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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반사회성 인격장애 염력왕이 지구정복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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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D)
작품등록일 :
2023.02.26 15:32
최근연재일 :
2023.06.10 18:30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2,473
추천수 :
21
글자수 :
323,230

작성
23.05.0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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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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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1. 엄마?

DUMMY

“누가 좀 도와주세요! 사람이 깔렸어요. 사람이 깔렸다고요!”


아직 온기가 남아있던 찌개는 금세 보글보글 기포를 터뜨렸다.


“여기요! 같이 밀어야 해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새롭게 들렸다.


“어떡해! 우리 호수 어떡해! 도와주세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다시 애끓는 여자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선호는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행주로 찌개를 들어 식탁으로 옮겼다. 뚜껑을 열자 뽀얀 수증기와 함께 구수한 김치찌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아싸, 김치찌개.”


전기밥솥에서 밥을 퍼 자리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한 번에 들어야 해요! 흔들리면 애가 위험해! 아저씨 손대지 말고! 사람 좀 더 모아와요!”


“아이가 자동차 밑에 깔렸어요! 남자들 좀 나와서 도와요!”


다급한 목소리는 점점 늘어났다. 선호는 숟가락 가득한 찌개와 건더기를 호호 불며 조심스럽게 입에 머금었다.


“오오! 존맛! 역시 엄마 김치찌개!”


돼지고기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선호의 최애 음식이었다.


“빨리 구해야지 뭐 하고 있어요?”


“함부로 손대면 더 위험할 수 있어요. 구급차 올 때까지 기다려요!”


“당신 애 같으면 그렇게 말하겠어? 당장 구해야 할 거 아니야?”


“아직 사람이 모자라요! 한 번에 들고 빼야 된다고!”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선호는 한숨을 푸욱 쉬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뭔데? 도대체 뭔데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5분 가까이 아파트를 울렸던 대화를 전혀 듣지 않았다. 그저 난잡한 소음으로 인식한 선호는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점점 소리가 커지자 더는 참을 수 없어 베란다로 향했다.


“뭔데? 도대체 무슨 난리가 난 건데?”


아파트 앞 주차장은 난장판이었다. 수십 명의 사람이 밖으로 나와 택배 화물차를 둘러싸고 있었다. 화물차 주변에선 남자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중년 여자는 아파트가 떠나갈 듯 절규하고 있었다.


“애가 깔린 건가? 그냥 밀어서 차를 넘어뜨리면 안 되나? 아하!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차가 다시 떨어져서 애가 죽을 수도 있구나. 괜히 손대지 말고 구급차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 왜 저렇게들 난리람.”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사람들의 숫자는 더욱 늘었다. 구경하는 사람만큼이나 참견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많아져 소음은 더욱 커졌다.


“시끄러워서 치우고 싶어도 집에서 쓸 수 있는 힘으론 어림도 없을 테고··· 그렇다고 내려가서 힘 쓰자니 다른 사람한테 들킬지 모르고. 그냥 이어폰 끼고 밥 먹을까?”


그 사이 화물차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남자들은 차를 뒤집기로 의견을 모았다.


“붙어요! 다 붙어서 자리 잡아요!”


열 명 남짓한 남자들이 트럭 옆에 다닥다닥 붙어섰다.


“저 사람들로 될까? 아··· 자리가 없어서 사람이 더 못 붙는구나.”


“자리 잡았죠? 셋에 밀게요.”


“한 번 거들어 볼까?”


단순한 호기심에 지나지 않았다. 소파나 끄는 힘이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눈앞에서 벌어지는 행동에 반응한 것뿐이었다.


“제가 셉니다. 하나··· 두울······.”


선호는 손가락으로 난간을 치며 남자의 호흡을 따랐다.


“세엣!”


“으아아아!”


남자들의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차가 조금씩 움직··· 날아갔다. 발에 맞은 축구공처럼 빠르게 날아간 화물차는 주차된 자동차에 차례대로 부딪히며 한참을 굴러 반대쪽 아파트에 처박힌 뒤에야 겨우 멈췄다.


조금 전까지 주차장을 가득 메웠던 소음이 일순간 사라졌다. 화물차를 밀다가 바닥을 뒹군 남자들, 주변을 에워싸고 훈수 두던 사람들, 멀찍이, 혹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지켜보던 구경꾼까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호수야!”


시간이 멈춘 듯한 적막을 깬 건 아이의 엄마였다.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는 엄마의 모습에 사람들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주차장은 이전보다 더 시끄러웠다. 심지어 아파트 베란다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더해져 공사장 한가운데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시끄러웠다.


예기치 못한 기현상에 대한 놀라움은 선호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놀랐으면 다리에 힘이 풀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야? 왜? 집이잖아.’


