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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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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8:00
연재수 :
1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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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18,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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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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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2)

DUMMY

삼 분 전.

아윤은 자신의 집 근처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눈치채고 그곳으로 접근했다.

벨리알의 격을 온몸에 둘러 하늘을 날아 접근하는 과정에서 아윤은 엄습하는 이질감을 마주했다.

그것은 심히 악하고 불쾌했다. 하지만 아윤은 크게 신경을 두지 않았다. 아윤은 이런 사소한 이질감은 벨리알의 본진에 있을 때 질리게도 느껴 보았기 때문이었다.


후웅!


아윤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사태가 발발했기에 아윤에게는 사태의 초기부터 난입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녀는 그녀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을 생각 따위 없었다.

허나 변수라면 늘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


콰앙!


아윤의 뒤로 적지 않은 수의 운석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윤은 그 길로 이찬에게 짧은 문자를 남기고 그의 주머니에 있는 도마뱀을 꺼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도마뱀의 너머로 아윤이 벨리알과 교신했다.


[왜?]


“얘 싸울 수 있죠?”


[전투용은 아니긴 한데··· ···. 그래도 내 격을 받았으니까 적당히 싸울 수는 있을 거야.]


“그 정도면 충분해요.”


아윤이 도마뱀을 살짝 쥐어 떨어지는 중인 운석을 향해 던졌다.

도마뱀은 날아가는 와중에도 웃음기를 띠고 있었다. 아무래도 날아가는 과정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떨어지는 도중인 운석에 착하고 달라붙은 도마뱀이 본격적으로 자신에게 할당된 역할을 수행했고, 아윤은 도마뱀을, 벨리알과 함께인 도마뱀을 믿었기에 가차없이 아래로 향했다.


콰아앙!


아윤은 운석을 내리 짓밟으며 지상에 당도했고, 그 앞에서 운석에게 잠식당한 김기헌을 마주했다.


“사람··· ···?”


아윤은 찰나의 분위기만으로 그의 본질과 소재를 파악했다. 그는 한때 인간이었고, 지금은 인간이지 않았다.


“너는··· ···뭐··· ···냐.”


찢어질 듯 갈라진 소리로 김기헌이 아윤에게 물었다.

그의 눈에 아윤은 너무도 아득한 존재였다. 자신과 비슷한 계열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양과 질은 기헌을 아득히 초월한다. 마치 자신의 우상을 마주한 듯 압도되었던 기헌이 다시 긴장상태를 유지했다.

그때, 아윤의 시선이 차갑게 주변을 훑었다. 그녀의 등장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일까, 아윤은 모든 괴물의 이목을 끌었다.

아윤은 그녀의 단발머리를 짧게 다듬었다.


“이런 관심은 부담스러운데.”


아윤의 손에는 어느덧 그녀의 주무기. 창의 형태를 지닌 코셰흐샤비브가 쥐어져 있었다.

아윤의 눈에는 잠깐의 의문이 떠올랐다.


‘죽여도 되나?’


지금이 어떤 모습이든 그들은 한때 인간이었던 존재. 적잖은 생명에게 위해를 가한 아윤도 지금 상황에서 인간이었던 존재를 죽이라고 한다면, 망설임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망설임은 곧 정반대의 방향에서 확신을 불렀다.


“죽··· ···여.”


기헌의 섬뜩한 명령에 전봇대를 쥔 아윤의 키 두 배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그녀를 향해 전봇대를 휘둘렀다. 웬만한 사람이었다면 이미 전봇대에 정통으로 맞고 피떡이 되어 저 바닥 어딘가를 구르고 있었을 테지만, 남자가 공격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윤이었다.

《관념》의 고위급 인사 내부에서도 주민 랭킹 최상위에 랭크될 정도의 수준을 가진 아윤에게 이 정도 빠르기를 피하는 것은 정말이지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았다.


타닷!


이 상황. 아윤에게 남자의 숨을 끊어 버릴 기회는 불가승수했다.

창으로 목을 베는 것. 뒤를 잡아 숨을 끊는 것. 게다가 전봇대를 휘두르는 힘을 역이용해 머리통을 으깨는 것까지.

이외에도 남자를 죽일 수 있는 시나리오는 너무나 많았지만 아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리라.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


아무렴 아윤의 눈에는 남자가 여전히 인간으로 보였다. 불안과 공포에 떠는 외양으로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아윤의 강함이 외려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들을 죽이지 못했다. 그저 피하는 것을 자처할 뿐. 그리고 안타깝게도, 기헌은 이 기회를 승기로 오인했다.


“내가··· ···직접 하겠다.”


파앙!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빠른 속도가 기헌의 기분을 한층 고양시켰다.


이전과는 다르다. 평범했던 나는 이제 없다.


그러한 일념이 기헌의, 아니, 기헌이었던 무언가의 모든 감각을 지배했고, 그는 사리분별을 할 수 없었다.


“하하하!”


호탕하게 웃은 기헌이 제 날카로운 손톱을 길게 뻗쳐 아윤의 목에 가져다 댄 순간.

기헌의 시선이 검은 먹구름과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하늘로 향했다.


‘누운 건가? 아니면··· ···.’


기헌의 의문은 길지 않았다.


툭.


자신의 목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기헌의 귀로 들렸다.

그제서야 기헌의 뇌는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


‘죽었다.’


기헌의 목은 아윤의 창에 의해 깔끔하게 베어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서서히 뇌의 혈액 공급이 끊기고, 그의 눈은 서서히 감기기에 이르렀다.

특별함을 갈구했고, 특별해질 방법을 강구했던 평범한 대학생 김기헌은, 전혀 평범하지 않고, 특별하다면 특별한, 특출 나다면 또 특출 난 사망을 겪었다.

