


"나는 이제 너무 늙었다고······."


***


김이연은 침대 옆 스탠드에 불을 켰다.


잠이 오지 않았다. 오전에 이미 필요이상으로 잠을 잔 까닭이었다.


"그 여자애 얼굴······."


김이연은 이브의 꿈에 들어갔을 때 봤던 소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니겠지. 어떻게 거기서 나타나겠어. 이브와 무슨 접점이 있다고······."


혼잣말을 하던 그녀는 문득 떠오른 강인성의 얼굴에 몸서리를 쳤다.


소녀와 함께 암흑에서 빠져나오려 궁리를 하던 그때, 갑자기 소녀가 아닌 야상을 입은 강인성이 나타난 것이다. 살기 어린 강인성의 눈과 마주친 순간 그녀는 꿈에서 깨버렸다.


"어째서 강인성의 모습이 보인거지?"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그녀는 잠들기가 어려웠다.


[렐렐렐렐]


자정이 다 된 시간 김이연의 전화기를 울린 건 독고PD였다.


"김실장님! 늦은 시간에 정말 죄송해요, 강인성에 대한 건데요······."

"강인성이라면, 저는 이제 더 이상 알려드릴게 없는데요."


김이연은 독고PD의 말을 잘라버렸다. 가뜩이나 잠이 안 왔던 데다가 늦은 시간에 전화까지 걸어 하는 말이 강인성이라니. 그녀는 살짝 짜증이 났다.


"아 예, 그게 아니라... 강인성이 조사 중에 그날 자기 말고 다른 사람도 총을 쐈다고 진술을 했어요."

"PD님, 그 미친 사람이 횡설수설하는 걸 다 믿으시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그날 현장에 있던 최고의 형사님을, 최형사님 기억하시죠? 아 그때 차에서 안 내리셔서 서로 인사는 못 나누셨구나······."

"누군지 알아요. 그런데요?"

"최형사님에게 법최면수사를 했어요. 했는데······."

"했는데요?"

"그게 최형사님도 다른 누군가가 강인성을 향해 총을 쏘았다고······."

"네? 말도 안돼요······. 폭죽 소리를 착각한 거 아녜요?"

"그날 현장에 수천 명의 관객들이 있었지만 너무 오래 전 일이라서 이제와서 목격자를 다시 찾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김실장님이 또 다른 목격자로 나서서 증언을 해주면 어떠실까 해서요.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해 드릴 거예요."

"아시다시피, 저는 그날 '진짜 현장'에 있지 않았어요!"

"어차피 검사는 김실장님이 그날 현장에 진짜로 있었는지 아닌지 증명하기 어려워요."


김이연은 일어나 침대 헤드에 등을 대고 기댔다.


"PD님, 거짓 증언도 처벌 받는다는 거 저보다 더 잘 아시잖아요. 강인성과 최형사는 진짜 현장에 있던 인물들이고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그럼 그 둘이 맞겠죠!"

"김실장님, 좀 흥분하신 것 같은데······. 노여움 푸시고, 제가 지금 댁 근처로 갈까요? 만나서 맥주 한 잔 하면서 얘기합시다, 우리."

"너무 늦었어요 PD님. 자고 일어나서 다시 얘기해요."


독고PD는 한 번 더 설득할까 하다가 작가가 고개를 가로젓는 걸 보고는 관두었다.


"네, 그럼 생각좀 해보시고······."

"끊을게요."


전화를 끊고 독고PD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탁 때렸다.


"미제 사건으로 남을 뻔한 일이 술술 해결되나 했더니······. 가뜩이나 범인이 시한부인생인데, 처벌도 못 받고 끝나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이거."


작가는 하품을 하고는 목을 좌우로 꺾어 근육을 이완시켰다.


"선배, 제 생각에도 김이연 씨를 목격자로 내세우는 건 무리예요. 이번 주 방송 하단에 일단 목격자를 찾는다는 자막 넣고, SNS에도 올려보죠.


작가는 자신의 책상에 놓인 노트북 키보드를 경쾌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배는 김이연 씨의 능력을 어떻게 알게 됐어요?"

"어, 내가 처음 맡은 프로그램이 <미스터리 라이브러리>였는데 그때 자각몽을 다룬 적이 있었거든. 그때 김실장이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었어. 자기가 루시드 드리머라면서. 그래서 대학교 가서 뇌파검사도 하고 했는데... 뇌파만 가지고는 와 닿지가 않잖아."


PD는 모나미 펜으로 입술을 꾹꾹 눌렀다.


"접어야 하나 고민하는데 전화가 오더라고. 그럼 자기 출연료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자기 출연료 때문에 연락한 거라고."

"30만원? 많아야 50만원 아니었어요? 돈이 궁했나보네요."

"모르긴 몰라도 그랬던 것 같아. 지금이야 잘 나가는 엔터테인먼트 홍보실장이 됐지만, 암튼 그래도 촬영까지 했으니 내가 소정의 금액은 사비로 드리겠다고 했지. 나도 상경해서 안 해본 아르바이트 없이 힘들게 버텼던 기억이 있어서······."


PD는 펜촉이 입술에 닿자 입술에 잉크가 묻었을까봐 손등으로 슥슥 문질러보았다.


"그랬는데 자기가 보여주겠다더라군. 자각몽이 가능하다는 걸."


작가의말

10화 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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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두려움 20.06.06 21 1 11쪽
18 세기말 20.06.05 19 1 12쪽
17 내 꿈에 들어와 20.06.03 34 0 11쪽
16 변하지 않는 것 20.05.30 30 1 12쪽
15 다시, 너를 +1 20.05.29 28 1 13쪽
14 너의 이름 +2 20.05.28 29 2 13쪽
13 후회 20.05.26 42 0 11쪽
12 보여줄게 +2 20.05.26 45 4 12쪽
» 히프노시스 20.05.24 31 2 13쪽
10 마지막 기억 20.05.24 39 3 12쪽
9 네가 없다면 +2 20.05.23 28 1 13쪽
8 타타타 +2 20.05.22 36 2 11쪽
7 빛줄기 20.05.15 36 3 13쪽
6 꿈 그리고 꿈 20.05.14 41 3 13쪽
5 호접몽 20.05.13 49 3 14쪽
4 20.05.13 59 2 12쪽
3 오로라는 사라지고 20.05.13 75 6 12쪽
2 어떤 직감 +1 20.05.13 131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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