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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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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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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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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5)

DUMMY

단말마도 남기지 못한 촌장의 시체가 기력을 잃고 중력에 이끌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모습을 목도한 마을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이찬은 본능적으로 시야를 하늘로 움직였다. 신단수의 꼭대기에서 가공할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따로 생각할 시간이 없다 판단한 이찬은 그 즉시 비승해 신단수의 정상으로 향했다.


슈우욱!


이찬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눈앞에 있는 존재가 무어인지 파악조차 못한 채 기도를 찔렀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이찬은 질겁했다.

상대의 정체와 전력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내지른 일격은 이찬에게 있어 마치 공부하지 않은 채 치르는 수능과도 같았다. 허나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찬의 몸 또한 할 말이 있었다.

내지른 검이 보다 빠르게 회수되며 이찬의 신체를 보존했다.


콰아아아아.


고요하나 파괴적이다. 병립할 수 없는 두 단어가 병렬하여 모두의 인지부조화를 일으켰다. 이찬의 가슴팍으로 작렬하며 날아든 누군가의 주먹이 그에게 지대한 타격을 입혔다.


“쿨럭!”


얕지만 입에서 혈을 토해낸 이찬이 피를 닦을 새도 없이 재차 돌진했다. 사실 이찬이 이토록 다급한 데는 이유가 존재했다.

현재 이례적이고도 전무후무한 병력으로 지구를 침공한 외계 세력이 날뛰고 있다. 표면적으로 이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으나 그 내막에는 이 세력을 지구로 끌어들인 진범이 있다. 이찬이었다.

그는 이 전쟁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곳을 찾았다. 이곳에는 전대 행동자의 가치관과 요령, 최종 목표에 대한 실마리가 전부 저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상황을 피해없이 완벽 타개하기 위해서는 필히 그 단서를 알아내야 한다.


“흐아아아아!”


기도를 양손으로 그러쥔 이찬이 그것을 사선으로 그었다. 기도가 상대의 어깻죽지를 시작으로 가슴팍을 통해 허리까지 도륙 날 것처럼 날카로이 그어졌다.

날 선 기도와 그 겉과 안에 가득 들어찬 가공할 상상력이 상대의 몸체를 완벽히 그었으나, 그것의 몸체에는 생채기 하나 만들어지지 않았다.

세계의 이치를 완전히 넘어선 물질 같았다. 도무지 생명체의 조직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원이 다른 경도를 가진 신체가 다시 한번 이찬의 복부에 꽂혔다.


“크허억!”


급작스레 느껴진 고통에 이찬은 신음을 참지 못 하고 울컥 피를 토해내며 뒤로 물러섰다. 검을 지각에 내리 꽂고 그것을 지탱하여 가까스로 일어섰다.

이찬은 그제서야 한발 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당신 누구야··· ···.”


그러자 상대는 천천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겨우, 이 정도로 관념의 멸망을 논하다니.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구나.]


이찬의 머리가 준동했다. 그의 뇌가 경고하고 있었다. 저것은, 지금껏 이찬이 상대했던 그 무엇보다도 위험하고 압도적이다.

갓난아기는 야생 곰에게서 위협받지 않는다. 아직 곰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기일 뿐. 허나 그보다 조금 더 성장해 청소년이 된 아기는 야생 곰을 알고 있다. 아기는 위협을 느낄 것이고, 그 위협에 잠식당해 발조차 떼지 못할 것이다.

이찬은 그제서야 오랜 그 옛날 옥황상제를 마주했을 때, 자신이 압도되지 않았던 이유를 알았다. 그때의 이찬은, 그저 갓난아기였을 뿐이다. 주(主)의 격과 창세(創世)의 격을 가늠조차 할 수 없던, 무지하고 또한 몽매한 자신을 지금에서야 깨우쳤다.


“주신··· ···.”


이찬은 순간적으로 이런 압도적인 느낌을 받아 본 기억을 떠올렸다. 옥황상제? 벨리알? 헤카테? 혹은 ‘경계’에서 만났던 이계(異界)의 존재?

모두가 하나같이 손에 꼽는 힘을 가지긴 했지만 명백히 그에게 적의와 살의를 품은 이 중 지금 이찬의 눈앞에 놓인 ‘신’만큼 강한 자는 없었다.


[간만에 파격적인 발언을 한 행동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기대에 기대를 품고,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이곳을 왔건만, 참으로 실망스럽기 그지없군.]


이명 ‘만물의 가모’ 웅녀. 그녀는 단군신화의 주역 중 하나이자 현재 대성단 <태극>에서 옥황상제만큼이나 막대한 지분과 영향력을 가진 주신(主神)이다.

이찬이 ‘경계’에서 헤카테에게 수십 년간 수련을 받았고, 그로 인해 원래 자신의 몇 배나 되는 힘을 얻은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 또한 웅녀가 견뎌온 세월에 비하면 티끌일 뿐이었다.


“나를 막지 마.”


[어딜 까마득한 후손 따위가 시조(始祖)에게 예를 보이지 않느냐.]


“예는 지랄. 이렇게 후손 패는 선조가 있으면 후손이 선조를 선조로 대하겠냐? 아, 이미 선조로 대하지는 않지. 이제 단군신화는 그저 지루한 이야기가 됐으니까.”


