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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님의 서재입니다.

영지 찾는 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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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작품등록일 :
2022.10.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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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1 23:3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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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5
추천수 :
373
글자수 :
141,841

작성
22.11.0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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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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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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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8화

DUMMY

잔당의 공격이 그게 끝이라고 여겼던 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들이 가는 길이 간단했던 게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카이델은 수도에서 알로이스로 가는 가장 빠른 길로 움직였고, 어린애라도 그가 갈 길목쯤은 짚어낼 수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습격을 맞이했다.


싸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상대도 그다지 강한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카이델이 짜증 난 이유는 계속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아무리 반란을 제압한 지 오래 지나지 않았다고는 해도.”


퍽-


카이델은 손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강하게 떨어뜨렸다.


“이 숫자는 너무하지 않냐?”


퍽-


그의 손에 들린 건 검이었다. 검집에 들어간 검. 그리고 그가 검집째로 강하게 내리찍은 건 눈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놈들의 어깨였다.

날카로운 검날이 아니기에 당연히 피가 낭자한 현장 따위도 아니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말해라.”


그는 팔다리가 묶인 채로 무릎 꿇린 자들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너희 배후엔 누가 있는지.”


습격한 잔당을 살려둔 이유는 간단했다.

단순히 운이 좋아 살아남은 놈들이 이렇게 체계가 잡혀 있을 리가 없다. 볼품없는 모습으로 습격하던 걸 비웃는 것도 잠시뿐.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들은 그럴듯하게 괜찮은 갑옷까지 걸치고 있었다.

게다가 제대로 지휘하는 놈까지 대동했다.


“큭, 말할 것 같으냐!”

“네놈을 죽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더 할 말은 없다. 죽여라.”

“······.”


최후까지 살아남은 놈들은 겁먹고 도망치거나 이를 악물고 끈질기게 버틴 놈들이었다. 아무래도 지금 잡은 놈들은 후자인 듯했다.


스릉-


카이델은 검집에서 검을 슬쩍 뺐다가 탁 소리가 나도록 집어넣었다. 그리고 고민했다.

이것들을 어떻게 할까. 이대로 죽이는 건 너무 간단하다.


“백작님, 어떻게 합니까?”

“죽일 겁니까?”


카이델의 검이 다시 검집에서 반쯤 튀어나왔다.

그러자 주위 기사들도 검을 뽑아 들고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의 앞에 무릎 꿇은 잔당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각오는 했으나 역시 죽음 앞에선 두려움이 앞섰다. 곧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며 침을 꿀꺽 삼켜내었을 때,


탁-!


돌연 카이델의 검이 소리를 내며 검집으로 쏙 들어갔다. 그는 검을 허리에 차며 시간 낭비했다는 듯 두 손의 먼지를 탈탈 털어냈다.


“······내버려 둬라.”

“네?”

“반란군은 발견 즉시 척결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이미 말 위에 올라탄 카이델을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기사뿐만이 아니라 잔당들도 마찬가지다.


“죽여라!”

“이걸로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진 마라!”

“출발한다.”


핏발 선 눈으로 화내는 놈들을 내버려 둔 채로 그는 말을 몰았다.

어차피 저들은 묶여있어서 도망갈 수도 없다. 주변에 동료가 있다면 살 것이고, 몬스터가 나타나면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순찰병에게 발견된다면 체포된다.


어차피 저들이 죽을 가능성은 크다. 그리고 어떻게 죽어도 깨끗하게 죽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직접 죽이지 않는 건 이제와서 손을 더럽히기 싫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귀찮았다.

전쟁영웅으로 얻은 게 귀찮은 것투성이라 한두 개쯤은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반란군 한두 명쯤 놓아줬다고 그의 명성에 금이 갈 리도 없다.


“하지만 배후가 있긴 있었습니다.”


카이델의 옆으로 말을 모는 메이슨이 조심히 말을 건넸다.


“그런가 보군.”


그래도 얻은 정보는 있다.

잔당을 지휘하는 인간의 존재. 그런 건 없다는 게 아니라 말할 수 없다고 한 시점에서 이미 그들은 새로운 정보를 내어준 셈이었다.


‘분명 주요 인물은 다 죽었을 텐데.’


잔당은 남을 수 있어도 그들을 이끌만한 놈은 하나도 남지 않았을 터였다. 그 정도로 통솔력이나 카리스마가 있는 놈은 끈질기게 추적해 모두 목을 베었다고 들었다.


‘일이 귀찮아지는군.’


그렇게 살아남은 놈들은 높은 확률로 카이델을 노릴 것이다. 그는 전쟁영웅이고, 그들에게는 원수나 다름없는 존재니까.

그게 아니어도 카이델의 목을 베는 것만으로도 사기가 오를 것이었다.


귀찮은 일에 귀찮은 상황이 더해졌다.

게다가 수중에 기대했던 돈이 들어오는 건 아득히 멀어 보였다.


그는 잠시 모든 걸 버리고 산에 은둔할까도 생각했다. 이 기사들이라면, 카이델은 영지로 가다가 죽었다고 전하라고 하면 해줄 것이다.


메이슨의 입을 막는 것도 간단했다. 영원히 입을 열 수 없게 만들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게 계획을 짜다가 문득 그는 ‘내가 왜?’라는 방향으로 생각이 전환되었다. 무서워서 피하는 거라면 차라리 낫다. 귀찮다는 이유로 거기까지 피하는 건 우스웠다.


