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엔키유 님의 서재입니다.

영지 찾는 영주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엔키유
작품등록일 :
2022.10.31 14:31
최근연재일 :
2022.12.01 23:3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0,977
추천수 :
373
글자수 :
141,841

작성
22.11.03 07:30
조회
680
추천
25
글자
13쪽

3화

DUMMY

대장간은 도시의 외곽에 있었다.

그 앞까지 카이델을 안내한 부하는 슬쩍 옆으로 몸을 피했다.


우당탕탕!


“히익?!”

“뭐, 뭐야!”


카이델은 대장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진열대 위로 이가 빠진 검을 집어던졌다. 이번만큼은 말로 끝내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구경하던 손님들은 놀라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주위엔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정적 속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쓰윽 몸을 일으켰다.


오랜 기간 망치질을 한 덕분에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은 팔, 카이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 산만한 덩치.

위압감을 내뿜으며 대장장이는 성큼성큼 걸어와 카이델의 앞에 섰다.


그는 불쾌함을 숨기지도 않았다.

고개를 삐딱하게 들고서는 눈만 아래로 내려다보는 모습은 웬만한 사람은 오금을 저리게 할 듯했다.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행패냐?”


대장장이는 그런 자기 모습이 상대를 압도한다는 걸 알았다.

일부러 내리 깐 목소리는 그의 귀에도 퍽 위협적인 게 마음에 들었다.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


하지만 그런 건 카이델에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생사를 오가던 전장을 뛰어다닌 그가 간단히 주눅들 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던진 검을 보라며 턱짓했다.


대장장이는 욕이 차올랐지만, 우선 떨어진 검을 손에 들었다.

이 행동이 자신을 이해시키지 못했을 경우, 뼈도 못 추리게 만들어주겠다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

“······.”


검을 든 그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그리고 한참을 이리저리 살피던 그의 미간은 붙을 듯 좁혀졌다. 검의 손잡이 안쪽, 주인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작은 표식을 발견한 것이다. 그건 대장장이들만 알아보는 표식이었고, 이 검이 여기서 태어났다는 걸 증명했다.


하지만 그걸로 문제가 끝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건 대장장이의 짜증을 부추겼다.


“네놈이야말로 검을 이따위로 쓰고 갖고 와?!”


단순히 날이 무뎌지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이며, 날을 갈아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엉망진창 이가 빠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뭘 벤 거야?’


제 주제를 모르고 강철이나 단단한 바위라도 내려친 건가. 대장장이는 한탄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그건 오히려 검을 만든 자신이 더 화를 내야 할 부분이었다. 실제로도 이가 다 빠진 날을 보자 속이 뒤틀리고,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게다가 자기 잘못도 모르고 여기 와서 행패를 부리다니.


“하하···.”


카이델은 웃었다.

유쾌한 웃음은 아니다. 오히려 황당함을 넘어 분노를 담아낸 웃음이었다.


‘어떻게 된 게 이 상황을 제대로 아는 새끼가 하나도 없어.’


식자재도 그렇고, 무기도 그랬다.

카이델이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하는지,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한 놈이 하나도 없다. 그가 직접 증거를 던져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짜증이 치솟았다. 출발하기 전부터 이런 일에 휘말려 삐걱댈 줄이야.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해결할 때다.


그는 대장장이가 손에 쥔 검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거 오늘 받은 무기다.”

“헛소리.”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장장이의 소리가 이어졌다. 이렇게 곧바로 부정되는 것 역시 카이델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똑같은 일을 겪은 직후였으니까.


“후···그래. 역시 그렇게 나오는군.”


카이델은 대장간을 둘러보았다. 던진 검에 흐트러진 대장간 한쪽에 손에 익은 스타일의 롱소드 하나가 보였다.

그는 그걸 집어 대장장이 앞에 섰다.


“만약 내가 진다면 얌전히 물러나는 건 물론이고, 네놈이 쓸 무기, 여기 바닥에 구른 것들까지 모조리 사들이도록 하지.”

“하하하! 아주 자신감이 넘치시는군, 그래.”


대장장이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 역시 기분 좋은 종류는 아니었다.

검을 함부로 다루는 놈에게 팔 물건은 없다. 하지만 힘만 믿고 날뛰는 놈에게 매운맛을 보여줄 좋은 기회였다.


그는 대장간에 있는 것 중 가장 비싸고 괜찮은 것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야심작이며, 저런 검 하나로 사기 치는 놈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물건이었다.


“그럼 어디···. 내가 먼저 공격하도록 하지!”


대장장이는 세차게 땅을 쳤다.


챙!


곧 두 검이 강하게 부딪쳤다.

대장장이는 언제나 그 덩치만큼이나 울룩불룩한 근육을 과시하며 상대를 압도했다. 이번에도 그게 통했으리라 미소를 지었다.


챙, 채챙!


“······.”


그 뒤로 신난 듯 쏟아지는 공격을 맞이하는 카이델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초보잖아.’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꽤 값이 나가 보이는 검을 드는 상대를 보며 기대했던 것도 잠시뿐.

