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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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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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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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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4)

DUMMY

[옥황께서는 어디 계시느냐.]


옥황상제의 수좌(首座)이자 옥황상제에게 향하는 마지막 문지기를 맡고 있는 금천의 어깨가 파들파들 떨렸다.

존재만으로 숨통을 옥죄고, 말 한마디에 천하를 발아래에 둔다. 성주의 손짓은 유려하고 부드러웠다. 허나 그 속에 숨은 저의를 결코 몰라봐선 안 된다. 그 손짓은 땅을 가르고 하늘을 쪼갤 것이니. 붉으나 서늘한 눈빛이 마치 모든 것을 꿰뚫듯 하늘을 오시했다.


[아니, 굳이 말할 것 없다. 이 안에 계신 것을 알고 있으니.]


가장 오래된 이야기의 주연이 발걸음을 내딛자 옥황상제를 보좌하는 대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이어 내딛은 발걸음에 미처 그릇에 담기지 못한 상상력의 파편이 잔류했다.

성주가 내딛는 발걸음의 뒤로 금천이 고개 숙이며 아울러 입성했다.


“상··· ···상제 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건만.]


“죄··· ···죄송합니다.”


금천이 연신 고개 숙이며 사죄하자 옥황이 손을 치켜세웠다.


[널 탓하는 게 아니다.]


옥황상제의 차분한 시선이 금천의 곁을 향했다.


[말해 보아라. 어찌 기별도 하지 않고 무작정 이곳을 찾아왔느냐. 자부(子婦)야.]


옥황상제. 제석천. 등등의 다양한 이름과 하나같이 막강한 신명들. 그중에서도 《현실》의 대한민국, 한반도와 깊게 연관이 된 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시부(媤父)시여. 기별도 없이 찾아온 소빈을 탓하소서.]


옥황상제, 그의 또다른 이름은 ‘신들의 신’ 환인(桓因)이다.


[어찌 이곳을 찾았느냐 물었다. 금천. 잠깐 나가 있거라.]


환인은 둘의 압박에 숨조차 제대로 고르지 못 하던 금천을 배려하여 그녀를 바깥으로 내쫓았다. 금천의 입장에선 구원이었을 추방이었다.

금천이 바깥을 향함과 동시에 문이 굳세게 닫혔고, 이제 이 공간에는 두 주신뿐이었다.


[겨우 이 정도 압박에 숨도 못 쉴 정도라니. 주민을 교체하시는 게 낫지 싶습니다.]

[헛소리는 그쯤 하지. 헌데.]


환인의 손아귀에 가공할 힘이 작용하며 일대가 준동했다.


[내 질문에 답을 보이지 않은 것 같은데··· ···. 이리도 상황 파악이라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것이었던가?]


그러자 웅녀가 공손히 두 손을 모았다. 환인의 가공할 격에도 굴복하지 않는 되려 그와 맞먹는 듯한 모습에 환인은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분명 놀란 기색이 다분했다. 허나 웅녀 또한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낼 수는 없었다. 환인의 진노는 관리성도, 시스템도 쉬이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겨우’ ‘만물의 가모(家母)’ 웅녀가 감당할 위력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웅녀는 환인의 분노를 해소하되 자신이 압박을 받는다는 것은 드러내지 않으려 말을 했다.


[제가 온 이유가 달리 무엇이겠습니까.]

[대략 짐작은 간다만, 이곳까지 찾아와 나눌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웅녀가 소매로 입가를 가린 채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흘겼다.


[미천한 소빈이 어찌 위대한 시부의 의견에 다른 뜻을 내비치겠습니까. 다만 주체의 방향이 어그러진 것 같아 바로 하려 합니다.]


환인의 차분한 눈에 웅녀가 비쳤다. 주신과 창세의 눈빛은 그것만으로 상대를 억제하는 효과를 나타내곤 한다.


[말을 돌리지 말고 직설적으로 하라.]

[저를 지구로 보내 주십시오.]


지구.

웅녀의 입에서 그 이름이 주체 없이 흐르자 환인의 시선이 웅녀에게 내리 꽂혔다.

불가항력.

저항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힘이 그녀의 그릇을 짓눌렀다.


[감히 네가 그 이름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더냐.]


환인의 차분한 얼굴이 점점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이내 그것은 웅녀를 향한 진노로 변모했다.


[나의 상징을 몰래 멋대로 폐지하고, 그것에서 그치지 않아 그 사실을 은닉했다. 그리하여 내 네게 마땅한 벌을 내렸건만 얼마 지나지 않은 세월만에 그것을 망각한 것이더냐.]


웅녀는 더 이상 환인을 상대로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그것을 어찌 제가 망각하였겠습니까. 단지 응당 벌을 받아야 할 이가 아직도 구차하게 삶을 연명하고 있는 것이 마땅치 않은 것뿐입니다.]

[그 문제는 분명 네놈의 처분과 관련하여금 종식된 사안으로 알고 있다.]

[물론입죠. 허나 그것이 지금 행동자와 붙어 있으시다면, 그것은 이야기가 달라질 것으로 아뢰옵니다.]


일순.

공기가 얼어붙는 것이 몸소 체감되었다. 단순히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전 공기가 얼어붙어 서리가 진 것이었다.

그것은 환인이 극도로 당황하였을 때 발현되는 통제 불능의 버릇이고 자연 현상이었다.


