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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님의 서재입니다.

영지 찾는 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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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작품등록일 :
2022.10.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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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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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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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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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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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1화

DUMMY

그 모습을 지켜보는 퍼렌도 백작의 속이 한껏 뒤틀렸다.

그가 원하던 안주는 저런 게 아니었다. 쓴맛이 퍼지는 입안을 정화시키려 마신 포도주조차 씁쓸했다.


‘짜증 나는 평민 놈.’


퍼렌도 백작에게 카이델은 아직 평민에 불과했다.

그래서 자신의 분수를 깨닫게 하려고 구경거리로 내던져 줬더니, 웃음거리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당히 서 있는 저 모습조차 그에겐 불쾌했다.


‘아직 효과가 없는 건가?’


분명 어제 그에게 낸 포도주에 미량의 독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죽이려는 목적은 아니다.

아무리 상대가 평민 출신의 귀족이라고 해도, 왕이 직접 작위를 내린 인물이 여기서 독살당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당장 조사가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시종이 한 일이라고 모르는 척하는 걸로 넘어갈 수 없다. 퍼렌도 백작은 그렇게 경솔한 인물은 아니었다.


‘영웅이란 건 쉽게 쓰러지지 않는 법이긴 한데.’


그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그 잘 쓰러지지 않는 영웅이 여기서 쓰러지는 걸 보고 싶었다. 특히 자기 기사의 손에 쓰러지면 얼마나 우습고 짜릿할지를 떠올렸다.


여긴 그걸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툭툭.


테이블을 두드리는 그 손에는 짜증과 불안이 실렸다.


영웅이라면 독에 내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다른 방법을 떠올려야 한다. 그의 정신을 흐트러뜨릴 무언가가.


툭.


그는 손을 멈추고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 소식을 들으셨소? 알로이스 경.”

“···무슨 소문 말이오?”


챙!


카이델은 흔들리는 시야 덕분에 제대로 집중할 수도 없는 검을 받아치며 물었다.

별거 아닌 공격을 바로 쳐낼 수 없다는 게 짜증 났고, 시야가 뿌연 것 때문에 울화통이 치밀었다.


그럼에도 그의 발은 땅에 박힌 듯 고정되어 있다.


달려드는 기사의 검이 사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카이델은 그걸 끝까지 집중하며 볼 수 없었다. 그것만으로 속이 뒤집혔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휘이이-


상대의 공격은 단순했고, 기사답게 정직한 궤도를 그렸다.


챙!


카이델은 그런 공격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공격을 막은 뒤에 할 일은 한가지, 있는 힘껏 상대를 치는 것이다.


퍼억-


“크윽···!”


복부에 쳐들어온 강한 충격에 기사는 비틀대며 뒤로 두세 걸음 물러났다. 그는 내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에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물론 나오진 않았다.

안심한 뒤로 찾아온 것은 분노였다.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주제에, 공격도 제대로 보지 않는 주제에 모든 공격을 완벽히 차단한다.


‘움직이게 만들고 말겠다.’


퍽-


그사이에도 다른 한 명의 기사가 바닥에 쓰러지며 욕설을 내뱉는 게 보였다. 그의 시선 역시 카이델의 발끝에 향해있다.

두 사람의 생각이 하나로 모였다.


이미 그들의 목적은 카이델의 발을 뗄 수 있게 하느냐 마느냐로 바뀌고 있었다.


“아···그렇지. 무슨 소문이라고 했소?”


카이델은 미처 듣지 못했다는 듯 퍼렌도 백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대련 중 시선을 돌리는 것 역시 상대에게 굴욕감을 심어주는 것임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 새끼···.’


퍼렌도 백작은 이를 갈았다.

결투는 아니라고 하나, 그를 대신해서 나선 기사를 모욕하는 건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금세 표정을 고쳤다. 귀족이란 쉽게 흥분해선 안 된다.


“알로이스가 몬스터에게 공격받고 있다는 소문 말이오.”

“···!!”


기대한 보람이 있다.

이번 이야기는 꽤 잘 먹혔다. 놀란 카이델의 시선은 퍼렌도 백작에게 고정되었고,


“하아앗!”


퍽!!


기사의 공격에 조금도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그건 조금 전 당한 것에 대한 복수였다. 기사의 검이 카이델의 복부를 꿰뚫을 듯 쳤다. 끝이 뭉툭해도 자칫 잘못하면 박힌다. 그 정도의 힘이었다.


그걸 피하려면 뒤로 물러나면 된다. 기사가 기대한 것도 그것이었다.


“아···씨, 놀랐네.”


카이델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복부를 친 충격은 오히려 그의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어지러웠던 정신에 불이 들어왔고,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난 덕에 소량 섭취한 독이 조금 정화된 것이기도 했다.


“정신이 들게 해줘서 고맙군.”

“···뭐라고?”


그리고 드디어 기사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땅에 붙은 듯 꿋꿋하게 서 있던 카이델의 발 하나가 앞으로 내디뎌진 것이다.


“그리고 보답으로 너도 정신이 들면 좋겠고.”


빠악-!


“커헉···!”