“백작님, 전방에 또 사람이~”

“해치워.”


카이델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 머리 아프게 고민할 것도 없다. 그냥 몰려오는 놈들을 다 해치워버리면 되는 것이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신이 뒤로 빠지는 일은 없다. 그는 말에서 뛰어내리며 검을 뽑아 들었고, 다른 기사들 역시 달려들려던 찰나,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눈앞에 있는 놈들은 고작 10명 정도 되어 보였다. 카이델의 기사와 비슷한 숫자였으나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습격하기에 한참은 모자란 수다.


게다가 맨 앞에 선 사람은 항복을 알리려는 듯 깃발을 천천히 흔들어댔다.


“저희는 적이 아닙니다.”

“적이 아니면 뭐지?”


카이델은 그가 흔드는 깃발을 눈여겨보았다.

짙은 보라색 깃발을 배경으로 포도를 물고 있는 새의 형상 같은 것이 그려져 있다.


그의 시선이 깃발로 향한 것을 본 남자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뭔데.”


하지만 카이델의 검이 코끝을 향하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들고 있는 깃발이 확실히 보이도록 그 앞에 펼쳐 보였다.


“이, 이걸 봐주십시오.”

“뭐냐니까?”


카이델은 슬슬 짜증이 솟았다.

그게 뭐냐고 물으면 속 시원하게 말로 해주면 될 것을. 눈앞의 남자는 말을 빙빙 돌리고 있다. 마치 그가 이걸 알고 있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남자의 실수는 간단했다.

카이델은 귀족 가문의 문장을 일일이 외우고 기억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귀찮은 일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건 해치워야 할 반란군의 문장뿐이다.


“아, 기다리십시오. 그건 퍼렌도 백작가의 문장입니다.”

“···뭐?”


뒤로 숨었던 메이슨이 황급히 앞으로 튀어나와 깃발을 살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기억하는 그 문장이 맞다.


남자의 얼굴에도 그제야 화색이 돌았다.


“그, 그렇습니다. 저희는 퍼렌도 백작님의 기사입니다.”

“···진작에 그렇게 말하면 좋았잖아.”


카이델은 검을 집어넣었다.

굳이 저 말을 하는 데 빙빙 돌 필요가 있었을까. 귀족이라는 놈들 휘하 부하까지도 귀찮은 방법을 좋아했다.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알로이스 백작님께서 이곳을 지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복은 적뿐 아니라 아군에게도 간단한 일이었던 것이다.


카이델은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피곤하실 텐데, 저희 성으로 모시겠습니다.”

“······.”


굳이 여기서 기다린 목적이 초대라니. 의심스럽게 눈을 가늘게 뜨던 카이델은 우선 메이슨을 보았다. 보좌관이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귀족의 초대는 응하는 게 예의입니다.”

“우리는 영지로 가야 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나?”

“급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대답에 카이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지금 가장 급한 일 아닌가?’


영지에 도착한 뒤에나 그에게 제대로 백작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재물과 물자가 주어진다.

카이델에겐 그보다 급한 일은 없다.


그는 이번엔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까지 계속된 노숙 생활과 떨어져 가는 식자재로 지친 그의 기사들이 눈을 빛내고 있다. 카이델의 대답에 따라 그들의 기분은 천국에도 지옥에도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알았다. 앞장서라.”

“따라오십시오!”


남자의 얼굴엔 이제 미소까지 떠올랐고, 서둘러 말에 올라 앞장섰다.


“백작님.”

“백작님, 백작님.”


좋은 잠자리와 음식을 기대하는 기사들의 한껏 들뜬 음성이 카이델을 뒤따랐다. 그는 돌아보는 일도 없이 말 위에 오르며 답했다.


“알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도 않고?”


카이델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기사들을 내려다보았다.


“말에 타고 싶다는 거 아니냐?”

“어···맞습니다.”

“타라고.”

“정말이십니까?!”

“휴···.”


이미 출발한 카이델의 뒤로 희희낙락한 표정의 기사들은 모두 자기 말에 올라탔다.

말 위에 오르고 나서야 다시금 기사가 된 기분이었다.


저들을 따라가면 퍼렌도 백작의 도시로 들어갈 것이고, 그곳 병사는 물론 평민들의 눈이 그들에게 따라붙을 것이다.

그런 호기심 가득한 눈 사이로 거닐 때 기사가 자기 말도 못 타고 옆에서 걷는다는 건 훈련도 뭣도 아닌 굴욕이었다. 그런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나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지금과는 다르다.


그리고 카이델은 그렇게까지 나쁜 놈은 아니었다.


모두에 말에 탄 상태로 유유히 앞선 기사들의 뒤를 따랐다.


본래 가려던 길에서 한참을 벗어난 곳에 퍼렌도 백작의 도시가 있었다.

도시가 보이는 위치에 다다르자 남자는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펴며 손으로 그곳을 가리켰다.


“저곳입니다. 저기가 퍼렌도 백작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도시인 레이돌프입니다.”


카이델이 그에 맞춰 눈을 돌렸을 때 가장 눈에 띈 것은 우뚝 솟은 든든한 성벽이 아니라 그 뒤로 방대하게 펼쳐진 포도밭이었다.


‘그래서 포도인가?’


남자가 잘 보이도록 내밀었던 깃발에 그려진 포도가 떠올랐다.

단순하면서도 알기 쉬운 상징물이다.


카이델은 입맛을 다셨다.


오늘은 맛 좋은 포도주를 기대해도 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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