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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벗 - Be, But...

흑막 영애의 호위기사로서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비벗
작품등록일 :
2024.04.05 17:49
최근연재일 :
2024.05.1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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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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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Chapter 4 – 인간의 자격 (2)

DUMMY

그림자는 아침에 태어난다.

아주 길고 흐릿한 윤곽을 지닌 채.

그러다가 태양이 남중(南中)하는 낮이 되면 가장 짧고 진해지며, 이후 저녁이 되는 과정에서 다시금 길고 흐릿해진다.

그 하루 주기의 메커니즘이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물었다고 전승되는 세 가지 수수께끼 중 하나였다.


오르가시온의 질문은 그것의 확장판.

그림자가 낳는 그림자는 무엇일지에 관한 우문(愚問)이다.

직사광선의 차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음영이 그림자의 과학적 정의라는 점에서, 그 문항의 정답은 ‘없다’라는 말 외에는 있을 수 없을 터였다.


‘그리고······ 뒤이은 질문 역시 마찬가지. 애초에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 선제시해버렸다. 저 검은 뿔의 마족은, 신의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또 다른 피조물을 창조할 수는 없음을 지적하고 있는 거야. 그게 설득을 위한 빌드업일 리는 없지. 그런 게 아니라, 호문쿨루스의 근본에 대해 지적하려는 거다.’


다수의 신이 실존하는 세계에서 피조물이란 어떤 존재일까.

종교가 술자리 안줏거리로 전락했던 세상에서 빙의한 유은석이지만, 지구의 역사에도 다신교가 성행한 나라는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고대 그리스.

제우스를 위시해 수십 명의 신들을 섬겼던 그 시절 그리스 사람들은, 전쟁에서 지면 아레스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사랑에 실패하면 아프로디테의 뜻이라며 체념하는 등, 모든 인간사가 신들의 결정이라 믿었다고 이야기되곤 했다.


‘이쪽 세계 사람들은 그 이상이겠지. 아예 신관들이 신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사해버리는 세계관이니까. 인간이 아무리 발전해도 신의 영역에 비빌 수는 없다고 믿는 광신도가 대부분일 거야. 말하자면 신의 그림자. 그림자가 그림자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신이 아닌 인간 따위가 생명체를 창조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리라. 그렇다면, 호문쿨루스는?’


호문쿨루스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

인간과 똑같은 구조의 육체에 인간의 영혼 중 일부를 집어넣음으로써 완성되는 존재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동종끼리는 번식마저 가능했으리라고 여겨지고 있다.

고대인들이 마치 신과 같은 지위에 서서 뉴타입의 인간을 창조해냈다는 얘기였다.


그것은 정말로 가능한 일이었을까.

지구에서만 해도 유전자 조작 연구 관련해 종교계의 무수한 반대가 뒤따랐다는데, 신의 실존을 믿는 이곳의 인간 사회에 신의 영역인 생명 창조가 과연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독자로서는 미처 해보지 못했던 실증주의적 고민.

유은석은 그 상념의 끝에서 비로소 오르가시온의 의도를 추론해낼 수 있었다.


“······두 수수께끼를 조합했을 때 나오는 결론은, ‘그림자가 그림자를 못 낳듯 인간 역시 생명을 창조할 수는 없다’겠지.”

“훌륭한 추론이로군. 공작의 영혼이 참으로 지혜롭기는 한 모양이야. 떨어져나온 조각조차 이토록 영민한 것을 보면.”

“그렇지만, 호문쿨루스는 분명히 고대인의 작품이다. 단순한 구전 민담만이 아니라 엘프나 드워프의 기록으로도 그렇게 전해지고 있어. 확실하게 교차검증된 진실이라는 뜻이다.”

“그래. 그 명백한 진실을 부정하지는 않겠네.”

“그러니······ 네가 내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심층적인 지점의 반박이겠지.”


신의 그림자인 인간은 감히 신을 흉내 낼 수 없다.

그럼에도 고대인들은 최소 412기의 호문쿨루스 군대를 창설했던 터.

그 모순된 정보를 완전하게 할 변수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호문쿨루스는 인간이 아니라는······ 인간의 모습을 했지만, 신만이 창조할 수 있는 인간과 동등하지는 않다는 뜻. 맞나?”

