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공간

내일은 대마법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판작
작품등록일 :
2023.12.03 20:39
최근연재일 :
2024.01.06 23:17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442,147
추천수 :
15,180
글자수 :
170,184

작성
23.12.05 22:25
조회
22,586
추천
567
글자
12쪽

2. 다른 시야

DUMMY

“이게 그 목록입니다.”


잘 아는 얼굴이 보였다. 내가 촉매를 구매하기 위해 자주 들렀던 상점의 주인이다.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주변의 상점 중에서는 가장 싸게 물건을 팔던 사람이었다.


“흠, 애매하군. 이런 것으로 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 말고 다른 것은 사간 것이 없고?”


목록을 받아서 확인하는 사람 역시 아는 얼굴이다. 고위마법사 크록커스의 수제자 라이비츠다.

제자라곤 하지만 나이도 꽤 있고 고위마법사의 수제자답게 정식마법사의 자리에 올라있는 실력자이기도 하다.


고위마법사 크록커스는 스승님의 유산에 대해 유독 큰 관심을 보이던 마법사였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환상이 아니라 진짜라면 역시 아직도 감시당하고 있는 것이 맞았다. 그러리라고 예상하고 있기도 했다.


“다른 상점과도 연락을 해봤는데 녀석이 거래하는 것은 우리 상점이 유일합니다.”

“그렇군.”


물론 나도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은 재료들도 간간이 섞어서 구매했었다.


“그런데 녀석이 뭔가 팔 것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어떡할깝쇼?”

“구매하도록 하게.”

“예산은···.”

“100골드 이내에서 처리하도록 하게 어차피 녀석에게 그리 비싼 물건이 남아있진 않을게야.”


100골드는커녕 3골드라도 받으면 잘 받을만한 물건만이 있을 뿐이지만, 정식마법사답게 통이 컸다.


정식마법사쯤 된다면 돈을 버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다만 마법 연구를 위해선 그만큼 많이 쓰기 때문에 마법사들은 돈에 민감하면서도 금전 감각은 좀 둔한 편이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상인의 대답과 함께 시야가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상자를 잠시 내려놓고 생각에 빠졌다. 이 현상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미쳐서 헛것을 본 것이 아니라면 방금 그것은 본 이유는 단 하나다. 어제 눈을 통해 내 몸 안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그 물질이다.


과연 대마법사 최후의 연구라고 해야 할까? 어떤 원리로 이런 것이 가능한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본 것이 사실이라면 아주 좋은 단서를 얻었다. 다시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가자 때맞춰서 옆방의 문이 열리면 사람이 나왔다.


“어이! 링크스 오랜만이야.”


옆방의 주인인 제츠이다. 마탑에서 몇 안 되는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인물 중 하나다. 내 또래이기도 하고 아주 오랫동안 옆방에서 살고 있는 이웃이기도 하다.


물론 나에게 친절하다는 것은 나를 감시하는 끄나풀일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오랜만은 무슨”


내가 실험하기 직전에도 인사를 하고 들어갔었다. 어찌나 그렇게 내가 방으로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우연히 마주치는지 마법이 통로에 걸려있는 게 아닌지 검사를 몇 번 해봤을 정도다. 놀랍게도 마법은 감지되지 않았었다. 


“며칠 만에 보는 거잖아. 어디 갔었어?”


녀석이 날짜를 헷갈렸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내가 정신을 잃은 채로 며칠이 지났다는 뜻이었다.


“그런가? 그냥 생각이 많아서 방에 틀어박혀 있었지.”


적당히 얼버무리고 길을 가려던 찰나 제츠가 나를 붙잡았다. 시선은 내가 들고 있는 상자에 박혀있었다.


“그건 뭐야?”

“뭐기는 생활비가 부족해서 뭐라도 가져다 팔려고 그러지.”

“아리우스님의 유품인가?”

“그것도 좀 섞여 있고”


순간 제츠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리우스님이 쓰시던 물건이라면 나도 관심이 있어. 상점까지 들고 가도 얼마 쳐주지도 않을 텐데. 나에게 넘기는 것은 어때?”

“돈은 있고?”


물론 돈은 있을 것이다. 제츠는 꽤 유복한 집안의 자식이니까. 그렇다고 첩자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제츠는 다른 고위마법사인 아란텔과 연관이 있다.


“물건을 보지도 않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10골드 어때?”


생각보다 꽤 큰 금액이다. 그 장면을 보기 전이라면 바로 제츠에게 물건을 넘겼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나에겐 이 물건을 100골드 내에서 사줄 만한 거래처가 기다리고 있다.


“됐다. 그냥 상점에 팔련다.”

“적어? 15골드는?”