카이델은 그대로 있는 힘껏 상대를 내리쳤다.


지금까지의 충격과는 전혀 달랐다.

기사가 마지막에 기억하는 건 새하얗게 물든 시야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


동료가 간단히 쓰러진 것을 본 다른 기사는 공격을 망설였다. 지금 덤볐다가는 저것과 같은 꼴이 날 것 같았다.


“알로이스는 원래 공격이 잦다고 들었는데.”


그 공격을 한 카이델은 태연히 말을 이어 나갔다.

앞에 찻잔을 두면 딱 좋을 듯 침착하고 태평한 말투였다.


“이, 이번엔 꽤 위험하다고 했소.”

“······.”


아직 구경도 하지 못한 영지가 공격받고 있다. 게다가 위험하기까지 하단다. 한 번도 보지 못했어도 그건 영주인 카이델의 책임이었다. 그리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한가하게 대련이나 하는 게 짜증 났다.


“그럼 빨리 가야겠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분노는 지금 눈앞에 서 있는 기사에게로 향했다.


“크···크으···.”


기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려달라고 내가 졌다고 빌 것만 같았다. 그 몸에서 풍기는 기운에 짓눌린 것도, 얼굴에 드러난 분노 때문도 아니다.


힘의 차이가 크다는 걸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다.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없다.


“으···으아앗!”


그럼에도 그는 검을 들어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미안. 내가 좀 바빠져서.”


겁에 질린 상태로도 검을 쥐어 덤비는 기사는 용감했다. 보통 때라면 몇 수는 봐주면서 상대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카이델에게 그런 여유는 없었다. 급히 달려가야 할 일이 생겼으니까.


카이델은 다리를 벌리고 서서 허리를 낮게 숙였다.

그리고 상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 맞춰 아래에서 위로 힘껏 검을 내질렀다.


빠각!


“···윽!?”


곧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연무장 가득 울렸다.


챙···.


뒤이어 날카로운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연무장 바닥에 떨어진 건 반은 날아간 검날.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진 기사를 보는 이들은 말이 없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사람들 사이에 공포와 냉기가 퍼졌다. 누구도 입을 열 생각을 하질 못했다.

이건 결투도 아니고 대련.

날이 선 무기도 아니고 스쳐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연습용 검이었을 텐데.


“···잠깐, 알로이스 백작님?”

“대련 중엔 상대를 죽이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무거운 침묵을 깬 건 카이델의 기사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뒤이어 펼쳐질 상황을 머리에 그리던 메이슨은 우선 도망가야겠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기까지 했다.


“기, 기다리시오. 알로이스 경. 이런 단순한 대련에서 살상을 하는 건···!”

“내가 힘 조절엔 실패했소만.”


마침 트집거리를 잡았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퍼렌도 백작을 보며, 카이델은 쓰러진 기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툭, 발로 쳐서 그를 뒤집으며 말했다.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소.”


몸이 뒤집힌 기사는 기절한 듯 몸을 가누지 못하고 흐느적댔다. 하지만 어디에도 피는 흐르지 않았다.

게다가 살아있다는 증거로, 그의 가슴 부근이 천천히 솟았다가 꺼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

“······.”


카이델의 기사들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저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도 충고한 덕에 피를 부르진 않았다.


“크으···.”


작은 트집도 잡아낼 수 없었다. 퍼렌도 백작은 조금 전 마신 포도주가 분노와 함께 역류하는 듯했다. 하지만 귀족의 체통상 그걸 입 밖으로 토해낼 수는 없다.


“그럼···이제 남은 건 정산뿐이로군.”

“······.”


테이블 위로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약속은 약속.

퍼렌도 백작은 순식간에 명예도 손상되고, 물자도 잃는 처지에 놓였다.


“우선 필요한 물품을 정리하여 전하겠습니다, 퍼렌도 백작님.”


새파란 안색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대련을 지켜보던 메이슨이 재빨리 튀어나와 그의 앞에 섰다.


카이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보좌관이 나서야 할 때였다.






*





퍼렌도 백작은 포도주잔을 손으로 굴렸다.

약속대로 많은 물자를 지원해주었고, 그들은 그걸 싣기 위한 크고 좋은 마차까지 한 대 가져갔다. 게다가 물자를 옮기는 동안 먹고 마신 것만 해도 상상을 초월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거라며 넣을 수 있는 최대한까지 입안에 쑤셔 넣은 결과였다.


피투성이인 패배나 마찬가지다.


거기에 덧붙여 고맙다고 거만하게 고개를 까딱이는 꼴을 보니, 퍼렌도 백작은 창자가 꼬이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꼬였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속이 아픈 걸 보면.


그는 조용히 뒤에 서 있는 시종에게 손짓했다.

그것만으로 주인의 뜻을 알아차린 시종은 허리를 숙이며 저편으로 사라졌다.


“후···. 영웅이란 건 제 할 일이 끝나면 사라져야 하는 법이거늘.”


그는 후회했다.

간밤에 그 포도주에 넣었던 독의 양을 더 늘리지 않은 것을.


아니, 그 전. 애초에 카이델 알로이스를 자기 영지로 불러들인 것 자체가 후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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