몇 번 시도한 적은 있었다. 집안에서 외부로 능력을 사용할 때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늦은 밤 몰래 시험했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결국 힘을 쓰는 위치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지금은 밖에서 힘을 쓴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단순한 흥미에 의한, 장난에 가까운 행동이었기에 온 힘을 다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있는 힘껏 능력을 사용했다면 날아간 자동차는 맞은편 아파트 어디쯤을 뚫고 들어갔을지도 몰랐다.


선호의 심정은 상당히 복잡했다. 집 밖에서처럼 힘을 쓸 수 있어 놀라고, 큰 사고가 이어지지 않아 안도하면서 누군가 눈치챘을까 걱정됐다. 그러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의 시선은 주차장의 모자(母子)와 완전히 박살 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자동차에 몰려있었다.


거실로 돌아와 무너지듯 소파에 앉은 선호는 밥 먹는 것도 잊고 생각을 정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안 됐어. 어제하고 오늘이 다른 게 뭐지? 특별히 없는데··· 선아랑 같이 버스 탄 거? 아니야. 학원에서 매일 보는데 고작 버스 같이 탔다고 그런 일이 생겼을 리 없어. 그럼 도대체 뭐지? 어제랑 다른 게······.”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 먹다 만 음식이 그대로 올려진 식탁, 웬일로 TV가 꺼져있는 조용한 거실······.


“엄마?”


엄마는 항상 집에 있었다. 능력이 생긴 뒤 선호가 집에 있을 땐 엄마가 한 번도 집을 비운 적이 없다. 처음,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집에서 능력을 쓸 수 있는 것도······.


선호는 황급히 앉아있는 소파에 힘을 집중했다. 평소와 달리 너무나 쉽게 소파가 두둥실 공중으로 떠올랐다. 공중에 뜬 소파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았다. 다시 원래 자리에 내려앉았다.


“집에서도 힘을 쓸 수 있어. 정말 엄만가? 그런데 왜? 어째서?”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만 놓고 봤을 때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추론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엄마가 돌아와야 알 수 있다. 선호는 밥 먹는 것도 잊고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야! 왜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


“어? 어. 왔어?”


동현이 어깨를 치는 바람에 정신이 돌아온 선호는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헐··· 이 새끼 표정이 왜 이래? 무슨 일 있냐?”


“아, 아니. 생각할 게 조금 있어서.”


새벽에 들어온 엄마 아빠가 자는 것을 확인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침대에 능력을 집중했다. 역시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한쪽 다리를 드는 게 고작이었다.


‘정말 엄마였어? 왜지? 심리적인 건가? 아니야. 집에선··· 엄마가 있을 땐 한 번도 제대로 능력을 쓸 수 없었어. 그럼 엄마도 능력자? 다른 사람의 능력을 떨어뜨리는 능력인 건가?’


그러나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다른 능력자를 통해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지만, 친분이 있는 능력자는 정우가 유일했다.


‘정우만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정우를 우리 집에 데려갈 수 있으면 확실한데.’


“얘 왜 이래?”


평소처럼 앞자리에 앉은 선아도 넋 나간 얼굴의 선호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몰라. 무슨 일이 있는지 말은 안 하는데 맛탱이가 간 건 확실한 것 같아. 이봐, 우리가 지 얘기하는데도 모르고 있잖아.”


“심각한 일 있는 거 아니야? 선호야, 선호야!”


“으, 응? 어··· 왔어?”


“무슨 일 있어? 넋 나간 사람처럼 왜 그래?”


“아, 아냐. 생각할 게 조금 있어서······.”


대충 얼버무렸지만 선아와 동현의 표정은 심각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데 사람이 불러도 못 듣냐? 집에 무슨 일 생겼어?”


“아니야. 진짜 별 거 아니야. 그냥 혼자 고민할 게 있어서 그래. 신경 쓸 일 아니야.”


친구들의 걱정을 풀기 위해 선호는 활짝 웃었다. 어색하거나 꾸밈없는 미소, 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가면은 선아와 동현을 속이기 충분했다.


“평소엔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놈이 그러니까 걱정했잖아. 뭐냐? 그 고민, 혹시 좋아하는 여자라도 생겼냐?”


동현의 장난 가득한 얼굴에 가려 귀를 쫑긋 세우며 집중하는 선아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내가 여자가 어딨냐? 맨날 보는 게 학원 애들인데.”


“응? 너희 학교에 여자 없어? 남자학교 다녔었냐?”


“정말? 그러고 보니 선호 학교 어딘지도 몰랐네? 정말 남고야?”


실수였다. 다른 데 정신 팔려 생각 없이 내뱉었다.


“남고 아니야. 그냥··· 학교에 여자로 보이는 애들이 없다는 얘기야.”


지역에 남고는 북부 남고 하나밖에 없었다. 어설프게 인정하면 거짓말이 들통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럼 학교 어딘데? 한 번도 학교 얘기한 적 없잖아.”


