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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님의 서재입니다.

영지 찾는 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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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작품등록일 :
2022.10.31 14:31
최근연재일 :
2022.12.01 23:3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1,018
추천수 :
373
글자수 :
141,841

작성
22.11.06 07:30
조회
554
추천
15
글자
11쪽

6화

DUMMY

몇 번 발을 구르던 멧돼지는 눈앞의 적을 향해 곧장 돌진했다.


퍽-


“윽···.”


정면에서 녀석의 공격을 막아낸 건 카이델이었다. 큰소리만큼이나 강한 공격에 손에 찌릿한 전류가 흘렀다. 당장 날아온 공격은 잘 막아냈으나 그 충격으로 몸이 주르르 뒤로 밀려났다.

어지간한 창보다 날카로운 송곳니는 그의 바로 눈앞에 있었고, 간신히 공격을 막은 검의 날이 쩍 먹혀들었다.


“하아앗!”


퍽-


그렇게 둘이 대치하고 있는 틈에, 옆으로 물러나 있던 기사들이 멧돼지를 향해 일제히 검을 찔러넣었다.


“···!!”

“으···이거···.”


그것으로 사냥은 가볍게 성공할 뻔했다.

눈앞에 있는 게 평범한 멧돼지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녀석은 평범한 멧돼지가 아니었다. 덩치만 좋은 게 아니라 몸을 감싼 두꺼운 가죽이 갑옷처럼 단단했다.

기사들의 검은 어느 것 하나 그 가죽을 뚫지 못했다.


그들을 입술을 핥았다. 오랜만에 사냥할 맛이 나는 사냥감이 걸렸다.


쿵, 쿵 쿵!


“크···!”

“으악!”


웃음을 지을 수 있던 것도 잠시뿐.

멧돼지가 사방으로 몸을 흔들며 날뛰어대는 통에 기사들은 재빨리 몸을 피해야 했다. 가까이에 적이 없음에도 녀석의 움직임은 멈출 줄 몰랐다.


-크륵!


녀석은 그 육중한 몸을 날려 옆의 기사를 쳐내더니, 이번엔 반대편에 검을 든 기사를 들이받았다.


쿵!


“으윽!”


카이델은 어떻게든 버텨낸 공격이었으나 기사는 뻔히 보이는 공격임에도 버텨내질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갔다.


몸이 붕 뜬 뒤에 떨어져 내린 곳은 공교롭게도 윌의 발치.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발아래 기사를 내려다보았다.


“너, 이것 좀 들고 있어라.”

“미친놈···.”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높이를 날아 떨어진 동료를 걱정하기는커녕 미소가 만연한 얼굴을 보자 욕부터 튀어나왔다.


“그래. 미친놈 할 테니까 이것 좀 들라고. 폐하께서 하사하신 물건을 땅에 내려놓으면 안 되잖냐.”

“당연합니다!”

“······.”


언제 튀어나왔는지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메이슨이 끼어들어 왔다. 그는 투덜대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윌은 그런 그의 손에 냉큼 깃발을 넘겼다.


‘뭐가 이렇게 무거워···?’


효율성보다는 주위 이목에 신경을 더 쓴 모양새였다.

그것은 무게 중심도 잘 맞지 않았고, 천이 무거워 아래로 축 처졌다. 바람이 불어 날리기라도 한다면 중심이 흐트러질 게 뻔했다.


‘이런 걸 들고 다녔나?’


카이델이 기사 중 가장 힘이 좋은 놈에게 이걸 맡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무리 힘이 좋은 윌이었어도 이건 꽤 버거웠을 것이다.

의도치 않게 그를 단련시켰을 물건이었다.


“크핫!”


손이 가벼워진 윌은 기분 좋게 검을 빼 들고는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한창 돌격 중인 멧돼지의 앞으로 자진해서 뛰어들어,


퍽!


그 공격을 막아냈다. 물론 가볍게 막은 건 아니다. 생각보다 더 큰 충격에 눈살을 찌푸린 그는 멧돼지와 힘겨루기라도 하는 듯 서로를 밀어냈다.


윌의 몸이 뒤로 밀릴 땐 모두가 경악했다.


“큭···미안하지만, 내가 힘으로는 여기 우승자다!”


