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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님의 서재입니다.

영지 찾는 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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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키유
작품등록일 :
2022.10.31 14:31
최근연재일 :
2022.12.0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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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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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3
추천수 :
373
글자수 :
141,841

작성
22.11.22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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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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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2화

DUMMY

퍼렌도 백작의 식당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그보다 넓은 식당이 그들을 맞이했다.

여러 개가 줄지어 늘어선 길고 넓은 식탁은 한 번에 많은 기사가 식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위에 이제 막 완성된 듯한 음식이 하나씩 놓였다.


그 역시 소박한 것들이었다.

소박하지만 기력을 회복하기에 좋은 음식. 거기에 오늘은 특별히 카이델을 위해 커다란 통돼지 구이가 식탁의 중앙마다 놓였다.


‘흠···.’


안내받은 자리에 앉은 카이델은 음식을 눈으로 훑었다. 역시 빈번한 싸움이 일어나는 지역치고는 잘 차려져 있다.


“이것들은?”

“아~ 참, 이제 이 땅 주인이셨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들을 따라나선 기사 중 하나가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답했다.


“당연히 우리 지역 자체에서는 농산물 수확량이 적습니다. 잦은 전투로 황폐해진 땅이 많으니까. 그 대신이라고 하긴 그렇습니다만.”


기사가 잠시 말을 끊었을 때 나머지 기사들 역시 자리에 앉았는데, 카이델의 기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성벽 기사들 사이에 섞여 앉아야 했다.

당연히 카이델의 식탁에도 그의 기사는 저 멀리에만 보일 뿐이었다.


맞은편 기사는 큰 집게와 고기용 나이프를 그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덕분에 주변 귀족분들이나 왕실에서 여러 식자재를 보내주고 계십니다.”

“내전 때는 어땠지?”

“양은 줄었어도 조금씩은 보내긴 했습니다. 멀리 계신 분들이야 신경 쓰지 않아도, 근처는 이곳이 무너지면 큰일이니까 말입니다.”

“흠···.”


카이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저 오크 무리가 여길 지나갔다면 왕국 내부는 제대로 대처도 하지 못한 채 쑥대밭이 됐을 것이다.


그들이 내전에 관여하지 않은 이유는 여길 지킨다는 명목도 있었으나, 갈라진 양쪽 모두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듯했다.


“물론···죽만 먹은 적도 있고, 한가할 땐 주변에 사냥도 다닙니다.”


그가 가만히 나이프를 들고 서 있자, 기사는 통돼지 구이 쪽을 가리켰다.

카이델은 손짓에 따라 어설프게 집게로 고기를 잡고 나이프로 천천히 외곽을 썰어냈다.


“여긴 주요 귀빈이 통구이를 썰어서 나눠주는 전통이 있어서 말입니다.”

“흠···.”


기사는 뒤늦게 이 행동의 의미를 설명했다.


검을 휘두르는 것과 고기를 자르는 일은 분야가 달랐다. 두께가 들쭉날쭉한 고기가 접시에 가득 쌓였고, 기사는 터지는 웃음을 가까스로 삼켜냈다.


“다른 것들도 잘라야 하나?”

“아닙니다. 이거면 충분합니다. 편하게 식사하십시오.”


기사가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들고 식탁 사이를 돌아다니는 사이, 카이델은 굶주린 배를 채워나갔다.

소박하지만 맛은 꽤 좋다.


그의 기사들은 다른 이들과 잘 어울렸다.

함께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이미 서로 잔을 부딪치며 떠드는 곳도 있었다. 그런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는 조용히 자기 앞에 놓인 음식만 먹는 메이슨과 레이나가 오히려 눈에 띄었다.

주위와는 다르게 움직임에 기품이 넘친다는 것도 본인들은 모를 것이다.


그렇게 음식을 먹으며 주위를 구경하는 사이에 그의 앞에 가지런히 잘린 돼지고기가 놓였다.


“······.”


자신의 것과 차이가 심한 그 가지런한 생김새를 흘깃 보며 여러 개를 찍어 우걱우걱 씹었다.


툭-


열심히 고개를 씹는 카이델의 앞에 큰 맥주잔 하나가 놓였다.


“백작님, 맥주는 어떻습니까?”