[이놈이!]


자신의 탄생 설화를 이찬이 부정하자 웅녀는 진노하여 격을 정출했다.


“끄으윽··· ···.”


이찬은 또 한번 그 기운에 짓눌렸다. 압박감이 온몸을 옥죄었고, 아무리 신에 가까이 다가갔다 해도 주신의 벽은 높고 험난했다. 저것을 뚫어 내기 위해서는 같은 주신을 이찬의 편에 등판시켜야 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이찬은 주신과의 인연이 없었다.

주신과 대등한 상상력을 가져서도 안 된다.

대등하다. 분명 높낮이가 없음을 이르는 말이지만 주신과의 대결에서는 대등함. 그 마저도 부족했다. 대등해서는 안 된다. 같아야 한다.


팍!


이찬이 땅가죽에 꽂힌 검을 뽑아 들었다. 대항할 수 없는 상대라고 해도 이찬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찬이 살아남고, 지금까지 강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임전무퇴의 정신. 그 정신이 이찬의 신체에 깃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상에는 정신만으로 안 되는 것들이 산더미였다.

더 이상의 길은 없다. 살기 위해서는 죽이거나 도망치는 것뿐.


“왜 여기 온 거야.”


이찬은 애써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웅녀에게 질문했다. 이찬은 지금 웅녀가 발하는 신언을 들어선 안 된다. 웅녀의 신언은 신언에 면역이 있는 이찬의 머리마저 울렸고, 그것을 계속해서 듣는다면 이찬의 고막은 틀림없이 파열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찬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계략을 고안해 냈다.


[우리 성단의 주인께서, 행동자에 엄청난 트라우마를 갖고 계시기 때문이지.]


이찬은 그 성단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옥황상제.

물심양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꽤나 이찬에게 도움을 준 성주가 실은 이찬의 주적(主敵)이었다는 점에 이찬은 깨나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우 그 이유로 날 죽이는 거냐?”


[겨우 그 이유라기에는, 네놈이 너무 파격적인 제안을 내걸었기 때문이 아닐까? 관념을 멸망시킨다니. 그것도 관념에서 가장 예의주시하고 있는 ‘행동자’가 그런 발언을 한 점에 있어서 우리 성단은 절대 이것을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너는 네가 불러온 발언에 죽는 것이다.]


이찬은 어느덧 죽음이 자신의 목전에 다가와 있다는 것을 감각했다. 새삼 이찬은 자신이 무엇과 싸우려고 했는지, 무엇을 없애려고 했는지, 무엇에 맞서려 했는지를 실감했다.

그것은 무너지지 않는 굳건한 철옹성이었고, 수십, 수백, 수천 억년을, 억겁을 겪어온 세월의 집합체였으며,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기반과 전체를 아우르는 상징(象徵)이었다.


“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에 이찬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결국 정신을 놓아 버렸나.]


이찬의 실소에 웅녀는 냉랭한 눈으로 이찬을 응시했다.

차게 식어 버린 찻잔을 바라보듯, 이미 때를 놓친 이찬을 향해 손을 움직였다.


“시간은 다 끌었습니다.”


[뭐?]


콰아아아앙!


이찬의 전방, 웅녀의 후방에서 가공할 폭발음이 들려오며 웅녀의 오른팔이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웅녀가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뒤를 휙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피에 젖은 신단수뿐이었다.


[뭐지··· ···?]


언뜻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신단수는 그 자리에 있었고, 이곳의 주민들은 벌벌 떨며 자신을 마주할 생각조차 못 했다. 이찬은 여전히 그녀의 앞에 가까스로 서 있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단 하나를 빼고.


[족장이 없다.]


분명 웅녀는 자신의 하림과 동시에 ‘가장 약한 호랑이’의 격이 깃든 총체인 족장을 죽였다.

웅녀의 상상력이 담긴 격은 그 무엇으로도 족장을 살리지 못 하도록 설계했다.

그녀와 같거나 그녀 이상의 격이 아닌 이상 이러한 소생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웅녀는 비상한 두뇌로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족장이 힘을 숨기고 있었나? 아니,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것이 상상력이다. 그럴 리 없어.’


‘그렇다면 범 그 녀석인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족장이 죽은 이상, 녀석에게 남은 상상력은 없을 테니까.’


‘아니면 조력자가 따로 있었나? 내가 그걸 몰랐던 건가.’


이외에도 너무 많은 가설이 비상한 웅녀를 갉아먹고 있었고, 웅녀는 되려 자신의 비상한 머리에 의해 자신에게 혼란을 가중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생각하게.]


웅녀가 예상치 못한 신언에 뒤를 확 돌아보자 그녀의 혼란은 더욱, 배로 증가했다.


[누구냐!]


그 말에 정체 모를 신언이 피식 조소했다.


[시간이 꽤나 많이 지나갔다고는 하지만, 나를 벌써 잊은 것인가. 비겁자.]


웅녀는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서 단서를 얻었다.


[너였나. 패배자.]


웅녀의 앞으로, 이찬의 옆으로 족장의 모습을 한 범.

‘가장 약한 호랑이’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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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범 (3) 24.08.25 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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