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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찾는 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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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작품등록일 :
2022.10.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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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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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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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1,841

작성
22.11.0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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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화

DUMMY

퍼렌도 백작의 기사와 동행하는 그들은 모든 관문을 일사천리로 통과할 수 있었다.

짐을 검사하기는커녕 말이 한 번도 멈추지 않았을 정도다. 이미 앞선 이들 자체가 통행증이나 다름없었다.


커다란 포도밭을 끼고 있는 도시답게 안에는 포도 향이 넘쳤다.


‘우물에서도 포도주가 나올 것 같다.’


카이델은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애써 눌렀다. 예상대로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었다.


10명 남짓 되는 기사와 짐마차 두 대.

그럼에도 화려하게 흔들리는 크고 고급스러운 가문의 깃발. 그걸 본 사람들 사이에서 ‘알로이스 백작’이라는 말이 오가는 것도 간간이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도시를 가로질러 그들의 말이 처음으로 멈춰 선 건 백작의 성으로 통하는 문 앞이었다.


“뒤에 모셔 오신 분이 알로이스 백작님이십니까?”

“그렇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물론 그것도 짧은 몇 마디만으로 무사통과였다. 문을 지날 때도 경비병의 눈이 그들의 뒤를 계속 따라붙었다.


“역시 우리 백작님이 유명해서 그런가?”

“그것밖에 없지.”

“그런데 존경의 눈초리만은 아니던데.”


뒤따르는 기사들은 몰래 수군댔다.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눈에 깃든 건 존경과 놀라움, 선망, 그리고 약간의 연민이었다.


안에 들어서자 삼십 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그들을 마중 나왔다. 영지가 풍요롭다는 걸 증명하는 듯 살집이 있는 체형에다가 머리카락은 뒤로 쓸어 넘겨 번들거린다.

옷은 한눈에도 고급스러운 차림. 친밀함을 그려 넣으려는 미소가 얼굴에 걸려있었다.


그를 발견한 카이델은 힐끗 옆을 보며 물었다.


“저 사람은?”

“저분이 바로 이곳을 다스리시는 퍼렌도 백작님이십니다.”

“백작이면 나랑 같은 작위고.”

“맞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앞에 두고 이렇게 쑥덕대는 건 예의가 아닙니다.”

“······.”


카이델은 불만스럽게 입을 꾹 다물었다.


‘자기도 했으면서.’


먼저 말을 꺼낸 건 카이델이었으나 메이슨 역시 받아주지 않았던가.

그는 툴툴대며 말을 세웠다.


말은 퍼렌도 백작의 앞이 아닌 적당히 떨어진 위치에서 멈췄고, 내릴 준비를 하며 그는 작은 고민에 빠졌다. 자기보다 낮은 사람에게는 반말을 해도 될 것 같은데, 같은 작위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반말이야, 존대야?’


평민이었던 시절에는 무조건 존대였다. 고민할 가치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귀족, 거기에 백작. 상대는 같은 작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생각을 멈췄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따라 하면 되잖아.’


간단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카이델이 말에서 내려 그 앞까지 걸어가자, 짙게 미소 지은 남자는 두 팔을 벌려 그를 환영하며 말했다.


“그대가 바로 알로이스 백작인가?”

“···!”


그리고 카이델은 확신했다.


‘오호라. 저렇게 하면 되나?’


확신은 곧 자신감을 가져왔다. 같은 작위면 까짓것 조금 사이가 불편한 친구처럼 대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어깨를 펴며 당당히 답했다.


“내가 알로이스 백작이 맞소. 그대가 이곳의 영주인 퍼렌도 백작인가?”

“······.”

“······엇?”


카이델의 한마디에 주변이 얼어붙었다.

그를 데려온 기사는 물론 앞에서 깊게 미소 짓던 퍼렌도 백작의 얼굴도 순간 경직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카이델이 그걸 알아채기 전에 퍼렌도 백작은 곧 노련하게 표정을 풀어냈다. 그는 한 손을 옆으로 뻗어 그들을 인도했다.


“우선···오랜 여행으로 피곤할 테니, 식사도 하고 여독도 풉시다.”


그리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백작님.”


퍼렌도 백작의 뒤를 쫓고 있을 때, 메이슨이 카이델을 따라잡았다.


“나?”


아니면 저 사람.

카이델은 시선만으로 앞을 힐끗 가리켰다. 검지를 들어 카이델을 가리킨 메이슨은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퍼렌도 백작님께 그런 말투를 쓰시면···.”

“저 사람이 쓴 걸 따라 한 건데.”

“······.”

“틀렸나?”


순간 말문이 막혔다.

카이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살피고 따라 한 것에 불과하니, 그치고는 대단히 발전된 모습을 보인 것이지 않던가.


“하지만 저쪽이 나이도 더 많고.”

“그래봤자 내 아버지뻘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메이슨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뒤로 물러났다.


‘이게 아닌데?’


카이델에게 말싸움에서 졌다고 생각하니 머리를 친 것처럼 충격이 다가왔다.

이게 아닌 것 같은데도 그의 말에 말려들어 버렸다. 그는 같은 작위인데 왜 우리가 숙이고 들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일단 카이델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자고 결론지었다.



*



그들이 식당에 도착했을 땐 커다란 식탁엔 이미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메인으로 올라온 향신료를 곁들인 사슴 구이는 아직도 따끈따끈한 김이 퍼져 나왔고, 고기가 잔뜩 들어간 스튜와 풍족하게 구워낸 빵. 그리고 그 옆에는 버터와 치즈가 놓여있었다.


“자, 앉읍시다.”


먹음직스러운 모습과 군침이 절로 삼켜지는 냄새를 참지 못하고 그들은 냉큼 자리에 앉았다.