“정말로 훌륭하군! 그간 보여준 영특한 모습에 기대를 걸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단번에 이해할 줄은 몰랐네. 그런 이야기일세. 엘르는-자네들 표현으로 고대인들은, 결코 신을 능멸하려 들지 않는 자들이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역할을 도둑질해 마누스라는 괴물을 발명해냈던 것이야. 실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오직 그 피조물이 사실은 지적생명체가 아닐 경우에만 납득이 될 일인 것이지.”


호문쿨루스가 지적생명체가 아닐 경우에만 납득이 될 일이라는 단언.

그 만들어진 육체에 빙의한 유은석 입장에서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그 이전에 지적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그간 보여준 영특한 모습······이라고?”

“그래, 그렇게 말했네.”

“내가 뭘 보여줬다는 거지? 아니, 그걸 어떻게 봤다는 거야?”

“어떻게 보기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


여전히 눈앞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검은 뿔을 바라본다.

마티아스의 말에 따르면, 마족의 뿔 색깔은 그 개체가 어떤 영역에 특장점을 가졌는지를 알려주는 요소.

그리고 검은색이란 어둠과 그림자를 상징한다.

그 어떤 색보다도 은신이라는 행위와 가깝다는 의미였다.


“설마······ 지금껏 계속 날 미행했다는 거냐?”

“허, 그럴 이유까지야 있었겠는가? 자네는 르제슈이제의 지시를 이행하는 칼에 불과한 것을. 그렇기에 랑크치아에 숨어들어 공작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네. 그로써 확인할 수 있었음이야. 무시무시한 복종의 칼을 가신으로 품은 공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유부단한 늙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루기온이 자네를 공격한 것은 그런 까닭이라네.”


르제슈이제 공작은 세 명의 최상급 익스퍼트를 개인 호위로 두고 있는 대영주.

그의 아성인 랑크치아엔 무려 400명의 병력이 상주한다.

그런 공작의 옆에 숨어들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는 말은, 아무리 전설 속 마족이라 해도 쉽게 믿기 힘든 소리였다.


‘그렇긴 하지만······ 일리는 있어. 힘이란 사람을 바꾸기 마련. 호문쿨루스라는 신살병기를 손에 쥔 인간은, 이내 그 힘으로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려 들 확률이 높다. 마족 입장에선 아무리 르제슈이제 공작이라 해도 3년쯤 참았으니 이제는 변할 때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그는 내게 오직 딸을 지키라는 명령만을 내렸을 뿐이야. 그걸 보고 관찰에서 습격으로 노선을 바꾼 거라면, 의심할 나위 없이 합리적인 이야기가 맞다.’


유은석은 마족의 습격이 왜 파벨의 제조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이었을지를 계속 의구해왔었다.

그들이 호문쿨루스 제조법이 적힌 목편을 숨긴 흑막이 맞다면, 그 안배의 행방을 3년 뒤에야 찾아냈을 확률은 높지 않은 까닭에.

오르가시온의 설명은 그 의문점을 곧바로 해명해주는 단서.

무엇보다도 아무런 기척도 없이 지척까지 접근한 지금의 대치 구도가 결정적인 근거였다.


‘은신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돼. 선공 때리지 말라고 애걸했던 거 생각해보면 전투력까지 높은 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소리 소문 없이 공작 주변을 맴돌 정도의 솜씨는 된다는 거다. 정말 그렇다면 내 입장에선 천만다행이기도 하지. 만약 이놈이 공작이 아니라 내 옆에 붙었다고 한다면, 호문쿨루스의 진짜 주인이 밀레나란 사실을 들키고 말았을 테니까.’


그 경우 마족은 습격 대신 회유를 추진했을 확률이 높다.

핵미사일 발사 스위치를 손에 쥔 것이 어린애라고 한다면, 혼돈의 도구로는 그 이상이 없을 만큼 적절할 테니.

그리고 유은석에게는 그것이 세상 가장 마땅찮은 전개였다.


‘저들의 시선이 밀레나에게 쏠릴 경우, 그 아이가 평범한 삶을 살 확률은 급격히 낮아져. 밀레나가 마녀라는 사실은 절대 들켜선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이 검은 뿔은 최악의 위협이야. 해법은 둘 중 하나. 여기서 죽이거나, 그게 아니면 확실히 안심시켜야 한다. 그중 전자는······ 아무래도 위험하겠지.’


