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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님의 서재입니다.

영지 찾는 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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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작품등록일 :
2022.10.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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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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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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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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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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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화

DUMMY

카이델의 뒤에 선 것은 강직한 기사가 아닌 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법한 남자였다.


‘한 대 치면 죽을 것 같은데.’


그게 남자에 대한 카이델의 첫인상이었다.

다만 비실대는 인상과는 다르게 짙은 붉은 눈빛만큼은 강렬히 빛났다.


“나 맞는데, 댁은 누구신지?”

“······.”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 강렬한 눈이 번뜩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백작님. 상대의 이름을 물을 땐 그런 말투를 쓰셔선 안 됩니다. 최소한 당신이라거나 조금 더 부드러운···.”

“그래서, 당신은 누구시냐고요.”


카이델은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기에는 지금 그의 인내심은 바닥이 나 있는 상태였다.


“저는 메이슨 루엘이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백작님을 보좌하게 됐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폐하의 명으로.”

“······.”


당당한 말투에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는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를 파악했다. 저놈의 왕이 금은보화를 내려주기는커녕 쓰레기 같은 물건을 주는 것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주제에, 감시를 붙인 것이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도록.


카이델은 한숨을 삼켰다.

어차피 이런 건 상대도 그다지 내켜 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래···. 적당히 하다가 돌아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


그런데 하필 책임감은 또 뛰어난 모양이었다.


‘이놈을 어쩔까···.’


잠시 생각에 잠긴 그의 눈이 이리저리 굴렀다.

떠날 준비를 하는 기사들과 마차, 그리고 그들이 타고 갈 말.


“말은 탈 줄 아나?”


그는 은근슬쩍 어떤 뜻을 내포하며 물었다. 내 마차에는 사람을 태울 공간이 없으니, 말도 못 타는 놈은 따라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너도 말을 못 타는 인간 중 하나이길 바란다는 것도.


“물론입니다.”

“···쯧.”


하지만 왕은 카이델이 자신의 기분을 느껴보길 바란 듯했다.

메이슨은 눈치가 없었다.


“가서 말 한 마리 더 달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카이델 알로이스 경.”


부하와 메이슨이 말을 가지러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쉴 때, 카이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씨. 이번엔 또 뭐야?”


이번에 나타난 남자 역시 전투라고는 눈곱만큼도 하지 못할 듯 연약한 인상이었다. 게다가 땅에 닿은 치렁치렁한 옷자락은 여행을 떠나는 자의 것으론 부적절했다.


‘이번에도 보좌한다고 나서면···죽일까.’


실행하지도 못할 생각을 머리에 떠올리며 그는 남자를 맞이했다.


“폐하께서 하사하신 물건입니다. 출발 전에 드릴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메이슨과는 달리 잔소리 한마디 내뱉지 않는 남자는 우선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고급스러운 자단으로 만든 작은 상자.

안에 들어있음 직한 물건은 하나밖에 없다.


‘왕이 직접 내리는 물건이라···.’


카이델은 손이 저절로 검으로 향했다.

왕이 보낸 물건이라면 쓰레기일 리가 없다. 하지만 일 처리는 아랫사람이 하는 법이다.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물론 쉽게 검을 뽑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이건 그의 인내심을 진정시키기 위한 안전장치일 뿐이었다.


“우선 이것입니다.”


그리고 남자가 상자를 열었을 때, 그는 검을 쥐었던 손에서 힘을 뺐다. 안에 들어있는 건 예상대로 반지였다.

하지만 그가 무심코 남자를 베어버릴 만큼 형편없는 것이 아닌, 무언가가 새겨진 금반지.

게다가 꽤 크다.


그는 반지를 들어, 그곳에 새겨진 문양을 살폈다.


“폐하께서 알로이스 가문에 내리는 문장과 가주의 증표인 반지입니다. 여기 굵은 나무의 기둥은 굳건한 방어를 상징하며,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지는 앞으로 울려 퍼질 명성과 번영, 기개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 아래에 알로이스 가문 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


남자는 그 문장의 무엇을 상징하는지 하나하나 설명했다.