처음 검이 부딪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카이델이 느낀 건 실망감이었다.


상대의 검술이 형편없다.

평민이었던 그 역시 어느 저명한 가문의 검술 따윌 물려받은 건 아니다. 전장을 뛰어다니며 곁눈질로 배운 게 다였고, 여러 가지가 잡다하게 뒤섞여있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우아한 검술을 요구한 건 아니다.


‘적어도 싸울 맛은 있을 줄 알았지.’


이렇게 형편없을 줄 몰랐다.


방어만 하던 카이델은 조심스럽게 검을 고쳐 쥐었다. 신중히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잘 공격해야 한다. 상대가 죽지 않도록 잘.


그의 검은 상대를 죽이는 데만 사용했기에, 초보자를 상대로 죽이지 않고 이기려면 특별히 더 신경 써야 했다.


그는 꽉 쥔 검을 신중히 내질렀다.


챙!


“···윽?!”


그리고 그 검을 받은 대장장이는 당황했다. 상대가 휘두르는 공격 하나하나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방어밖에 할 줄 모르는 애송이가 어디서 겁 없이 덤비느냐고 호통치려 했다. 약속했던 것들은 지킬 필요도 없으니 썩 꺼지라고 내쫓으려 했다.


‘이게···무슨?!’


하지만 상대의 공격 앞에선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


촤악-


날카롭게 파고든 검이 아슬아슬하게 목 옆을 스쳤다. 피부 위에 작은 자국조차 남기지 않을 거리였지만, 그곳을 기점으로 소름이 쫙 퍼져나갔다.


“쯧, 잘 안되네.”


대장장이가 혼이 나간 사이, 카이델은 성큼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는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쾅!


“크헉···!”


그대로 땅에 내리꽂았다.


“더 싸울 거냐, 아니면 책임지고 해결을 할 거냐. 어?”

“으···으윽···.”

“검으로 베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그래도 그 몸을 감싼 근육이 멋은 아니었는지, 피해가 심한 건 아니었다. 카이델은 대장장이를 보며 검을 들었다. 찌르려는 건 아니다. 찌를 생각이었으면 지금 살아있지도 못했다.

그냥 좀 더 겁을 주려는 것이었다.


그는 성큼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멈춰라!”

“······.”


그리고 그때, 경비병이 도착했다.

일단 카이델에게 경고를 주며 주위를 살피던 경비병들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검을 버리고 얌전히 손을 들어라.”


이놈은 깡패라고.


물론 카이델은 그들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선량한 사람에게 너무한 거 아닌가?”

“움직이면 바로 공격하겠다.”

“그러지 말고 먼저 공격하게 해줄 테니, 덤벼라.”

“큭···. 공격!”


앞에 선 경비의 신호에 맞춰 그들은 일제히 덤벼들었다.


카이델은 그들의 움직임을 천천히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 곧 정면에서 내리긋는 검은 옆으로 피하고, 찌르는 공격쯤은 몸을 살짝 비트는 것으로 흘려보냈으며, 횡으로 그어지는 검날만은 귀찮은 듯 막아냈다.


챙!


살의가 없는 검 따위 받아내는 것쯤은 그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어디 보자···.’


하지만 경비병들은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카이델은 롱소드를 손으로 몇 번 튕겨보았다. 이 정도면 경비병이 걸친 저 단단한 갑옷을 뚫진 못할 것 같았다.


“큭···얌전히 잡혀라!”


달려드는 경비병을 보며 검을 양손으로 쥔 카이델은 다리에 힘을 주어 섰다. 그리고 자기 앞으로 내리꽂아지는 검을 강하게 쳐냈다.


챙!!


덕분에 경비병의 자세는 크게 무너졌고, 완벽한 빈틈이 나타났다.

카이델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쾅!


그리고 갑옷의 가슴부위를 힘껏 쳤다.


“컥···으윽···.”


경비병은 그 충격으로 뒤로 나자빠졌다. 검이 갑옷을 뚫지 않았으니 생명에 지장은 없다. 하지만 한동안 일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카이델이 다음 희생양을 고르기 위해 눈을 돌리자, 경비병들은 모두 주춤거렸다.

어느새 지원요청까지 충실히 했는지, 그들의 뒤에서 몇 명의 경비병이 더 몰려오고 있었다.


‘아주 다 불러들이지.’


수도의 모든 경비병이 몰려오는 게 아닐까.

카이델이 웃으며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이게 다 무슨 소란이지?”


경비대장까지 등장했다.

그 덩치와 분위기만으로도 일반 경비병보다는 강할 듯했다. 카이델은 이제 좀 상대할만한 놈이 나타났다며 입맛을 다셨다. 본래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기왕 싸울 거라면 제대로 된 놈이랑 싸워야 하는 법이다.


“저···저놈 좀 잡아주십쇼!”

“대장님. 저놈은 강합니다.”

“어디서 굴러먹던 도적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 강한 놈이 나타났다고 쪼르르 달려가서 이르는 꼴이 영 우스웠다.

