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공간

내일은 대마법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판작
작품등록일 :
2023.12.03 20:39
최근연재일 :
2024.01.06 23:17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442,063
추천수 :
15,180
글자수 :
170,184

작성
23.12.29 23:49
조회
13,436
추천
524
글자
12쪽

23. 선택

DUMMY

예전엔 물어보지 못한 것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친해진 지금이라면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흠···.”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팔짱을 끼고 있는 이멜다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불편하시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아니, 아리우스와 내가 싸운 것인지 아닌지 헷갈려서 그렇단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멜다가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이번엔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너무 오래 살아서 기억력에 문제가 생기는 건가?


“너 건방진 생각을 하는구나?”


이멜다의 정말 무서운 점은 마법도 아닌데 이렇게 사람 속을 읽는다는 점이다. 표정 관리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죄송합니다.”

“흥!”


다행히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는 것 같다.


“네 스승 아리우스는 대단한 마법사였다. 내가 평생 만나본 마법사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거야.”


스승님이 대단한 마법사였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오히려 그런 스승님과 동급의 마법사가 둘이나 더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런 경지에 있는 마법사치고는 성격도 좋은 편이었지.”


그것도 맞다. 스승님은 나에게 매우 온화하고 친절했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비교적 친절한 편이었다. 물론 마법사인 만큼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도 마탑의 다른 마법사들에 비하면 천사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렇다.


“아리우스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지. 나도 아리우스도 서로 당황해서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정신을 차렸을 땐 본능적으로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었지.”


서로 마법을 날리는 것만이 마법사의 싸움이 아니다. 그 전에 주위의 마나를 가지고 주도권 싸움을 하기도 한다. 낮은 경지의 마법사에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고 고위 마법사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이야기다.


“꽤 오래 주도권 싸움을 했다. 서로 공격하거나 도망칠 기회를 잡지 못했지.”


이멜다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리우스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만하지 않겠냐고 말이야. 나도 굳이 싸울 생각은 없었지.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싸워서 이득 볼 것이 전혀 없는 상대였으니까.”


결국 직접 맞붙어 싸운 것은 아니지만 주도권 싸움에서 비겼다는 말이 되겠다.


“그래서 힘을 거두고 대화를 했다. 마법사치고는 꽤 말이 잘 통하는 상대였어.”


의기투합한 스승님과 이멜다의 조합은 상상이 잘되지 않지만, 서로 정점에 오른 마법사들이라면 통하는 게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게 끝이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스승님의 이야기를 해주셔서”


같이 지낸 기간으로만 따지면 스승님보다 이멜다와 같이 지낸 기간이 더 길고 마법도 이멜다가 가르쳐준 것이 더 많다. 어떨 때는 이멜다가 더 스승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쉬었으면 이제 일을 하자꾸나.”

“무슨 일 말입니까?”

“챙길 건 챙겨야지”


이멜다가 오두막들을 가리켰다.


그때부터 난 고강도의 노동을 시작해야만 했다. 마녀의 솥에 있던 그 정체불명의 비약을 폐기하고 쓸모있는 물건을 챙겼다. 그런데 그 양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야니스도 100년이 넘게 살아온 마녀였다. 희귀한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면 내가 들어가 보지 못한 오두막 중의 하나는 창고였는데 지하까지 포함해서 거의 집 한 채 수준의 재료와 물건들이 나왔다. 그것을 열심히 이멜다의 비밀 창고로 옮겼다.


고맙게도 이멜다도 마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바깥에 쓰러져있던 마녀 중에 살아남은 이들이 꽤 있었는데 그사이에 이멜다가 그것을 정리해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멜다와 함께 지하감옥으로 내려갔다.


처음 야니스와 함께 내려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재료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구석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어때?”

“뭘 말씀입니까?”

“저 사람들 상태 말이야.”

“좋지 않아 보이긴 하네요.”


말 그대로였다. 저 사람들을 여기서 풀어준다고 한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물론 그렇게만 한다고 해도 나를 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죽일까?”


그건 그것대로 마음에 걸리는 일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 거부감은 없지만, 죄 없는 사람을 죽여본 적은 없었다.


“회복은 힘들겠지요?”

“여기서 야니스가 뭐라고 하던?”

“믿을 수 없지만, 감정을 뽑아낸다고 하더군요.”

“아니 그건 아마 맞을 거야.”

“그게 가능한 겁니까?”


무형의 감정을 추출해서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 줄 몰랐다.