명성, 번영, 기개.

늘어놓은 말은 장황했지만, 그 상징물이 설명하는 건 하나다.


‘가서 땅을 잘 지키라는 거 아냐.’


중요한 건 ‘방어’뿐일 것이다.

그는 상자째 마차 안에 반지를 던져넣고 싶었다. 하지만 가주의 상징이라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금’. 그건 금반지다.


카이델은 엄숙한 척,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크고 아름다운 금이 반짝이자 흡족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리고 이것도 받아주십시오.”


그 뒤로 남자가 건넨 건 깃발이었다.


반지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나무가 그려진 깃발. 고급스러운 천과 봉은 비싼 가격만큼 무게가 남달랐다.


‘사람도 별로 없는데, 이걸 들고 가라고?’


카이델은 이것 역시 돌돌 말아 마차 안에 던지고 싶었으나, 바닥났던 인내심을 최대한 끌어올려 가만히 손에 잡았다.

금반지를 먼저 받은 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 번거로운 짐을 누구에게 맡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카이델을 보는 남자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폐하···. 그래도 사람을 잘 보셨습니다.’


남자의 눈에는 왕에게 하사받은 물건을 감개무량하게 내려다보는 것으로 비친 것이다. 왕에겐 마음 놓고 의지할 아군이 별로 없다.

그는 어떻게든 카이델을 다시 수도로 불러들여야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부디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감사합니다.”


의연하게 답하는 카이델을 보며 남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마저 굳건한 이미지를 주었다.


“언제나 그 마음을 잊지 마시길.”


그리고 작게 인사를 건네고는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멀어졌다.


‘무, 무슨 마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뜻이 카이델에게 닿지는 못했다.


“어? 백작님, 그건 뭡니까?”


우두커니 서 있던 카이델의 뒤로 메이슨과 부하가 돌아왔고, 그는 잘됐다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다들 모여봐라.”

“무슨 일이십니까?”

“손에 그건···?”

“알로이스 백작님. 아무리 아랫사람이라고는 하나 사람을 그런 식으로 부르시는 건···”

“됐고. 너희들 순번이나 정해라.”


카이델은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는 메이슨의 말을 즉각 잘라냈다. 그리고 마차로 가더니 길고 튼튼한 노끈을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옆의 흙바닥에 검으로 선을 하나 쭈욱 그었다.


“두 사람이 줄을 잡아당겨서 여기에 닿는 사람이 지는 거다.”

“···네?”

“그건 또 무슨···.”


당당히 선언하는 카이델과 다르게 기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해보자고.”

“백작님 명령이시잖냐.”


그들은 각자 자신의 상대를 지정한 뒤, 그 앞에 섰다.


“귀찮으니까 빨리 끝내자.”


오랫동안 함께했던 그들은 카이델의 성격을 잘 알았다. 그는 꾸물거리는 걸 싫어한다.

그들은 알아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알아서 끈을 힘껏 잡아당기며 승부를 냈다.


처음엔 장난스럽게 끈을 잡아당기던 그들도 자기 몸이 질질 끌려가자 자존심이 상한 듯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놀이엔 진심이 담기기 시작했다.


“야! 그거 반칙 아니냐!”

“반칙이 어딨어.”

“너 금 밟은 것 같은데?”

“증거 있냐!”

“······.”


그렇게 한 명씩 탈락하며 간신히 남은 사람이 둘로 추려졌을 무렵, 온 힘을 다한 기사들은 기진맥진했다.


카이델은 바닥을 보았다.

처음 그가 그었던 선이 지워져 이쪽저쪽으로 움직인 흔적이 엿보였다. 10명밖에 되지 않는 기사들의 승부에 온갖 편법과 반칙이 자행된 것이다.


그는 선을 깨끗하게 지워내고, 이번엔 꽤 짙고 강하게 그었다.


“후···.”

“이런 걸로 진심을 내게 될 줄이야.”


마지막으로 남은 두 기사는 끈의 끝을 움켜쥐었다.

이들 줄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좋기로 자부하는 두 사람이 남을 것이라는 건 모두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럼, 하나···둘.”

