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그림자
핸델이면 로미오의 스승이며 나이트 오브 시스터즈, 밤의 자매단 서열 십 위에 드는 암살자다. 물론 로미오의 말로 핸델은 허풍이 심하여 그가 정말 십 위권 내에 드는 암살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밤의 자매단은 철저한 점조직 체계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그러니 하나의 조직이 무너진다 해도 밤의 자매단 전체가 무너지지 않을뿐더러 밤의 자매단 본대는 어반마르스에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며 밤의 자매단 최상에 자리에 앉아 있는 새턴의 날개 피리우 새턴은 그 이름만 알려 졌을 뿐 굵직한 사건에 등장한 기록이 전무 할 정도다.
혹자는 그는 이름만 알려진 자라는 이야기도 있고 가상의 인물이다. 그 누구도 그를 본 사람이 없는 것은 그가 단 한 차례도 암살에 실패한 적이 없으며 자신을 본 사람은 모두 죽여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턴의 날개를 제외하고 밤의 자매단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일곱의 어쌔신 마스터일 것이다. 이 일곱의 어쌔신 마스터도 존재 여부가 잘 알려지지 않는 만큼 신비에 싸인 자들이다.
테츠와 마테니가 발견한 밤하늘 가르는 공기는 고도로 훈련된 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내는 소리다. 내공이 없는 사람은 주변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을 처리 할 수 없다. 천마잠행만 하더라도 주변 공기의 흔들림을 내공으로 평정해 빠르게 움직이더라도 공기의 움직임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마나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일 때 휘저은 공기는 주변 공기와는 이질적인 파동을 만들어 낸다. 테츠와 마테니는 그 파동을 느낀 것이다.
마나를 이용해 이 정도 빠르기로 움직이는 인물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고도로 훈련된 암살자뿐이다. 움직임의 방향으로 볼 때 아칸시티의 북동쪽 지역이며 귀족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아칸시티의 정중앙에는 팬텀 가드너의 왕궁이 있고 그 왕궁을 기점으로 북동쪽 지역은 땅이 기름지고 토양이 좋아 오래전부터 많은 귀족이 자신의 거주지로 삼기 시작했고 점점 그 지역에서 일반 시민은 쫓겨나다시피 했다.
지금은 오롯이 귀족들만 모여 사는 공간이 되었고 신분에 따라 성채와 보유한 정원의 크기가 달랐다. 시몰레이크 후작의 성도 이 구역에 있으며 팬텀 가드너의 많은 충복도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아칸시티 북동쪽 귀족 지구를 시민들은 반사르 지역이라고 칭한다. 반사르는 팬텀 가드너와 함께 솔라리스 왕국을 세운 개국 공신이며 공작의 칭호를 가진 대귀족이다. 그가 처음으로 이곳에 자신의 성을 건설하였다. 그 이후 그의 이름을 따서 이곳을 반사르 지구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테츠는 밤공기를 가르는 인물이 반사르 지역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마테니와 함께 그를 미행했다. 그자는 두 사람이 자신의 뒤에 따라붙었다는 것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는 마치 예정된 경로를 따라가는 것처럼 군더더기 없이 일직선으로 움직였다. 귀족 지구라 거리마다 순찰하는 경비병이 있었지만 능숙하게 그들의 이목을 피하며 움직였다.
테츠는 그가 고도의 훈련을 쌓은 자임을 알 수 있었다. 일전에 로미오가 처리한 핸델이라는 암살자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은 능력을 갖춘 자였다.
솔직히 테츠 정도나 되니까 그의 기척을 감지한 것이지 다른 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만큼 은밀하고 무엇보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테츠가 최대한 가까이 붙어 확인했는데 나무 위의 인형은 매우 날렵한 모습으로 허리를 지면에 수평으로 눕히고 두 다리로만 땅을 차고 달리는 모습이었다.
상체를 아예 수평으로 눕혀 공기 저항을 최소한 모습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그 속도가 지금까지 본 암살자와 모든 기사를 통틀어 가장 빨랐다. 심지어 2성 내공으로 펼치는 천마행공과 비슷한 속도를 보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아칸시티의 반을 이 속도로 가로질러 온 것이다. 내공 없이 오롯이 마나로만 내는 속도라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마나는 내공과는 달리 소비가 되면 다시 채우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정도 마나를 소비해서 달린다는 것은 마나의 축적된 양이 마법사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마테니는 바짝 쫓아 오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마스터 저놈 냄새가 조금 이상합니다."
