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엘렌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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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 엘렌의 위기!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너를 보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아, 이 노래는 정말 지금 상황을 잘 표현한 곡임이 틀림없다. 그래, 넌 이 엘렌의 명곡반열에 올랐어. 내가 인정할게. 그런데 지금은 이런 멍청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빨리 사과드려야 했다. 하지만 저하는 고개를 저으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본인의 얼굴을 꼬집은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겠네.”
“가, 감사합니다. 하늘과 같은 은혜에...”
“너무 치켜세우진 말게나. 자네 덕분에 신선한 경험을 했으니까 말일세. 나중에 다른 경험을 하고 싶군.”
그 신선한 경험 두 번 했다가는 활활 타오르는 불에 타죽을 것 같습니다. 다른 경험을 하시고 싶으시다면 다른 이를 찾아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참고로 전,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매우 매우 약해서 매일 약을 지어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세자 저하는 내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신다.
“그대에게 그런 병이 있는 줄 몰랐구나. 모든 게 다 내 부덕함에서 비롯한 걸세. 내 궁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심장에 좋은 약들을 모조리 보내주겠네.”
“아, 아니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아닐세! 내 약속하지.”
하아... 이 사람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더니 이런 거였어? 완전 다프네 누님과 판박이잖아? 어쩔 수 없다.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거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감사합니다. 하늘과 같은 은혜...”
“어허. 그런 인사치레는 그만하래도. 우리 사이에 그런 게 무슨 소용인가?”
도대체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입니까? 설마, 정말로 영입하려는 건 아니겠죠? 나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무, 무슨 사이입니까?”
그러자 세자 저하는 빙긋 웃으며 대답하셨다.
“모르고 있었는가? 친한 친구 사이지 않은가?”
아아, 친한 친구 사이였군요? 휴우, 그런데 허탈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뭔가 아쉽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휙 하고 지나간다.
“맞습니다. 친한 친구 사이지요.”
“그래서 말인데... 내 부탁 하나를 들어주면 안 되겠는가?”
응? 왠지 불안해진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면 저 대답하기 힘듭니다. 제가 생각할 시간은 주셔야죠. 우선 말을 뱉고 본다.
“마, 말씀하십시오.”
나는 눈치를 보며 차를 마셨다. 과연 어떤 말을 하실까? 나는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세자빈 연기 좀 해줬으면 하네. 숨겨둔 애인으로 말이야.”
푸흡! 이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갑자기 세자빈이라니? 세자 저하,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전 엄연한 남자입니다! 후, 차가 세자 저하의 옷에 튀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랬다면 큰일났겠지.
“안 되겠는가? 우리는 친한 사이지 않은가?”
이보세요. 친한 사이라는 인간들은 북쪽 허허벌판에서 다 얼어 죽었나 보죠? 앞에서 말했던 발언, 당장 취소하죠. 우리는 절대! 친한 사이가 아닙니다. 그냥 지체 높으신 분의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눈 그런 사이지요. 내가 대답하지 않고 있자 세자 저하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본인도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이제 며칠 후면 세례식인데 갑자기 세자빈으로 떡하니 나타나면 무슨 개... 아니, X... 아니, 무척 아름다운? 상황이 펼쳐질지... 상상하기 싫었다. 덜컥 수락했다가 여자가 되는 날엔 꼼짝없이 시집가게 생겼으니까. 물론, 남자가 되어도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겠지만 말이다. 그래, 우선 거절 의사를 밝히자.
“죄송합니다. 그건 제가 판단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집안 문제도 달려있어서...”
“역시 그러한가... 뭐, 어쩔 수 없구나. 그대를 믿었거늘.”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바마마가 고른 여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다네.”
음, 여인이 아니라 가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겠지. 솔직히 우리 가문보다 좋은 가문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결혼하지 않은 여인을 찾는 건 어려웠다. 그리고 가뜩이나 세력이 약한 세자와 결합할 가문은 손에 꼽을 정도다. 찾아보자면 트레디오스 가문, 메를린 가문, 케이샤 가문 등등. 한 6~7 정도 되려나? 생각을 해보니 내가 남자라는 것을 알고도 이런 부탁을 한다는 게 어느 정도는 이해 갔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한껏 꾸미면 나도 평범한 여자로 변장할 수는 있으니까.
“어느 가문의 여식입니까?”
“케이샤 후작의 막내딸일세. 아니, 딸이 하나밖에 없겠지.”