“알로이스 경의 기사들도 한자리에 모였으니, 우리 기사를 불러도 되겠소?”

“물론이오.”


퍼렌도 백작이 손짓하자 몇 명의 우람한 체격을 지닌 기사들이 안으로 들어와 주변에 앉았다. 몇 명은 기선 제압을 하려는 듯 일부러 어깨를 더 추켜세우기도 했다.


“이렇게 기쁜 날은 또 없소. 체면 차리지 말고 먹읍시다.”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카이델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 뒤에 우선 고기를 가져와 뜯었다. 성에서 먹었던 것 못지않게 부드럽고, 값비싼 향신료를 아낌없이 쓴 맛이었다.


그는 곧바로 다른 음식들도 맛보았다. 본래 백작은 이런 걸 먹는 건가, 놀랄 정도로 하나같이 다 맛있다.


‘나도···이런 걸 먹으며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이미 물거품이 된 꿈을 떠올리며 카이델은 포도주를 마셨다.

포도주는 조금 떫으면서도 진한 알코올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단점이라면 끝에 쓴맛이 작은 여운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것만 없으면 꽤 좋은 포도주였다.


‘비싼 거라서 그런가?’


카이델은 다시 한번 포도주를 마시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열심히 입으로 나른 음식 덕분에 어느 정도 배가 차올랐을 때쯤, 퍼렌도 백작이 천천히 운을 뗐다.


“그러고 보니, 알로이스 경은 이번 전쟁영웅이 아닌가.”

“······.”


카이델은 잠깐 고민했다. 여기서 겸손의 미덕을 보여야 하나, 자신감을 보여야 하나.


‘같은 급이면 자신감이 낫겠지.’


이번만큼은 메이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런 별명이 붙긴 했더군.”

“······그렇다면, 그 실력을 한번 보여줄 수 있겠소?”

“어디 자랑하려고 익힌 건 아니오.”


그건 조금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다. 카이델의 검술은 이것저것 뒤죽박죽인데다가 살상용이었으니까.

카이델의 답을 들은 퍼렌도 백작이 미소를 지었다.


예상했던 대답이었던 모양이었다.


“우리 기사들이 그대를 존경해서 그렇소. 아직 어린 그들에게 좋은 검술을 보이면 도움이 되지 않겠소?”


카이델은 그 말에 동의하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퍼렌도 백작의 기사들을 눈으로 훑었다.


‘···어린놈은 하나도 없는데.’


모두 그 또래. 혹은 오히려 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뿐이었다.


카이델의 입에서 곧장 긍정의 답이 나오지 않자 백작은 목이 타는 듯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조건을 덧붙였다.


“그 대단한 백작님이시니, 우리 기사 두 녀석과 싸워서 이긴다면 여행 물자를 대주겠소.”

“그거 좋군.”

“자···!”

“결정된 거요. 번복하는 건 백작 체면에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메이슨의 입에서 반대의견이 나오기도 전에, 퍼렌도 백작은 능숙하게 그의 말을 차단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카이델과 자신의 잔에 포도주를 따르도록 지시했다.


“물론. 그대도 번복하지 마시오.”

“그럼 우리의 약속을 위해 건배합시다.”


채워진 잔을 높이 들어 올린 둘은 기분 좋게 포도주를 음미하며 마셨다.




*



“어땠냐. 내 백작 흉내.”

“흉내가 아니라 진짜 백작님이시잖습니까.”

“저는 속이 뒤집힐 뻔했습니다.”

“물론이오. 건배!”


카이델은 기사들의 숙소로 찾아와 그들과 희희낙락거리며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긴장한 게 손해였던 만큼 식사 시간은 활기를 띠었었다.

거기에 물자 조달까지 약속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알로이스 경.”


하지만 한 사람. 메이슨만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쟤가 경이라고 부르면 긴장되더라.”

“무슨 잘못하신 거 아닙니까?”

“오늘 나는 완벽한 백작이었을 텐데.”

“완벽하다니요.”


그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던 메이슨은 아직 사태 파악을 못 하는 초보 백작과 그 기사들 앞에 서서 눈을 희번덕거렸다.


“대등한 사람입니다.”

“뭐?”


갑작스러운 말에 카이델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놈은 알아듣기 쉬운 표현을 쓰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분과 당신은 대등한 작위입니다. 도착했을 때 백작님께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는데.”

“그런데 저 사람과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 기사와 백작이 싸우다니요.”

“백작한테 저 사람이라고 하는 거 아니라며.”

“······.”


메이슨은 순간 입을 떡 벌렸다가 재빨리 다물었다. 그나마 귀족으로서의 그의 자존심이 발동한 결과였다.

지금 그걸 따질 땐가. 저쪽이 기사를 내보내면 이쪽이 나가는 것도 기사여야 한다. 귀족의 상대는 귀족뿐. 그가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들으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던 순간, 카이델이 말을 가로챘다.


“그리고 물자를 준다잖아. 백작이 한 입으로 두말할까.”

“······.”

“알로이스까지 곧장 가는데도 우리에겐 물자가 부족하다고.”


입을 꾹 다문 메이슨을 본 기사들은 그의 패배를 직감했다.


“그리고 재미있을 것 같고, 아닙니까?”

“재미도 있겠지.”


그래서 기껏 숨죽이고 지켜보던 긴장감을 풀어내고, 그들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어 버렸다.


“···쓸데없는 말은 덧붙이지 마라.”


덕분에 카이델의 핀잔을 들었다.


“이번만입니다.”

“······.”


보란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는 메이슨을 보며 카이델은 이상함을 느꼈다. 이상하고도 찝찝한 기분이다.


‘왜 쟤가 백작이고, 내가 시종 같지?’


보좌관이 원래 이렇게 참견이 많은 위치인가.

다시 생각해볼 필요도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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