특히 지금 당장이라도 잘못했다고 빌 것 같았던 대장장이까지 경비대장 뒤에 숨으니, 카이델은 우선 저놈부터 잡고 보자는 생각이 번뜩였다.


“······.”


경비대장이 말없이 앞으로 걸어 나왔을 때, 카이델은 기대를 품으로 검을 제대로 손에 쥐었다.


“부하들의 잘못을 용서해주십시오.”

“···뭐?”


하지만 그 기대를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어···?”

“대, 대장님!”

“이게 무슨···.”


그는 검 한번 휘두르지 않고, 카이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안 싸워?”

“제가 어찌 감히 검을 마주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 기대를 배반하는 짓인데.’


카이델은 오히려 기분이 나빠졌고, 경비병들도 당황하며 그의 뒤로 다가붙었다.


“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대장!”

“시끄럽다. 너희도 어서 무릎을 꿇지 못하겠나!”

“네?!”


경비대장은 오히려 아직 자기 뒤에서 멀뚱히 서 있는 부하들을 다그치며 빨리 무릎을 꿇으라 명령했다.

쭈뼛쭈뼛 움직이던 경비병은 결국 모두 카이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어?”


그 모습을 바라보던 대장장이 역시 은근슬쩍 그들 속에 섞였다.


“너희는 모르겠지만, 이분이 바로 카이델 알로이스 백작님이시다.”

“···!!”

“그 유명한···.”

“배, 백작님.”


그들은 사색이 되어 고개를 푹 숙였다.


‘뭐야. 직급이 한 단계 올랐다고 날 알아보나?’


카이델은 혀를 차고는 롱소드를 본래 자리로 되돌렸다. 그리고 이가 빠진 검을 집어 그들 앞으로 툭 던졌다.


“내가 일부러 시비를 걸러 온 건 아니야. 잘 봐라. 너희가 보기에도 이게 제대로 된 무기인지. 너는 이걸로 싸울 수 있냐? 눈이 있으면 똑똑히 보라고. 내가 고작 이거 하나 어떻게 해보겠다고 온 사람처럼 보였어? 어?”


‘처음부터 말을 하던가···.’


고개를 푹 숙인 대장장이는 입술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욕설을 퍼부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알로이스 백작이라는 말만 했어도, 상황이 이 지경으로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고.”


대장장이가 속으로 욕을 퍼부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카이델의 잔소리 섞인 투덜거림도 끝이 났다.


“새로운 무기로 모두 교체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무, 물론입니다.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다 일어나.”


카이델이 손을 까딱거리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윽···.”

“큭.”


하지만 훈련이 부족한 몇 명은 다리를 절뚝였다.


“쟤네는 더 훈련해야겠다.”

“명심하겠습니다.”

“······으,윽.”


카이델은 홀가분한지 찝찝한지 모를 상태로 되돌아갔다. 경비병이 백작님을 걷게 할 순 없다고 호들갑을 떨며 마차를 부른 덕분에 돌아오는 데 시간이 더 걸린 참이었다.


“후···이제 다른 문제는 없나?”

“자잘한 문제는 저희가 다 해결했습니다.”

“······.”


문제가 그 두 가지만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카이델은 머리가 아팠다.

백작이고 뭐고, 반란군을 섬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떠들썩하게 만들어줄까 하는 마음이 마구 치솟는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조심히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카이델 알로이스 백작님이십니까?”


‘또···무슨 시비를 거는 건 아니겠지.’


이제 다툼이라면 이골이 난 그는 굳은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뒤를 돌아봤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영지 찾는 영주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30화 +1 22.12.01 160 6 11쪽
29 29화 22.11.30 128 6 10쪽
28 28화 22.11.29 141 3 10쪽
27 27화 +1 22.11.28 183 4 10쪽
26 26화 +1 22.11.26 186 4 10쪽
25 25화 +2 22.11.25 196 5 10쪽
24 24화 22.11.24 194 3 10쪽
23 23화 +1 22.11.23 198 5 10쪽
22 22화 +1 22.11.22 213 5 11쪽
21 21화 +2 22.11.21 231 5 11쪽
20 20화 +1 22.11.20 248 7 9쪽
19 19화 +1 22.11.19 247 4 10쪽
18 18화 22.11.18 255 5 10쪽
17 17화 22.11.17 301 11 10쪽
16 16화 22.11.16 294 11 10쪽
15 15화 22.11.15 316 13 10쪽
14 14화 +1 22.11.14 337 11 10쪽
13 13화 22.11.13 386 11 11쪽
12 12화 22.11.12 394 16 11쪽
11 11화 22.11.11 394 14 10쪽
10 10화 22.11.10 422 12 10쪽
9 9화 +1 22.11.09 447 16 11쪽
8 8화 +1 22.11.08 471 15 10쪽
7 7화 +1 22.11.07 506 16 11쪽
6 6화 22.11.06 553 15 11쪽
5 5화 +2 22.11.05 600 18 11쪽
4 4화 +3 22.11.04 642 19 11쪽
» 3화 +5 22.11.03 681 25 13쪽
2 2화 +6 22.11.02 739 31 11쪽
1 1화 +20 22.11.01 915 5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