평소에 학교 얘기가 나올 때면 얼렁뚱땅 넘기던 걸 기억하고 있는지 선아는 오늘따라 유난히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있어. 워낙 꼴통 학교라 말하기 좀 그래.”


“고등학교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뭘 말하기 그렇다는 거냐? 설마 너······.”


선아의 집요한 의심의 눈초리에 선호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다.


“황금 고등학교 다니는 거 아니야?”


황금 은행 재단의 지역 명문고등학교. 아니, 전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였다.


“하하하! 야, 말 같은 소리를 해라? 황금 고등학교 다니는데 우리 학원을 왜 다니냐? 그리고 얘 공부 X라 못해. 나랑 비슷한 수준인데 어떻게 황금 고등학교를 가냐?”


“그런가? 하도 말을 안 하니까 그렇지.”


“고등학교 어디 다니는지 뭐가 중요하냐? 대학만 잘 가면 되지. 물론, 선호랑 나는 대학도 잘 가긴 틀렸지만. 안 그러냐? 히히히.”


선아의 의심에 대신 대답해 주는 건 고맙지만 염력으로 다리라도 꼬집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맞는 말인데··· 내가 너보단 낫지.”


“지랄. 너나 나나 얼마나 차이 난다고 선을 긋냐?”


“아놔··· 이 새끼, 또 묻어가려고 하네. 너랑 나랑은 레벨이 달라. 새끼야.”


“븅신, 지랄이 개풍년이다. 나중에 봐라. 너랑 나랑 같은 학교 다니고 있을걸?”


“그런 끔찍한 소린 하지도 마라. 난 in 서울이 목표야.”


“파하하!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네가 in 서울? 아하하하.”


일부러 동현의 농담에 장단을 맞춘 덕에 선아의 의심은 자연스럽게 수그러들었다.



“같이 가자!”


“가자.”


동현이 먼저 일어났다. 곧이어 선호도 가방을 메고 일어서며 선아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먼저 갈게. 내일 보자.”


“자, 잠깐만······.”


가방을 정리하던 선아가 붙잡을 새도 없이 선호와 동현은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후다닥 책을 욱여넣고 뒤를 쫓았다.


“야, 같이 가.”


“응? 너 오늘도 엄마 안 오시냐?”


“어. 오늘도 일 있대.”


학원 정문 앞에서 두 사람을 따라잡은 선아는 자연스럽게 앞질러 먼저 문을 열었다.


“우리 근처에서 카페에서 놀다 갈래?”


“카페? 피시방이라면 모를까 웬 카페?”


“그냥~ 얘기나 좀 하자고. 바쁘면 어쩔 수 없고.”


“그래. 그러자. 동현 너도 시간 괜찮지?”


“나야 남는 게 시간이지······.”


끼이이익


쾅!


아스팔트 도로와 자동차 타이어의 거친 마찰음에 이어 충돌음이 학원가를 울렸다. 학원에서 막 빠져나오던 학생들의 시선이 도로에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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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54. 약점이 없는 괴물이라고! 23.06.10 15 0 12쪽
54 53. 저건 너희가 한 거다 23.06.09 16 0 10쪽
53 52. 가면 벗어 23.06.08 15 0 9쪽
52 51. 민간인을 인질로 잡자고? 23.06.07 1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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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0. 선호는 나와 같다. 23.05.21 22 0 12쪽
40 39. 너냐? 바둑이! 네가 그런 거야? 23.05.19 26 0 10쪽
39 38. 잡았다! 23.05.17 26 0 11쪽
38 37. 아직 그런 사이 아닌데……. 23.05.15 27 0 11쪽
37 36. 답답한 새끼야, 선아도 널 좋아하는 거잖아. 23.05.13 28 0 14쪽
36 35. 엄마의 영역 23.05.11 26 0 11쪽
35 34. 경찰서 앞 찐 맛집 뷰 23.05.09 26 0 9쪽
34 33. 능력을 두 개나 쓰는 거야? 23.05.07 31 0 11쪽
33 32. 초능력 범죄자도 지겨운데 이젠 좀비까지 23.05.05 30 0 10쪽
» 31. 엄마? 23.05.03 37 0 12쪽
31 30. 우리 애가 사이코패스라는 건가요? 23.05.01 41 1 11쪽
30 29. 이것이 사랑의 아픔…은 얼어 죽을, 어린 것들이 놀고 자빠졌다. 23.04.30 32 0 16쪽
29 28. 너야? 네가 개코야? 23.04.28 38 0 9쪽
28 27. 천벌 받을 새끼. 콱! 벼락이나 맞아 죽어라. 23.04.26 40 0 14쪽
27 26. 뭐든 하나만 하자. 이 미친놈아. 23.04.24 37 0 10쪽
26 25. 옜다. 선물이다. 23.04.22 3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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