놈의 꼬리를 따라 움직이는 터라 놈의 자취를 완전히 느낄 수 있었던 마테니는 야생왕 덕분에 신체 모든 감각이 짐승과 다른 바 없을 정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는 테츠조차 느낄 수 없는 미세한 냄새를 맡았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땀 냄새에 뭔가 섞여 있습니다."
"독인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놈 피부에 뭔가를 발랐습니다. 땀 냄새에 다른 냄새가 섞여 있는데 나중에 한번 조용한 곳에서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더욱 호기심이 생기고 재미있어 지는구먼."
반사르 지역에서 더욱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귀족의 등급이 높아진다. 반사르 지역의 앞부분은 남작과 자작들이고 중간 이후부터 백작이 자리 잡고 있으며 백작 중에서 위세가 높은 가문일수록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가장 풍경이 좋은 안쪽은 후작이나 공작가의 거물이 머무는 성이 있다. 솔라리스에는 후작의 칭호를 받는 사람은 단 두 명뿐이고 공작은 반사르가가 유일하다.
반사르 공작은 윌리엄 대공의 아버지였던 사이렉과 동년배로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된 인물이다. 이들은 성황 잉그람과 함께 검을 나누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저 건물이?"
"아마도 반사르 성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 그럼 놈은 반사르 가에 볼일이 있는 모양이군."
테츠는 성안 쪽으로 숨어들어 성벽을 타고 재빨리 위로 올라 놈의 위치를 추적했다. 반사르 가는 대대로 윌리엄 대공과 함께 솔라리스 최고의 귀족으로 그 위명이 윌리엄 대공에 미칠 정도로 대대로 칭송받는 가문이다.
하지만 반사르의 아들 즉 윌리엄 대공의 친구였던 케이사르가 병사하는 바람에 솔라리스의 정계에서 사라진 비운의 가문이기도 하다.
케이사르 또한 아들을 두지 못하고 말년에 얻은 하나뿐인 딸이 반사르 가의 마지막 핏줄이다. 그녀의 이름은 엘로이 반사르
지금 반사르 가문의 유일한 혈육이며 상속자다. 리차드 이왕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엘로이 공녀에게 청혼한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태였다.
하지만 라치드 이왕자는 죽어 버렸고 그와 동시에 반사르 가문의 엘로이 또한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차 멀어졌다.
놈은 유연한 몸놀림으로 성내 건물을 제집인 마냥 움직이며 한 건물의 창문에 바짝 붙었다. 테츠와 마테니는 그놈을 두 눈으로 정확히 보고 있었다.
그때 창문이 열리며 한 인물이 모습을 보였다. 창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빛으로 인해 창문을 연 사람이 여성인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테니는 가슴속에 작은 단검을 꺼냈다. 창문 밖의 인물이 행동하면 즉시 단검을 날릴 준비를 했다. 테츠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것은 창문을 연 사람과 창문에 매달린 사람의 시선이 마주 보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창문에 매달린 인물은 거꾸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더니 유연하게 창문틀 위로 올라앉았다. 그러자 창문을 연 여인이 그런 그를 끌어 앉았다.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반가움의 포옹이었다.
"제길 그냥 야밤의 사랑놀이에 우리가 끌린 건가?"
테츠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하자 마테니가 고개를 꺄웃했다.
"이거 뭔가 이상하네요. 우리가 추적한 인물 또한 여성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마법에 따르면 그녀의 몸에 걸린 일종의 마법이 제시어스 왕자와 같은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러니까, 야생왕이 말해 주었습니다. 왕가의 자손들은 위험에 노출될 경우가 많고 또 정치적인 문제로 인한 납치 사건도 종종 발생하죠. 그래서 추적이 쉽게 특수한 마법을 걸어 둡니다. 팬텀 가드너의 피에 반응하는 마법이라 다른 이는 펼칠 수도 없고 마법을 안다 해도 피에 반응하기에 팬텀 가드너의 피가 아니면 반응하지 않죠. 엘드리치 성에 있을 때 인커젼이 그 마법을 추적해 왔다는 것을 알고 제시어스 왕자의 마법을 제거할 때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반응은 제시어스 왕자에 걸어 두었던 마법의 흔적과 완전히 같습니다."
"가만 우리가 한 사람을 아예 잊고 있었구나."
"네, 아그니스 공주죠."
"그럼 방금 우리가 추적한 인물이 아그니스 공주란 말이냐?"