평범을 거부했던 그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자신의 가방에서 떨어진 작은 각설탕 한 조각을 이고 가는 개미였다. 그 개미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자신의 집을 향해 기어들어갔다.

개미는 이 난장판 속에서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냈고, 그제서야 기헌은 자신이 했어야 할 일들을 회상했다.

그의 마지막이었다.


한편 아윤은 당황했다.

기헌이 자신에게 접근하자 자신도 모르게 코셰흐샤비브를 찔러 기헌의 목을 베어 버린 것이다.

마치 평범하게 공터를 거닐던 사람이 시야에 들어온 작은 파리를 보고 놀라 그것을 양손에 찧어 죽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너무도 느리고 약한 상대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그것들을 뛰어넘는 속도의 상대가 나타나자 저도 모르게 창을 뻗었다.

그렇게 기헌은 아윤에 의해 의도치 않은 죽음을 맞이했고, 이제 남은 것은 기헌에 의해 잠식된 사람들이었다.


화악!


여전히 그들의 기세는 매서웠다. 되려 기헌을 잃고서 더 폭주하는 감도 없지 않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기헌의 죽음이 기폭제가 되었던 걸까.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 기세 사이에서, 그들의 ‘생각’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지금 왜 여학생을 때리려고 하는 거지?’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누구지?’


괴물로 변한 이들이 생각을 시작하고, 근본적인 궁금증에 도달하자 대변혁이 일어났다.

괴물로 변했던 이들이 서서히 인간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엄청난 체격으로 변했던 전봇대를 쥔 괴물은 천천히 인간의 체격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손에 맞지 않는 전봇대를 떨어뜨렸고, 몸이 의자와 일체된 여자는 몸에서 의자가 떨어져 나가며 제 원래 형태를 되찾았다.

숙주였던 기헌의 죽음이 아이러니하게도 모두의 정상화를 이끈 것이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이성을 되찾았다.


“여러분. 빨리 대피하세요! 여긴 위험합니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어하는 이들의 경각심을 아윤이 일깨우자 그들은 헐레벌떡 자신의 몸과 주변인만을 챙기고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멀어졌다.

그렇게 아윤이 안심하고 있을 때쯤.


투둑!


아윤의 앞으로 도마뱀 한 마리가 떨어졌다.

마치 아윤이 해결해야 할 우선적인 과제가 일개 인간 몇을 풀어주는 일이 아니었음을 혁파하듯 절망은 한걸음 더 앞으로 다가왔다.


“벨리알?”


아윤이 황급히 고개를 숙여 도마뱀을 주우려는 순간.


파아앙.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주먹이 아윤의 전신을 강타했고, 아윤은 저항이 없는 듯 뒤로 몇 번이나 튕겨 나갔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내 권속들이 모조리 없는 듯 소멸했는가.]


고막을 넘어 뇌를 직격으로 강타하는 듯한 신언.

아윤은 이 기분을 느껴본 적 있었다.

벨리알과 함께 ‘오케스트라의 일각공’ 암두시아스를 처리하기 위해 나섰던 그 순간. 그 장면이 오버랩처럼 스쳐 지나갔다.


‘최소 암두시아스 급의 성주다.’


최소로 느낀 것이 저 정도라면, 아윤은 저 성주를 상대로 몇 합까지 견딜 수 있을까.

이긴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는 지경에 이른 저 성주는 용의 날개와 함께 곤충, 그중에서도 잠자리의 날개를 등허리 쪽에 달고 있었다.


[자세히 캐묻지 않아도 알겠군.]


그는 마계의 62번째 마신, ‘정직의 곤충학자’ 발라크였다.

아윤이 복부를 부여잡으며 아슬아슬하게 몸을 일으키자 그녀의 눈에는 도마뱀을 쥔 발라크가 있었다.


[불길한 느낌이 드는군. 불쾌하고, 더러워.]


발라크는 가차없이 도마뱀을 으깨듯 쥐었다.

도마뱀은 이 세상의 생물이 아니었기에 으깨어지지는 않았고, 다만 소멸할 뿐이었다.

결국 아윤은 자신의 전력과 벨리알과의 소통창구까지 잃어버려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점은 발라크의 등장으로 허용 상상력이 증축되어 힘이 더 강해졌다는 것.


“이제 마지막은··· ···.”


이찬에게 보냈던 메시지가 제때 도착했기를 빌며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아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시간을 오래 끄는 것뿐.

그렇기에 그녀는 의도적으로 발라크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너 마계에서 왔지?”


[호오. 저 너머의 생태를 알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관념인’인가.]


다행히 발라크는 아윤에게 관심을 보였다.


[흔하지 않은 일이군. 난 그저 이곳의 멸망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뿐인데. 흥미로운 주제가 있을 줄이야.]


“도구취급은 사양이야.”


[그런데··· ···. 어디서 이렇게 쓰레기 같이 타는 냄새가 나나 했더니. 너였군?]


타는 냄새라면··· ···.


[너, 벨리알의 주민이로군.]


젠장. 이라고 아윤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아윤의 침묵이 긍정을 의미하는 것을 눈치챈 발라크가 자신이 가진 두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아윤에게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불은 꺼뜨려야 제맛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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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도룡지기 (2) 24.08.07 7 0 10쪽
139 도룡지기 (1) 24.08.04 7 0 10쪽
138 대멸종 (9) 24.08.02 9 0 10쪽
137 대멸종 (8) 24.07.31 7 0 9쪽
136 대멸종 (7) 24.07.28 9 0 10쪽
135 대멸종 (6) 24.07.26 10 0 11쪽
134 대멸종 (5) 24.07.24 6 0 10쪽
133 대멸종 (4) 24.07.21 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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