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민간인을 인질로 잡자고?
지수의 지시에 서연을 제외한 Y특공대는 뻗어온 방향을 향해 몸을 돌리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희진의 불덩이, 유리의 염력을 이용한 구조물, 지수의 얼음벽, 그리고 은예가 든든하게 뒤를 버텼다.
“대장! 야! 빨강! 정신 차려! 야!”
지수는 정면을 주시하면서 서연을 향해 소리쳤다. 목에 핏줄까지 세우며 소리친 결과 서연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절망에서 돌아온 서연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철로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 선호였다.
“무··· 슨······.”
“설명할 시간 없어. 빨리 방어 대형!”
서연은 반사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은예 옆에 섰다.
“빛줄기가 저승사자를 공격했어. 최준화 반장 공격에도 끄떡없는 놈이 공격 두 번에 저렇게 된 거야.”
은예의 설명으로 상황은 파악했다. 이 상황에서 서연의 역할은 하나밖에 없었다. 시선 끌기다.
“땅에서 당한 거야? 하늘에서 당한 거야?”
“하늘. 다리에서 대략 20m 높이.”
선호의 모습을 상상하며 공격 방향으로 선을 그렸다. 철벽에 가려 보이지 않는 빌딩 옥상이 유력했다.
“다녀올게.”
“조심해.”
동료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빠른 속도로 어둠 속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공격을 대비해 다리 구조물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예상된 빌딩 옥상이 보일 때까지 빠른 속도로 비행했다.
‘발각되는 즉시 공격이 온다.’
상대가 저격에 특화된 능력이라면 서연이 확인하기도 전에 공격할 게 뻔했다. 그 한 번을 피해야 적을 확인할 수 있다.
철제 구조물을 복잡하게 피하며 날았다. 혹시 모를 다른 위치에서 공격과 예측 사격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일부러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비행하던 서연은 드디어 타이밍을 잡았다.
‘지금!’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어 사각을 벗어났다. 예상 저격 지점에서 번쩍이는 빛을 확인했다. 그러나 서연은 이미 속도를 최대로 올려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최대 속도로 비행해 적의 예측 사격을 피할 의도였다. 계획대로 빛줄기는 서연에 닿지 못하고 강에 처박혔다.
‘역시 저곳이었어.’
서연의 예측은 정확했다. 만약 적의 공격을 확인한 뒤 속도를 높였으면 늦었다. 적의 공격 속도와 예측 사격은 완벽에 가까웠다. 다만, 서연의 순간 초고속 비행 속도가 예상을 벗어났을 뿐이다.
다리가 가장 잘 보이는 빌딩 옥상에 자리 잡은 최준화 반장과 매눈은 한 시도 다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철벽에 가려 Y특공대와 선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순간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친구야, 아직 움직임 없니?”
“시끄러워.”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친 비호의 무전을 한 마디로 묵살했다. Y특공대가 다리 위로 진입하고 벌써 10분이 넘게 지났다.
“역시 한패일까요?”
그동안 Y특공대의 뒤를 열심히 쫓았지만 저승사자와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날의 일은 대만을 두고 우연히 격돌한 것이라 잠정 결론 지었다. 그런데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낸 저승사와 Y특공대가 다시 만났다.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구조물까지 설치하고, Y특공대가 들어가자마자 다시 시야를 가렸습니다. Y특공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연출이 아니었을까요?”
최준화도 매눈의 의견에 동의했다. 전투가 없자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망설이지 마라. 보이는 즉시 공격한다.”
저승사자와 Y특공대가 한편이라면 일은 훨씬 수월했다. 미등록 능력자, 경찰 특수반을 향한 공격, 범죄 용의자의 도주 협조, 인질극과 테러에 이르기까지 범죄 혐의는 충분했다.
‘오늘은 반드시 잡는다.’
매눈도 각오를 다졌다. 지난날 저승사자와 Y특공대의 빨강과 보라를 놓친 치욕을 잊지 않았다.
최준화 반장 역시 그날의 치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다수 특수반원이 병원 신세를 질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그러나 얻은 건 아무것도 없고, 남은 건 수치뿐이었다. 용의자를 데리고 떠나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던 그 날의 치욕에 이를 악물었다.
지난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잠을 제대로 잔 날이 거의 없었다. 일과가 끝나면 훈련실에 처박혀 미친 듯이 능력을 단련했다. 저승사자의 보호막을 뚫을 절대적인 공격, 어떤 범죄자도 등을 보이고 도망칠 수 없는 무력, 중앙본부 특수반의 자존심을 위해 미친 듯이 갈고 닦았다. 그리고 끝내 완성했다.
‘갚는다. 오늘 반드시 그날의 치욕을 갚는다.’
그때 무언가 강으로 떨어졌다.
“뭐지?”
“둥근 용기 같았습니다. 대략 지름 2m 정도의 반구였습니다.”
감시 20여 분만에 드디어 움직임이 포착됐다.
“보이는 즉시 공격한다.”
“알겠습니다.”
매눈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 형체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저승사자였다. 망설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먼저 최준화이 활시위를 튕겼다. 정확히 타이밍을 맞춰 매눈도 방아쇠를 당겼다. 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저승사자의 등에 명중했다.
“명중했습니다!”
“다시 준비.”
방심하지 않았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힘껏 시위를 당겼다.
“추락합니다.”
“공격!”
