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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럭굥

나를 죽인놈도 같이 회귀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519
작품등록일 :
2020.05.13 18:38
최근연재일 :
2020.06.19 06:19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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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0,445

작성
20.05.24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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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마지막 기억

DUMMY

"기담이가 진짜 오늘 깨어날 수 있을까?"

"모르지. 이건 뭐 굿을 하는 거면 구경이라도 하지, 머릿속으로 들어간다니 볼 수도 없고."


이브의 집 2층 테라스에 나와 있는 윤중천 대표와 윤아라.


윤대표는 손이 허전한지 엄지손가락으로 두 번째와 세 번째 손가락 사이를 문질렀다.


"대표님, 담배 태우고 싶으세요?"

"아니, 완전히 끊었어."

"아빠, 이모 보기 좀 민망하지? 나도 그래. 괜히 내 잘못 같고······."

"너무 죄책감 갖지 마. 기담이 깨어날 거야. 그리고 어깨 수술은 본인이 거부하고 버텨온 거잖니."

"죄책감은 안가지려고 하는데... 상황이 그래. 지금도 동생이 저렇게 의식이 없는데 회사 걱정을 또 안 할 수가 없으니까."

"날라리 이사 인줄로만 알았는데, 회사 걱정을 하긴 하는 구나."


윤대표는 서른이 된 딸을 어린애 대하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후속 신인 데뷔를 앞당겨야겠어요."

"데뷔까지는 아직 멀었잖아."

"여태껏 우리 회사는 이브라는 아티스트 한 명을 내세워서 수익을 창출했어요. 일당백일 정도로 막강한 티켓파워를 자랑하지만 그만큼 하이리스크가 있죠. '이브가 아프다거나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고민은 직원 모두 하고 있었고, 지금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죠."


윤대표는 테라스 난간에 등을 대고 기댔다.


"다들 회사가 망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어요. 이번 주 저희 회사 주가가 20프로 하락 마감했어요. 다음 주엔 하한가를 맞을 수도 있겠죠."

"원래대로 데뷔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한 세 달쯤 뒤면 대중들의 관심도 식을 테고, 일이 좀 정리가 된 다음이 낫지 않겠어?"

"우리에게 차세대 신인이 있다는 건 주주들을 통해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에요. 우리는 원래 일정대로 진행하는 걸로 하면 돼요. 이브의 후속 아티스트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다른 신인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인지도를 갖고 출발하는 셈이지만, 요즘 같은 세상엔 그것만으로는 안 되죠. 그 친구에겐 지금이 위기이자 기회예요."

"그 친구를 시험해 보려는 거야?"


윤아라는 테라스에 놓인 몬스테라의 찢어진 잎사귀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괴롭혔다.


"그 친구가 아니라 그 친구의 음악을 시험해 보려는 거예요. 회사 입장에선 베팅이라고 봐야죠. 작곡가는 알리지 않고 음악만 먼저 유튜브를 통해 릴리즈 할 거예요. 우리 회사 레이블을 달고 나가는 음악이니 많은 이들이 이브가 만든 곡인 줄 알겠죠. 팬들은 그가 곧 복귀할거라는 암시로 이해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둘의 음악 색깔이 많이 다른데?"

"말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들어볼 거예요. 세상엔 사람들이 들어주지 못하고 묻히는 수많은 명곡들이 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들어봤는데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 노래는 사장되죠."


윤대표는 난간에서 등을 떼고 몸을 돌려 딸을 마주보고 섰다.


"첫 곡에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어. 두 번째나 세 번째 앨범에서 히트를 치는 경우가 더 많지. 이브도 두 번째 타이틀곡에서야 1위를 했으니까."

"그야 이브는 이름을 알려야 했으니까요. 이 친구는 달라요. 등장하는 순간 이름이 알려지죠. 이브의 인기를 안고서요. 첫 곡에서 홈런을 치지 못하면 그 다음은 계속 안타만 날릴 거예요. 삼 년 넘게 공들인 친구예요. 이 친구가 안타를 날리면 그 다음 타자는... 우리에게 없잖아요. 회사가 쇠락하는 일만 남은 거예요."


윤아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브라는 한 아티스트를 위해 만든 회사지만 이제 그 회사에 70명에 가까운 직원들이 있고, 그들의 가족까지 생각하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회사를 붙들고 있는 거라고요. 더 이상 이브만을 위한 회사가 아녜요. 우리 모두의 회사지."


윤대표는 철부지만 같았던 딸이 이렇게 책임감을 갖고 있었는지 몰랐다. 그는 딸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직은... 아직은 이브가 떠날 때가 아녜요. 아빠, 꼭... 반드시 눈을 떠야 해."


이브의 방.


