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펜을 훈련 시켜라.
시몰레이크 후작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괴로운 신음을 내질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해가던 중에 최대의 난관에 봉착했다.
자신의 뒤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최고의 살림꾼이 하룻밤 사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는 한쪽 팔이 잘린 것처럼 제정신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밤의 자매단 본부 지하에 감금해 두었던 제시어스 왕자의 생사다. 지금 노역 꾼을 동원해 무너진 갱도를 뚫고 있으나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이다.
도대체 하룻밤 새 무엇이 어떻게 그 갱도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말인가? 거대한 마법을 썼다면 분명히 표시가 날 터인데 프로이시어가 직접 내려가 조사해 봐도 마법을 사용한 흔적은 없었다.
"후작님 긍정적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계획이야 노선을 수정하면 그뿐이고 악재가 아니라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하늘이 나를 도와준다면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하룻밤 사이 밤의 자매단을 몰살 시킨 자들이다."
"페리신과 그의 부하들은 그곳에 있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의 마지막 보고는 엠버스피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을 볼 때 페리신은 아직 건재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페리신 그놈은 무엇을 하러 텅 빈 엠버스피어를 간 거냐?"
"페리신은 이리혼 숲에서 동료를 죽인 자를 추적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그래? 그런데 왜 텅 빈 엠버스피어로 갔지? 롱홀드는 이미 오크의 소굴이 아닌가? 거기에 무엇이 있다고?"
"롱홀드 전체가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 세 개의 성이 무사합니다. 롱홀드 서쪽의 페복의 성은 오크의 침략을 받지 않았고 요른성은 오크의 부대와 크게 싸워 성을 수성했고 그 병력이 이동하여 엘드리치까지 탈환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래? 엘드리치를 탈환한 자들은 어디 측근인가? 이왕자인가 일왕자인가?"
"그것이 윌리엄 대공의 서신을 파악하다 안 사실인데 그들은 마교라는 신흥 세력입니다."
"마교? 뭐 그런 단체가 있어? 용병 단체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윌리엄 대공이 그들에게 동원령을 내린 사실도 파악했습니다. 그들이 보낸 서신도 확인했는데 그들은 오크의 숲으로 진격해 오크의 꼬리 부분부터 역으로 치고 들어오겠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일개 용병 단체는 그리 신경 쓰이지 않는다만 가만 마교라? 그래 생각이 났다. 왕자의 전쟁 중에 리차드 왕자를 도와 로렌 왕자를 물리친 일등 공신이 마교라고 하지 않았나? 그때 유명을 떨친 놈이 두 명 있는데 철가면과 카오스 마법사였던가?"
"그러고 보니 저도 생각이 납니다. 그 두 사람이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여 리차드 왕자의 망자군을 크게 격파했습죠."
"뭔가 냄새가 나는걸? 그들이 오크의 꼬리를 자르러 오크의 숲으로 향했다고? 페리신은 더 연락이 없느냐?"
"그것이 항시 연락해 오는 페리신인데 엠버스피어 이후로 그놈도 완전 연락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기분을 주체할 수 없구나. 엘드리치로 사람을 보내 그곳 상황을 알아보거라. 그리고 로만 울프가의 병력을 아칸 시티로 들일 수 있는 수단을 취해야 한다. 세이렌을 강하게 협박해라. 그의 아들 목숨이 소중하다면 뒤로 물러서라고 협박해."
시몰레이크는 불안한 느낌을 지을 수 없었다. 뭔가 알 수 없는 검은 힘이 자신을 옥죄어 오는 기분이었다.
***
테츠는 며칠 동안 같은 일을 반복했다. 세렌을 다그치고 오크의 꼬리를 계속 끊어 내는 일이다. 내공이란 하루아침에 뚝딱 세워지지 않고 무공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천살궁의 귀재라 할지라도 난생처음 대하는 검법과 내공의 운용을 몇 달 만에 완성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나마 테츠가 옆에서 일일이 지적하고 수정해 주지 않았다면 더욱 진전이 느렸을 것이다. 하물며 천하에 둘도 없는 살인 기계인 천살궁마저 이럴진대 다른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겨우 검을 잡을 수 있게 되었구나."
"그녀의 솜씨가 느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마스터께서 그녀에게 공을 들이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마테니도 솔직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검법은 이제 완벽한 수준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물론 내공과의 완벽한 조화는 아직 어렵지만 검법 하나만으로는 테드버드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하게 펼쳐 냈다.