이번에도 최준화의 빛 화살이 먼저 뻗고, 매눈이 타이밍을 맞춰 방아쇠를 당겼다. 지난번 실착을 교훈 삼아 이번엔 폭발탄을 준비했다. 저승사자의 방어막을 뚫기엔 부족하지만 최준화 반장의 공격에 힘을 보태는 역할이었다.
“명중! 명중했습니다.”
축 늘어져 추락하던 저승사자의 몸이 폭발의 여파로 튕기는 것까지 확인했다. 그 이후는 철벽에 가려 확인이 불가능했다.
“비호!”
“옙! 말씀만 하십시오!”
“현재 저승사자 저격에 성공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방심하지 말고 대기하도록.”
“알겠습니다!”
비호의 호탕한 대답이 귀를 울렸다.
“저승사자 상태를 확인하기 전까지 방심하지 않는다.”
폭발 용의자 검거 작전 때 확인한 Y특공대의 능력은 특수1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저승사자만 처리하면 바로 병력을 진입시켜 제압 가능했다. 그러나 아직 저승사자의 정확한 상태를 알지 못했다.
다시 지겨운 기다림이 시작되려 했다. 언제, 누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때 어둠 속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빠르게 빠져나왔다. 최준화와 매눈은 반사적으로 검은 물체를 노렸다. 그러나 공격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피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구조물 사이로 사라진 서연을 스코프로 확인한 매눈이 침착하게 말했다. 최준화는 활 쏘는 자세를 거두고 망원경으로 철벽을 확인했다.
“적들의 예상 위치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조금 전 저승사자가 비행한 위치를 고려했을 때······.”
퉁!
소음기를 통과한 총알은 철판의 상단에 명중했다.
“현재 위치에서 적절한 각도는 저 정도입니다.”
“알았네.”
최준화 반장은 다시 자세를 잡고 빛의 활을 당겼다.
“어쩌시려는 겁니까?”
“들쑤시려고.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찌르다 보면 한두 마리는 튀어나오지 않겠어?”
이전과 달리 빛의 화살이 눈에 띄게 얇았다. 화려하게 쏟아지는 빛 대신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시위를 당긴 손을 놓자 얇은 빗줄기가 빠른 속도로 날아가 매눈이 쏜 탄알이 박힌 자리를 정확히 뚫었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 서연은 거친 숨을 급히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헉··· 헉··· 괜··· 찮아. 역시 예상대로··· 빌딩 옥상··· 근데 공격이 너무 정확해··· 공중으론 벗어나기 힘들······.”
콰직!
얇은 빛줄기가 철판을 뚫고 서연의 옆을 스쳐 다리까지 뚫고 강으로 떨어졌다.
“이건 또 뭐야?”
“설마 우리 위치 노출된 거야?”
“아니야. 저쪽에선 절대 안 보여.”
“그럼 어떻게 여길 노릴 수 있는 거야?”
보이지 않는다 해서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미 알려진 초능력만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초능력도 많았다.
“투시나 다른 방법으로 여길 볼 수 있는 능력자가 있는 건 아닐까?”
“아니. 그랬다면 아까 공격했을 거야. 그리고 적의 실력이라면 방금 공격을 실패할 리가 없어. 분명 예측 공격이었을 텐데······.”
서연은 동료들을 진정시키며 상황을 분석했다.
‘철벽은 의미가 없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벽을 부수고 들어올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예측 사격을 하는 이유가 뭐지? 벽이 필요한 건가? 왜? 뭔가를 가리기 위해? 도대체 뭘······.’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승객 수백 명이 타고 있는 전차와 아직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선호가 눈에 들어왔다.
‘저자의 방어막을 파괴할 정도의 공격··· 철판과 다리를 뚫고도 위력이 줄지 않는 공격··· 우릴 살려둘 생각이 없다.’
적의 의도는 확실히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이제 탈출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상황은 너무 절망적이었다. 희진은 팔이 부러졌고, 유리는 다리가 부러졌다. 멀쩡한 상태라도 확신할 수 없는데, 두 사람의 부상은 치명적이었다.
“벗어나야 해. 민간인의 눈을 피해 우릴 죽이려는 거야.”
“우릴? 도대체 왜?”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방금 공격이 우릴 정확하게 노리면 막을 수 없어.”
희진의 불덩이 공격으로 상대의 시선을 빼앗는다. 유리의 염력으로 주변 사물을 최대한 끌어들이고, 거기에 지수의 얼음벽이 더해진다. 은예는 뒤를 지키고 서연은 기동성을 활용해 반격을 준비한다. Y특공대의 방어 대형이다. 그러나 유리와 지수의 능력으로 빛줄기를 막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어떡하지? 만약 공격이 명중하면······.”
피융
희진이 말 꺼내기 무섭게 빛줄기가 다시 철벽을 뚫고 그들을 스쳤다. 이번엔 서연의 반대쪽이었다.
“젠장, 피를 말리네. 일단 이동할까?”
“아니야. 의미 없어. 그러다 저 구멍을 통해 위치라도 발각되면 그게 더 위험해.”
“어떡해, 그럼? 이대로 명중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피융!
또 한 번 빛줄기가 철벽을 뚫고 들어왔다. 이번에도 다행히 맞지 않았지만, 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전차로 피하자.”
“뭐?”
지수의 의견에 서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위력과 형태는 다르지만, 최준화 반장의 빛 화살이야. 적어도 경찰인 이상 민간인을 희생시키진 못할 거야.”
“지금 민간인을 인질로 잡자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서연은 지수를 향해 버럭 소릴 질렀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더는 양심에 걸리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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