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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반사회성 인격장애 염력왕이 지구정복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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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D)
작품등록일 :
2023.02.26 15:32
최근연재일 :
2023.06.10 18:30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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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1
글자수 :
32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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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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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4. 약점이 없는 괴물이라고!

DUMMY

‘뭘 하려고······.’


다리는 점점 세게 흔들렸다.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흔들림은 심해졌다. 처음엔 먼지와 작은 파편이 떨어지다가 흔들림이 커지자 콘크리트 구조물이 부서져 사정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설마······.’


우지지직!


교각이 뜯기는 소리가 다리를 울렸다. 동시에 교각에서 떨어진 다리가 하늘로 천천히 떠올랐다.


“말도 안 돼······.”


유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선호의 능력은 염력이 확실했다. 정확한 운용법은 모르나, 같은 염력 능력자인 유리는 알 수 있었다. 다리를 교각에서 뜯어낸 것도 염력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건 이론적인 가능성일 뿐이다. 개인의 힘으로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불가능해··· 이런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인간이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야······.”


염력에 대한 이해도는 유리보다 떨어질지라도 다리를 뜯어 하늘에 띄운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수준인지 동료들도 잘 알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에 넋을 놓고 있는데 다시 빌딩에서 빛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공중에서 폭발해 사라졌다. 연이어 화살이 날아들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선호는 이젠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보였다.


“봤어? 방금 봤어?”


“뭘? 뭘 말하는 거야?”


유리는 떨리는 손으로 선호를 가리켰다.


“방금··· 공격 막을 때 전혀 움직이지 않았어.”


“그게 뭐? 염력이잖아.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거 아냐?”


“맞아. 염력에 움직임은 중요하지 않아. 그런데 손도 안 움직였어. 꼭 필요한 동작은 아니지만, 큰 힘을 사용할 때는 달라. 걷거나 달릴 때 팔을 흔드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그러고 보니 이전까진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팔을 휘젓거나 손을 들고 있었다. 빛의 화살을 처음 막을 때도 분명 손을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양팔을 살짝 벌리고 있을 뿐 아무런 동작이 없었다.


“훼이크야. 저 괴물은 처음부터 손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였어. 의식만으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그게 뭐? 지금 저 인간 칭찬 하자는 거야?”


“이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감이 안 와? 염력 능력자에게 손은 공격이나 방어 방향을 알려주는 기본적인 약점이라고. 근데 그게 없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뭘 할지 알 수 없다고. 약점이 없는 괴물이라고!”


염력 능력자에게 손 방향은 활의 화살촉이나 총의 총구와 비슷하다. 능력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손을 뻗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 반응이 낳는 최대의 약점이다. 그러나 선호에겐 그조차 없었다. 의식만으로 모든 물리 현상을 일으킬 수 있었다.


공포에 질린 유리의 눈이 심하게 떨렸다. 그 공포는 동료들에게 순식간에 전염됐다. 서연은 동료들을 진정시키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에 기인한 공포는 서연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다리는 강줄기를 따라 하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경찰이나 군의 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됐지? 너희들끼리 갈 수 있지?”


추적이 없음을 확인한 선호는 서서히 다리의 속도를 줄이다 물풀이 가득한 강변에 세웠다.


“그래. 여기부턴 우리끼리 갈게.”


다친 유리와 희진을 부축해 강변으로 뛰어내렸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을 사이도 아니니 선호도 바로 몸을 돌렸다.


“이제 어떡하지? 저 괴물한테 얼굴까지 들켰는데 계속 활동할 수 있을까?”


“그건 차차 생각하자. 일단은 언니들 치료가 먼저야.”


“어렵지 않겠어? 아까 공격으로 이젠 눈에 불을 켜고 우릴 좇을 텐데······.”


“그만두자. 서로를 위험에 빠트리면서까지 할 필욘 없어.”


은예의 말에 놀란 눈이 몰렸다.


“그건 좀 이르지 않아?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무슨 방법?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우릴 죽일 수 있는 미친놈한테 얼굴까지 들키고, 경찰도 본격적으로 우릴 좇을 텐데 무슨 방법!”


조용한 성격의 은예답지 않은 격한 감정에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칠흙같이 어두운 숲길에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소리, 바람에 서로 몸을 부딪치는 풀잎 소리, 짝을 찾아 열심히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만 적막을 애써 채우고 있었다.


“미안··· 전부 내 탓이야. 내가 잘못된 판단을 내려서 이렇게 됐어.”


한참 만에 입을 연 건 지수였다.


“무슨 소리야? 그게 왜 언니 탓이야?”


서연이 지수를 달랬지만, 지수는 고개를 숙인 채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나··· 사실 알고 있었어. 네가 힘들어하는 거. 네가 원한 방식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아. 그러면서도 우겼어. 네가 시작했지만, 결국 우리의 이상과 어울린다며 내가 우긴 거였어.”


“그게 왜 네 잘못이야? 우리가 동조하지 않았으면 네가 우긴다고 했겠어? 결국 전부 공범이야.”


은예도 서연을 거들었다. 그러나 지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발악하듯 소릴 질러댔다.


