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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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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8:00
연재수 :
1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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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18,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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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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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영멸의 비애 (6)

DUMMY

강환중을 일검에 죽여 버린 망인이 재차 행동을 개시했다.

그런 그의 첫 번째 목표는 도망가는 영혼들이었다.


후우웅!


가장 먼저 목표로 한 건 강환중의 떠다니는 목을 충격받은 채 응시하고 있는 승현이었다.

재빠르게 운신한 망인이 승현의 목을 향해 예리한 칼날을 겨누려던 순간.


카아앙!


청아한 소리와 함께 망인의 칼이 어떤 것에 막혔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 창과 닮아 있었다.

공색의 단창 아니, 우산이 망인의 칼을 막아냈던 것이다. 하지만 그뿐. 행성은 물론 <태극>내에서 순수 무위 1위와 2위를 다투던 그가 단 일격에 영멸했다.


[시간 오래 끌 순 없어!]


우사의 다급한 경호성에 운사가 답했다.


[알았다.]


운사의 고유격 「운집」은 감정도, 고통도 없는 그저 상상력의 응집에 불과하다. 그 말은 즉 운사의 상상력만 무한하다면 얼마든지 계속해서 운집을 소환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 말을 방증하듯 구름이 뭉쳐져 만들어진 군대가 망인을 향해 기호지세로 돌격했다.

이를 기호지세라 칭하는 것은, 가히 저 행동이 그런 말을 붙이기에 이견이 없음을 알리는 것이리라.


촤아아아악!


단 한 번의 칼날에 모든 운집이 소멸했다.


[미친놈이네.]


“발현! 「수해(水害)」!”


[고유격 발현. 「병기고」!]


양 방향에서 범람하는 파도가 망인을 향했고, 당연히 큰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하지만 단 일 초.

망인의 정신이 흐트러진 단 1초를 마철과 유수는 놓치지 않았다.


카가가가강!


유수의 뒤로 대문짝만한 대문(大門)이 활짝 열리며 내부에서 불가승수의 날붙이 아니, 하나하나가 웬만한 마스터피스에 필적하는 병장기가 수십, 수백 개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것을 부리는 건 다름 아닌 마철이었다.


[유수!]


“확인했어!”


마철의 신호를 받은 유수가 망설임없이 무수한 병장기 속에서 단 하나의 병장기를 집었다.


[하백의 지팡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유화의 아버지이자 유수에게는 스승인 성주의 지팡이가 유수의 손에 쥐어졌다.


화아아아악!


유수의 손길이 하백의 것과 닮았는지 지팡이가 호응하며 자신의 고유격을 뽐냈다.


[고유격 발현! 「대강장류(大江長流)」.]


일순 태극본성의 광경이 큰 강으로 변모했다.

마치 성지화를 모방한 것만 같은 광경에 우사와 운사는 물론, 유수 본인도 놀랐다.

심지어는 감정이 없는 망인도 순간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대강장류.

그저 순수하게 넓고 긴 강을 의미하는 것이나 강의 신인 하백의 후예에게 이 강이 주는 힘은 어마어마했다.

평범한 강이었다. 모두에게 그렇게 보였다.

단 한 영혼을 빼고는.


포옹!


유수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강에서 솟아나는 상상력이. 강의 생명들이 그녀에게 건네는 응원이.


[이 격은 단순히 강을 현현시키는 게 아니었어.]


불완전하고 어설펐던 그녀의 신언이 이제는 확고해졌다.

누구도 이견을 낼 수 없을 만큼, 정제되고, 단단하다.


[옛날부터 한 번도 성공 못 했던 건데.]


뒤에서 병기고를 유지하던 마철이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유수의 상상력은 계속해서 올라갔다. 그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것의 원천은 단연 생명체들이었다. 그런데··· ···공급을 받는 대상에는 차이가 있었다.

인간처럼 고지능의 생명이 아닌 그저 단편적이고 일 차원적인 생각밖에 하지 못 하는 그런 생명체들.

동물들이었다.

오직 강 속의 동물들만으로 생성된 상상력은 그 어떤 것보다도 맑고, 순수했다.


