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엔키유 님의 서재입니다.

영지 찾는 영주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엔키유
작품등록일 :
2022.10.31 14:31
최근연재일 :
2022.12.01 23:3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1,040
추천수 :
373
글자수 :
141,841

작성
22.11.10 07:30
조회
424
추천
12
글자
10쪽

10화

DUMMY

마지막까지 간신히 좋은 얼굴을 유지했던 퍼렌도 백작은 방 문이 닫히자마자 와락 인상을 구겼다.

참았던 짜증이 폭발하여 물밀듯이 몰려왔다.


“그 애송이 녀석이 잘도···!”


그는 테이블에 놓인 잔에 포도주를 따라 단숨에 마셨다.


백작의 작위를 받았다는 전쟁영웅이 영지를 지나간다기에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불러들였다.

전쟁영웅이 다녀갔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소문을 낼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에겐 그저 진귀한 인물을 구경하겠다는 심심풀이 정도였다.


“평민이었던 주제에 감히.”


그런데 그놈이 꼴에 백작이라고 으스대며 마치 자신과 동등한 듯 행동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귀족이라고 같은 귀족이 아니다. 그와 자신은 근본부터 다를 터였다.


테이블을 손으로 톡톡 두드리는 퍼렌도 백작의 마음은 부글부글 끓어 넘칠 듯한 쇳물 같았다.


한잔의 포도주로는 그의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잔을 채우며 옆에 놓인 과일을 입안에 던져넣었다.


“후우.”


그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려는 듯 긴 숨을 내쉬었다.


“···오늘의 굴욕은 내일 갚아야 하는 법이지.”


그리고 이번엔 여유롭게 포도주를 입에 담았다.





*





다음 날,

눈을 뜬 카이델은 느긋하게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이런 형식의 대련은 보통 아침에 하기 때문이다. 노숙이 아닌 방에서 잔 덕분에 그는 개운한 기분으로 몸을 쭉 폈다.


‘···생각 이상으로 좋은 방을 줬군.’


대충 아무 방이나 던져줄 줄 알았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퍼렌도 백작은 그에게 귀빈의 방을 내어주었다.

카이델에게 아직 자각은 없었으나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백작인 그는 당연히 일반 기사들의 숙소 따위의 방을 쓸 수 없다.

그런 건 상대를 모독할 때나 쓰는 방법이었다.


그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훈련을 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넓은 방에는 적당히 어둡고 무거운 가구들이 놓여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고급품이었다.


발에 쓸리는 융단은 부드럽고, 쓸데없는 그림도 여기저기 걸려있다.


‘무엇보다 저 침대···.’


이 세상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폭신함과 포근함이었다. 왕궁의 기사단 숙소 침대도 꽤 좋았다. 하지만 폭신함이 없는 딱딱한 형태였다. 그 이외에 그가 써본 간이침대나 풀숲에선 폭신함을 기대할 수 없다.

그의 집에 있는 것 역시 딱딱한 나무 위에 짚과 천을 깔아놓은 게 전부였다.


“앞으로 이런 곳에서 잘 수 있는 건가?”


그렇다면 꽤 괜찮을지도.

그는 처음으로 백작이라는 작위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았다.


그리고 그런 카이델의 생각을 더욱 굳혀주려는 듯, 아침부터 대우가 남다르게 좋았다.


그는 깨끗하고 따스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었고, 옷을 갈아입는 것조차 시종의 손을 타니 별 불편함도 없이 갈아입었다.

거기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시종이 가져온 음식을 먹었는데 그 또한 모두 최상품이었다.

게다가 어제보다 더 신경 써서 준비했는지, 고기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건 좀 아까웠지만.’


천천히 복도를 걷던 그는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고기는 역시 씹는 게 맛이다. 오랫동안 질겅질겅 씹는 사이에 배고픔도 다스려지니 더욱 좋다. 순식간에 입에서 사라진 고기를 멀거니 바라보는 그가 처량했던지 시종들은 서둘러 고기를 보충하기에 바빴다.

덕분에 아침부터 그는 꽤 포식했다.


“···근데 왜 배가 아프지.”


너무 좋은 걸 먹으면 탈이 난다더니.


그의 배가 놀라게 하지 말라는 듯 꾸르륵꾸르륵 작게 울었다.




