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엔키유 님의 서재입니다.

영지 찾는 영주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엔키유
작품등록일 :
2022.10.31 14:31
최근연재일 :
2022.12.01 23:3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0,976
추천수 :
373
글자수 :
141,841

작성
22.11.12 07:30
조회
393
추천
16
글자
11쪽

12화

DUMMY

한참을 달리던 기사들의 마음은 우울했다.

불편한 잠자리는 감수할 수 있어도, 맛있는 음식에서 멀어지는 건 못내 아쉬웠다.


“하아···.”

“좀 더 먹어둘걸.”

“넌 배가 터질 뻔했잖냐.”

“그렇게 쉽게는 안 터져···.”


기사들은 입맛을 다시며 계속 뒤를 돌아봤다. 마차에도 식량은 실려있으나 갓구운 빵이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제대로 된 음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런 그들과는 다르게 카이델은 더 속도를 내고 싶었다.

영지가 위험하다는 소식을 들은 탓이다. 아직 애정이고 뭐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영지라 해도 책임감만은 무겁게 그를 짓눌렀다.


하지만 더 속도를 냈다간 뒤에 있는 짐마차는 따라오질 못한다.


“······.”


그는 슬쩍 뒤를 보았다.


“리오, 허드슨, 베시. 너희들 마차를 끌고 먼저 가라.”

“네?”

“설마 쟤네 잡고 오려는 겁니까?”


호명된 세 사람은 심드렁하게 엄지로 뒤를 가리켰다.


멀리서 여러 마리의 말발굽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누군가 그들을 따라오는 건 진작 눈치챘다. 그저 귀찮아서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을 뿐.


“아, 그리고 윌.”

“네!”

“너도 가라.”

“네~?”


윌은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멧돼지를 잡을 때 잠깐 나섰던 걸 제외하면, 거의 전투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기사라면 싸움을 피하지 않는 법이다. 그 자신도 피할 생각 따윈 없었다.


그런데도 이 주인은 계속 전투에서 빼기만 하니, 짜증이 치밀 수밖에 없다.


“너는 짐마차를 따라가. 저게 우리 짐이라는 걸 주위에 알려라.”

“······.”

“그래야 습격할 생각을 안 하겠지. 다음엔 그 깃발, 다른 놈한테 줄 테니까.”

“약속하신 겁니다!”


그제야 그는 말을 몰아 마차 곁으로 갔다.

기분이 나쁜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있다는 기대가 솟았는지 그는 깃발로 주위를 천천히 휘저었다.

펄럭이는 움직임이 지금 상황과 다르게 평화롭다.


“아무래도 퍼렌도 백작이 대단히 기분 상한 모양이야.”

“아니, 왜 자기가 난리랍니까?”

“백작님께 자기가 뭡니까, 자기가.”

“······.”


리오는 메이슨을 흘겨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백작 좀 욕하면 어떤가. 입에 담아선 안 될 욕설을 퍼부은 것도 아닌데.


“백작님···. 이 사람이랑 같이 못 다니겠습니다. 말이 통해야지.”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왕궁에서 여기까지 어울려 다닌 덕에 친밀감이 생긴 것인지, 리오는 한결 편하게 그를 대했다.


“한 대 때리면 픽 쓰러질 놈이 말대꾸는 잘하지.”


그래서 그런 불만이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때, 때려 보십시오. 알로이스 백작님께서 가만히 계시진 않을 겁니다.”

“······.”

“······.”


메이슨은 힐끗 카이델을 보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저편으로 향해있을 뿐. 마치 두 사람의 말다툼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는 듯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 아닙니까?”

“···뭐? 적이 가까이 왔다.”


카이델은 역시 그들의 말엔 관심이 없었다.

희미하게 들리던 말발굽 소리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왔다.


“아무튼 너희는 먼저 가라. 안 그래도 마차가 느린데, 발목 잡힐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최대한 빨리 달려보겠습니다~”


네 사람은 마부를 재촉하며 빠르게 길을 달렸다. 그런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카이델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다가 입을 열었다.


“너는 안 가냐?”

“네? 저, 저도 가란 말입니까?”


메이슨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을 움츠렸다. 조금 전 리오와의 말다툼이 떠오른 탓이다.

쟤가 나 치려고 한 거 모르냐는 원망이 풀풀 뿜어졌다.


그리고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던 카이델은 당연히 그걸 모른다.


그는 어깨를 으쓱 올리며 말했다.


“아니면 여기서 싸울래?”

“······.”


메이슨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말을 몰아 멀어지고 있는 마차의 뒤를 쫓았다. 메이슨은 싸움을 못 한다. 조금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하질 못했다. 검을 드는 순간 주변의 발목을 잡을 터였다.

