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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님의 서재입니다.

영지 찾는 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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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작품등록일 :
2022.10.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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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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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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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1,841

작성
22.11.0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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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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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화

DUMMY

카이델은 운이 좋았다.


의지할 곳 하나 없을 때 먹고 살기 위해 익힌 검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무렵 내전이 발발했고, 그는 검 하나만 든 채 그 전장 한복판으로 내던져졌다.

자신이 어디에서 싸우는지도, 어디가 옳은지도 모른 채로 싸움을 이어 나가기만 했다.


처음엔 어리숙하게 굴었던 그는 빠르게 주위에 적응해나갔다. 그리고 검을 들어 눈앞의 적을 베고 또 베었다.


어느 때는 추운 설산에서 얼어붙을 뻔했고, 어느 때는 그 넓은 초원에 살아남은 게 혼자뿐일 때도 있었다. 어쩌다 보니 남은 사람들을 이끌고 전투를 치렀으며, 하나둘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이 대장이라 부르는 걸 내버려 뒀더니, 어느새 정말 한 부대의 대장이 되어 있었다.


멈추지 않고 휘두르던 그의 검이 멈췄을 때, 내전은 끝이 났다.

그리고 카이델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그가 속한 곳이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그제야 비소로 그는 자신이 왕을 보호하는 측에 속했다는 걸 알았고, 반란군이 모두 진압됐음을 전해 들었다.


오랜 기간 이어지던 내전이 끝났다.

그리고 그저 속한 곳에서 열심히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그는 어느새 전쟁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건 운이 좋다는 말에 딱 알맞은 결과였다.





*




‘집에 가고 싶다···.’


숨 막힐 정도로 목까지 꽉 채운 옷깃을 슬쩍 잡아끈 카이델은 눈살을 찌푸렸다. 전장을 뛰어다니며 넝마가 된 옷을 걸쳤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불편함이 그야말로 목까지 차올랐다.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도 그에게 집이라 부를 만한 곳은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도 외곽에 자리 잡은 나무집은 오랫동안 주인이 자리를 비운 탓에 벌레와 동물들의 안식처가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보다는 편할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마음 편한 마을도, 좋은 집도 아니지만 금은보화를 받아 금의환향하겠다고 실실거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에 서 있게 되었다.


‘이건 언제까지 하는 거야?’


그는 심드렁한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왕성의 커다란 홀에서는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가 펼쳐졌다. 이걸로 벌써 몇 시간째였다. 축하하는 건 좋지만 과했다.

특히 빨리 돌아가고 싶은 그에겐 고역이었다.


하지만 다른 놈들은 달랐다.

전투에 크고 작은 기여를 한 기사들은 귀족들에게 자기를 알리기 위해 최대한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옷의 색이며, 주렁주렁 달고 나타난 액세서리가 빛에 반사되어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카이델은 눈살을 찌푸렸다. 눈에 띄려고 한 거라면 어쨌든 성공일 것이다.


이미 전쟁은 끝났고, 우선 대충 긁어모았던 기사들은 이제 귀족의 아래로 들어가야 했다. 가려면 조금 더 작위가 높은 귀족이 좋다. 그래야 받는 급여도 다를뿐더러 대우가 좋아진다.

게다가 처신만 잘한다면 그의 영지 중 작은 마을 하나의 영주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도 카이델은 눈에 띌 존재였다.

전쟁 영웅.

이름만 대면 서로 앞다투어 데려가려고 군침을 흘릴만한 인물이었으나 그는 그저 구석진 자리에서 이 연회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참가만 하면 돈을 준다더니.’


그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여기 서 있는 이유는 활약에 대한 포상을 받기 위함일 뿐이었다.

가문의 기사로 사는 건 제약이 많아 귀찮았다.


‘평생 놀고먹을 돈 정도만 줘도 좋을 텐데.’


탁탁-


그렇게 여기저기서 각자의 뜻을 가지고 움직이던 때, 바닥을 울린 작은 소리에 모두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연회장에 가득 울려 퍼지던 음악마저 끊겼다.


술기운으로 조금 붉어진 뺨을 식히며 젊은 왕이 연화장의 중앙에 섰다.

그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둥글게 모이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왕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한 사람을 그의 앞으로 불러냈다.


“카이델은 이쪽으로 오라.”

“네!”


카이델은 허리를 바짝 세웠다.

그리고 곧게 왕의 앞으로 걸어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위 귀족들의 눈이 자연스레 그에게로 향했다.

이런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

전쟁 영웅.


분명 막대한 포상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궁금증은 그게 아니었다. 과연 누가 그를 데려갈 것인가. 서로 힐끗거리는 눈 사이로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벌어졌다.


“그대에게 백작의 작위를 내리겠노라.”

“···!!”


그런 그들에게 벼락이 떨어졌다.

전쟁 영웅에게 막대한 포상을 내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파격적인 걸 상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그건 카이델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폐···”

“폐하!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백작이라뇨!”

“그는 애초에 귀족도 아니지 않습니까!”


조용하던 홀은 순식간에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이런 반발은 예상했기에, 젊은 왕은 누구에게도 의논하지 않았다. 귀족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자기 발아래에 있던 놈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누구의 발아래로 갈지 궁금했던 놈이 갑자기 머리를 밟고 올라서려는 것이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귀족에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은···그렇습니다. 지금 당장은 왕궁 기사로 임명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혹은 남작 정도라면···.”

“아니지. 자작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어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오!”

“자작이라니!”

“남작은 말이 됩니까!”


누구 하나 그를 자기 위로 올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평면이 올라올 수 있는 건 기사 정도였다. 그 이상은 오른 전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은 어떤 귀족의 피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그를 귀족으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없습니다.”