*





“며칠만 더 묵어가면 좋은데 말입니다.”

“우리가 어디 가서 이런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왜 곧장 대련을 합니까···.”


카이델의 뒤에 선 기사들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 쑥덕댔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연무장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카이델이 나타나자 바로 대련의 장이 마련되었다.

정식 결투도 아니기에 정해진 규칙도 뭣도 없다. 딱히 준비할 것도 없었다.

그저 날이 서지 않은 훈련용 무기만 쓰면 그만이다. 그리고 상대가 패배를 인정하면 끝이다.


“여긴 한가한 사람이 많군.”


카이델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런 단순한 대련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특히 퍼렌도 백작은 눈앞의 대련을 안주로 삼으려는 듯 길게 늘어진 천의 그늘 아래에 테이블을 놓고 우아하게 포도주를 음미하고 있었다.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단단히 벼르고 있던 모양이었다.


“알로이스 경은 이쪽으로 나와주시오.”


카이델이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뒤에 있던 기사들이 냉큼 말을 던졌다.


“대련에서는 상대를 죽이면 안 된다는 거 기억하십쇼!”

“실수로라도 그러면 안 됩니다!”

“좋은 말입니다. 지금 들은 말을 꼭 머리에 각인하고 기억하십시오.”


메이슨의 말을 끝으로 카이델은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카이델이 질 가능성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저 성격상 속이 뒤틀리거나 실수로 상대를 해칠 일이 걱정일 뿐이었다.

전쟁터에선 그게 당연시되는 일이지만, 대련은 다르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들은 독수리 무리 한가운데 떨어진 병아리 신세가 된다.


‘아니 그건 다른가?’


기사는 머리를 기울였다.


반대다. 병아리 무리에 떨어진 독수리다. 그렇다면 이 무리를 해치우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건 간단했다.

단지 그 여파가 두렵고 귀찮을 뿐.


카이델이 중앙에 서자 호기심 어린 눈이 중앙에 몰렸다.


“저게 알로이스 백작님.”

“그 많은 적을 쓸어버렸다는.”

“전쟁영웅!”

“전쟁영웅?”

“······진짠가?”


마지막이 의문으로 끝나는 건 그가 그들이 기대한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려면 그는 덩치가 산만하고 우락부락한 근육에 창도 씹어먹을 무시무시한 인간이어야 했다.


하지만 카이델은 남들보단 약간 작은 키에 덮인 옷자락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운 적당한 근육과 검은색 머리칼을 지닌 조금 잘생긴 청년에 불과했다.


잘생긴 건 좋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전쟁영웅은 그저 잘생기기만 한 인물은 아니었다.


실망감이 퍼지는 주변의 반응에도 그는 심드렁했다.

이미 왕궁에서도 그런 시선은 충분히 느꼈다.


“그리고 그와 대련할 행운의 기사들은 나오라.”


퍼렌도 백작의 지시에 두 사람이 중앙으로 걸어왔다.


두 사람.

분명 둘을 상대해달라고 했지만, 그게 ‘동시에’라는 뜻이라는 건 카이델도 지금 알았다.


“잘 부탁합니다, 백작님.”

“한 수 가르쳐주십시오.”


능청스럽게 웃는 얼굴은 그가 발한 말이 반대 의미라는 걸 가리켰다.

즉, ‘너 잘 걸렸다.’, ‘한 수 가르쳐주마.’라는 뜻이다.


퍼렌도 백작이 참견하는 건 거기까지였고, 기사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인물이 연무장 중앙에 섰다.


“각자 무기를 들어주십시오.”


시종들은 재빨리 세 사람에게 무기를 건넸다. 무기는 평범한 장검.

어느 검을 쓰더라도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 훈련용 검답게 적당히 무거웠다. 그는 혹시 벌어질지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검 끝을 손으로 찔러 보았다.


‘이 정도면 죽진 않겠군.’


푹 눌러도 뭉툭한 느낌이 들 뿐이었고, 날을 쓸어도 미미한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카이델은 만족스러웠다. 실수로 생명을 꺼뜨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이 무기는 저희 기사단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알로이스 백작님께서는 익숙하지 않으실 수 있겠으나 이해해주십시오.”