그렇다면 괜히 자존심 세우지 않고, 얌전히 물러나는 게 모두를 위해 좋다.


그렇게 주변을 정리한 카이델은 귀찮은 듯 바로 말머리를 돌렸다.


쫓아온 인원은 대략 50명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는 우선 바로 공격하진 않기로 했다.


말을 몰아 쫓아온 이들은 그의 앞에 섰다. 기사단이나 가문의 표식은 어디에도 없다. 마치 어느 곳의 도적 떼처럼 꾸민 허름한 가죽 갑옷과 옷이 우습게 보였다.


“여기까지 무슨 일로 쫓아왔지? 설마, 백작이 더 주고 싶은 게 있나?”

“하하! 물론 있습니다!”


맨 앞에 선 남자는 그들의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었다.

그들이 허름하게 꾸민 이유는 주변의 시선 때문이지, 눈앞의 인물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


“바로 이 검입니다!”


그건 그들을 살려서 보낼 마음이 없기 때문이었다.

정체가 들통나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모두 죽는다면, 들키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물끄러미 검을 바라본 카이델은 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은 검이군. 마음에 들어. 백작께 감사하다고 전해라.”

“뭐? 멍청한 놈! 널 죽이겠다는 뜻이다!”

“백작한테 멍청한 놈이 뭐냐. 백작의 기사라는 놈이 예의도 없군. 그 입부터 다물게 해주마.”


카이델은 말을 몰아 앞으로 달렸다.


챙!


말이 교차하며 두 사람의 검이 부딪쳤다.

그것을 시작으로 주변도 사납게 검을 휘둘러댔다. 말 위에서 싸운 덕에 주변엔 흙먼지가 잔뜩 날렸고, 시야를 어지럽혀 보통의 전투보다 더 정신이 없었다.


챙!


이쪽의 검을 막으면 저쪽에서 다른 검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여러 마리의 말이 한곳에 몰리는 건 어렵다. 그는 곁으로 다가오는 적들의 검을 차근차근 쳐냈다.


그리고 적의 빈틈을 발견한 카이델은 바로 검을 휘두르려다가 문득 생각했다.


‘아니···잠깐, 이거 날이 선 검이었지.’


오늘 아침 대련의 여파로 마음껏 검을 휘두를 뻔했다. 하지만 그 검과 이 검은 다르다. 이건 쉽게 목숨을 앗아간다.

그는 급히 검을 물렸다.


“하하하! 겁을 먹으신 겁니까!”


상대는 그런 카이델의 속마음도 모른 채 외쳤다.


챙!


“으윽···?!”


그는 울분을 토하듯 그런 남자의 검을 강하게 내리쳤다. 마치 거대한 둔기로 내려친 것처럼 찌르르한 통증이 검을 따라 그의 팔까지 닿았다.

팔까지 얼얼해지는 타격감이었다.


“죽이지 마라.”


카이델은 오늘 그들에게 들었던 말을 반대로 기사들에게 전했다.


“아니, 쟤네는 우릴 죽일 마음이 넘치는데, 왜 우린 안 됩니까?”

“전에 죽은 놈들은 서러워서 살겠나.”

“이미 죽었으니까 서러울 것도 없지.”


그리고 그때와는 다르게 기사들은 투덜댔다.

투덜대면서도 그들은 카이델의 명령을 잘 따랐다. 휘두르는 검은 상대의 검만을 노렸다.


무슨 자신감인지 저들이 걸친 갑옷은 검도 쉽게 뚫을 가죽 갑옷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도적들은 값비싼 철갑옷 따윈 입기 힘들다고 판단했거나.


“걔네는 반란군이었지만, 이놈들은 백작가의 기사야.”

“···쳇.”

“죽이면 우리가 뒤집어쓰는 거라고.”

“아니, 도적인 줄 알았다고 하면 되잖습니까~”


챙-!


기사들은 어지럽게 말을 몰며, 주변 기사들 사이를 횡단했다. 그리고 계속 상대의 검을 강하게 쳐내기 바빴다.

상대의 반격을 피하는 것 따윈 간단했다.


“우리 말을 듣겠냐?”

“안 그래도 아직 복잡한데,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가만둘 리가 없지.”


챙! 챙!


“이상하다. 우리 백작님이 그런 머리는 못 쓰시는데.”


휘이이-


카이델의 검이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빠르게 휘둘러졌다. 그리고,


캉!!


대장간에서 망치질하는 듯 무거운 소리가 귀를 쳤다.


“으악···!”


검을 맞은 남자는 충격에 놀란 듯 팔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도 기사의 자존심은 남아있던 것인지 그 손에서 검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 소리를 들은 카이델의 기사들이 먹먹한 귀를 부여잡으며 몸을 움츠렸다.


