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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럭굥

나를 죽인놈도 같이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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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0.05.13 18:38
최근연재일 :
2020.06.19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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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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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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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네가 없다면

DUMMY

검찰청 조사실.


프로파일러는 날리는 글씨체로 강인성과의 대화를 간략하게 노트했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싸이코 패스와의 취조는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마치 어린애와 하는 것 같은 어리석은 문답이 이어졌지만.


"총은 어디서 났지요?"

"주머니에... 총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럼, 누가 주머니에 총을 넣어놨지요?"

"어머니가. 어머니가 주머니에 넣어놨어요."

"어머니?"


프로파일러는 한 쪽 눈썹을 치켜떴다. 그는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였다.


"네 어머니요. 저도 사람인데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계시지 않겠어요?"


웃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를 어색한 안면근육의 움직임.


"어머니와 같이 살았나요? 지금은 어디 계시지요?"

"어머니는... 어머니는······."


강인성은 흉이 있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자꾸만 꼬집었다.


"어머니는······."


그는 끝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기억의 어디에도 엄마를 찾지 못했으므로.


"그래요, 그럼 어머니는 그 총을 어디서 구하셔서 강인성씨 주머니에 넣었을까요?"

"아버지가... 아버지가 구해오셨어요. 아버지가······."


당연히 그에게는 아버지도 없었다. 프로파일러는 관자놀이 부분을 살짝 긁었다.


"그날 총소리가 들렸어요. 제가 쏜 게 아니었어요. 저 말고 또 누군가가 총을 쐈습니다. 선생님 알고 계셨어요? 저를 죽이려고 했다고요! 그래서 방어적으로 방아쇠를 당기게 된 겁니다. 정말이에요. 그 여자를 죽이려고 한 게 아녜요. 제가 죽으려고 했습니다!"


프로파일러는 수갑을 차고 맞은편에 위축된 채로 앉아있는 강인성을 실눈을 뜨고 바라봤다.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하는 말인가?) 그렇군요······. 그럼, 이후에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나요?"

"... 아니요."


강인성은 여백을 두고 답했다.


"너무... 너무 아팠어요."


그는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 상황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끄윽, 끄윽 신음과 함께 오른손 팔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너무 아픈 걸 알게 돼서 죽는 게 두려워졌어요. 그런데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철저히 숨어 지냈습니다."

"흠······. 숨어 지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밥은 잘 먹고 지냈습니까?"


강인성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어디든 가서 일했습니다. 말을 거의 안했기 때문에 사장님들은 저를 불법체류자라고 생각했어요. 월급도 제대로 못 받아서 수중에 돈은 없었지만 경찰에 들켜서 죽느니 그렇게라도 사는 쪽을 택했어요. 밥은 그래도 굶진 않았습니...다!"


그는 말끄트머리에 오열하기 시작했다.


프로파일러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고 되뇌었다.


"스스로 진정될 때까지 울어도 좋아요."


책상과 의자만 놓인 회색빛 공간이, 한 번도 울어보지 못한 짐승의 포효로 진동했다.


***


구치소 안.


강인성은 눈을 번쩍 떴다. 옆으로 길게 찢어져 올라간 눈꼬리. 쌍꺼풀 없이 큰 눈은 뭇 미남의 인상이다.


독방에 수감된 그는 대여섯 평정도 되는 공간 안에서 식사부터 씻기까지 모든 걸 해결했다. 퍽 불편하지 않았다.


구속되기 전 요양원에서 하던 일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어나면 책상에 앉아 성경책을 읽었고, 식사 전엔 꼭 맨손 운동을 했다. 점심 식후엔 낮잠을 꼭 잤으며 오후엔 명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명상을 하는 동안 그는 병에 걸린 자신의 폐를 떠올렸다. 새까맣게 변해버린 폐.


그는 암덩어리를 레이저로 조사하는 상상을 했다.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위해 폐에 대해 공부도 했다. 자신의 폐 CT는 머릿속에 사진처럼 찍어 두었다.


매일 그는 두세 시간 씩 자신의 폐를 머릿속으로 치료했다. 신기하게도 폐가 찢어질 듯 고통스러웠던 기침이 잦아들었고, 각혈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흡연자도 아닌 그가 악성 종양을 얻게 된 사연은 이렇다. 20여 년 전,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현장에 일용직으로 일할 때, 변변한 보호 장구도 없이 반짝반짝 날리는 석면가루를 코와 입으로 먹은 게 화근이었다.


하루는 건설현장에서 급식을 먹고 있을 때였다. 다른 노동자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밥을 우겨넣고 있는데 한 청년이 말을 걸었다.


"옆에서 같이 먹어도 될까요, 형?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강인성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청년은 식판을 들고 옆에 앉았다.


"저도 저렇게 사람들이랑 둘러앉아서 밥 먹는 건 안 좋아해요. 근데 또 혼자 밥 먹기는 너무 서글퍼서요."