“셋!”


팡-!


느슨했던 노끈이 터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팽팽히 당겨졌다.

두 사람이 끈을 당기는 힘이 강하여 발아래 땅이 점점 움푹 패이기 시작했다. 점점 땅 아래로 사라지는 그들의 발을 보며,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뭐라고···긴장되냐.’


기사들의 마음은 모두 비슷했다.


팽팽한 끈은 타들어 가는 심지처럼 한 가닥, 한 가닥씩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을 팔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팟-!


쿵! 쿠쿵!


“···!!”

“크헉···!”


결국 그들의 무게와 힘을 버티지 못한 끈이 순식간에 끊어져 버렸고, 둘은 그대로 뒤로 나자빠지며 몸을 굴렀다.


“됐다. 기다려봐라.”


카이델은 중앙으로 걸어갔다.

깊게 파인 땅은 누구도 조작할 수 없는 승부의 증거였다. 그 사이를 거닐며 흔적의 길이를 쟀다. 아주 미묘한 차이로 한쪽이 조금 더 가까웠다.


“이번 승부는 윌의 승리.”

“크핫! 어떠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윌은 한쪽 팔을 세우며 상대를 도발했다.


“쳇.”

“젠장.”

“그런데 뭐 때문에 대결했었지?”


한바탕 땀을 흘리고 뒹군 뒤에야 그들은 무엇 때문에 이 짓을 했는지, 이제야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승한 윌에게는 이걸 하사하겠다.”

“···백작님, 이건 뭡니까?”

“우리 가문 깃발.”

“네?”


카이델이 건네니 우선 받아 들긴 했는데, 그는 이게 도대체 뭐냐는 듯 깃발을 몇 번 휘휘 흔들었다. 묵직한 무게와 길이 때문에 중심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우승자에게 그걸 들고 오는 영예를 안겨주마.”

“···네?”

“덧붙이자면 폐하께서 하사하신 물건이다. 잘 들고 와.”

“와~”

“축하한다.”

“영광스럽겠는데?”


주위의 축하 같지 않은 축하를 듣던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따위 깃발을 들려고 그 고생을 했는지, 신경질적으로 붕붕 휘두르던 때였다.


“아니, 잠깐. 잠깐만 기다려보십시오! 그건 그렇게 함부로 다룰 물건이 아닙니다!”


지금껏 조용하던 메이슨이 눈을 빛내며 끼어들었다.


“여기 보십시오, 백작님. 여기 굵은 나무의 기둥은 알로이스의 튼튼한 방어를 상징하는 게 아닙니까! 뻗어나간 가지는 앞으로 울려 퍼질 명성, 번영, 기개일 겁니다. 이건 정말 훌륭한 문장입니다. 이런 걸 받으시다니, 영광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

“······.”


눈을 빛내며 설명을 늘어놓는 그와는 다르게 카이델과 다른 기사들은 입을 다물었다.

카이델은 머리를 긁적였다.


바로 조금 전에 비슷한 말을 듣지 않았던가.


‘귀족들 생각은 다 비슷한가?’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어쨌든 그건 윌이 들고, 말은 가져왔나?”

“네. 여기.”


메이슨은 저편에 세워뒀던 말을 끌고 왔다. 그래도 말을 보는 눈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세워 등을 쓰다듬는 말은 구릿빛 털과 튼실한 근육을 보이는 게 제법 잘 달릴 듯했다.


‘여기 놈들이 한 번에 제대로 된 말을 내어주다니.’


그것 역시 놀라운 일 중 하나였다. 상대를 어떻게 구워삶은 것인가.


“이제 출발한다.”

“네!”

“드디어~”


하지만 카이델은 그 모든 걸 내색하지 않았다. 알게 뭐냐 빨리 출발하자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


타닥타닥타닥-


카이델을 선두로 그 뒤에는 보좌관인 메이슨, 깃발을 든 윌이 따랐고, 짐마차와 뒤를 지킬 기사들이 나란히 출발했다.


드디어 그는 이 지긋지긋한 왕성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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