[고유격 발현. 「청하의 수신」.]


유수의 뒤로 커다란 인영이 강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미물보다는 신수라고 불러야 할 것들의 순수한 상상력의 결정체.

유수가 뒤를 돌아보며 커다란 인영에게 말을 걸었다.


[그땐 당신의 말을 이해치 못했습니다. 그저 노망난 늙은 신의 투정이고, 수준 낮은 앙탈이라 생각했을 뿐이었죠. 당신의 주민도 아니고, 자기 딸의 주민에게 후계를 물려줄 생각을 하다니.]


유수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정의 의미는 아니었다. 되려 긍정에 가까웠다.

이어 유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말을 듣지도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그저 인영일 뿐인 무엇에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듯 보였다.


[물론, 아예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죠. 저는 유화의 주민 중에서도 당신의 전승을 과하게 받은 존재였으니까요. 그래도 힘들긴 매한가지였어요. 주민들에게도, 내 신에게서도 차별받고, 상처받아야 했으니까.]


유수가 잠시 병기고를 유지하고 있는 마철을 일별했다.


[마음씨 따뜻한 한 영혼 덕분에 고독은 견뎠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어요.]


다시 망인을 바라본 유수가 마지막으로 인영에게 말했다.


[내가 살던 곳은 《관념》이 아니었어. 비참한 《현실》이었지. 난 그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어. 이젠 내가 하고 싶은, 내가 가려는 길을 간다. 그러니까 이만 꺼져, 하늘에서 보고 있는 내 전 성주님?]


[‘가명 성주 1’이 흠칫 놀랍니다.]


[빌어먹을 시스템 새끼들.]


유수가 인영을 아니, 정확히는 하백의 형상을 따라 움직였다.

그녀가 말을 걸던 이는 하백의 유산이었다.


콰아아아앙!


지팡이에서 솟구친 물줄기가 망인에게 향했다. 그러자 그 어떤 공격에도 큰 반응을 않던 망인이 오른손에 쥔 검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파스스!


물줄기와 닿은 검이 부식되었다.

망인이 흠칫 놀라며 검을 뒤로 숨긴 채 크게 물러섰다.


[처음 보는 모습이네.]


유수의 지팡이 주변으로 떠 다니는 물들이 방울방울 공기 중에 맺혔다.

망인의 투구가 유수에게 고정되었다.

눈은 없었지만 눈이 있었다면 분명 유수를 주시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콰아아앙!


물방울이 물줄기가 되어 한점으로 모여들었다.

목적지는 역시나 망인이었다.

망망대해에 필적하는 양의 물이 있었기에 자원이나 상상력의 고갈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


촤아악!


물줄기가 고갈된 잠깐을 발견한 망인이 빛과 비슷한 속도로 유수에게 다가왔다.

다가온 것이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일격에 유수의 목을 베어 버리려던 망인의 검이 정처없이 허공을 날았다.


풍덩!


강의 아래로 잠수한 검이 찾을 수 없을 만큼 가라앉았다.

유수의 목엔 망인의 검이 아닌 다른 무기가 그녀의 앞을 지키고 있었다.


우우우웅.


날아든 은빛의 검이 칭찬을 해달라는 듯 검명을 토해냈다.

검을 잃은 망인이 상상력을 마구 흩뿌렸다. 저것을 감정으로 승화한다면, 그것은 분명 분노일 것이었다.


콰아아아아아!


압도적인 상상력의 범람에 하백의 의지를 이은 유수마저 훌쩍 뒤로 밀려났다.

망인의 상상력에 닿은 모든 물질, 그녀의 강은 물론 공기까지도 악에 물드는 것이 선명했다.


[크흐윽!]


그때 후방에서 마철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유수의 귀에 때려 박혔다.

성지화에 필적하는 상상력을 사용하는 하백의 지팡이의 힘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든 탓이었다.

운사의 새하얀 구름 위로 마철의 피가 묻어 구름의 일부를 빨갛게 물들였다.

어쩔 수 없이 유수는 마철의 병기고를 해제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후우우웅!


웅혼한 바람 뒤로 나타난 것은 이제 거의 황무지가 된 태극본성이었다. 그녀의 대강장류도, 하백의 형상도, 지팡이도 사라졌다.