나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제츠가 몇걸음 정도 따라오려다가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마탑을 나와 상점 거리를 가로질러 늘 거래하던 그 상점에 도착했다. 여태까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지만, 간판을 보니 로델의 잡화상점이라는 이름이었다. 아마도 상인의 이름이 로델이었던 모양이다.


말은 잡화상점이지만 파는 물건들은 대부분 마법과 관련된 것들이다. 마탑 앞의 상점가니까 당연할지도 모른다. 상점 안으로 들어서자 마법 상점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이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좋아하는 편이라 신경 쓰지 않았다.


“링크스 어서 오게.”


내 이름까지 알고 있는 상인은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다른 때보다 더 반갑기는 할 것이다.


“잘 지내셨어요.”


나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10살의 꼬맹이가 홀로 살아남으려면 누구에게나 친절해야만 했다. 상대가 나를 싫어하거나 말거나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살아남는 데 유리하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나는 늘 잘 지내지. 그건 뭔가 전에 말했던 팔려는 물건인가?”

“예,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상자를 열어 물건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상인은 물건을 하나하나 감정하듯이 보았지만, 그래봐야 대단한 물건은 아니다.


몇 개 남은 스승님이 사용했던 실험 도구들은 제법 고급품이지만, 그렇다고 고가의 물건들은 아니다.


“이것들은 스승님이 마지막 실험에서 사용하셨던 물건이고요. 나머지는 제가 얼마 전까지 사용했던 겁니다.”

“그런가? 그런데 물건들이 영···.”


매입하는 물건값을 깎으려고 하는 것은 상인의 기본이지만, 이것들은 진짜로 그다지 값어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단순하게 물건의 가치로만 판단할 게 아닙니다. 제가 다른 것들은 다 처분하면서도 여태까지 가지고 있던 귀한 물건이에요. 마법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시려나···.”

“아니 내가 마법 물품들을 거래한 것이 몇 년인데 그런 가치를 모르겠나. 당연히 귀한 물건인 줄은 알지. 그래도 많이 쳐줄 수는 없겠다는 말이네.”

“그래서 얼마까지 생각하시는데요?”


상인은 고심하는 척하다가 손가락 다섯개를 펼쳤다.


“5골드 쳐줌세”


나는 말없이 물건들을 다시 상자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인이 재빨리 내 손목을 붙잡았다.


“왜 이러세요?”

“자네야말로 왜 이러나?”

“조금 전에 옆방의 제츠가 20골드를 불렀었는데 여기로 온 거거든요. 차라리 제츠에게 파는 것이 낫겠어요. 아시죠? 아란텔님 밑에 있는 제츠”


상인의 눈동자가 재빨리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상인답게 계산은 빨랐다.


“23골드 주지. 어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어림도 없다. 당신이 쓸 수 있는 돈이 100골드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


“제츠도 이 물건들의 가치를 잘 몰라서 그래요. 마법사가 운영하는 상점에 간다면 이 물건의 가치를 알아줄 겁니다.”


나는 물건을 담는 손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얼마를 원하나?”

“100골드 어떠세요?”


100골드를 그대로 부른다면 상인이 승낙할 가능성이 없다. 상인도 남는 것이 있어야 할 테니까.


“도둑놈이 따로 없군. 50골드 어떤가?”

“갑자기 반값이요? 전 갑니다.”

“좋아 60골드”

“근처에 마법사가 운영하는 상점이 어디였더라... .”

“마지막 제안일세 80골드로 하지”


자신의 몫을 20골드로 정한 모양이다. 

조금 망설였다. 여기서 한 번 더 배짱을 튕겨볼까? 아니면 이 금액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런데 상인의 눈을 보니 협상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았다.


“좋습니다.”


원래 3골드 정도 받으면 잘 받을 물건을 80골드에 넘겼으니 나도 충분히 이득을 챙긴 셈이다.


두둑한 골드 주머니를 챙겨서 상점을 나오자 주머니의 무게만큼이나 마음도 든든해졌다. 이 정도라면 고향까지 가는 여비는 충분할 것이다.


꼭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마탑으로 돌아오자 문 앞에서 제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오토스님이 부르신다.”


제츠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 말을 전하고는 안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토스라면 마탑에 거주하는 마법사들에게 임무를 부여하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정식마법사이다.


그런데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다. 수습 마법사에게는 임무를 부여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따로 개인적인 만남을 가진 적도 없었다. 다만 주변의 평가로는 딱히 어떤 파벌에 관여하지 않고 굉장히 냉정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마탑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직책을 가진 마법사인 만큼 나는 곧바로 오토스를 찾아갔다.


오토스는 보통 마법사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마법에 관한 연구를 하며 자신의 실력을 향상하려는 일반적인 마법사와 달리 마탑의 관리직이라고 할까.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수습마법사 링크스입니다.”


오토스에게 먼저 인사를 올리자 오토스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갑자기 혀를 찼다.


