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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찾는 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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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작품등록일 :
2022.10.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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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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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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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841

작성
22.11.2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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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7화

DUMMY

카이델은 병사에게 다가갔다.


“세페르 자작은 어디에 계시지?”


거래는 우두머리와 하는 게 가장 빠른 법이었다. 몇 단계를 거쳐 이야기가 전달되는 것보다는 직접 말하는 게 낫다. 그리고 카이델에게는 그럴 수 있는 권력이 있었다.


“음···그건···.”


어물거리며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던 병사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는 허리를 푹 숙였다.

카이델은 뒤를 돌아보았다.


“어서 오십시오. 그대가 바로 카이델 알로이스 백작님이시로군요.”


백발이 듬성듬성 보이는 남자가 그의 앞에 섰다.

남자를 감싼 건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옷이었고,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위를 긴장하게 만드는 기운이 흘렀다.

누가 봐도 그 사람은 높은 직급이었다. 최소한 창고 관리인 이상.


‘······.’


하지만 분명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카이델의 정체를 알면서도 당당하게 그 앞에 서는 존재. 이런 곳에서 그런 사람은 흔하지 않다.


‘흠···. 그렇다면 혹시?’


카이델은 한가지 가능성을 머리에 떠올리며 앞으로 한발 내디뎠다. 그의 예감이 맞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협상 상대는 없다.


“나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저분이 알로이스 백작님이라는 걸 어떻게 압니까? 우리는 카이델 님의 얼굴을 모르지 않습니까.”


남자의 뒤에서 튀어나온 이가 그의 말에 반발했다.

카이델은 그제야 남자 뒤에 몇 사람이 동행했음을 깨달았다. 그만큼 남자의 존재감은 주위가 묻힐 정도로 남달랐다.


“그렇습니다. 전쟁영웅이 저렇게 왜소할 리가 없습니다.”

“차라리 그 뒤에 서 있는 자라면 모를까.”


그들은 카이델 뒤쪽에서 짐을 옮길지 말지 고민하며 어정쩡하게 서 있는 윌을 가리켰다.


‘증거를 보여야 하나?’


흔히 하는 오해였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손을 만지작거렸다. 증거라면 있다. 그 손에 끼워진 알로이스 백작의 문장이 그 증거였으며, 마차에 달린 깃발 또한 증거 중 하나다.

그걸로 믿을 수 없다면 왕에게 직접 확인하라고 하면 되고, 실력을 보여도 될 것이다.


뭐든 요구해보라는 듯 그가 꼿꼿하게 어깨를 펴고 있을 때였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남자는 의혹을 품는 것보다 오히려 그 말을 건넨 인물에게 쓴소리를 했다. 낮고, 침착하게 울리는 그 소리에도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은 움찔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감히 여기에 와서 알로이스 백작을 사칭하는 멍청한 놈은 없을 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말에는 네가 가짜면 정말 멍청한 새끼라는 뜻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곳은 수많은 몬스터의 습격이 이어지는 알로이스. 임명되는 백작마다 죽거나 도망가기에 바쁜 지역이었다.

그리고 도적이 노릴 정도로 풍족한 곳도 아니다.


그는 카이델의 뒤편을 보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저쪽엔 메이슨이 있지 않으냐.”

“···?”


카이델은 메이슨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얘네가 메이슨을 알지?’


하지만 그의 의문이 더 깊어지는 일은 없었다.


“도련님이 계셨습니까?”

“보이지 않으셔서 몰랐습니다.”

“······.”


그들은 자신이 메이슨과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조금도 숨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련님?’


그 말이 가리키는 건 하나밖에 없다.


“너···이쪽 가문 사람이었나?”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페레스 루엘. 이곳을 관리하는 세페르 자작입니다.”


대답이 돌아오기 전, 자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루엘···.”


그는 세페르 자작의 성을 다시 입에 대어 보았다. 분명 같은 발음이 바로 얼마 전에 들린 것 같았다.

카이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다시 메이슨에게로 향했다.


“우선 이쪽으로 오십시오.”


하지만 이번에도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세페르 자작은 뒤를 돌아 앞서 걸어갔고, 뒤에 서 있던 자들은 옆으로 비켜서며 그들에게 길을 터주었다.


그사이를 지나는 카이델을 보며 그들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마음속에 아직 의문이 남은 듯 끊임없이 그를 힐끔거렸다.


‘저게 알로이스 백작.’

‘전쟁영웅?’


역시 그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던 것이다.





*







그들이 이끌려간 곳은 성의 응접실이었다.

도시에서 느껴지는 이미지 그대로 필요한 물품만 갖춰진 깔끔한 장소였다. 하지만 소파만큼은 최고급품을 쓴 것인지 앉는 사람을 포근히 감쌌다.

그들 앞에 놓인 건 귀족들이 즐기는 우아한 홍차가 아니라, 머그잔에 가득 담긴 어두운 빛깔의 차.


“이곳에서 즐겨 마시는 차입니다. 입에는 쓰지만, 기력 회복엔 좋습니다.”