[행동자와의 거래로 현재 성주께서는 시스템을 관망할 수 없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찬이 일전에 자신을 설득하러 왔을 때, 옥황상제는 행동자의 위기를 유희로 승화하여 잠깐의 쾌락을 느꼈다. 허나 그는 행동자의 요구 조건을 너무나 가볍게 받아들였고, 그 파급이 현재 나타나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랬느냐.]


황당무계한 얼굴을 하고선 웅녀에게 자세한 내막을 요했다.


[그리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매망량이 행동자에게 당도했으니 어쩌면 둘은 이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로군.]


웅녀는 이어 환인을 계속해서 궁지로 내몰았다.

언젠가 천 년도 전의 일이었다.

행동자를 초기에 진압하지 못한 《관념》의 성주들은 급히 지구의 어딘가로 숨어든 행동자를 찾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마지막에 그의 흔적을 찾았을 때. 행동자는 이미 《관념》을 파괴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렇게 하나하나 성단을 파괴하고, 역사를 뒤바꾸며 어느덧 10개의 대성단 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는 <태극>에 도달했고, 속수무책으로 옥황상제의 아래 성주들을 파멸시켰고, 이내 옥황상제가 있는 ‘천하궁’까지 당도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옥황상제는 정말 궁지에 내몰린 느낌을 처음 받았다.

아무런 이변 없이 행동자의 양도(兩刀)중 왼 검이 그의 머리를 꿰뚫으려는 순간.


[생각하기도 싫군.]


결과야 어찌되었든 현재 옥황은 살아 다시 한번 최강의 성단의 자리에 도전하려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쥐새끼처럼 나타난 행동자를 처리하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환인의 생각을 뒷받침하듯 웅녀가 말을 이었다.


[존폐의 위기에 내몰린 성주. 이 세상을 파하려는 역대 최악의 행동자. 이 둘이 모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지. 저희는 느꼈지 않습니까.]

[허나 것 또한 네 불찰이었다. 빌어먹을 변덕만 아니었더라도 내 성단은 삼천(三千)에 들었을 것이란 말이다. 그렇지 않느냐?]


대성단의 주신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급박하고 경박한 말투에서 웅녀는 환인이 얼마나 급한 것인가를 꿸 수 있었다.


[그땐 분명 그랬습니다만, 지금은 다릅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던 환인의 귀로 희망에 가득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로부터 웅녀는 머리가 비상했다. 때론 그녀의 적수가 될 만한 성주가 없어 독보적인 참모의 자리를 차지했을 정도였다. 그 덕에 환인도 한 방 먹은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고, 이런 쪽으로 웅녀의 발언은 환인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무엇인가? 말해 보게. 내 권한이 닿는 대로 내 며늘아기를 지원해 주겠네.]


호칭의 변화가 일자 웅녀의 입에 미소가 만연했다.


[아주, 아주 간단합니다.]


***


이찬이 주먹에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마을이 있는 방향으로 질주했다.

땅을 거칠게 긁는 소리와 함께 이찬이 참혹하다는 말로밖에 서술할 수 없는 참상이 펼쳐졌다.

호피를 걸친 이들이 곳곳에 널부러져 있었다.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그들이 흘린 피와 그들의 시체를 피하며 걸어야 했다.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피에 젖은 호피를 뒤집어쓴 채 홀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찬은 그들을 애써 무시하며 촌장에게 다가갔다.

촌장은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대가로 자신의 성주 ‘가장 약한 호랑이’에게 자신의 모든 통제권을 일임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너무도 참혹했다.

신단수에 기대어 겨우 호흡을 거듭하는 촌장에게 이찬이 다가갔다.


“정신 차리세요!”


이찬이 사력을 다해 촌장을 불렀다. 혹여 해가 될까 봐 직접적인 신체는 건들지 못하고 그저 소리로만 그를 움직였다.


“쿨럭!”


촌장의 입에서 사혈(死血)이 범람해 이찬의 꿇은 무릎으로 쏟아졌다. 허나 이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촌장의 안위만을 걱정할 뿐이었다.


[행동자인가.]


이어진 목소리로 짐작건대 지금 이 몸의 주인은 촌장이 아니었다.


“성주··· ···?”


[용케도 알아보는구나. 하긴 전대 행동자가 그러했듯, 너도 같은 길을 밟는 것이겠지. 대답하지 말고 들어라.]


묵은 피가 다시 한 번 역류했고, 이젠 호흡조차 어려운 듯 숨을 헐떡였다.


[아무래도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군그래. 저곳에 전대 행동자의 모든 것을 기록해 놓았다. 그것이 자네 목표에 지대한 영향을 가할 것이야. 행동자를 돕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겠군. 당장 다음을 준비해라.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아니, 되려 시작이 될 터. 네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 아니, 네 목표를 이루고 나서도 너는 긴장을 놓아서는 아니될 것이다.]


‘가장 약한 호랑이’.


곰과의 결전에서 패배하였으나 여전히 한반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한 성주가 끝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찬은 그의 마지막을 평안히 보내기 위해 그를 정자세로 앉혔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나 절을 했다.

일배(一杯)를 하며 몸을 일으키는 순간. 그의 머리 위로 붉은 선혈이 그의 머리부터 전신을 적셨다.

이찬이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자 그곳에는 터져 나간 촌장의 머리통과 촌장의 피에 젖은 신단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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