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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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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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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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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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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DUMMY

-짐승을 사랑하는 사람-



짹짹, 짹짹.


벌써 아침인가.


상체를 일으켜 고개를 이리저리 꺾었다.


불현듯 어제 입은 상처가 생각나 옆구리를 확인해봤다.


“다행이군.”


다행히도 덧나지 않고 잘 아물고 있었다.


어제 펴 파른 약초가 제법 효과가 있었나 보군.


평상 옆을 내려다보니 종은 여전히 잠을 자고 있다.


이거 내가 생각 없이 초대해서 노숙하게 만들었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나저나, 종이 늦잠을 자는 걸 보니 주인 양반은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와 다르게 인자한 사람인가 보군.


여러모로 신기한 사람이었지.


오죽하면 내가 괴물로 착각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 그 양반이 곁에 있으면 가슴이 두근두근한단 말이야.


잡생각을 하면서 반대쪽을 보니 주인 양반이 보이지 않았다.


“허허, 부지런하기까지 한 양반이군!”


일찍 일어나는 편인 나보다 먼저 일어나다니.


나도 얼른 일을 시작해야지.


그전에 부인이 마실 탕약을 준비해야겠어.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를 확인했다.


잔불이 남아있다.


잔불 위에 약탕기를 올리고 불려놓은 약재를 넣었다.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우리 부인의 예쁜 얼굴이나 한번 볼까?


살금살금 방으로 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미동도 없이 곤히 자는 사랑스러운 부인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한동안 부인을 바라봤다.


별안간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 서둘러 문을 닫고 딴청을 부렸다.


주인 양반이 천천히 집안으로 들어와 평상에 앉는다.


평상이 삐거덕 소리를 내며 힘겹게 주인 양반을 견뎌낸다.


저러다 무너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허허, 주인 양반. 어딜 그렇게 갔다 오시오?”


주인 양반이 날 한번 보고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킨다.


“산책이라도 하셨나 보군!”


고개를 끄덕인다.


때맞춰 종이 잠에서 깬 듯 상체를 일으킨다.


“덕분에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초대해놓고 푸대접을 하는 게 아닌가하고 내심 걱정했소.”


“전혀 아닙니다. 비록 밖이라고는 하나 울타리 안과 밖은 하늘과 땅 차이인 법입니다.”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평범한 종은 아닌 듯 보이는데.


저 둘의 정체가 자못 궁금해지는군.


“허허, 고맙소! 덕분에 한시름 덜 수 있었소.”


“외람되지만 한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보시오.”


“부인되시는 분이 결핵에 걸린 것 같은데, 맞습니까?”


“··· 그렇소. 아주 지독한 폐병에 걸렸지.”


나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염되는 병입니다.”


“알고 있소. 그렇다고 내가 부인을 홀로 둘 수는 없지 않소?”


“탕약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약을 드셔야 합니다.”


“그것 또한 알고 있소. 차도를 늦출 뿐 치료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약을 구하려는 시도는 해보셨습니까?”


“내 백방으로 노력해봤지만 구하지 못했소. 전쟁통엔 모든 것이 귀하지. 약은 말할 것도 없고.”


씁쓸함이 밀려온다.


“그렇군요.”


혹시나 재워준 보답으로 약을 주려는 건가 하고 기대를 했다.


염치도 없게 하룻밤, 그것도 밖에서 재운 주제에 귀한 약을 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니 부끄러움이 밀려 들어왔다.


“주인님?”


종이 주인 양반을 쳐다본다.


주인 양반은 대답 대신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거절하는 건가···.


하긴 귀한 약을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줄 리가 없지.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종이 자신의 가방을 뒤적여 알약 하나를 꺼낸다.


“오래전에, 아주 오래전에 한 당돌한 짐승이 저에게 결핵약을 살 돈을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돈만 주면 약을 구할 수 있는, 다시 돌아올까 싶은 풍요로운 시절이었지요.”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 짐승이 저에게 사용하고 남은 약을 돌려주었습니다. 언젠가 쓸모가 있을 거란 말과 함께요. 그 짐승의 말이 맞았군요.”


종이 축 처져 있는 내 손을 잡고 손바닥 위에 약을 내려놓았다.