“결론만 말해주자면 가능하다. 마물 중에서도 사람의 공포심을 먹고 힘을 얻는 것들이 있잖니? 그것과 비슷한 원리지. 야니스의 경우에는 희로애락을 모두 뽑아낸것 같아. 그래서 지금 여기에는 절망만 남은 껍데기만 남은 것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예 불가능 영역 같지 않았다. 물론 나 혼자 그 방법을 연구해서 성공하려면 몇십년은 걸릴지도 모른다. 야니스는 선대까지 포함해서 200년을 연구했다고 했다.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빤히 쳐다보며 다시 묻는 이멜다에게 역시나 이번에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고민했다.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 그래서 나온 결론은 이것이다.


“직접 물어보죠.”


가장 간단한 방법이 정답일 때가 있다. 이멜다의 입에 진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 이번에는 정답을 고른 모양이다.


감옥의 문을 열고 사람들을 모았다. 동물과 마물들은 그냥 숨을 끊었다.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고 고통을 줄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말이 통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한 자리에 모아놓는 데는 성공했다. 이멜다가 턱짓으로 나에게 시작하라는 신호를 줬다.


“여러분을 이곳에 잡아 왔던 마녀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모두가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는 그런 극적인 반응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의 반응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없다. 이 사람들은 정말 가망이 없는 걸까?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몇 사람 뿐이기는 했지만, 눈빛이 달라진 사람들이 있었다. 미세한 반응이었지만 놓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처우를 결정하려고 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우리 사정이 허락하는 한에서 여러분의 요구를 들어드리겠습니다.”


반응이 없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눈빛이 달라졌던 몇 사람을 주시하며 기다렸다.


“저기···.”


들릴 듯 말듯 한 소리였지만, 역시 그중에 한명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20대의 젊은 남자였다.


“말씀하세요.”

“주...죽여...주십시오.”


기대했던 대답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근처의 마을로 데려다 달라는 답이 나올 줄 알았다. 한 사람의 의견만이 아니었다. 눈빛이 달라졌던 몇 사람도 긍정이라도 하듯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도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답이 나왔구나.”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이멜다의 음성이 이렇게 차갑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했다.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게 맞을까? 지금은 단지 절망밖에 남지 않은 감정으로 인해 죽음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너는 신이 아니다. 그리고 아직 경험 없는 꼬마일 뿐이지.”


다른 것은 맞는 말이지만, 꼬마라고 하기엔 나도 이제 스무살이나 되었다. 시골에서 평범하게 살았다면 이미 가정을 꾸렸을 나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모두 밖으로 나가지요.”


적어도 이런 지하감옥에서 눈을 감게 해주고 싶진 않았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배려였다.


사람들을 데리고 지상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왔다고 해서 이곳도 썩 좋은 풍경은 아니다. 야니스와 전투로 인해 엉망이었고 사방에 뿌려진 마녀들의 피가 아직 마르지도 않았다.

애초에 조금 음침한 숲이다. 밝게 내리쬐는 햇빛 같은 것도 없다. 그런데도 절망밖에 남지 않았던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천국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대답했던 사내는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이래도 이 사람들을 여기서 죽여주는 것이 맞을까?


“회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

“가능한 겁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그래, 불가능은 아니지 다만 사람 구실을 하게 만들려면 내가 20년은 투자해야겠지.”


불가능하다는 말보다 더 잔인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고통 없이 그들을 보내주는 것 뿐이었다.


“대신해줄까?”

“아니오. 제가 하겠습니다.”


마나를 걸고 맹세하건대 고통은 없었다. 그리고 시체들은 모두 화장했다. 물건들을 모두 빼낸 마녀들의 오두막도 함께 태워버렸다.


오랜 시간 공포로 군림했던 포그렌 숲의 마녀들은 이제 괴담에서나 나올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타오르는 오두막을 보며 나는 품에 넣어두었던 야니스의 비약을 꺼냈다. 무슨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는 비약이다. 어쩌면 이멜다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 말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먹으렴”

“먹어도 되는 겁니까?”

“몸에 좋을 거야. 그래도 대마녀가 만든 비약이잖니.”


가짜가 아니었나? 그렇다면 뭐가 거짓말이었던 거지?


“야니스는 수명을 50년쯤 늘려준다고 했었는데요.”

“발전했네? 전에 나에게 말할 때는 30년이라고 했었는데.”

“그런데 거짓말 같았습니다.”

“그래서 안 먹으려고?”


먹어야 하나? 그렇다고 그냥 먹기에는 무척이나 불쾌한 기분이 든다.


“여기에 사람이 몇 명이나 들어갔을까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네가 생각하는 숫자보다는 훨씬 클 거야.”


답이 나왔다. 나는 비약이 들은 유리병을 미련 없이 타오르고 있는 오두막을 향해 던져버렸다.


“아깝지 않니? 50년을 더 살 수 있는데.”