“왜 화를 내고 그러십니까?”

“그러게.”

“그럼 백작님께서 스스로 생각해내신 겁니까?”

“메이슨이 그런 거 아닙니까?”

“······.”


카이델은 말없이 검의 손잡이로 상대 기사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크윽···!”


털썩-


그건 괜한 화풀이처럼 보였다.

남자는 바로 말에서 떨어졌고, 충격으로 몇 번이나 기침을 토해냈다. 카이델은 흥분한 말이 그를 밟을까 염려하며 재빨리 말고삐를 쥐었다.


병주고 약준다. 쓰러진 기사의 머리에 그런 말이 떠올랐다.


“어쩐지.”

“그렇다면 말을 잘 들어야지.”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기사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걸 잘 파악하는 메이슨의 머리에서 나온 말이라면 신뢰할 수 있었다.


“······이 새끼들이.”

“이야아앗!”


그리고 카이델이 화를 낼 줄 알았다는 듯, 그의 욕설을 묻기 위해 클렌은 더욱 큰소리를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




적들은 의외로 가볍게 제압되었다.

카이델과 기사들이 가벼운 농담을 나누며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대련을 보고도 퍼렌도 백작은 카이델의 실력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바닥에 줄지어 묶인 기사들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리 상대가 전쟁영웅이라지만, 이렇게 간단히 제압될 줄은 몰랐다.


카이델은 잡아들인 우두머리의 눈앞에 서서 보란 듯이 그 검을 집어 들었다.


“검 가져다줘서 고맙다. 백작에게도 잘 받았다고 전해주고.”


그리고 자기가 손에 든 검과 몇 번 부딪쳐보고 근처에 있는 풀도 베어보았다.

마지막으로 남자의 코끝으로 검날을 가져가며, 닿을 듯 닿지 않은 거리에서 검날을 이리저리 굴렸다.


남자의 콧등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날카롭고 좋군.”


그는 과하게 감탄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박힌 건 보석인가? 값도 꽤 나가 보이는군. 고작 이런 심부름에 기사 여럿을 딸려 보내시다니. 역시 퍼렌도 백작은 배포가 남다르셔.”


그는 남자의 어깨를 강하게 두드렸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친애가 넘치는 동작이라 여겼을지 모른다.


“그럼, 조심히 잘 돌아가게나.”


그리고 뒤를 돌아 말에 올랐다.

밧줄에 묶인 이들이 어떻게 알아서 잘 돌아갈지는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가자.”

“네!”

“심심하면 또 따라오시든가.”


마지막으로 적을 도발하는 것도 잊지 않고, 그들은 빠르게 말을 달렸다.


기사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검을 챙긴 건 카이델 뿐만이 아니다. 그의 기사들 역시 꽤 좋은 무기를 갖고 있던 퍼렌도 백작 기사들에게서 검을 하나씩 빼앗았다.


여분의 무기는 많을수록 좋다.

그게 좋은 무기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영지 찾는 영주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30화 +1 22.12.01 160 6 11쪽
29 29화 22.11.30 128 6 10쪽
28 28화 22.11.29 141 3 10쪽
27 27화 +1 22.11.28 183 4 10쪽
26 26화 +1 22.11.26 186 4 10쪽
25 25화 +2 22.11.25 196 5 10쪽
24 24화 22.11.24 194 3 10쪽
23 23화 +1 22.11.23 198 5 10쪽
22 22화 +1 22.11.22 213 5 11쪽
21 21화 +2 22.11.21 231 5 11쪽
20 20화 +1 22.11.20 248 7 9쪽
19 19화 +1 22.11.19 247 4 10쪽
18 18화 22.11.18 255 5 10쪽
17 17화 22.11.17 301 11 10쪽
16 16화 22.11.16 294 11 10쪽
15 15화 22.11.15 316 13 10쪽
14 14화 +1 22.11.14 337 11 10쪽
13 13화 22.11.13 386 11 11쪽
» 12화 22.11.12 394 16 11쪽
11 11화 22.11.11 394 14 10쪽
10 10화 22.11.10 422 12 10쪽
9 9화 +1 22.11.09 447 16 11쪽
8 8화 +1 22.11.08 471 15 10쪽
7 7화 +1 22.11.07 506 16 11쪽
6 6화 22.11.06 553 15 11쪽
5 5화 +2 22.11.05 600 18 11쪽
4 4화 +3 22.11.04 642 19 11쪽
3 3화 +5 22.11.03 680 25 13쪽
2 2화 +6 22.11.02 739 31 11쪽
1 1화 +20 22.11.01 915 5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