“이, 이걸 주겠다는 말인가?”


“재워주신 보답입니다.”


종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얼른 주머니에 넣고 싶었다.


“주, 주인 양반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괜찮은가?”


“제 약입니다. 제 것이니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죠. 또한, 주인님께서도 허락하셨습니다. 싫으셨다면 제지를 하셨을 겁니다.”


“아···.”


“그러니 받아두세요.”


종이 여전히 펴져 있는 내 손을 움켜쥐게 했다.


너무나도 큰 선물에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 내 모든 것을 다 바쳐도 부족할 걸세. 이보게, 내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게. 내 뭐든지 들어주겠네. 자네의 종이 되라면 내 기꺼이 마다치 않겠네.”


“원하는 건 없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베풂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감화되었다고 할까요.”


“그래도···.”


“저는 가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아, 아니 일어나자마자 바로? 아침이라도 먹고 가지.”


종이 미련 없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버렸다.


“정말 고맙네, 정말 고마워! 내 이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가 외쳤다.


고맙네··· 정말.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부인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어.”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가 부인이 자는 방에 들어갔다.


부인은 여전히 곤히 자고 있다.


“부인, 부인!”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어 봤지만, 부인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부인, 일어나보시오. 내가 약을 구했소, 내가 약을 구했단 말이오!”


이상하네 부인이 왜 일어나지 않지?


“부인, 부인!”


불길한 마음이 들어 어깨를 거칠게 흔들었다.


“아··· 서방님?”


부인이 졸린 눈으로 날 쳐다봤다.


“오, 일어났구려! 난 또 부인이 반응이 없어 걱정했다오.”


“저는 괜찮··· 콜록, 콜록!”


“부인, 내가 약을 구했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부인의 폐병을 치료할 약을 구했단 말이오!”


“네에?”


부인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내가 약을 구했단 말이오!”


환희에 찬웃음을 보이며 부인을 와락 안았다.


“이제 부인은 살 수 있소. 살 수 있단 말이오! 이, 이럴 게 아니지. 자, 자. 이 약을 어서 삼키시오. 내 서둘러 물을 떠 오리다.”


재빨리 그릇에 물을 떠 와 부인에게 주었다.


부인은 궁금한 것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일단 내가 주는 그릇을 받아들고 물을 마신다.


“좀 어떻소? 나아진 것 같소?”


“서방님도 참. 약효가 이렇게 빨리 나타날 리가 있습니까?”


“그렇지. 너무 서둘렀군.”


“약을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혹시···.”


부인이 내 몸을 이곳저곳 살펴본다.


“허허, 어제 내가 모셔온 손님을 기억하시오?”


부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펴진다.


“네. 기억합니다.”


“그분들이 주셨소. 우리 딱한 사정을 듣고 흔쾌히 약을 내어 주시더구려.”


“아, 앙가···. 아, 아니. 정말 그분들이 주셨단 말씀입니까?”


부인이 믿지 못할 얼굴로 날 쳐다봤다.


“그렇소!”


부인이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한다.


“왜 그러시오? 무슨 문제 있소?”


“아, 아닙니다. 그저··· 이 귀한 것을 내주는 목적이 궁금하여 그랬습니다.”


“하긴, 나도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소.”


“대가를 원하지는 않았습니까?”


“없었소. 어제 집에서 재워준 보답으로 준다고 하더이다.”


“그렇습니까?”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부인, 어서 자리에 누워 주무시오. 한숨 푹 자고 나면 한결 나을 거요.”


“저는 괜찮습니다. 이미 나은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그 귀인들에게 아침이라도 대접해야겠습니다.”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두 분은 이미 집을 떠났소.”


“네?”


“부인도 아쉬운가 보구려. 나도 붙잡아 보려고 했지만, 갈 길이 바쁜지 약을 건네주자마자 가더이다.”


“아···.”


“허허, 정말로 아쉬운가 보군. 걱정하지 마시오.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겠지.”


“알겠습니다.”


약 기운이 도는지 부인의 눈이 반쯤 감긴다.


“자, 자. 참지 말고 주무시구려.”


부인의 몸을 천천히 뉘었다.


“저는 괜찮···.”


부인이 이내 곯아떨어진다.