카이델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잔을 들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기름진 고기를 씹은 뒤에 마시는 맥주는 청량하게 목으로 잘도 넘어갔다.


탁-!


순식간에 깔끔히 비운 잔이 식탁 위로 떨어져 내렸다.


“오!”

“잘 드시는데?”

“시원시원하구만.”


어느새 카이델의 근처로 모여든 성벽 기사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사실 저희에게 전통이 하나 더 있는데···”

“개소리는 안 받아준다.”

“아니, 한 번 들어나 보십쇼.”


기사가 재빨리 손짓을 보내자 저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들고 카이델 옆까지 다가왔다.


“이건 뭐지?”

“저희 전통. 전투에서 승리 시, 그 주역이 뿔 나팔에 맥주를 가득 부어 마시는 겁니다.”

“······그건 누가 쓰던 거지?”


카이델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그의 눈은 뿔 나팔 겉에 가득 펼쳐진 크고 작은 상처에 고정되어 있었다. 딱 보기에도 누군가 사용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야 당연히, 방금 쓰러진 오크 대장이···”

“안 마셔.”

“······.”

“······.”


전통이고 뭐고, 그런 것에 술을 마시면 맛이 확 떨어지는 법이다. 몬스터가 쓰던 물건에 아무리 고급스러운 술을 부어도 싫은 건 싫은 것이었다.

그러자 기사들은 다급히 외쳤다.


“괜찮습니다.”

“이거, 깨끗하게 씻어 왔으니까.”

“마법사의 청결 마법까지 가득 쏟아부었습니다. 마시는 데 전~혀 문제없습니다.”

“···여기에 마법사가 있나?”


하지만 카이델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쏠렸다.

흔하지 않은 마법사가 여기에 있다. 몬스터의 습격이 잦은 곳이니 당연했다. 그는 마법사가 어떤 인물일지 조금은 관심이 생겼다.


“있습니다.”

“내일 정식으로 인사하라고 하겠습니다.”


기사들은 그 관심을 재빨리 차단하며, 그의 앞에 뿔 나팔을 내밀었다.


카이델은 우선 뿔 나팔을 받았다. 넓은 입구와 매끄럽게 구부러진 몸통 안에 맥주가 넘칠 듯 담겨서는 끝에 거품이 잔뜩 얹혀있었다.


‘어차피 이거 안 마시면 계속 앞에 두겠지.’


그는 넓은 입구 끝에 입을 대었다.


“오~!”


그리고 주변의 환호성을 들으며 쉴 새 없이 맥주를 마셨다.


‘···생각보다는 괜찮은데?’


아무리 잘 씻고, 마법까지 썼다고 해도 꺼림직했던 것과는 다르게 맥주의 풍미까지 느껴질 정도로 괜찮은 잔이다.


그가 맥주를 비우는 것 또한 순식간이었다.





*







“와, 씨···.”


눈을 뜬 카이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뿔 나팔에 가득 채운 술을 한 번만 마시면 되는 줄 알았건만. 그걸 비우자마자 다시 안에 맥주가 가득 부어졌다.


몇 번이나 잔을 비우고, 보복으로 주위 사람에게 마시게 한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이후가 잘 기억나질 않았다.


오랜만에 술로 인해 기억이 끊겼다.


“아···머리야···.”


우선은 기억나지 않는 부분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는 대충 준비를 마치고 방을 나섰다.


“백작님. 어제 좀 드시던데, 괜찮으십니까?”


복도를 어슬렁대는 카이델을 발견한 성벽 기사들이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한바탕 전투와 함께 마신 술 덕에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지낸 동료처럼 친밀하게 그를 대하고 있었다.


“이거 꿀물입니다. 숙취에 좋습니다.”

“어? 고맙군.”


카이델은 기사가 내민 잔을 아무런 의심 없이 마셨다.


‘···응?’


그리고 잔을 내려다보았다. 입안에 맴도는 씁쓸한 맛과 코를 자극하는 알코올 향.


“···물이 아닌데?”


물론 혀끝에 꿀의 단맛은 약간 느껴지긴 했다.


“크하하하하!”

“그거 벌꿀주입니다.”

“그래도 덜 숙성된 걸 가져와서 꿀맛이 조금 느껴지지 않습니까?”