하지만 다른 힘으로 몸이 끌려가는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 그는 이를 악물며 힘껏 멧돼지를 밀어냈다.

그나마 당기는 것보다는 미는 게 나았다.


치직-


드디어 멧돼지의 몸이 뒤로 천천히 밀리기 시작했을 때,


“받아라!”


-끼이이!


기사 하나가 멧돼지의 몸통에 검을 박아넣는 데 성공했다. 순간 고개를 치켜들며 울부짖은 녀석의 얼굴 위로 윌의 검이 가로질렀다.

하지만 깊은 상처가 난 것은 아니다.


-끼익!!


몸에 검이 꽂힌 그대로 날뛰는 녀석은 옆의 기사들을 차례로 쿵, 쿵 박으며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기사들은 멀리 날아가 땅에 떨어지기도 하고, 근처 나무에 처박히기도 했다.


맞은 충격이 큰 덕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는 것도 쉽진 않았다.


쿵!


“크헉···!”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것인지, 녀석은 날아가 나무에 부딪힌 기사를 향해 돌진했다.


“윽!”


멧돼지를 바라보는 기사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주위에 도움을 바랄 순 없다. 누군가 돕기엔 멧돼지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크윽···!”


그는 간신히 나무를 붙잡고 일어나 몸을 옆으로 굴렸다.


콰직!


몸이 옆으로 멀어진 순간 들려온 소리에 그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멧돼지의 입안으로 커다란 나무 기둥의 반이 빨려 들어갔고, 날카로운 이빨이 한번 움직이자 어이없게도 쉽게 으스러졌다.

땅으로 후두두 떨어지는 나뭇조각을 보던 기사들이 꿀꺽 침을 삼켜냈다.


“윽···멧돼지가 저런 것도 먹나?”

“쟤네 아무거나 먹잖냐.”

“게다가 노린 건 나무가 아니었을 텐데.”


단단한 턱이 우걱우걱 씹는 나뭇조각들은 목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분쇄되어 모두 바닥에 흩어졌다.

마치 다음을 너희 차례라는 듯이 번뜩이는 눈을 보며 그들은 검을 들었다.


“이제 우리 차례인가?”

“먹을 차례?”

“아니면···먹힐 차례?”

“당연히 먹을 차례지, 이놈들아.”


가만히 싸움을 지켜보던 카이델은 결국 다시 앞으로 나섰다.


멧돼지 역시 제대로 된 상대가 돌아왔다는 걸 깨달은 듯 곧장 그에게로 돌진했다.


쾅!


다시 그의 검과 멧돼지의 송곳니가 정면에서 부딪쳤다. 또다시 끝이 살짝 갈라져 나간 검날을 본 카이델은 이 검은 오래 쓸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할 수 없지.’


카이델은 검에 천천히 마력을 흘려 넣었다.


“마력검을 쓰시려는 건가?”

“저건 반칙이지.”

“그건 그래.”


마력을 품은 검날이 옅은 붉은 색채를 머금었다. 그가 힘을 주어 검을 앞으로 밀자, 검날을 파고들던 송곳니가 반대로 검날에 먹히기 시작했다.


-끼익!


멧돼지도 그 이변을 눈치챘다.

녀석은 재빨리 몸을 뒤로 빼며 카이델을 들이받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빈틈을 만들어내 버렸다.


촤악!


카이델은 우선 녀석의 목으로 검을 박아넣었다. 죽이려면 급소에 한 방. 그건 전투할 때 적의 수를 줄이기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쿵!


멧돼지는 단말마의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쓰러진 멧돼지를 살피며 천천히 자리를 이동했다. 그리고 녀석의 심장에 마무리로 한 번 더 검을 찔렀다.


파삭-


그 직후 검날은 제 할 일을 모두 마친 것처럼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어졌다.


“역시 평범한 검은 버티질 못하나 봅니다.”

“쳇. 아델린 놈들 검 하나만 달라니까 치사하게.”


기사들은 카이델의 주위로 몰려와서는 입맛을 다셨다.

그가 마력검을 쓰면 검이 한 자루 줄어든다. 평범한 검은 마력을 버텨내질 못하는 것이다. 그가 특별난 게 아니라 모든 검이 그랬다.