나는 그런 사랑스러운 부인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이럴 때가 아니지. 회복할 시기에는 보양이 중요한 법이니.”


약을 구하기 위해 모아뒀던 돈을 탈탈 털어서 닭이라도 한 마리 사야겠어.


부인에게 닭고기를 먹일 생각을 하니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



“누구 있는가?”


푸줏간 아낙이 미소를 지으며 오다 날 보고 인상을 굳힌다.


“왜 오셨수?”


“허허, 푸줏간에 왜 오다니.”


“고기라도 사시려고?”


“그럼. 푸줏간에 고기 사러 오지 뭘 하러 오나?”


아낙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진다.


“아유! 잘 오셨수.”


“어디 튼실한 암탉 하나 있으면 줘보시게.”


“암탉? 암탉은 값이 제법 나가는데 괜찮겠수?”


“걱정하지 말고 하나 가져오게. 손질은 내가 할 테니 멱만 따주고.”


아낙의 입이 찢어진다.


“잠깐만 기다리슈!”


서둘러 푸줏간 안으로 들어가 이내 닭 한 마리를 가져오더니 목을 뎅겅 날려버린다.


닭이 경련을 일으켰고, 잘린 목에서는 피가 쭉쭉 뿜어졌다.


잔인한 광경에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정말로 손질은 하지 않아도 되우?”


“크흠, 거 깃털만 뽑아주시게.”


“호호. 잠깐만 기다리슈.”


그냥 손질까지 해달라고 할까.


저걸 보니 속이 안 좋아지는군.


“그냥 손질까지 해주시게.”


“자, 여기다 됐수.”


“벌써?”


“호호 이걸로 밥 먹고 사는데 느릿하면 안 되지.”


“그렇지. 자 돈은 여기 있네.”


“호호, 잘 받았수. 다음에 또 오슈.”


“흠흠.”


나는 손질한 닭을 품에 안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부지런히 달린 덕분에 산으로 올라가는 길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부인에게 닭고기를 먹일 생각을 하니 숨이 차는 것도 몰랐다.


“이제 여기만 올라가면···.”


“아이고, 우리 샌님께서 어딜 그렇게 가시나?”


불한당들이 나를 사방에서 에워쌌다.


“뭐 좋은 거 가지고 가나 봐? 그렇게 애지중지 품에 안은 걸 보니.”


“형님, 제가 분명히 봤습니다. 저거 닭이 분명해요!”


“그래? 오랜만에 배에 기름칠하겠네. 뭐하냐? 빨리 안 가져오고.”


“이게 무슨 짓이오!? 이건 내 것이오! 부인에게 줄 닭고기란 말이오!”


산으로 내달렸지만 잡히는 건 순간이었다.


“하, 이 씨발놈이 또 운동하게 하네. 안 그래도 먹은 것도 없는데.”


몸을 웅크리고 닭을 보호했다.


오늘은 절대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건 부인이 먹을 닭고기란 말이다.


발길질이 계속됐지만 나는 신음 한번 내지 않고 참아냈다.


저 불한당들이 제풀에 나가떨어지길 기다리며.


“이 새끼 오늘 왜 이렇게 끈질긴 거야? 야, 한대 놔줘라!”


또 칼을···.


괜찮다.


어제도 베기만 했으니까 오늘도 그럴 거야.


“으윽!”


각오했지만 고통이 심상치 않았다.


화끈함이 옆구리를 넘어 온몸으로 번졌다.


“야, 야 이 새끼야! 너 칼에 피가 왜 이렇게 묻어나와!?”


두목이 당황한 어투로 소리쳤다.


“네? 형님이 한방 놔주시라고···.”


“이 씨발놈이! 내가 언제 찌르라고 했어!?”


몸에 힘이 점점 빠진다.


아, 부인에게 가야 하는데···.


“씨발, 일단 튀어! 그 닭은 가져오고!”


우악스러운 손길로 내 품을 뒤져 닭을 가져간다.


“이건 부인이 먹을···.”


눈앞에 도망가는 불한당의 모습이 보인다.


또렷하게 보이던 모습이 점점 흐릿하게 보인다.


부인이, 부인이 보고 싶구나.


부인이···.


작가의말

다음주 정말로 휴재예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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