카이델은 고개를 끄덕인 뒤,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의 말대로 확실히 쓰다. 하지만 몸에 좋은 것들에서 자주 느껴지던 맛이기도 했다. 잔을 내려놓은 카이델은 그를 보았다.


‘나보다 작위가 낮아서 그런가?’


자작의 태도는 퍼렌도 백작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사용했으며, 행동에 예의가 넘치고, 카이델을 하대하는 일도 없다.


“음···.”


카이델은 말을 골랐다.

지금 응접실에 있는 건 카이델과 메이슨, 케일이었다. 상대편에 앉은 건 페레스 자작과 그 보좌인 듯한 인물 한 명.


그들의 눈치를 슬쩍 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설명해줄 수 있나?”


자작의 나이는 그보다 많다. 하지만 작위는 낮았다. 게다가 여기는 카이델의 영지.

그는 일단 편하게 말해보기로 했다.


카이델에 대해 잘 안다면 그가 평민 출신이라는 것도 알 것이고, 예의범절에 실수가 있더라도 이해해줄 것이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지금, 대단히 힘든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세페르 자작은 가벼운 카이델의 말투에도 눈썹 한번 꿈틀대지 않았다.

나이가 몇이든, 중요한 건 작위. 그가 상대를 자기 시종처럼 대하지 않는다면 문제 될 건 없었다.


“어느 정도로?”

“카프렌의 도시 안까지 몬스터가 밀고 들어가서, 사람들이 성에 모여 방어 중이라고 합니다.”

“뭐?”

“흠···.”

“······.”


카이델은 화들짝 놀라며 자작과 케일, 메이슨을 순서대로 바라보았다. 그가 이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모든 게 끝나있을 거라더니, 알로이스의 주요 도시인 카프렌은 함락 직전이었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나?”


한가하게 차나 홀짝이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세페르 자작은 그를 말리며 정중히 앉으라는 손짓을 보냈다.


“덕분에 저희 병력이 그쪽으로 많이 간 상태라 힘들다는 뜻이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에선 그런 건 흔한 일입니다.”

“······.”

“그건 맞습니다, 백작님. 몬스터가 몇 번이나 도시까지 쳐들어갔기에 카프렌의 성은 온갖 마법을 쏟아부어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실제로 건축 당시, 능력 좋은 마법사가 직접 실험해봤다는 일화가···”

“그래. 그건 이해했다.”


흔한 일이라고 해서 걱정하지 않을 순 없다.

카이델은 눈살을 찌푸렸으나 다시 자리에 앉았다. 주인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에 카프렌은 더욱 힘들 것이다.


“카프렌은 걱정하지 마시고, 일단 한 가지 일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일?”


그가 관심을 갖자, 세페르 자작은 보좌관이 건네는 지도를 그 앞 테이블에 펼쳤다. 이곳을 노리는 적에게 넘어가면 꽤 위험할 정도로 주변 지형이 상세히 나온 지도였다.

자작은 그곳에 보이는 세페르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 북쪽으로 가시면 산이 나올 겁니다. 이것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시면, 나오는 수정에 이것을 뿌려주시면 됩니다.”


간단히 설명하며 자작이 차례로 꺼내는 것은 특정 위치로 고정된 나침반, 무언가가 담긴 가죽 주머니였다.


“전쟁영웅이시니, 그만한 역량을 보여주시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카이델은 나침반을 들어 이리저리 살폈고, 세페르 자작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가볍게 말했다.


“······.”

“그리고 이곳 여관에 이야기해두었습니다. 지내시는 동안 마음껏 사용해주십시오.”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을 챙기면서 카이델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단 여기는 그의 영지이니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은 도와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백작인 자신이 할 일인가에는 작은 의문이 생겼다.


‘···이게 맞나?’


보통 이쯤에서 튀어나와야 할 메이슨의 반대 의견이 나오질 않았다. 그의 보좌로 온 주제에 이 중요한 자리에서 한마디도 없다.

카이델은 메이슨을 흘겨보았다.


“그는 제 둘째 아들입니다.”

“···?!”


이번에도 카이델의 의문을 해소해주는 건 세페르 자작이었다.


“폐하를 보좌하는 역으로 왕성으로 가더니,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는구나.”

“···이걸 받아주십시오.”


메이슨은 대답하기 껄끄러운 듯 말을 돌리며 성벽 기사단에서 받은 서신을 자작에게 건넸다.


“······.”


그제야 카이델은 왜 메이슨이 백작의 몸으로 심부름 따윌 하는 것에 화내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새끼가···자기네 가문이라고 봐준 건가?’


그때도 지금도 메이슨이 상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이유는 그 자신이 세페르 자작가문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알로이스 백작 보좌보다 집안의 문제에 더 마음이 기운 모양이다.


“아, 그리고 지금 저희는 물자가 부족하지 않으니 가져오신 물품들은 알로이스 백작님께서 사용하셔도 됩니다.”

“······그건 고맙군.”


이로써 가져온 식자재를 모두 자신의 물자로 흡수하려던 카이델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쁘지는 않았다. 세페르 자작과의 이야기는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치려던 길에서 단단히 발목을 잡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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