“평민은 그저 평민으로 만족하는 법입니다.”

“그가 귀족이 된다고 하여, 정말 좋은 여생을 보내리라 확신하십니까?”


‘···사람을 앞에 두고 잘도 떠드는군.’


카이델은 무표정한 가면 아래에서 투덜댔다. 본래 그는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굳이 한 자리 받을 이유도 없었고, 청한 적도 없다.

이 사태에 분노한 귀족들만큼이나 그도 짜증이 치솟고 있었다. 본래 그의 계획은 이대로 막대한 포상을 받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니까.


‘차라리 금은보화나 내려주지.’


권력 다툼으로 구르고 싸우는 것 또한 그에겐 머리 아픈 일이다.

귀족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공기나 권모술수 따위를 신경 쓰는 것도 질색이었다. 싸우려면 차라리 전장에 나가 검을 휘두르며 장렬히 불태우는 쪽이 좋았다.


“······.”


왕은 그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카이델은 이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고, 그 강함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가 기꺼이 받겠노라고 선언하면 주위 귀족들도 잠깐은 입을 다물어줄 것이었다. 일 초라도 입을 다문다면 그걸로 끝이다.

한 번이라도 인정하면 자리를 굳힐 수 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인물은 그런 왕의 마음은 조금도 헤아려주질 않았다.


왕의 실수는 하나였다.

카이델에게 권력욕이 없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물욕이 있기에 권력도 탐할 줄 알았다.


‘이 눈치 없는 놈에게 어떻게 눈치를 주어야 할까.’


왕이 골똘히 생각에 빠졌을 때였다.


“폐하.”


시끄러운 소리가 홀을 가득 메우는 가운데,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한마디에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왕마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듯 숨을 죽여야 했다.


“원하신다면 그에게 백작의 작위를 내리소서.”

“······.”


마치 내가 그걸 허락한다는 오만한 말투다.

왕은 그 오만함을 지적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왕위를 지키는 데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 인물이었고, 그의 외척인 공작이었다. 절대 경시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서쪽의 알로이스를 영지로 내려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

“알로이스!”

“그 땅의!”


공작의 한마디에 그들은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이제는 평화를 되찾은 왕국 변방의 땅 알로이스. 그곳은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다.

땅이 황폐하거나 지형이 험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근방이 몬스터의 소굴이다. 넓은 땅에 비해 사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다스리는 영주 또한 지금은 없다.


그 땅을 얻은 자는 모두 얼마 가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다.

혹은 죽기 전에 도망쳤다.


그런 곳을 영지로 내린다는 건, 전쟁 영웅에게 상은커녕 벌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제야 귀족들의 입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저희가 감히 폐하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나이다.”

“그라면 주위 몬스터들도 쉽게 물리칠 수 있겠지요. 전쟁 영웅이 아닙니까?”

“참으로 올바른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꾼 귀족들을 보며 카이델은 쓰게 웃었다.


‘그거 왕의 명령이 아니라 공작의 말이잖아.’


마치 왕의 명령이 떨어진 듯 찬양이 이어졌으나 왕은 단 한 번도 그러겠노라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귀족들은 이미 결정된 사안인 것처럼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왕은 이마를 짚었다.

기분 좋게 올라왔던 취기가 단번에 깨어 두통을 일으켰다. 하지만 힘이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선언한다면 누구도 물릴 수 없다고 판단하여 저지른 일이었다. 그런데 설마 그걸 그대로 자신이 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입에서 한숨 섞인 말이 밖으로 터져나갔다.


“카이델.”

“네.”

“그대에게 알로이스의 영지를 내리며, 또한 그것을 성으로 쓰는 걸 허락하겠다. 그대는 지금부터 자신을 카이델 알로이스라 칭하라.”


카이델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런 분위기에선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거부했다간 안 그래도 지반이 약한 왕은 더욱 우스운 처지에 놓이고 만다. 그리고 왕을 무시한 죄로 카이델의 목이 날아갈 것이다.


“···감사합니다.”


다양한 미사여구나 찬양의 말을 덧붙이면 좋았겠지만, 평민인 카이델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그는 쓴맛이 입안에 퍼지는 걸 느꼈다.

카이델 역시 알로이스에 대한 소문은 들었다. 그 만큼 위험하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하지만 그에겐 그게 나았다. 영지를 수호하느라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모임 따위엔 참여할 수 없다는 핑계는 댈 수 있을 테니까.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짓을 보내는 왕의 뜻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선 카이델은 슬쩍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후우···.”


그는 찬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숨이 막힐 듯한 향기와 분위기에서 벗어나니 드디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목까지 채운 옷도 느슨히 당기고, 단정히 쓸어 넘긴 머리도 마음껏 흐트러뜨렸다.


“내가 귀족···.”


그것도 백작.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일이었다. 하루아침에 평민에서 백작이 된 그는 기쁨보다는 두통을 먼저 느꼈다.


“하, 씨발. 그게 내 영지라고?”


그리고 덤으로 욕도 나왔다.


포상이나 잔뜩 받아서 놀고먹으며 지내려고 했건만. 아무래도 그 꿈은 영영 멀어진 듯했다. 게다가 골치 아픈 영지가 더해져 버렸다.


‘귀족은 뭐고, 영지는 또 뭐냐고. 다 귀찮게.’


그는 복도를 걸으며 계속 투덜댔다.


카이델이 향하는 곳은 병사들이나 사용하는 숙소였다. 하루아침에 귀족이 됐다고 지금 당장 모든 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최소한 잘 곳이라고 바뀌어야 마땅한 법인데, 누구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그는 그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면서도 한편으론 불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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