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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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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8:00
연재수 :
1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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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글자수 :
718,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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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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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도룡지기 (3)

DUMMY

‘버겁다.’


구스타보가 이찬을 상대하며 자신도 모르게 들었던 감상이었다. 지금이야 주정뱅이에 색욕 짙고 행성에 하등 도움되지 않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분명 한때 다시없을 천재 소리를 듣고 살았다. 심지어 주정뱅이로 살았을 때도 틈틈이 마법 공부를 해 오던 천재 중 천재.

그야말로 천골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버겁다’라니.


‘가당치도 않군.’


행성 내부에서 자신과 마법으로 맞먹을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똑똑했던 2왕자조차 마법에 있어선 손을 놓은 것이 구스타보가 얼마나 마법이라는 분야에 있어 천재적인 재능을 드러냈는지 알 수 있었다.


카각!


청색의 경옥이 처참하게 갈라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사방으로 튄 파편은 다시 경옥에 상처를 입히는 굴레가 이어졌고, 그 덕분에 지하 내부는 더 이상 결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생각보다 강한데?”


처음 이찬이 가스페르에게 구스타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찬은 절대 그가 《관념》을 넘볼 수준이 아니라고 장담했다.

관념엔 인간이었던 이들과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 이 둘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한낱 천재 소리를 듣는 인간 따위가 낄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일종의 자부였다.

현재 이찬은 아직 이 행성의 상상력에 적응하지 못 했다. 거기에 더해 이 옥방(獄房)에는 상상력을 차단하는 기묘한 장치까지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부에서 이찬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은 본인이 가진 총 상상력의 1할에서 2할뿐이었다.


“이 억제 장치. 왕자님께서 만드셨나요?”


격렬한 부딪힘 속 이찬이 질문을 건넸고, 땀을 뻘뻘 흘리던 3왕자가 힘겹게 대답했다.


“똑똑하네. 내 마력 파장을 구분할 줄도 알고.”


구스타보의 힘든 눈빛 사이에서 묘하게 이채가 드러났다.

구스타보가 점점 화력을 끌어올리려는 순간.


“뭐하는 겁니까!”


누군가의 일갈이 들려왔다.

두말할 것도 없이 가스페르였다. 가스페르의 곁에는 고상한 눈빛을 한 이노가 구스타보와 이찬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가스페르의 일갈에 이찬은 격을 중지했고, 마법에 온 집중을 다 쏟았던 구스타보는 가스페르의 말에 한 박자 늦게 응수했다.


콰아앙!


그 덕분에 팽팽하게 대립하던 격이 일방으로 강하게 기울었고, 이찬은 구스타보가 뿜어내는 격을 직격으로 맞게 되었다.


“이찬!”


가스페르가 뒤늦게 경호성을 발했지만, 그 자리에 이찬은 없었다. 대신 뒤에서 음성이 들렸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악!”


소스라치게 놀라며 귀를 부여잡은 가스페르가 휙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타격 지점에서 벗어난 이찬이 생긋 웃었다.


“이찬 맞으십니까?”


하지만 가스페르는 그 순간에도 이찬을 의심하고 있었다.


‘직접 마주하니 알겠다. 분명 이찬인데 이찬 같지 않다. 너무 이질적이야.’


그런 가스페르의 의중을 깨달은 듯 이찬이 해명했다.


“제 격이 좀 바뀌긴 했죠. 특별 수련을 받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색이 바뀌었습니다.”


약간 풀린 의심에 쐐기를 박는 건 허완이었다.


[확실히, 달라진 건 있어도 변질된 건 없네.]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냈을 리가. 네놈 때문에 난 아직 모든 힘의 반절밖에 회복하지 못 했단 말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가스페르가 질의했고, 이찬은 바깥으로 나가며 말했다.


“자초지종을 여기서 듣기에는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이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 돼요.”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이찬의 눈빛이 사뭇 진중해졌다.


“아윤에게 도움 요청이 왔습니다.”


가스페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윤은 일행 중 최고 전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근접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강한 격과 막대한 상상력, 벨리알이라는 거물 성주 덕분에 주민 중에서도 최단기간에 탑을 찍은 인물이었다. 그런 아윤에게 지원 요청이라니?


“그럼, 한시가 급한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만, 그쪽에 운사와 우사를 붙여 두었기에 큰 걱정은 한시름 덜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


이찬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중 말을 이었다.


“지구를 향해 얼마나 많은 병력이 올지, 혹여나 제 예상보다 많은 병력이 집중된다면, 운사와 우사로도 오래 버티지 못 할 것이기에 계획을 촉진 중에 있습니다.”


가스페르가 거듭 강조했다.


“그럼 어서 출발하시죠. 지체할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이찬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위치는 가스페르를 넘어 지쳐 앉아 있는 구스타보에게 향했다.


“제 계획의 첫 열쇠가 저분입니다.”


가스페르의 시선이 이찬과 구스타보를 번갈아 보았다.


“저··· ···저 인간이요?”


가스페르의 손가락이 구스타보를 향했다.

이찬은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왜요?”