은신 능력에 특화된 적이라면 승산은 있을 터.

하지만 상대는 세 명의 최상급 익스퍼트들 사이를 마음껏 누빌 정도로 은밀한 암살자고, 혹시라도 숨통을 끊지 못한다면 앞으로 마녀 관련된 논의는 입에 담기 어려워지고 만다.

결국 상대의 말장난에 넘어가는 척하며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

유은석은 마침내 고민을 접고 본론으로 돌아갔다.


“그건 됐고, 호문쿨루스가 사실 지적생명체가 아닐 경우에만 납득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의미지?”

“말 그대로. 마누스는 지적생명체라고 보기 어렵다네.”

“······이해가 안 되는데. 내 육체는 인간과 똑같고, 영혼도 인간의 것에서 추출됐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아닐 수 있지?”

“그럼 다시 묻지. 인간의 자격이란 과연 무엇이겠나?”


인간의 자격이라고 하면 지구에서도 종종 논의됐던 주제.

일상적으로는 자격보다 실격 쪽이 선호돼, 보통 ‘인간 실격’이라는 말로 스스로의 인격을 비하할 때 사용된다.

그 논리를 거꾸로 뒤집는다면 인간의 자격이 될 터였다.


“인간이란, 사유할 줄 아는 존재. 형이상학적인 고찰을 통해 본능이 아닌 윤리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동물이다.”

“그 지점이라면 열한 종족의 지적생명체 전부가 같지 않겠나? 이 몸은 인간이라는 종의 자격에 대해 묻고 있네.”

“······그런 문제라면 과거 조르거트 남작이 정의했을 텐데.”

“오, 과연 마누스답게 기억력이 좋군. 그래. 조르거트 가문의 괴상한 엘프 하나가 인간의 특성을 논한 적이 있지. 인간이란 열 종족 중 가장 열렬히 지식을 추구하지만 열 종족 중 가장 어리석은 결론을 내리는 종이라고. 훌륭한 통찰이야. 허나 정답은 아니라네. 이 몸은 특성이 아닌 자격을 물었는즉.”


다시금 자격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오르가시온을 보며, 유은석은 생각의 방향을 틀었다.

자격을 갖춘 인간이 아닌 ‘인간 실격’ 호문쿨루스를 기준으로 삼아서.


“······호문쿨루스에게 인간의 자격이 없다는 주장의 근거라고 한다면, 핵심은 나와 인간의 차이점 쪽이겠지. 그거라면 단 하나뿐이다. 신을 섬기지 않는다는 점. 호문쿨루스는 오직 영혼의 주인에게만 충성하는 까닭이다.”

“괜찮은 접근이지만, 그것 역시 틀렸네.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가 신을 믿지는 않으니 말이야. 허허. 이래서야 이 몸이 정답을 논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군.”

“처음부터 그렇게 했다면 시간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허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네. 스스로 고민해보지 않은 자에게는 어떤 설명도 들리지 않는 법이니. 자, 이제 진실을 풀어봄세. 마누스의 육체는, 사실 크세른의 피조물이라네.”


크세른.

마족-크세르스를 수호하는 암흑신의 이름이 언급된다.

그것도 호문쿨루스의 창조주라는 포지션으로.

유은석에게는 이해의 시도조차 어려운 괴담이었다.


“크세른이······ 인간에게 신마저 죽이는 칼을 안겨줬다고?”

“그렇지. 살생을 경멸하는 그분께는, 영토니 뭐니 하며 자꾸 전쟁을 벌이는 인간이 대단히 애처로워 보이셨을 터. 하여 제국에 초월적인 병기를 안겨주신 것이지. 그것이 마누스일세.”

“······그 신께서는 자기가 준 병기가 자기 신도들을 멸종시킬 수 있다는 생각까지는 못 하셨나 보지?”

“때로 어떤 신도들에게는 시련 또한 필요한 법이라네. 그것이야 어찌 됐건, 크세른께서는 마누스의 영혼이 인간의 것인 탓에 축복의 역할은 인간의 신인 엘라제프에 양보하셨다네. 헌데 엘라제프는, 영혼만 인간일 뿐 육체가 자신의 피조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축복을 거부했다고 하지. 마치 어느 쪽 부모도 책임지지 않아 소외된 사생아의 처지에 놓여버린 셈······. 이제 이 몸이 인간의 자격을 논한 이유를 이해하겠는가?”


