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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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마지막 주말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많지 않네요.”
“아카데미 밖으로 나간 얘들도 많겠지.”
“그런데 이 가면 계속 쓰고 있어야 해요? 답답한데.”
“가리는 편이 좋을 걸? 아카데미 학생들의 추리능력을 무시하지 마. 얘들은 비밀이 있으면 무조건 밝히려고 한다고. 특히, 신문부를 조심해.”
리우리케의 당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 신문부의 명성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자자했으니까. 나는 삐뚤어진 새하얀 가면을 고쳐 쓰고 우리는 학생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로 이동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카페와 각종 식당, 물건들을 파는 번화가로 향했다. 간혹 내 가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군거리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가면을 벗자.”
리우리케의 말에 나는 곧이곧대로 따랐다. 약점을 잡혀 있던 탓에 그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거다. 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벗으라니 기분은 좋았다. 상쾌한 바람을 맞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사실 답답하고 더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구석진 곳에서 나온 우리는 번화한 거리로 들어갔다. 리우리케의 손엔 새벽에 만든 나무 팻말이 들려 있었다.
-보드게임부 동아리에서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단출한 문구였지만, 이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리우리케도 확실히 효과가 있을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말은 내 얼굴을 금칠하는 말이었다.
“우리 주군의 얼굴을 본 미의 여신이 미워할지도 모르겠네. 자기 자리를 뺐기겠다며 한탄할지도. 후훗.”
내가 보기엔 리우리케는 아부를 참 잘하는 것 같다. 의외로 말이지. 사람이 많은 곳으로 향하자 시선들이 뜨겁다 못해 따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남녀의 시선이 확연히 달랐다. 여자는 질투와 시기심인 것에 반해 남자들은... 말을 말자. 내 입으로 말하기 껄끄러우니까. 녀석들의 얼빠진 표정을 보곤 내가 남자가 되었다면 저런 얼굴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 정도로 남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반응이 뜨겁자 리우리케는 내 귀에 속삭이며 말했다.
‘주군, 여기서 한 마디 해줘야겠는데? 이미 둘러싸여서 나아갈 수도 없다구.’
리우리케의 말이 옳았다. 이미 우리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양 옆, 뒤도 꽉 찼다. 대다수가 남자라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헛기침으로 주변을 환기시켰다. 그러자 녀석들의 눈동자가 확 바뀌었다. 마치 이곳에서 내 말을 방해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죽일 기세였다. 리우리케는 쿡쿡 웃으며 이 상황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아, 떨린다. 괜히 나선다고 했나... 나는 슬쩍 입술을 움직였다.
“여러분, 아, 안녕하세요?”
젠장, 떨림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나는 당혹했고 주변은 침묵. 마치 신께 미사를 드릴 때처럼 조용해졌다. 하지만 이내 쏟아지는 환호성! 헉!
“우아아아아아아! 드디어 나타나셨다!”
“사라지지 않으셨어!”
“말로만 듣다가 직접 보게 되다니! 믿을 수 없어!”
“야! 여기 로즈 거리인데! 빨리 와! 여신님께서 강림하셨어! 거짓말 아니야! 진짜라고!”
“여신이시여! 도대체 어디에 숨어 계셨던 겁니까!”
너희들 때문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노라... 아니지! 방금 넘어갈 뻔 했다. 자뻑하는 여자의 유형대로 갈 뻔했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눈빛으로 리우리케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리우리케는 윙크로 답했다. 나름 일처리를 잘하는 사람이니 벌어진 일을 잘 수습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그녀는 근엄한 어조로 군중들에게 소리쳤다. 마치... 광신도 집단의 주동자처럼 말이다.
“모두 조용히 하고 들으라! 여신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도다!”
그러자 거리는 다시 침묵으로 돌아섰다. 뭐? 이게 지금 무슨 시추에이션인가요? 리우리케 선배님?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손짓을 하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여신님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너희들이 보드게임부에 가입한다면! 한 시간 데이트 권을 주겠다며... 켁!”
더는 들어줄 수 없던 나는 리우리케의 목을 당수로 쳤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믿은 내가 잘못이지... 젠장할.
“아, 아니에요! 전 그런 말 한 적 없어... 헉!”
“지금 당장 가입하겠습니다!”
“내가 먼저야! 새치기 하지 마! 리우리케 선배님! 선배님께 직접 제출하면 됩니까?”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워낙 명성이 자자하신 우리 리우리케 님이라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나쁜 쪽으로 말이다. 카나폰 언니 패거리들은 아카데미 내에서 아주 자자한 유명인들이었으니까. 어느새 리우리케는 정신을 차리고 직접 가져온 종이에 녀석들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뭐하는 거죠? 왜 돈을... 그녀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 헉! 10골드잖아? 이런 미친!
“후훗! 당연히 가입비죠. 주군의 활동비에 쓸 예정이니까요. 어머! 10골드면 추기경이 되시겠어요. 가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라시아스 추기경님.”
헉! 너 언제 온 거야? 나는 놀란 토끼 눈처럼 휘둥그레졌다. 다행이도 그라시아스는 그런 내 얼굴을 보지 못했다. 녀석은 진지한 표정으로 리우리케에게 물었다.
“더 낼 수 있다. 100골드면 제사장 정도는 되나?”
이런 미친 자식아!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구! 왜 쓸데없는 일에 사용하고 그래? 하지만 그라시아스에게 아는 척 할 수는 없었다. 지금 나는 엘렌 S 슈네이도르가 아닌 다른 사람이니까. 리우리케는 정말 아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표정은 짓지 마...