황당무계하다는 듯 가스페르가 재차 물었다.


“마법사라면 관념에 널리고 널린 게 마법사 아닙니까? 왜 굳이 저런 쓰레기 같은 인간을.”


가스페르에게 구스타보라는 인물은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은 인물이었다.

허구한 날 술을 퍼마시고, 나라에는 쥐똥만큼도 관여하지 않는 3왕자를, 구스타보 반 아이데를, 가스페르 반 아이데는 증오했다.


“관념에도 많은 마법사가 있지만—”


이찬의 말을 끊은 건 이노였다.


“저 사람. 뭔가 있어.”


아윤이 표면적인 것을 보는 눈이라면, 이노는 근본적인 것을 보는 눈이다.

설령 어떤 것이 베일에 꽁꽁 감춰져 있어도, 이노는 근본과 저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구스타보의 근본은 욕심이었다.

거의 한계점에 달했던 그의 재능. 하지만 그의 재능은 한계점을 밟지 못 하고 아래로 추락해 버렸다.


한계점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겐 도착점이지만, 때론, 누군가에겐 출발점이 되었다.

구스타보는 그런 관점에서 아직 출발점을 밟지 못 한 사람이었다.

이찬은 성큼성큼 다가가 이노와 가스페르, 허완을 넘어 구스타보에게 향했다.


“우린 당신이 필요합니다. 정확히는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마법이 필요하죠.”


그 말에 실눈을 뜨며 구스타보가 거절했다.


“내 재능은 도룡지기(용을 잡는 능력이라는 뜻으로, 실용적 가치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드러냄)일 뿐이다.”

“도룡지기(屠龍之技)라. 당신이 절 따라온다면, 용을 잡을 수 있게 해 드리죠.”


그 말에 구스타보의 눈이 번뜩 떠졌다.

술에 빠져 살던 지난 몇십 년간 적지 않은 인간들이 자신에게 찾아왔다.

그때마다 구스타보는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찬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도룡지기라며 거절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찬이 한 말은 구스타보가 간절히 원하던 말이었다.

이찬은 흑석을 하나 꺼내어 구스타보의 앞에 놓았다.


“이 돌을 가루로 만들어 바닥에 뿌리면 진(陳)이 하나 생성됩니다. 그리고 중앙에 서 눈을 감으시면 제가 있는 곳으로 이동될 겁니다. 선택은 본인의 자유고, 전 용을 잡을 기회를 드린 겁니다.”


이찬은 그 길로 유유히 허완, 가스페르, 이노를 데리고 이동할 준비를 마쳤다.


“손 올리면 되죠?”


가스페르가 이찬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


“아, 이제 그렇게 고생하실 필요 없습니다.”


씩 웃는 이찬이 격을 발현해 그들 전원을 지구로 이송시켰다.


***


와중 지구는 처참했다.


[야, 하늘 봐라. 진짜 조진 거 같은데?]

[이럴 땐 좆 됐다고 하는 거다.]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성주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느 성단 소속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을 구분 짓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다양한 성주들이 지구를, 그중에서도 ‘행동자’가 있는 대한민국 서울을 향해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마계, 대성단, 일반 성단, 심지어는 지옥계까지.

헤아릴 수도 없는 광경에 운사와 우사, 그 곁에 있는 이노와 주연까지 압도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쿠우웅!


그들의 앞으로 선두가 나타났다.

이 공세의 주도자들.


[네놈들이 결코 선을 넘는구나··· ···!]

[선을 넘는다니요. 그저 정해진 순리대로 가는 겁니다.]


대성단 <태극>의 하위 성단 <이매망량>의 수장 두억시니와 귀신들이었다.

아윤이 나섰다.


“이전에 지구에 귀신을 보냈던 게 너희들이냐?”


[지귀랑··· ···또 누구였지?]

[저희도 기억 못 합니다.]


아윤이 이를 갈았다.

그들이 아윤에게 보낸 시련을 괄시하는 것에 분개했다.


[얼마나 온 거냐.]

[일단 저희는 대부분이 참전했습니다. 이만한 기회가 어디 지천에 널렸던가요.]

[다른 놈들은?]


성단 <이매망량>의 수장 두억시니가 피식 웃는 소리를 냈다.


[뭔가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저희는 여기 재롱잔치 부리려고 온 게 아닙니다. 통성명이 됐으면.]


모든 <이매망량>의 성주와 주민들이 일제히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다 쓸어버려.]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은 함성과 함께 무한에 가까운 상상력이 범람했다.


[고유격 발현··· ···.]


맞대응을 하려던 우사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윤도 마찬가지였다.

둘이 하늘을 응시함과 동시에 하늘에서 마치 응징의 비가 빗발치듯 화살이 추하했다.


핏!


정확히 이매망량에게 꽂힌 화살은 자연스레 그들의 몸에서 뽑혀 나와 도로 하늘로 향했다.

우사는 확신하며 웃었다.


[우리 행동자 오셨다.]


하늘에서 이노와 가스페르 그리고 행동자 이찬이 그들의 곁으로 착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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