기사는 카이델의 마음도 모른 채, 미안한 듯 살짝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의 말뜻은 간단했다.

지더라도 검이 익숙하지 않다는 핑곗거리 정도는 제공해주겠다는 그 나름의 배려다.


“알았다.”

“······.”


하지만 카이델에게 그런 눈치는 없다. 아니 자신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가 없기에 더욱더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아까부터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은데. 배도 아프고.’


그런 것보다 당장 시급한 문제는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땅이 기울어질 정도로 어지럽고, 식은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다.


이유는 모른다.

그는 역시 너무 고급스러운 음식을 갑자기 먹은 탓이라 여겼다.


‘빨리 끝내고 쉬는 게 좋겠다.’


그렇게 결론지은 카이델이 고개를 들자, 기사는 그 눈 속에 담긴 재촉을 감지하며 말했다.


“어차피 대련일 뿐이니, 편한 마음으로 싸우십시오.”


그리고 그가 손을 높이 든 것으로 대련은 시작되었다.


탓-


두 기사가 동시에 땅을 박찼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검을 치켜들었다. 마치 먼저 검을 휘두르는 쪽이 승리인 듯한 광경에 카이델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적어도 기사라면 냉철한 판단력을 지녀야 하건만.


‘많이 움직이는 건 힘들고.’


어지러움과 복통이 겹친 그는 많은 움직임은 사양하고 싶었다. 저들의 검에 맞아 비틀거리는 것보다 땅을 잘못 디뎌 쓰러질 것이 더 걱정이다.


그렇다면 그의 싸움 스타일도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이델은 다리에 힘을 주며 섰다.


챙!


“···읏?!”


그리고 먼저 날아온 검을 막아 상대를 그대로 밀쳐낸 뒤, 다음 녀석에게는 온 힘을 실은 강한 공격을 선사해주었다.


퍼억!


연무장의 한가운데서 검과 검이 부딪혔다고 생각할 수 없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강하게 휘둘린 카이델의 검이 마치 둔기처럼 상대를 쳐낸 것이다.


쿵!


멀리 나가떨어진 기사는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왜 자신이 여기에 쓰러져있는지 순간 기억에 혼선이 왔다.


“···아직 항복이 아니라는 거 다 아니까, 빨리 덤벼라.”


그들의 상대는 아직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한 걸음도 떼지 않은 채로 그들을 쓰러트린 그는 마치 커다란 석상이나 성벽 같은 존재.


‘전쟁영웅.’

‘알로이스의 영주.’

‘알로이스 백작.’


카이델이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뇌리에 그 이미지가 강하게 박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영지 찾는 영주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30화 +1 22.12.01 162 6 11쪽
29 29화 22.11.30 130 6 10쪽
28 28화 22.11.29 142 3 10쪽
27 27화 +1 22.11.28 184 4 10쪽
26 26화 +1 22.11.26 187 4 10쪽
25 25화 +2 22.11.25 197 5 10쪽
24 24화 22.11.24 195 3 10쪽
23 23화 +1 22.11.23 199 5 10쪽
22 22화 +1 22.11.22 215 5 11쪽
21 21화 +2 22.11.21 232 5 11쪽
20 20화 +1 22.11.20 250 7 9쪽
19 19화 +1 22.11.19 249 4 10쪽
18 18화 22.11.18 256 5 10쪽
17 17화 22.11.17 304 11 10쪽
16 16화 22.11.16 296 11 10쪽
15 15화 22.11.15 319 13 10쪽
14 14화 +1 22.11.14 339 11 10쪽
13 13화 22.11.13 389 11 11쪽
12 12화 22.11.12 396 16 11쪽
11 11화 22.11.11 396 14 10쪽
» 10화 22.11.10 425 12 10쪽
9 9화 +1 22.11.09 449 16 11쪽
8 8화 +1 22.11.08 473 15 10쪽
7 7화 +1 22.11.07 509 16 11쪽
6 6화 22.11.06 556 15 11쪽
5 5화 +2 22.11.05 603 18 11쪽
4 4화 +3 22.11.04 644 19 11쪽
3 3화 +5 22.11.03 683 25 13쪽
2 2화 +6 22.11.02 742 31 11쪽
1 1화 +20 22.11.01 920 5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