“아니야! 아니라고! 서연이 뜻을 따르는 척했지만, 전부 내가 원한 거였어. 내가 전부 속인 거야. 서연이 뜻이라고 믿었던 거, 너희 의지도 같다는 것까지 전부 내가 가스라이팅한 거였다고!”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씩씩대는 지수의 거친 숨소리만 침묵 사이로 흘렀다.


“이따위 세상 전부 없어져야 돼. 내가 당한 것처럼 전부 망가뜨릴 거야. 내 속에 남은 거라곤 악밖에 없을 때 너흴 만났어.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어떻게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아픈 애들만 내 주변에 모여들까? 불쾌하면서 기뻤어. 누군한테도 보여줄 수 없던 나만의 상처를 공유할 대상을 만나서 기뻤어.”


다섯 명 모두 같은 입장이다. 끔찍한 기억밖에 없던 유년 시절의 반환점은 보육원이었다. 십수 년 전 그들은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 분노와 악만 남았던 소녀들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의지했다. 끔찍한 세상 속에서 처음으로 한편을 만났다.


“서연이가 9살이었어. 그 쪼만한 애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까? 어떻게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더 놀라운 건 너희들도 똑같은 생각이었다는 거야. 바꾸자. 남들이 바꾸길 기다리기 전에 내 손으로 바꾸자. 더는 세상에 우리처럼 끔찍한 일을 당하는 아이들이 없도록 우리가 전부 바꾸자.”


유년기를 가득 채웠던 분노와 악은 서로를 위하며 조금씩 성장했다. 부모와 어른들에게 받아본 적 없는 사랑을 서로에게 배웠다. 그 속에서 분노는 이해로, 악은 너그러움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지수는 달랐다. 지수의 분노는 사랑으로도 덮이지 않았다.


“근데 너희 바람은 너무 이상적이야. 그렇게는 절대 바뀌지 않아. 그런 시도를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겠어? 절대 실현될 수 없는 불가능이야. 그래서 너흴 속이기로 했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너희 속에 남아있는 악을 끄집어내 분노로 채우려 했어. 처음엔 작은 사고, 경상 정도의 피해자, 다음엔 인터넷 뉴스에 나올 정도의 사고, 중상··· 뉴스에 나올 정도의 사고, 사망··· 테러, 수많은 사상자··· 그렇게 너희를 끌고 왔어. 내가··· 내가 너희를··· 다시 어둠으로 끌고 들어갔어······.”


지수는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쓰러져 오열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주변 소리를 집어삼킬 듯 큰소리로 오열했다. 아무도 말을 걸지 못했다. 아무도 달래지 못했다. 목이 터져라 토하던 울음이 차츰 잦아들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 욕심 때문에 결국 너희를 위험에 빠트렸어. 내가 너흴 속여서 위험에 빠트렸어.”


은예가 슬그머니 지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알고 있었어.”


“응?”


지수는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은예를 올려봤다.


“우리 모두 알고 있었어. 우리 이상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도 알고 있었어. 그걸 네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네 의견을 따른 거야. 결국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목표는 같으니까. 어쩔 수 없는 희생··· 때론 필요하단 걸 알지만 선택할 용기가 나질 않았어. 어쩌면 그 결정을 네가 내려서 우린 안심했는지 몰라. 비겁하게 뒤로 물러나 있던 거지.”


“그게 무슨 말이야?”


말뜻이 이해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처음 듣는 얘기가 믿기지 않았다. 이번엔 서연이 말을 받았다.


“언니의 결정이 우리의 부족한 점을 채웠다고. 언니가 우릴 속인 게 아니라 우리가 언니를 이용한 거라고. 비겁하게 뒤에 숨어서 결정을 언니한테 떠넘겼다고. 멍청아!”


“맞아! 멍청아! 설마 우리가 언니한테 가스라이팅 당했을 거로 생각한 거야? 우릴 그 정도로밖에 안 본 거야?”


유리가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희진도 바로 말을 이었다.


“그거 모르지? 나도 약간 언니 과야. 내가 괜히 언니 뜻을 잘 따랐다고 생각해? 우리 넷 중에 특히 언니한테 가스라이팅 잘 당해서? 아니거든. 굳이 나누자면 나도 언니 의견에 동조하는 쪽이야. 적당한 희생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 죄책감도 딱히 안 느끼고. 그치만 난··· 언니보다 서연이가 더 좋거든. 이렇게 예쁜 애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어? 그래서 서연이 편에 붙은 거야. 난 지금이 좋아.”


“그게 지금 할 소리니?”


은예는 희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결론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전부 우리 선택이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혼자 죄책감 갖지 말라는 거야. 요즘 네 행동이 점점 과격해지는 건 다들 느끼고 있어. 말은 안 했지만, 다들 고민하고 있었을 거야. 어차피 우리 계획을 위한 일이니 조금 더 참고 기다릴지, 아니면 널 진정시킬지.”


“뭐야··· 그럼 넷이서 나만 따돌리고 있었던 거야? 나만 모르게 너희들끼리 호박씨 까고 있던 거야? 나만 빼고?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으앙~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으앙.”