대꾸하지 않는 강인성.


"아, 뭐 대꾸 안하셔도 돼요. 그냥 이렇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난 불편하니 딴 데로 가!"


강인성의 공격적인 눈을 보고 적잖이 당황한 청년.


"아... 네······. 그럴게요. 실례했습니다."


식판을 들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청년.


"어이! 너 몇 살이야?"

"열여더... 스무 살이요······."

"학교에서 공부는 안하고 왜 여기서 막노동을 하고 있어?"


강인성은 식판에 얼굴을 파묻고 밥을 퍼먹으면서 말을 했다. 입에서 밥알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저기요, 형... 이럴 거면 다시 앉아도 돼요?"


또다시 대답 없는 강인성.


청년은 수락이라 생각하고 다시 철푸덕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공부는 포기했어요. 어차피 머리로 안 될 거 돈이나 일찍 벌려고요. 머리든 몸이든 결론은 돈만 잘 벌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부모님은?"


청년은 숟가락질을 멈추고 코를 찡긋거렸다.


"아, 이거... 제 아킬레스건을 건드셨는데······. 흠······. 가출했어요. 엄마랑 아빠랑 매일 치고 받고 싸우는데 못 견디겠더라고요."

"······."

"차라리 부모님이 안 계신 게 낫겠더라고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어쩌겠어요? 그럼, 형은 왜 여기서 일해요?"

"수능보고 시간 남아서."


거짓말이었다. 강인성의 학력은 중퇴. 그러나 그는 누가 물어보면 학교를 다니는 것처럼 굴었다.


두 사람은 그날 일당을 받아 소주만 두 병 사서 가까운 산으로 갔다. 코끝이 얼 정도로 날이 추웠다. 마른 낙엽과 나뭇가지들로 모닥불도 피고, 알코올까지 들어가니 몸이 달아올라 추운지 몰랐다.


"엄마, 아빠가 너무 밉더라고요. 이럴 거면 애를 낳질 말지······. 사랑도 못해주고 키울 거면!"


청년은 소주 네 잔째에 취해버렸다.


"가족끼리 행복한 추억도 하나 없고요, 떠나는 데 미련이 없더라고요. 집을 나오는데 그냥,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더라고요. 나만 없으면, 나만 없으면, 둘이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만 없으면?"


그는 혼자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그대로 강인성 쪽으로 몸을 기울여 쓰러졌다.


"글쎄······. 그럴까? 네가 없다면 그들이 사는 세상은 행복해질까?"


1996년 겨울, 강인성은 처음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다음 날 새벽.


그들이 피워놓은 모닥불은 차갑게 식은 지 오래였고, 열여덟 청년의 몸은 그것보다 더 싸늘하게 얼어있었다.


이날은 진눈깨비까지 내렸는데 청년의 눈썹이 하얗게 얼어있었으므로, 주검을 처음 발견한 등산객은 노인이 동사한 것 같다고 신고했다.


경찰의 전화를 받고 영안실로 달려온 청년의 아버지는 아들의 퍼런 입술을 보자 눈물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는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 아들의 얼굴에 둘렀다. 영안실 직원이 이를 말리려다가 참았다.


"아드님이 맞습니까?"


형사의 질문에 청년의 아버지는 콧물을 크게 들이켠 뒤 '맞다'고 대답했다.


차마 아들의 시신을 보러 들어올 수 없었던 어머니는 남편이 대답하자마자 통곡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영안실에서 나오자 두 사람은 울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


(여기가 어디지?)


김이연이 눈을 뜬 곳은 어느 바위 섬 위였다.


깜깜한 밤하늘엔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적이었다. 마치 비디오 화면을 멈추어 놓은 것처럼 바닷물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이브의 꿈속으로 도킹한 게 맞을 텐데······.)


꿈의 주인인 이브가 보이지 않았다. 김이연은 자신의 목에 달린 시계 펜던트 덮개를 열었다. 그때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에서?)


김이연은 마치 반타블랙처럼 모든 빛을 흡수한 듯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웅웅웅웅]


"말소리인 것 같은데······."


김이연은 위로 날아오를까 하다가 멈칫했다.


"이브! 이브 거기 있어요? 이브! 권기담씨!"


그녀는 위를 향해 소리쳤다. 곧 웅성거림이 멈췄다.


김이연은 마른침을 삼켰다. 저 위에 검은 하늘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무서운 상상이 들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자신이 상상을 해서 뭔가 만들어내는 순간 꿈은 불안정해 질 것이었다.


그녀는 주변을 다시 돌아다보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적은 아름다운 휴양지의 모습이었다. 하얀 백사장, 팜트리, 망망대해······.


김이연은 다시 고개를 들고 이브를 불러 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눈이 빙그르 도는 기분이 들어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닌 게 아니라 공간의 위아래가 뒤집어지고 있었다. 이제 검은 하늘은 검은 땅이 되었고, 바위섬과 바다가 하늘로 올라갔다.