신의 축복이란 한국 청소년들에겐 조롱만 당할 대화 소재.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만약 정말로 호문쿨루스가 암흑신의 피조물이고, 그래서 어느 신의 축복도 받지 못한 존재라면, 그것은 애초에 지적생명체라고 불릴 수조차 없다고 봐야 했다.


‘······몬스터. 어떤 신의 축복도 받지 못한 존재를, 이 세계의 지적생명체들은 그렇게 부르곤 한다. 아인종처럼 생긴 몬스터도 고도의 지능을 갖춘 몬스터도 마찬가지야. 호문쿨루스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지. 인간의 자격- 엘라제프의 축복을 받지 못한 생명체라면, 아무리 인간처럼 생기고 아무리 인간처럼 사고한다 해도 결코 인간일 수는 없다는······ 그런 얘기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논점이다.

파벨의 장엄한 희생을 너무도 선명히 기억하는 유은석으로선, 호문쿨루스가 신들의 사생아에 불과하다는 소리는 근거 없는 모욕이기만을 바랄 따름.

다만 그런 동시에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화법이기도 했다.

그것이 진실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는 까닭에.


‘호문쿨루스는 복종의 존재다. 신의 축복을 못 받았다는 게 뭐 꽤 충격적인 말일 건 알겠는데, 그래봤자 잠시뿐이고 결국은 자기 업무에 열중할 거라는 얘기야. 그런 무가치한 말을 왜 저렇게 의미심장하게 하는 걸까?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어떻게 봐도 아무 효과도 없을 헛소리잖아?’


그럼에도 즉답을 하지 못했던 건, 오르가시온의 표정 때문.

그는 대회 결승에서 체크메이트를 완성한 체스 선수만큼이나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것이 방심의 허점이기를 바라며, 유은석은 거칠게 외쳤다.


“이 더러운 마족놈!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흐흐흐하핫! 믿을 수 없겠지. 믿고 싶지 않겠지. 그러나 그것이 진실일세. 마누스는 어느 신의 축복도 얻지 못했다네.”


억지로 일으킨 분노에 오르가시온이 희열감을 드러낸다.

이미 호문쿨루스 파벨을 완전히 변질시켰다고 믿는 듯한 그 반응을 확인하고, 유은석은 더욱 극적인 연기를 시도했다.


“대체 왜······ 왜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대체 내게 뭘 원하는 거냐는 말이다!”

“원하는 것? 흐흐핫! 영혼이 진탕되어 논리적인 사고력마저 잃은 모양이군. 이미 말하지 않았나? 루기온의 습격은 모두 공작의 우유부단함 때문이었다고. 그런 주인과 세계에 단 한 기만 남은 마누스를 결별시켰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나는······ 적어도······ 설득이라는 방법을 쓸 거라고 봤다!”

“아, 정말 영리하군. 물론 그 방법도 생각은 해봤지. 우유부단한 공작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흉계를 전혀 꾸미지 않고 있으니, 충신이라면 자신의 판단으로 주인이 변화할 만한 대사건을 일으켜야 마땅하다고 꼬드기는 방식 말이네. 허나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걸세. 자네의 복종은 반쪽짜리인즉. 자네를 만들어낸 공작의 제조공정이 턱없이 허술했던 까닭이라네.”

“내 제조공정이, 뭐가 어쨌다는 거냐!”


오르가시온은 더 대답하지 않고 빙글빙글 웃을 따름.

온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혼란에 빠진 호문쿨루스를 확인했으니,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게 된 눈치다.

다만 그때는 유은석 역시도 충분한 성과를 얻은 뒤였다.


‘제조공정······! 고대인의 유적을 마족의 목편을 기반으로 재구성하면서, 거기서 뭔가 문제가 생긴 거다. 아마도 영혼의 고정 상태 쪽에서. 그렇다고 하면 오르가시온이 말 몇 마디 한 걸로 승자의 여유를 만끽하는 게 이해가 돼. 이걸로 내가 자아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됐을 거라고 확신한 거지. 마치 사춘기 반항아처럼, 오래지 않아 공작과 갈라서게 될 거라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근거라면 확실하다.