이번엔 아예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엉엉 울어댔다. 어린아이가 엄마한테 보채듯 엉엉 울었다.


“흑··· 흑··· 내가··· 내가 더 잘··· 할게. 내가 진짜 잘 할게··· 진짜··· 흑흑.”


“진짜?”


“응··· 진짜······?”


익숙한 목소리에 습관적으로 대답했지만, 친구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은,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던 끔찍한 목소리, 선호의 목소리였다. 지수를 비롯한 친구들의 시선이 어두운 하늘을 향했다. 예상대로 그곳엔 선호가 있었다.


“너희 얘길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너무 진지해서 끼어들 틈이 없더라.”


“너··· 이 개새······.”


힘을 끌어모으는 지수를 서연과 은예가 막아섰다.


“또 무슨 일이지? 볼일 다 끝났잖아!”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하나 빠트렸더라고. 이거 받아.”


선호의 손에서 작은 종이 하나가 천천히 날아 서연의 얼굴 앞에 멈췄다. 허공에 떠 있는 종이는 명함이었다.


“대만이 연락처야. 그쪽으로 번호 하나 남겨둬.”


“그 역시 네게 협조하는 건가? 그럼 폭발마도?”


서연은 명함을 움켜쥐며 차갑게 물었다.


“비슷해. 근데 폭발마는 아니야. 그 자식은 너무 위험해. 너희도 알다시피 완전 미친놈이잖아.”


“죽였나?”


“아니. 아직은 아닐걸? 잘 처리했으니 걱정 마. 너희 얘길 떠들고 다닐 입장은 아닐 테니까. 아무튼 이번엔 진짜 간다.”


선호는 말을 마치고 어둠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서연은 선호가 사라진 어두운 밤하늘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작가의말

너무 준비 없이 시작한 이야기였습니다.
손가락 움직이는 대로 쓰자.

최대한 가볍게 써보자.

했더니 이런 게 나와버렸네요... 하.하.하.....
쓰다 보니 선호라는 캐릭터가 좋아졌습니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다른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잘 갈무리해 처음부터 다시 써보려고요.

그때는 조금이라도 나은 작품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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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약점이 없는 괴물이라고! 23.06.10 15 0 12쪽
54 53. 저건 너희가 한 거다 23.06.09 16 0 10쪽
53 52. 가면 벗어 23.06.08 15 0 9쪽
52 51. 민간인을 인질로 잡자고? 23.06.07 18 0 11쪽
51 50. 핑계 오지네. 23.06.06 15 0 11쪽
50 49. 어떻게 콩깍지를 수박껍데기라고 사기를 칠 수 있지? 23.06.05 17 0 11쪽
49 48. 기다리다가 목 빠지는 줄 알았네 23.06.04 20 1 12쪽
48 47. 아시겠습니까? 서. 장. 님. 23.06.03 20 0 15쪽
47 46. 보통 열정적인 게 아닌 오타쿠 23.06.02 17 0 17쪽
46 45. ‘우리 동네 꽃집 Yellow House’ 23.05.31 21 0 15쪽
45 44. 내 꿈과 희망을 앗아가지 말아줘! 23.05.29 18 0 12쪽
44 43. 생긴 건 씹다 뱉은 오이지처럼 생긴 놈이 누구보고 스타일 운운해? 23.05.27 22 0 14쪽
43 42.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라. 의심병 환자XX야. 23.05.25 23 0 11쪽
42 41. 저 가면… 꼭 배우고 싶다. 23.05.23 22 0 11쪽
41 40. 선호는 나와 같다. 23.05.21 22 0 12쪽
40 39. 너냐? 바둑이! 네가 그런 거야? 23.05.19 26 0 10쪽
39 38. 잡았다! 23.05.17 26 0 11쪽
38 37. 아직 그런 사이 아닌데……. 23.05.15 27 0 11쪽
37 36. 답답한 새끼야, 선아도 널 좋아하는 거잖아. 23.05.13 28 0 14쪽
36 35. 엄마의 영역 23.05.11 26 0 11쪽
35 34. 경찰서 앞 찐 맛집 뷰 23.05.09 26 0 9쪽
34 33. 능력을 두 개나 쓰는 거야? 23.05.07 31 0 11쪽
33 32. 초능력 범죄자도 지겨운데 이젠 좀비까지 23.05.05 29 0 10쪽
32 31. 엄마? 23.05.03 36 0 12쪽
31 30. 우리 애가 사이코패스라는 건가요? 23.05.01 41 1 11쪽
30 29. 이것이 사랑의 아픔…은 얼어 죽을, 어린 것들이 놀고 자빠졌다. 23.04.30 32 0 16쪽
29 28. 너야? 네가 개코야? 23.04.28 38 0 9쪽
28 27. 천벌 받을 새끼. 콱! 벼락이나 맞아 죽어라. 23.04.26 40 0 14쪽
27 26. 뭐든 하나만 하자. 이 미친놈아. 23.04.24 37 0 10쪽
26 25. 옜다. 선물이다. 23.04.22 3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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