“술은 술로 푸는 법입니다.”

“······.”


그렇게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그들은 카이델을 지나쳐 복도를 걸었다. 그에게 벌꿀주를 건네려고 일부러 길을 우회한 듯했다.


카이델은 오히려 머리가 더 어지러워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맛은 나쁘지 않아, 그는 벌꿀주를 홀짝이며 복도를 걸어 밖으로 나섰다. 그러고 보니 그의 기사들이 아직 보이질 않았다.


‘이놈들은 어디 갔지?’


“아, 백작님. 괜찮으십니까?”


대신 그와 마주친 성벽 기사들은 한결같이 반갑게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덧붙여 지난밤 얼마나 달렸는지 알려주듯이 우선 그의 안부부터 묻는다.


“아주 좋은 꿀물을 받았는데 말이지.”

“그거 정말 효과는 있습니다.”

“······.”


아무래도 정말 이들은 숙취해소제로 벌꿀주를 마시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저 사람도 기사였습니까? 마법사가 아니라?”

“뭐? 누구?”


챙-!


어제 늦게까지 술을 마신 인원이 꽤 됐음에도, 아침부터 누군가 열심히 훈련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야아앗!”

“그렇게 쥐면 안 된다.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검을 떨어뜨리는 자세니까.”

“···?”


카이델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챙!


그리고 그가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땐,


푹-


기사의 말대로 그 검이 손에서 튕기며 허공을 빙그르르 돌아, 흙바닥에 깊이 박혔다.


“···으.”


레이나는 분한 듯 이를 갈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

“······.”

“뭐 하는 거지?”


그 주위로 카이델의 기사와 성벽 기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쑥덕대고 있었다.

카이델을 발견한 그들은 허리를 곧게 펴서 인사를 건넸다.


“검 단련시켜달라고 하던데요?”

“저 사람 마법사가 아닙니까? 왜 검을 쓰려고 한답니까?”

“호신용?”


카이델은 어깨를 으쓱이며 벌꿀주를 마저 마셨다.


“기사가 되고 싶다던데?”

“그게 정말이었나!?”

“농담이시죠?”


성벽 기사들은 깜짝 놀라며 다시 레이나를 보았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녀는 기사가 되기에는 재능이 없었다.


“어제 활약하셨다는 백작님이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여기를 지키는 마법사 케일입니다.”

“마법사?”


인사를 시키겠다더니, 정말 마법사가 인사를 하러 왔다. 아니, 온 건 카이델이 먼저였으나. 어쨌든 그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마법사를 살폈다.

하지만 카이델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넨 그는 다급히 뒷말을 덧붙였다.


“저 사람, 기사를 시키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절대 안 됩니다. 마법사가 되어야 합니다.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니까요.”

“···그건 자기 마음이지.”

“네?! 부하의 재능은 잘 키워주십시오!”


그리고 심드렁한 카이델의 말에 당황하며 크게 소리쳤다.


“내 부하 아닌데.”

“···?”

“어?”

“뭐라고요?”


잠시 얼어붙었던 주위가 다시 수군대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내 부하 아니라고.”

“그럼, 뭡니까?”

“그냥···목적지가 같은 동행자?”

“네? 이상하네. 분명 저 아가씨가 이 기사단 소속이랬는데.”


케일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고, 이번엔 카이델이 당황할 차례였다. 지금까지 들었던 소리 중에 가장 머리로 이해하지 못한 말이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언제 기사로 받아주셨습니까?”


그건 카이델의 기사도 마찬가지.


“기억에 없는데···. 설마 어제 술 취해서 헛소리라도 했나?”


설마 술김에 내 기사로 받아주겠노라고 약속이라도 한 건가. 카이델은 지난밤의 기억을 헤집어 봤으나, 떠오르는 건 하나도 없었다.


“아니요. 백작님은 그냥 술만 미친 듯이 마신 뒤에 방까지 잘 돌아가셨습니다.”

“발걸음은 쓰러질 듯 비틀댔지만.”

“······.”


그렇다면 레이나는 왜 카이델 기사단 소속이라 한 건가.


그는 남은 벌꿀주를 모두 들이키며 레이나의 단련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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