"마테니 너는 오크를 최대한 많이 모아 오너라. 나와 세렌이 오크를 붙잡고 있을 테니."
"알겠습니다. 마스터."
테츠는 세렌에게로 날아내렸다.
"내 한가지 시험을 할 참이니 이제부터 오크를 죽이지 말고 방어만 하여라. 참기 힘들겠지만, 방어 또한 훈련이 될 것이니 공격을 차단하는 방법을 수련한다고 생각하고 임해라."
"알겠습니다."
잠깐 사이 수백 마리의 오크 무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마테니가 오크를 모아 오니 한 시간도 안 되어 오륙 백에 달하는 오크 무리가 모였다.
"마테니 너는 가서 아르펜을 데려오너라."
테츠는 뒤로 물러나 아르펜을 뒤에 두고 세렌에게 말했다.
"내 쪽으로 오크를 몰고 와라."
세렌이 뒷걸음치며 오크 무리를 이끌었다.
"됐다. 나를 넘고 내 뒤로 빠져라."
세렌이 천마행공으로 날아오르자 그 뒤를 오크들이 고함을 치며 맹렬하게 돌진해 왔다.
마테니는 그런 모습을 보고 조마조마했다.
테츠는 흡성대법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려 가장 선두의 오크를 붙잡았다. 그러자 자석처럼 오크들이 한곳으로 척척 달라붙기 시작했다.
무식한 오크들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달라붙기 시작했다. 흡성대법으로 빨아 드린 엄청난 오크의 진기는 테츠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테츠는 아르펜의 왼손을 움켜잡고 쏟아져 들어오는 오크의 진기를 아낌없이 아르펜의 몸으로 뿜어냈다.
"캭!"
무언가 엄청난 힘이 자신의 몸으로 흘러들어오자 아르펜은 기겁하고 비명을 질렀고 그 순간 이마 한가운데서 황금색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며 제 삼의 눈이 개안 되었다.
서서히 눈을 뜬 이마의 세 번째 눈으로 오크의 진원진기가 무섭게 빨려 들어갔다.
"마테니와 세렌은 새는 놈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감시해라. 그리고 절대 나와 아르펜 가까이 오지 마라! 우리에게 붙들리면 너희도 끝장이다."
아르펜의 세 번째 눈은 무시무시한 흡입력으로 오크의 진원진기를 빨아 다녔다. 그러니 흡성대법의 효율이 엄청나게 상승했다. 마치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힘으로 오크의 진기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수백의 오크가 뼈에 가죽만 남긴 채로 미라처럼 빠짝 말라 비틀어졌다. 몸에 수분 한 방울까지 모조리 쥐어짜진 모습이다.
"아르펜, 아르펜 내 말 들리니? 집중해 내 말 들리면 오른손은 올려봐."
아르펜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떻게 몸을 통제할 수도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고 멍한 기분이었다.
그때 테츠의 고함을 듣고 서서히 정신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겁을 먹지 말고 네게 들어오는 힘을 제어해야 해. 너는 할 수 있어. 뭔가 빨아 당기는 느낌이 느껴지지 그걸 제어하는 거야. 자 천천히 힘을 느끼고 제어해 봐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오크들은 계속 붙었다. 이놈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으니 물 밀려오듯이 계속 밀려 왔다.
"너도 세렌처럼 강해지고 싶지? 뭐라도 배우고 싶다고 했잖아. 너에게도 기회를 준거야. 그러니 집중해. 힘을 느끼고 제어해야 해 알겠지?"
아르펜은 입술을 깨물며 집중했다. 요즘 세렌이 계속 강해지는 것을 보고 엄청난 자극을 받은 그녀였다. 정말 친한 친구이기에 친구는 계속 강해지는데 자신은 업혀 다녀야 하는 처지다.
그녀로서는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극은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어 그녀를 괴롭혔다. 그리고 자신은 내공을 익힐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세렌은 갈수록 강해지고 자신은 뒤처지고 그런데 교주님은 아무런 할 일도 없는 자신을 며칠째 이곳에 세워 놓고만 있었다.
굳이 자신을 이곳에 데려올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꼭 세렌이 나갈 때면 자신을 데리고 다녔고 또한 세렌 보고 자신을 업고 뛰라고 명령했다.