“쯧!”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표정만으로는 읽어낼 수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오토스는 바로 설명을 해주었다.


“네 처지를 생각해 여태까지 승급신청을 하지 않아도 묵인하고 있었는데 공식적으로 제보가 들어왔다. 그러니 처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보라고는 하지만 누군가에게서 외압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입문마법사가 된 것은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지? 나름 숨긴다고 숨겼는데 완벽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굳이 입문마법사의 경지가 아니라고 부인하지 않았다.


“임무를 받아야겠군요.”

“그래, 어려운 임무는 아니다.”


오토스는 한장의 서류를 내 앞에 툭 던졌다.

내가 맡을 임무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입문마법사가 맡는 임무는 당연하게도 난도가 높지 않다.


임무의 내용은 마물 토벌을 나가는 정식마법사의 보조였다. 이런 경우는 그저 따라가서 비위만 잘 맞추다 오면 된다.


그런데 차라리 좀 힘들더라도 혼자 하는 임무가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함께하는 정식마법사의 성격에 따라 보조의 난이도가 크게 바뀌기 때문이다.


“윌터스면 그렇게 평판이 나쁘지 않으니 걱정할 것은 없다. 딱히 파벌이 있는 녀석도 아니야. 상대하는 마물도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


내 생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것인지 오토스가 말을 덧붙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제법 나를 생각해서 임무를 배정해준 느낌이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아리우스에게 진 빚을 이제야 조금 갚는다고 생각해라.”


말을 마친 오토스는 어서 가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고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오토스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가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돌아가신 스승님의 덕을 볼 때가 있다.


임무는 바로 이틀 뒤에 출발이었다. 곧바로 마탑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임무를 받아버리는 바람에 계획이 어긋났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도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내 실력이 입문마법사라고 하여도 마탑의 정식 인증이 없다면 밖에서는 그저 수습 마법사일 뿐이다.


마탑을 떠나 밖에서 일한다고 해도 수습마법사와 입문마법사의 대우 차이는 확실하다. 고향에 돌아가서 일을 구할 때도 확실히 편할 것이다.


방 앞의 복도를 지나갈 때 귀신같이 옆방의 문이 조용히 열리며 제츠가 고개를 내밀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나 아니다.”


의문의 제보자에 대해 말하는 모양이다.

유력한 용의자가 아니라고 해봐야 그 말을 믿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에게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기에 피식 웃어주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한번 다른 장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일은 대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근황 보고 +12 24.03.17 510 0 -
공지 죄송한 말씀 올립니다. +39 24.01.08 7,481 0 -
30 30. 보물찾기 +21 24.01.06 8,846 441 13쪽
29 29. 현명한 방법 +16 24.01.05 9,414 418 13쪽
28 28. 레나드 산맥으로 가는 길 +10 24.01.04 10,250 409 12쪽
27 27. 붕어가 되기로 했다. +15 24.01.03 11,263 444 13쪽
26 26. 마녀의 큰 그림 +15 24.01.02 12,160 477 13쪽
25 25. 모두에게 좋은 결과 +27 24.01.02 12,733 511 13쪽
24 24. 세눈마귀 +18 23.12.30 13,400 502 12쪽
23 23. 선택 +19 23.12.29 13,439 524 12쪽
22 22. 흙으로 돌아가다. +17 23.12.28 13,652 543 11쪽
21 21. 마녀의 비약 +20 23.12.27 13,485 575 12쪽
20 20. 마녀의 숲(2) +22 23.12.26 13,739 560 13쪽
19 19. 마녀의 숲 +11 23.12.25 14,107 532 13쪽
18 18. 숨은 강자 +21 23.12.23 14,168 581 13쪽
17 17. 평화의 끝 +11 23.12.22 13,939 519 13쪽
16 16. 마녀를 만나다. +9 23.12.21 13,914 525 13쪽
15 15. 최선의 선택 +6 23.12.20 13,942 466 12쪽
14 14. 천재 +9 23.12.19 14,024 444 13쪽
13 13. 마녀의 집 +11 23.12.18 14,083 469 13쪽
12 12. 보이지 않는 집 +13 23.12.16 14,234 501 12쪽
11 11. 불 원숭이 +5 23.12.15 14,676 498 13쪽
10 10. 작은 호의 +6 23.12.14 14,813 481 12쪽
9 9. 방향을 바꾸다. +9 23.12.13 15,206 491 12쪽
8 8. 강행군 +12 23.12.12 15,612 451 12쪽
7 7. 의뢰 +10 23.12.11 15,883 494 13쪽
6 6. 마탑을 나서다. +8 23.12.09 16,472 521 12쪽
5 5. 함정의 정체 +9 23.12.08 16,793 526 13쪽
4 4. 의외의 소득 +8 23.12.07 17,477 534 13쪽
3 3. 첫 임무 +15 23.12.06 21,042 603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