(어떻게... 된 거지?)


김이연은 이제 어쩔 도리 없이 검은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몸에 힘을 빼고 그대로 블랙홀 같은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구름 속에 들어온 기분. 차가운 작은 물방울 같은 입자들이 몸을 감쌌다.


자신의 손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곳에 들어온 그녀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자신이 들어온 곳은 이미 검은 물질들로 뒤덮여버렸고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이브! 권기담! 여기 있는 거예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브를 불렀다.


[웅웅웅]


아까보다 아주 가까이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물속에서 듣는 소음처럼 웅웅 거렸지만 분명 가까이에 있었다.


"이브! 권기담씨! 나 김실장이에요! 어디 있어요?"


탓!


무언가 그녀의 손을 낚아챘고, 그녀는 너무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


"실장님!"


이브가 비로소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창백하다 못해 빛이 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입······!"


이브는 김이연을 한 팔로 꽉 안았다. 그리고 흐느꼈다.


"실장님, 제발, 제발 저희를 이곳에서 나가게 해주세요. 제발······."


김이연은 당황스러웠다. 그와 처음으로 포옹을 해서도 아니고, 자신도 나갈 길을 몰라서도 아니고, 그가 '저희'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저희... 저희라뇨? 이브 말고 여기 또 누가 있어요?"


이브가 다른 팔로 무언가를 당기자 어둠 속에서 예쁘장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은······."


김이연은 그 소녀를 아는 눈치였다.


"실장님, 이 소녀가 누군지 아세요?"

"아는 얼굴인 것 같아요. 너무 오래돼서 확실하진 않지만... 아무튼 그건 나중에 확인하고, 여기서 나갈 방법을 생각해봐요."


이브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실장을 쳐다봤다.


"실장님, 실장님도 몰라요? 어떻게 나갈지? 어떻게 들어오셨는데요? 그대로 다시 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눈에 보이는 건 없고 이브는 마음이 급해졌다.


김이연은 시계 펜던트를 눈앞에서 흔들리게 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하... 하실 수 있는 거 무엇이든 빨리 해보세요. 실장님이 마법사, 그래요, 마법사 지팡이를 꺼낸다고 해도 이젠 다 믿을 거니까요!"


김이연은 흔들리는 펜던트 뒤로 이브의 간절한 얼굴이 들어와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자기 최면을 걸 정도로 숙련돼 있었지만 누군가 지켜보는 와중은 아니었다.


"흠······."


그녀는 시계 펜던트를 들고 있던 팔을 내렸다.


"왜요? 그만 두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시라고요! 눈 사팔뜨기 하고 계신 것도 웃음 꽉 참고 있었는데!"


김이연은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기가 사팔뜨기하고 있는 얼굴을 상상하니 더 자신을 보게 둘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충격요법이 나을 것 같아요. 여러분도 꿈을 꿔봐서 알거예요. 떨어지는 꿈을 꾸면 땅에 닿기 전에 잠에서 깨거나 다른 꿈으로 전환되죠."

"여긴 한 치 앞도 안 보여서 떨어지는 느낌도 안 들 텐데 어떻게 해요?"


이브는 점점 탈출할 수 있는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앓는 소리를 했다.


"꼭 떨어지지 않아도 돼요."


김이연은 손을 펴 주사기를 보여줬다.


이브는 주사기에 바늘 길이를 보자 몸서리를 쳤다.


푹!


김이연은 예고도 없이 주사바늘을 이브의 가슴팍에 찔러 넣었다.


작가의말

8화 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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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더블 타이틀 +8 20.06.08 32 3 12쪽
21 상상력 20.06.08 21 0 12쪽
20 21그램 20.06.07 19 1 12쪽
19 두려움 20.06.06 21 1 11쪽
18 세기말 20.06.05 19 1 12쪽
17 내 꿈에 들어와 20.06.03 34 0 11쪽
16 변하지 않는 것 20.05.30 30 1 12쪽
15 다시, 너를 +1 20.05.29 28 1 13쪽
14 너의 이름 +2 20.05.28 29 2 13쪽
13 후회 20.05.26 42 0 11쪽
12 보여줄게 +2 20.05.26 46 4 12쪽
11 히프노시스 20.05.24 31 2 13쪽
10 마지막 기억 20.05.24 39 3 12쪽
» 네가 없다면 +2 20.05.23 29 1 13쪽
8 타타타 +2 20.05.22 37 2 11쪽
7 빛줄기 20.05.15 37 3 13쪽
6 꿈 그리고 꿈 20.05.14 41 3 13쪽
5 호접몽 20.05.13 49 3 14쪽
4 20.05.13 59 2 12쪽
3 오로라는 사라지고 20.05.13 75 6 12쪽
2 어떤 직감 +1 20.05.13 131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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