이브는 평온하게 잠들어 있다.


그의 엄마인 신연오 여사가 곁을 지키고 있고, 구연모 박사는 랩톱에 연결된 뇌파 신호를 들여다보고 있다. 뇌파 그래프가 어느 순간 요동을 치더니 이브가 몸을 반쯤 세우며 깨어났다.


"헙!"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이브. 구박사와 신 여사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기쁜 얼굴을 하고 그를 살폈다.


이브는 눈이 부신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고 신 여사는 얼른 커튼을 쳐 주었다.


"기담아, 기담아, 엄마 보이니? 괜찮아? 괜찮지 우리 아들?"


신 여사는 아들의 머리에 잔뜩 붙어있는 패치를 어찌해야 할 지 모르고 그의 두 손만 꽉 붙잡았다.


"엄마, 엄마, 엄마······. 나 괜찮아요. 걱정 마, 걱정하지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심장은 여전히 크게 쿵쾅거렸고 식은땀마저 났다.


"엄마, 엄마, 나 화장실 좀······."

"갑자기 일어나면 쓰러질 수 있으니까 천천히 움직이도록 해요. "


구박사가 패치를 떼며 말했다.


신 여사가 아들을 부축하려고 하자 구박사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브는 구박사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화장실로 갔다.


그 사이 신 여사는 제부인 윤중천대표와 조카인 윤아라를 부르기 위해 방을 나갔다.


테라스에 있던 두 사람은 한달음에 이브의 방으로 갔다.


"아빠, 잠깐만."


윤아라는 다른 방에서 잠을 청한 김이연 실장을 보러 갔다. 이브가 깨어났다면, 그를 깨우러 꿈으로 들어간 김 실장도 같이 깨어났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이연은 여전히 꿈속에 있었다.


윤아라는 조용히 문을 닫고 이브의 방으로 돌아갔다.


구박사가 이브를 부축해서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기담아!"


윤아라는 기담이의 품에 가 안겼다.


"누나, 걱정 많이 했지?"

"걱정 많이 한 정도가 아니야, 이 자식아!"


윤아라의 볼을 타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자."


이번엔 윤대표가 이브를 부축해서 침대에 편히 앉을 수 있도록 도왔다.


"고마워요. 이모부."

"그래. 깨어나 줘서 내가 더 고맙다."


누구를 찾는 듯 한 이브.


"김 실장님도 여기 계신가요?"

"아, 응. 김 실장은 다른 방에. 왜?"

"꿈에 김 실장님이 나왔어요. 김 실장님이 이만한 주사기를······. 암튼, 덕분에 깨어난 거나 다름없어요."


윤아라가 이브의 등에 쿠션을 덧대었다.


"김 실장님이 널 깨우러 네 꿈속으로 들어간 거야."


이브는 미간을 찌푸렸다.


"누나, 윤이사님, 지금 그 말을 저더러 믿으라고요? 꿈에서 별 소릴 다 듣긴 했지만 그건 꿈이었고······."


이브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훑어봤다. 또다시 꿈속인가 의심됐기 때문이다.


"아야!"


구박사가 이브의 팔을 잡고 꼬집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할 때 자기 살을 꼬집거나 때려봤어요. 아픔이 느껴지면 꿈이라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아픈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면 생시라는 뜻인 거죠. 왜냐면 꿈에서는 두렵거나 아픈,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스스로 이를 회피하려 꿈에서 깨버리거나 다른 장면으로 바꿔버리니까요."


이브는 초면인 구박사를 원망 섞인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 이분은 구연모 박사님이셔. 일종의 최면치료를 하실 줄 안다고 해서 소개받았는데, 우리 김 실장님이 우연찮게도 구박사님께 자각몽을 훈련받으셨다고 해."

"자각몽 훈련이요? 누나 그 유체이탈 뭐 이런 거 말하는 거예요?"


이브는 모두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어 헛웃음이 다 나왔다.


"우리도 처음엔 믿기 어려웠다. 그런데 네가 잠들어 있는 근 일주일 동안 우린 이 사실을 믿지 않을 수도 없게 되었어. 김 실장이 루시드 드림으로 연쇄살인범을 잡은데다가 오늘은 네 꿈에 들어간다고 한 지 십 분, 십오 분 만에 네가 이렇게 깨어났으니까 말이야."


윤대표의 설명은 오히려 이브의 의구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네? 연쇄살인범이요? 김 실장이 살인범을 잡았다고요? 말도 안돼요. 그 작은 체구의 김 실장님이 무슨 수로 살인범을 잡는다는 말씀이세요?"


"자, 너 머리 아프겠다. 그런건 앞으로 차차 얘기하기로 하자. 일주일만에 간신히 깨어난 사람이 소화하기엔 너무 무리야. 일단 쉬어. 죽 만들어 올게. 배도 많이 고프겠다."