자기 자신이 정말 심하게 싫었다. 교주님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안겨 주는지 몰랐다. 세렌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몸이라 무공을 배울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테츠의 생각이었다. 그녀의 통제할 수 없는 힘을 제어할 수 있도록 그녀를 노골적으로 자극했다.
세렌이 강해지는 것을 매일 보여 줌으로써 스스로 강해지고 싶은 심정 세렌을 따라가고 싶다는 자격지심을 이용해 그녀의 의지를 담금질하고 있었던 거였다.
어느 정도 그녀가 달아오르자 오늘 처음으로 세 번째 눈을 제어하는 방법을 끌어내려 하고 있다.
"세렌을 도와주고 싶지 않으냐? 세렌은 저렇게 강해가는데 너 혼자 뒤쳐저 있을 거냐? 집중해."
고함을 치는 테츠도 미칠 지경이었다. 흡성대법의 흡취력이 아르펜의 눈 때문에 수십 배 증폭된 상태였고 오른손을 통해 오크의 진원진기가 폭포에서 물 떨어지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혈관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 모습에 걱정이 된 마테니가 접근하려 하자 테츠가 고함을 쳤다.
"물러나라 너도 저 꼴이 나고 싶으냐?"
테츠의 손에 찰싹 달라붙은 오크들은 완전히 뼈와 가죽만 남은 모습이었다.
"여기 붙으면 지금 나도 멈추지 못한다. 너도 이 꼴이 날 거니 삼십 보 이내로 접근하지 마라. 이걸 멈출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아르펜뿐이다."
세렌은 아프렌의 뒤에서 고함을 질렀다.
"아르펜 힘내. 나는 너를 믿어 너는 분명히 이겨낼 거고 나와의 약속을 이어 갈 거야 그렇지?"
그 소리에 아르펜의 눈이 확 떠졌다. 심하게 얼굴을 찡그리며 이마의 눈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확실히 흡입하는 흐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겨우 한숨을 돌린 테츠가 말했다.
"좋아, 잘하고 있어. 흐름이 줄어들었다. 천천히 흐름을 완전히 끊어 보아라."
아르펜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그리고 이마에서 뿜어져 나오던 황금색 빛이 서서히 줄어들더니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세 번째 눈도 감겼다.
그러자 흡성대법의 흐름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무지막지하게 빨아 당기는 흐름이 완전히 멈췄다.
"자, 서서히 눈을 뜨고 다시 힘을 내어 보자."
아르펜이 서서히 눈을 뜨자 세 번째 눈에서 황금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면서 흡성대법의 흐름도 확실히 올라갔다.
아르펜이 완전히 눈을 활짝 개안하자 무지막지한 흡인력이 다시 가동됐다.
"욱"
테츠의 입에서도 묵직한 비명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흡입력이었다.
마태는 주먹을 불끈 쥐고 발을 동동 굴렀다.
"자 아르펜 이제 불어내는 거다. 흡입하는 느낌의 반대로 당기지 말고 내쉬는 숨에 맞춰 뿜어내는 거야. 자 천천히."
갑자기 테츠의 왼손을 통해 엄청난 힘이 밀려 들어왔다. 오른손에서는 흡성대법이 오크의 진원진기를 빨아 당기고 있었고 아르펜의 오른손을 잡은 왼손에서 엄청난 진기가 일순간에 밀어닥쳤다.
"우억!"
테츠는 비명을 지르며 아르펜의 잡고 있던 왼손을 빼버렸다. 양쪽에서 진기가 뿜어져 들어와 테츠의 몸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테츠는 검붉은 피를 토하며 즉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악!"
테츠가 손을 떼자 지금까지 테츠가 힘을 제어해 주었는데 제어가 되지 않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테츠 말대로 흡입하는 것이 아닌 힘을 뿜어내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세 번째 눈에서 엄청난 힘이 일순간에 쏟아져 나왔다. 그녀의 눈에서 쏟아져 나온 황금색 빛줄기는 이미 시체가 되어 있는 수백 구의 오크를 뚫고 쏘아져 나갔다.
"으헉!"
떨어져 있던 마테니 마저 눈이 부셔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녀의 이마에서 뿜어진 황금빛 빛은 주변 모든 사물을 완전히 녹여 버렸다. 수백의 오크 시체가 순간 증발해 버렸고 바닥의 자갈과 돌은 용암처럼 녹아 내리며 불을 뿜었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그녀의 세 번째 눈은 거짓말 같이 사라졌고 아르펜은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세렌과 마테니가 고함을 치며 달려왔다.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