단 한 곳 아델린 가문에서 만든 검만이 멀쩡히 버텨내지만, 아무에게나 검을 내어주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검을 많이 준비해둔 거 아니냐.”


보통은 여분의 무기라고 해봤자 하나 더 가져갈 뿐이다. 하지만 그의 마차엔 여분의 무기가 꽤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까닭은 이것이었다.


마력을 주입하는 게 꼭 검일 필요도 없었다. 무기로 쓸 수 있다면 뭐든 괜찮았다.

무기가 부서질 각오만 있다면.


“그럼 이제···고기를 얻을 차례인가?”

“멧돼지 고기라, 오랜만이긴 하군.”

“좀 질기지만 말이다.”

“그래도 식자재가 늘어난 건 좋은 일이지.”


기사들은 멧돼지를 둘러싸며 각자 검을 들었다.


“이···이걸 먹습니까?”


파리한 안색을 한 메이슨은 몇 걸음이나 뒤에 서서 빼꼼히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멧돼지에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그는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질겨도 꽤 먹을만합니다.”

“···몬스터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고긴데.”

“돼지고기죠.”

“······.”


메이슨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고, 다른 이들은 익숙하게 검을 찔러넣었다. 이미 목숨을 잃은 멧돼지의 가죽은 평범한 상태로 돌아갔고, 그들은 익숙하게 살을 발라냈다.


덩치가 좋은 만큼 고기도 많이 나온 덕분에 그들의 식자재는 제법 풍성해졌다. 카이델은 그것을 마법석이 있는 마차에 옮기도록 지시한 뒤 기사를 불러 모았다.


“내가 한가지 확신한 게 있다.”


그는 사뭇 진지한 어투로 운을 떼며 그들을 둘러보았다.


꿀꺽.

좀처럼 보이지 않는 분위기에 눌려 침을 삼켜낸 기사들이 그의 말을 기다렸다.


“너희들, 기강이 해이해졌다.”

“···어?”

“네?!”


당황하는 기사들을 더욱 날카롭게 바라본 그는 말을 이었다.


“연회 때 너무 놀고 마신 거 아니냐?”

“어, 억울합니다.”

“먹을 걸 그렇게 많이 주지도 않았는데.”

“······.”


여기저기서 불만을 튀어나오자 그는 잘 발려서 구석으로 치워둔 멧돼지의 뼈를 발로 툭툭 치며 말했다.


“이런 거 하나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


그 말에는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쉽게 잡을 줄 알았던 멧돼지에 이렇게 고생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겠지?”


알로이스는 몬스터의 경계와 같은 곳이었다. 얼마나 잦은 전투가 펼쳐지는지, 왕국 전체를 뒤흔든 내전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 귀족은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리고 누구도 그걸 탓하지 않았다.


그제야 그들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흘렀다.


“가서 죽고 싶은 건 아닐 거 아냐.”


긴장이 어린 기사들의 표정을 본 카이델의 말투는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오늘부터 너희는 걸어가라.”

“네···?”

“풀어진 근육도 다질 겸.”


하지만 뒤이어 나온 말에 기사들은 웅성댔다.

기사가 왜 기사인가. 말을 타야 기사다. 그런데 기사에게 말을 빼앗다니. 이런 횡포는 처음이었다.


그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메이슨이 힐끗 카이델을 보았다.


“···넌 기사가 아니니까 말을 타든 말든 마음대로 하고.”

“알겠습니다!”


이제껏 들었던 목소리 중 가장 기운이 넘쳤다.


“백작님, 그런데···.”


자기 말을 붙들고 나타난 메이슨은 조심히 카이델에게 말을 건넸다. 누가 들을까 염려하는 듯 시선은 투덜대며 말을 챙기는 기사들에게 향한 채였다.


“뭐지?”

“길과 가까운 곳에 저런 몬스터가 서성이고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근처를 순찰하는 놈들이 일을 제대로 안 했나?”

“그런 거라면 차라리 다행입니다만.”

“그게 다행이야?”

“그나마 다행인 거죠.”


메이슨은 불안한 눈초리로 주위를 훑었다.

하지만 투덜대며 웃고 떠는 이들 사이에서 불안을 느낀 건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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