“아쉽지만 10골드가 마지노선입니다. 제사장은 저거든요. 미의 여신을 모시는 제사장은 저 한 사람으로 충분합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궤변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과연’이란 말을 내뱉었다. 다들 멍청이인가? 리우리케의 말에 홀딱 빠진 녀석들이었다. 한 명, 두 명, 다섯 명, 열 명, 이십 명, 오십 명...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는 몰라도 가입자 수만 100명을 넘어섰다. 신입생은 물론이고 졸업반인 포스 클래스까지 다양한 남자들이 가입했다. 소수의 여자들도 있었지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취향이라는 게 사람들마다 다 다르니까.
“자자! 아쉽지만, 1차 신도는 여기까지만 받겠습니다. 2차 신도는 2학기에 받을 예정이오니 너무 섭섭해 하지 마시길. 주군, 이만 가실까요?”
리우리케의 눈웃음에 주먹을 한 대 날리고 싶은 건 잘 못된 생각일까? 나는 돌아오면서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엔 해결하지 못한 고민으로 남았다. 그런데 가입비로 받았던 돈은 모두 리우리케가 먹는 건가?
***
다음날, 산뜻한 주말을 보낸 나는 월요일 아침 신문의 헤드라인을 보곤 들고 있던 찻잔을 그대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충격적인 제목과 함께 내 본모습과 리우리케 그리고 수많은 남자들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멍하니 서 있는 내 모습을 본 에스텔이 잽싸게 달려와 신문을 뺏어 읽더니 배꼽 잡으며 웃어댔다.
“흐하하하하! 에, 엘렌! 너무 웃겨서 우, 웃음밖에 안 나와! 흐하하하하!”
운동장을 돌 듯 내 침대 위에서 뒹구는 에스텔이었다. 나는 다시 신문을 빼앗아 들곤 다시 제목을 읽었다. 이번엔 소리 내면서 말이다.
“충격! 아카데미에 신흥 종교가 만들어져... 신도들은 대다수가 남자, 모두 한 여자의 외모를 보곤 빠져들어.”
“이젠 눈물이 나려고 해... 흐끅!”
“... 눈물은 내가 흘리면 안 되겠니?”
“안 돼! 내가 흘릴 거야. 기쁨의 눈물을!”
그래, 많이 울어라. 실컷 울어라.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그저 몇 명만 동아리에 가입시키려 했건만... 일이 너무 커져버렸다. 이 많은 인원을 어떻게 감당하고 특히! 프시케 언니에게 어떤 해명을 해야 할지. 머리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띠링! 이 소리는 내 통신 구슬에서 나는 문자 메시지였다. 나는 통신 구슬에 떠 있는 이름을 보곤 고개를 떨궜다. 그다음 힘없이 이름을 눌러 메시지를 확인했다.
보낸 사람 – 프시케 언니
-엘렌, 지금 당장 내 연구실로 오너라.-
나는 이제 죽었다. 죽었다고 세 번복창해야 했다... 창백해진 내 얼굴이 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에스텔은 여전히 웃고... 아니 넌 정말로 울고 있구나! 고맙다. 친구의 사형선고에 우정의 눈물만한 게 없지. 나는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했다.
***
청년은 배달된 신문을 읽곤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감동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본모습은 놀랍도록 닮았다. 역시 아직 살아있다는 자신의 가정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얼굴이 공개된 건 그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아카데미 신문 헤드라인에 걸렸다면 이미 다른 녀석들도 확인했을 터였다. 그녀의 얼굴을 본다면? 아마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건 그녀와 그에게 불행이었다. 같이 신문을 읽은 메넬레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왕국의 윗대가리들이 이 사진을 본다면 엘렌 아가씨의 신변은 위험해 질 거야. 어떻게 할 거지? 르펜?”
르펜은 그의 말에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이건 위험했다. 무슨 생각으로 얼굴을 공개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이렇게 된 이상 시기를 앞당겨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직 3권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이상 공식적인 움직임은 불가능했다. 이건 전 수장인 리블레다인 공작의 유언이었으니까. 그는 차분히 생각했다. 우선 가장 걸림돌이 될 자부터 떠올렸다.
“슈네이도르에서는 어떻게 움직일까?”
어느새 반말로 대하는 그였다. 하지만 메넬레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그의 힘과 위치는 인정하고 있으니까. 그는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와 대답했다.
“어쩌면 죽일지도 모르지. 지금까지 엘렌 아기씨를 감춰왔으니까.”
과연 그럴까? 자신이 직접 본 은발의 마녀, 프시케는 그럴 위인이 아니었다. 설령 가주가 죽이려 든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엘렌 아가씨를 감쌀 테니까. 그렇다면... 르펜은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지도 몰랐다.
“이참에 빚을 지게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그건 무슨 소리지?”
“아직 내 사람이 아닌데 당신에게 말할 필요는 없지.”
그랬다. 메넬레스는 아직 르펜에게 충성의 맹세를 하지 않았다.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빠르게 맺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공동 목적인 엘렌 아가씨를 지키는 것. 이 명분이라면 자신의 체면도 설 테니까.
“좋아. 르펜, 너의 하인이 되도록 하지. 하지만! 나는 엘렌 아가씨를 지지한다.”
“후후후, 그러든가. 뭐, 나도 엘렌 아가씨는 끔찍이 아끼는 편이라서 말이야.”
르펜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위기회. 이건 위기이자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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