반쯤은 조롱이 섞인 그러나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려있는 얼굴이었다.


“아직 20년밖에 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버리고 보니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굳이 내가 먹지 않더라도 귀족이나 황제에게 팔면 엄청난 돈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 돌아가자.”

“예”


이멜다는 직접 비행 마법을 걸어 나를 마차까지 데려가 주었다. 이것만 봐도 이멜다의 기분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도 이멜다에게서 마법 하나를 배웠다.


마차로 돌아가자마자 나를 기다린 것은 열렬한 환호나 수고했다는 말 대신 아이들의 투정이었다.


“아저씨 배고파!”

“늦었잖아요!”


그렇다. 나는 이 일행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요리사를 맡고 있었다.


*

*


포그렌 숲을 지나 전쟁의 여파를 거세게 맞은 국경지대를 벗어나 내륙 깊이 들어갈수록 치안이 조금씩 안정되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전과 같이 하루에도 몇번씩 습격당하는 일은 없어졌다. 오히려 전쟁에 투입되어 죽은 남자가 많아서 그런 것인지 들르는 마을마다 여성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보였고 건장하고 강해 보이는 사내인 레인스는 상당히 큰 인기를 끌었다.


레인스를 보는 동네 과부들이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과부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육체 공격을 펼칠 때마다 레인스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부럽네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가끔 마을 처녀들이 추파를 던지기는 했지만, 레인스의 경우처럼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경우는 없었다.


“놀리는 거냐?”

“아니에요. 굳이 브렌노스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이곳에서 자리를 잡아보는 것은 어때요?”


내가 보기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레인스는 이제 피를 보는 용병 일은 그만두고 싶어 했다. 적당한 여자를 만나 자리를 잡는 것도 좋은 선택이 아닐까?


“아직은 생각 없다.”

“호오, 그럼 나중엔···.”


물론 이것은 놀리는 것이 맞다. 보통 사람은 한 대만 맞아도 죽을 것 같은 레인스의 바위 같은 주먹이 날아왔지만, 투명한 장벽이 그것을 막아냈다.

평범한 상급 용병과 마법사의 투덕거림이 시작되었다. 


그때 마차 안에서 이멜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눈마귀가 온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일은 대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근황 보고 +12 24.03.17 482 0 -
공지 죄송한 말씀 올립니다. +39 24.01.08 7,471 0 -
30 30. 보물찾기 +21 24.01.06 8,829 441 13쪽
29 29. 현명한 방법 +16 24.01.05 9,414 418 13쪽
28 28. 레나드 산맥으로 가는 길 +10 24.01.04 10,250 409 12쪽
27 27. 붕어가 되기로 했다. +15 24.01.03 11,261 444 13쪽
26 26. 마녀의 큰 그림 +15 24.01.02 12,157 477 13쪽
25 25. 모두에게 좋은 결과 +27 24.01.02 12,732 511 13쪽
24 24. 세눈마귀 +18 23.12.30 13,398 502 12쪽
» 23. 선택 +19 23.12.29 13,437 524 12쪽
22 22. 흙으로 돌아가다. +17 23.12.28 13,649 543 11쪽
21 21. 마녀의 비약 +20 23.12.27 13,483 575 12쪽
20 20. 마녀의 숲(2) +22 23.12.26 13,737 560 13쪽
19 19. 마녀의 숲 +11 23.12.25 14,106 532 13쪽
18 18. 숨은 강자 +21 23.12.23 14,167 581 13쪽
17 17. 평화의 끝 +11 23.12.22 13,937 519 13쪽
16 16. 마녀를 만나다. +9 23.12.21 13,912 525 13쪽
15 15. 최선의 선택 +6 23.12.20 13,941 466 12쪽
14 14. 천재 +9 23.12.19 14,022 444 13쪽
13 13. 마녀의 집 +11 23.12.18 14,081 469 13쪽
12 12. 보이지 않는 집 +13 23.12.16 14,232 501 12쪽
11 11. 불 원숭이 +5 23.12.15 14,673 498 13쪽
10 10. 작은 호의 +6 23.12.14 14,810 481 12쪽
9 9. 방향을 바꾸다. +9 23.12.13 15,201 491 12쪽
8 8. 강행군 +12 23.12.12 15,610 451 12쪽
7 7. 의뢰 +10 23.12.11 15,881 494 13쪽
6 6. 마탑을 나서다. +8 23.12.09 16,470 521 12쪽
5 5. 함정의 정체 +9 23.12.08 16,790 526 13쪽
4 4. 의외의 소득 +8 23.12.07 17,474 534 13쪽
3 3. 첫 임무 +15 23.12.06 21,038 603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