검을 잃은 망인이 마치 없던 이성이라도 잃은 듯 유수에게 돌격했다.

너무도 당연했다. 가장 위협적인 적이 사라졌고, 그런 기회는 두 번 다시없음이 분명했다. 허나 그가 노린 것은 힘의 반 이상을 잃은 유수가 아니었다.


콰아앙!


지각을 박찬 망인이 순식간에 날아오르듯 뛰어 태극별관과 충돌했다.


카가가가각!


문전신 처용의 수비하에 망인의 일격을 견뎠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냐!]


쉴 새 없이 태극별관을, 백호를 지키기 위해 격을 발현한 문전신이 이제는 자신의 차례라는 듯 격을 발현했다.


[신도울루!]


그러자 태극별관의 좌편과 우편에서 각각 반장을 취하던 신도와 울루라는 수호신이 망인을 향해 부처의 여래신장을 뻗듯 손바닥으로 망인의 몸을 짓눌렀다.


쿠우우웅!


느리지만 확실한,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마치 부처님의 손바닥처럼 내리 짓눌렀다.


꾸구구국!


신도와 울루의 손바닥 네 개가 겹쳐지며 그 무게가 가중되었다.

땅이 꺼질 정도의 무게가 손에 가중되었다. 이 정도면 망인도 산산조각 나 죽었음이 분명했다.

그제서야 손바닥이 하나둘 떼어졌고, 그곳에 망인은 없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그 무엇도 없었다.


스윽.


신도울루의 그림자에서 어떤 불길하고 기이한 물체가 나타나 둘의 목을 차례로, 빠르게 베어 몸과 머리를 분리시켰다.

망인의 손날 따위가, 신의 머리를 쳐 버린 것이다.


쿵!

쿠우웅!


두 머리가 속절없이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땅에 머리가 닿자 고막이 찢어질 정도의 굉음이 모두의 귀로 틀어박혔다.

그저 순수한 충격음이 아닌, 어딘가 목소리를 닮아 있었다.


[신도울루가··· ···.]


처용이 당황하는 사이 망인은 주먹을 사용해 다시 한번 태극별관의 옆 벽면을 온 힘을 다해 공격했다.


쩌저적!


처용이 만들어낸 견고하고 확고한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신도울루의 부재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탐라문전제!]


화아아악!


하지만 역시 수비에 특화된 신답게 순식간에 격을 발현해 벽을 보수한 문전신이 바깥에 있는 신들에게 다급히 전달했다.


[어서! 이 망인을 떼어 주시오! 이대로면 오래 견디기 힘듭니다!]


그러자 운사와 우사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네가 할래? 내가 할까?]


우사가 운사에게 묻자 운사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늘 네가 하지 않았나.]

[뭐, 그랬지.]


우사의 몸에서 빗방울이 하나하나 모여들기 시작했다.

운사가 늘 그랬다는 듯 구름을 그의 위에 얹어 주었다. 모든 물방울이 기화되어 구름으로 올라갔고, 구름은 그 몸집을 불려갔다.


[흐아아아!]


힘차게 소리치며 우사의 성지가 그로부터 천천히 태극본성을 집어삼켰다.

한창 태극별관을 두드리던 망인이 갑자기 별관과 정반대로 튀어 간 것은 그때였다.

놈들이 넘어온 포탈, 그 무저갱의 한복판에서 누군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돌아와라.]


단 한 마디의 말로 그 망인을 제압한 누군가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우사는 여차하면 바로 성지를 펼칠 준비를 마쳤고, 그곳에 있던 우사, 운사, 유수, 승현, 동희, 마철과 문전신 처용까지.

모두가 그것을 경계하며 긴장을 유지했다.

남자는 덥수룩한 수염에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우사가 먼저 성지를 펼치며 전투를 시작하려는 순간.


[오래간만입니다.]


남자의 입에서 전원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활자들의 나열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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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도룡지기 (2) 24.08.07 8 0 10쪽
139 도룡지기 (1) 24.08.04 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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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대멸종 (8) 24.07.31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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