케이샤 후작이라... 국왕의 눈이 삐어도 단단히 삔 게 틀림없다. 귀족파 수장의 딸을 세자 비로 삼을 생각하다니 너무 꿈이 크시다. 세자 저하도 그것을 알고 반대하는 것이리라. 어라? 케이샤 후작가엔 딸이 없는 걸로 아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직접 물어볼 순 없었다. 세자 저하의 눈빛이 예상외로 사나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생각해 보니 우리 가문으로 해도 문제가 많았다. 물론, 내가 될 생각은 전혀! 눈곱만큼도 없었다.
“정말 최악이군요.”
내 짧은 평가에 실소를 흘리시며 나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내시는 세자 저하였다. 본인이 내뱉을 수 없는 말이라 내가 대신해주니 좋아하는 것이리라.
“그대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케이샤 후작의 여식과 성혼하겠지.”
이 양반 은근히 다시 대쉬하네? 아무리 살인미소를 지어도 소용없습니다. 전 철벽 그 자체거든요.
“최대한 늦추는 방법을 찾으시면 될 듯합니다.”
“그래서 내가 부탁하고 있지 않은가?”
“아, 이건 제외하고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냥 결혼하는 수밖에.”
아 씨! 왜 이렇게 치근덕거리는 거야! 말귀를 알아들어 먹었으면 제발 꺼지라고! 내 속은 장작 백만 개가 타들어 가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럼, 나 말고 다프네 누님을 던져봐?
“다프네 누님은 어떻습니까? 저하와 나이도 비슷하시니...”
“난 연하가 좋네.”
“... 취향이 확고하시군요.”
“그리고 그날 자네가 다프네 양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내게 하지 않았는가? 그것 때문에 선입견이 생겼네. 하하하.”
웃을 일이 아닙니다만? 내 빅 픽쳐 설계가 잘못됐다. 그날 돌려 깎지 말걸! 누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나?
“그렇지. 웃을 일은 아니지. 휴우.”
한탄에 가까운 어조로 말씀하시니 보는 내가 땅 속으로 꺼질 것 만 같았다. 그때, 또 내 방을 노크하는 소리 들렸다. 깜짝 놀란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재빠르게 침대 밑을 가리켰다. 그러자 세자 저하는 고개를 끄덕이곤 신속하게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눈치는 빨라서 좋다. 나는 세자 저하가 마시던 찻잔을 재빨리 치우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십니까?”
“엘렌, 나다.”
헉! 프시케 누님이잖아! 어, 어떻게 하지? 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연기 수행이 부족했는지 유지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을 지체하다간 프시케 누님에게 의심을 살지 몰랐다. 나는 심호흡을 하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드, 들어오세요!”
편안한 잠옷 차림으로 들어오시는 프시케 누님이었다. 은색으로 색깔 맞춤하신 우리 누님... 패션 감각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치셨다. 물론, 외모가 다 커버하니 패션 고자라 해도 상관없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니까. 나는 프시케 누님을 자리에 안내했다. 누님은 내 방을 둘러보시더니 이내 자리에 앉으셨다. 마치 뭔가를 캐내려고 하는 수사관처럼 행동하니 나는 물건을 훔친 도둑이 된 것만 같았다.
“혼자 있었느냐?”
그럼, 혼자 있지 둘이 있습니까? 아리엘은 휴가 간 지 오랜데? 물론, 세자 저하는 안 오셨습니다. 절대로요.
“네. 이제 막 잠들 던 차에 누님이 오셨네요.”
“말에 가시가 있구나.”
“아, 아닙니다! 전혀요!”
당황하는 나에게 프시케 누님은 살며시 웃음을 지으셨다. 누님, 그렇게 미소를 보이시면 더 무서워요.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하느냐?”
“아닙니다.”
“그럼, 왜 당황하느냐?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러느냐?”
계속되는 추궁에 나는 정신이 혼란해졌다. 이럴 때 다프네 누님이 있었더라면... 아니다. 이 분은 빼자. 내 상황을 즐기실 분이다.
“아닙니다. 그저 너무 늦은 시각에 제 방에 오셔서 그렇습니다.”
“하긴 많이 늦은 시각이지.”
그러니 제발 방으로 돌아가세요. 프란 형님이 기다리고 계시잖습니까? 설마? 벌써 하늘나라로? 프시케 누님은 내 방을 둘러보시더니 침대 밑에 시선을 두셨다. 그 순간 내 몸이 오한이 든 것처럼 몸이 살짝 떨렸다. 침대보가 잘 막아주고 있는데 그걸 뚫고 세자 저하를 보셨다는 것인가! 나는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다. 아직 누님은 의심하고만 있을 뿐. 직접 보신 건 아니니 긴장하지 말자.
“엘렌, 한 가지만 묻자.”
내 이름이 이렇게 무서웠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지체하지 않고 재빨리 대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내가 오기 전에 누구와 있었느냐?”
프시케 누님의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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