이미 발생한 오류라는 측면에서.


‘고대인의 모든 지혜가 집대성된 신살병기가 완벽하게 재현됐다면, 거기에 나라는 영혼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었을까? 핍진성 논란 나기 딱 좋은 자의적 전개야. 하지만 공정상의 문제라고 하면 말이 된다. 파벨이 애초에 미완성 상태였을 경우, 바이러스 침투에 잘 저항하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


그런 추론 끝에 눈살을 찌푸린 유은석을 보며, 오르가시온은 선심이라도 쓰듯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너무 그렇게 좌절하지는 말게나. 그리 버림받은 존재가 마누스뿐인 것은 아니니. 예를 들면, 마녀 또한 똑같지. 그 영혼의 구렁텅이 또한 인간일 수는 없는 존재라네. 근원부터가 결코 축복받아선 안 될······ 시궁창의 연꽃일지니. 아무튼 오늘은 이쯤 하지. 한동안은 몸을 사리길 권장함세. 공작의 눈이 닿지 않는 아카데미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움직이게나.”


나타났을 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검은 뿔의 여운 속.

유은석은, ‘시궁창의 연꽃’이란 비유를 오랫동안 곱씹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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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2 아우루
    작성일
    24.05.10 10:58
    No. 1

    다음편이 안올라왔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7 비벗
    작성일
    24.05.10 18:31
    No. 2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어제는 정기휴재일이었습니다. 원래 일요일 목요일이 휴재일이지만, 지금 연재가 이튿날 새벽으로 밀려 있는 터라... 월화수금토 밤~다음날 아침 사이에 올라온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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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영애의 호위기사로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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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Chapter 4 – 인간의 자격 (5.) +1 24.05.13 35 2 19쪽
24 Chapter 4 – 인간의 자격 (4) 24.05.12 35 5 16쪽
23 Chapter 4 – 인간의 자격 (3) +1 24.05.10 40 5 16쪽
» Chapter 4 – 인간의 자격 (2) +2 24.05.09 49 5 17쪽
21 Chapter 4 – 인간의 자격 (1) +2 24.05.08 53 4 16쪽
20 Chapter 3 – 목격자와 증인 (6.) +1 24.05.06 54 5 16쪽
19 Chapter 3 – 목격자와 증인 (5) 24.05.04 53 5 16쪽
18 Chapter 3 – 목격자와 증인 (4) 24.05.04 58 6 16쪽
17 Chapter 3 – 목격자와 증인 (3) 24.05.02 65 7 14쪽
16 Chapter 3 – 목격자와 증인 (2) +3 24.05.01 79 7 18쪽
15 Chapter 3 – 목격자와 증인 (1) 24.04.30 85 6 16쪽
14 Chapter 2 – 신마저 죽이는 칼 (7.) +2 24.04.27 101 7 15쪽
13 Chapter 2 – 신마저 죽이는 칼 (6) +1 24.04.26 101 5 15쪽
12 Chapter 2 – 신마저 죽이는 칼 (5) +1 24.04.24 106 7 16쪽
11 Chapter 2 – 신마저 죽이는 칼 (4) +1 24.04.23 107 7 15쪽
10 Chapter 2 – 신마저 죽이는 칼 (3) +1 24.04.22 115 7 16쪽
9 Chapter 2 – 신마저 죽이는 칼 (2) +4 24.04.20 132 9 16쪽
8 Chapter 2 – 신마저 죽이는 칼 (1) 24.04.18 151 3 16쪽
7 Chapter 1 – 마녀의 사이드킥으로서 (6.) +2 24.04.17 164 4 15쪽
6 Chapter 1 – 마녀의 사이드킥으로서 (5) +1 24.04.15 173 6 16쪽
5 Chapter 1 – 마녀의 사이드킥으로서 (4) 24.04.14 203 5 15쪽
4 Chapter 1 – 마녀의 사이드킥으로서 (3) +1 24.04.13 246 10 15쪽
3 Chapter 1 – 마녀의 사이드킥으로서 (2) +2 24.04.11 298 10 16쪽
2 Chapter 1 – 마녀의 사이드킥으로서 (1) +4 24.04.09 406 9 15쪽
1 Prologue +1 24.04.08 508 1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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