신 여사를 제외하고 모두 이브의 방에서 나왔다. 윤아라는 부엌으로 내려갔고, 구박사와 윤대표는 다른 방에 김 실장을 확인하러 갔다.


"깊은 잠에 든 모양입니다. 자게 두시면 숙면을 취한 후 깨어날 겁니다."


구박사는 침대 밑에 떨어진 그녀의 시계 펜던트 목걸이를 보았다.


"알겠습니다. 박사님. 오늘 너무 감사드립니다. 점심때인데 저희와 식사 같이 하시고 가시죠."

"아닙니다. 집에 기다리는 식구들이 있어서 먼저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근사한 식당에서 제대로 대접하겠습니다."

"별말씀을요."

"아, 혹시 자녀분이 계신가요? 이브의 싸인 CD라도 드리고 싶은데······."

"아... 제 딸은 이브 팬이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하하······."


멋쩍게 웃으며 윤대표는 구박사를 현관 앞까지 배웅했다.


***


"안녕히... 가세요."


소녀는 김이연 실장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난 뒤 인사했다.


이브가 먼저 사라지고 김 실장과 둘만 남게 된 상황에서, 김 실장은 둘이 같이 암흑 속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그러나 소녀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야상을 입은 어떤 남자의 모습으로 분해 그녀를 놀랬다. 한눈에도 광기 혹은 살기가 넘치는 남자의 모습은 그녀의 기억속 두려운 이미지였다.


이제 소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그녀는 혼자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몇 시간? 몇 달? 몇 년? 혼자여도 무섭지 않게 됐다.


그녀 스스로 자신을 둘로 분리하면서부터.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잖아?"

"응. 어떻게 우리가 다른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 다른 사람의 머릿속으로 말이야."


소녀는 상대방이 있는 것처럼 혼자 대화했다.


"그러게. 그리고 또 그들이 우리 머릿속으로 들어 올 수도 있다니! 정말 흥분되지 않았어?"

"맞아. 다시 그렇게 다른 사람의 머릿속으로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여기는 아무것도 없어서 심심해."

"내가 있잖아, 나랑 다시 재미있게 놀자. 그러다 또 우리가 나갈 수도 있고 누군가 들어올 수도 있고."

"난 벌써부터 우울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지도 모르고 기다린다는 건 끔찍한 고문이야."

"내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줄게."

"뭔데?"

"아까 그 오빠 말이야."

"어, 어, 말해봐, 어서."

"그 오빠가 두고 간 게 있어."

"뭐? 그 오빠는 호텔가운 걸친 게 다 였는데, 두고 갈 소지품이나 있었어?"

"봐!"


소녀는 발밑에서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슬리퍼. 하하하. 슬리퍼를 두고 갔지 뭐야."

"하하하. 진짜네. 하하하. 어렸을 때도 슬리퍼를 놓고 가서 엄마한테 혼났다 그러더니 완전 신데렐라야 이 오빠."

"신발 찾으러 오면 좋겠다."

"아니지. 우리가 신발의 주인공을 찾으러 가야지."

"어떻게? 어떻게 가지?"

"그 때 우리가 어떻게 그 올림픽 경기장으로 갈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소녀는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물었다. 뭔가 생각할 때 나오는 버릇.


"우리는 그 때 우리의 마지막 기억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어. 문자메시지, 스탠바이 하라는 소리, 폭죽, 그리고 야상 잠바를 입은 남자······."


작가의말

9화 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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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더블 타이틀 +8 20.06.08 31 3 12쪽
21 상상력 20.06.08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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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세기말 20.06.05 18 1 12쪽
17 내 꿈에 들어와 20.06.03 32 0 11쪽
16 변하지 않는 것 20.05.30 29 1 12쪽
15 다시, 너를 +1 20.05.29 27 1 13쪽
14 너의 이름 +2 20.05.28 29 2 13쪽
13 후회 20.05.26 41 0 11쪽
12 보여줄게 +2 20.05.26 43 4 12쪽
11 히프노시스 20.05.24 29 2 13쪽
» 마지막 기억 20.05.24 39 3 12쪽
9 네가 없다면 +2 20.05.23 28 1 13쪽
8 타타타 +2 20.05.22 35 2 11쪽
7 빛줄기 20.05.15 35 3 13쪽
6 꿈 그리고 꿈 20.05.14 41 3 13쪽
5 호접몽 20.05.13 48 3 14쪽
4 20.05.13 57 2 12쪽
3 오로라는 사라지고 20.05.13 74 6 12쪽
2 어떤 직감 +1 20.05.13 130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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