"앞뒤 정황상 확실합니다. 팬텀 가드너의 핏줄을 가진 자는 세 명 남았습니다. 윌리엄 대공, 제시어스 왕자, 그리고 아그니스 공주. 무엇보다 피의 마법에 거짓이 있을 순 없죠. 어찌 조금 익숙한 냄새가 난다 했더니···."
"창문을 연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은 잘 아는 사이군. 아그니스 공주와 저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사르 가의 공녀겠지. 엘로이구나."
마테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몰레이크 후작이 가장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존재들이죠."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나 들어보자."
테츠와 마테니는 천마잠행으로 창문 가까이 다가갔다. 창문은 이미 닫혀 있었고 커튼까지 쳐진 상태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내공을 돋우어 안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미행은 없었고?"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니, 그럴 일은 없어."
아그니스 공주는 윌리엄 대공이 말년에 얻은 공주다. 그녀는 윌리엄 대공의 무릎 위에서 어리광을 피우며 키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윌리엄 대공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란 공주며 두 왕자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한 왕궁에서 가장 소중한 꽃이었다.
"시몰레이크 후작이 슬슬 마각을 드러나고 있어. 놈은 이빨을 감추고 있지만 언젠가는 악마의 뿔을 과시하는 날이 오겠지."
"윌리엄 아저씨의 차도는 어찌 되었어?"
"후, 내가 무슨 수를 써도 아버지에게 어떤 짓을 저질러 놓았는지 알 수가 없어 스승님만 오실 수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 될 텐데···."
"그러게 태성왕님이 오시면 그깟 시몰레이크 후작 정도야 한주먹 거리도 되지 않을 텐데 말이야."
"후, 스승님은 성황의 사람이니 이곳에 머무를 수가 없어."
"부탁한 것은 준비해 뒀어. 이것으로 윌리엄 대공께서 깨어났으면 좋겠어."
"어떤 희망의 끈이라도 놓지 않겠어. 아버님만 정신을 차리면 시몰레이크 후작이 한 짓을 모두 밝혀 버리겠어. 두 오빠의 영혼이 아직 떠나지 않고 내 꿈에 나타나."
"조카의 행방은 찾았어? 시몰레이크 후작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다고 하던데···."
"손에 넣은 정보는 있지만, 지금은 아버지 일이 너무 급해.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면 모든 것이 해결돼. 놈이 어떤 마법을 걸어 놓았는지만 알면 되는데 쉽지 않네."
"이건 우리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비법이야. 하지만 나도 알 수 없으니. 꼭 성공하길 바랄게."
"고마워, 우리 팬텀 가드너 가는 큰 위기에 직면해 있어. 하늘이 도와야 이 난관을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창문이 열리고 예의 인형이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세련되고 우아한 동작으로 바닥으로 착지했다. 보통 사람이 뛰어 내릴 높이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깃털처럼 가뿐하게 움직였다. 위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 그녀는 재빨리 자리를 떴다.
"마테니 너도 느꼈나?"
"네,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제 감은 왔습니다."
"재미있어지는데 여기서 헤어질까? 아니면 같이 움직일까?"
"말씀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마스터가 선택한 방향으로 움직일 겁니다. 마교 밖이라면 저는 마스터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좋아, 그럼 그놈이 아그니스를 선택할지 엘로이를 선택할지 모르지만 느낌으로 간다."
테츠는 신형을 날려 아그니스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좀 전과는 달리 테츠는 묘하게 그녀의 오른쪽에 위치를 잡고 움직였다. 반사르 귀족 지역은 굉장한 노력을 들여 주변 자연경관을 크게 해치지 않는 안의 범위에서 잘 조경된 나무와 수풀이 멋진 경관을 만들어 냈다.
복잡한 시내의 인공미와는 달리 자연미가 빼어난 곳이고 수많은 조경사가 연일 달라붙어 가꾸어 온 숲과 나무는 인공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모습을 보인다. 즉 작은 인공 숲이 반사르 지역에 여러 곳 산재해 있다.
아그니스 공주는 그런 수풀을 잽싸게 통과하여 달리기 시작하는데 그 동작이 특이했다. 허리를 거의 구십 도로 납작하게 숙이고 지면에 착 달라붙은 형태로 움직인다. 공기 저항을 최소한 움직임이다.
"놈이다."
오른편에서 아그니스 공주를 따라 움직이던 테츠의 눈빛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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