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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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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8:00
연재수 :
1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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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18,955

작성
24.07.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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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대멸종 (8)

DUMMY

카가가가각!


비열한 파찰음이 들려왔다.

파이몬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거대한 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그녀가 도출한 결론은.


[막아라.]


자신의 군단을 모두 모아 만든 괴물을 제물로 바친 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녀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고개를 위로 추켜든 괴물은 검을 멈춰 세우기 위해 하늘로 펄쩍 뛰었다.

가공할 점프력은 괴물에게 묘한 자신감과 의지를 부여했고, 괴물은 검을 막아 내기 위해 양 손바닥을 펼쳐 검에게 맞댔다. 그러자 괴물의 전신에서 삐죽삐죽 날개가 솟기 시작했다.

융합된 군단들의 날개였다. 붉고 거친 재질의 날개가 괴물에게 추진력을 더했다.

날개가 파닥거리며 괴물을 보조하자 묘하게 검의 속력과 힘이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파이몬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신만만하더니. 별거 없군.’


그때 그녀의 감이 극한으로 발휘되었다. 감이 인지한 것은 ‘위험’이었다. 그리고 마치 그녀의 감이 정확함을 인정하듯 구름 한 뭉텅이가 괴물을 향해 가속하여 접근했다.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내가 지켜만 보고 있을 것 같았나?]


구름이 괴물의 뒤에 멈춰 서 운사의 형상을 그려냈다. 씨익 웃어 보인 운사가 그 어떤 격도 발현하지 않고 괴물의 머리에 손가락을 톡 가져다 댔다.

괴이한 일이 벌어진 것은 운사가 괴물의 머리에 손가락을 댄 직후였다.


파스스슷!


괴물의 형상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본디 융합으로 만들어진 존재는 융합이 해제되면 본래의 형상으로 각기 흩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 보편을 짓이기듯 괴물은 다시 군단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 어떤 기척도 남기지 않았다.

그 덕분에 잠시 주춤했던 검우(劍雨)는 재차 고공 낙하했다. 허나 괴물이 잡아준 시간이 마냥 헛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생각할 시간을 벌었고, 움직일 시간을 벌었기에. 파이몬은 재빠르게 검의 타격 반경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너를 가게 둘 것 같나?]


그녀의 사방에서 그녀가 움직이는 것을 허용치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그녀를 붙잡았다.

운사의 구름이 그녀의 행동을 억제해 제자리에 멈추게 했다.


[풀어라!]


명령조의 외침이 운사의 귀에 작렬했으나 그 명령을 들어야 할 이유는 하등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파멸 낙타의 주인이자 폭주의 화신 파이몬이다! 감히 하등한 너희가 나를!]


창공에서 파이몬을 응시하던 운사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내가 네게 흥미를 가진 이유를 알 것 같군. 너의 존재에 이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나.]


파이몬의 동공이 순간 격동했다.


[네가 9위라는 것이 매우 수상했지. 내가 일전에 붙었던 놈과 달리 어딘가 결여되어 있었으니까. 물론 세상에 예외는 있다지만, 겨우 너 같은 놈팽이 따위가 9위일 리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파이몬의 머리가 깨질 듯 징소리와 함께 머릿속을 잠식했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운사는 그녀를 구속하고 있던 구름을 해제해 그녀의 움직임을 자유롭도록 했다. 이제 파이몬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어떻게든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어째서인지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저것을 막으려 하지도, 그렇다고 죽으려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에겐 분명 삶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녀의 머리는 혼란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마치 자아를 잃은 사람 같았다.


[나··· ···, 나는 누구지?]


파이몬.

평생 사용해 오던 자신의 진명(眞名)이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파이몬은 진정 내 이름이 맞는가? 아니, 파이몬은 가짜 이름이었다. 내 진짜 이름은··· ···.


의미 포화(Semantic satiation)가 일어났다. 이름이 이름 같지 않았고, 내가 나 같지 않았다.

이름이 가진 의미는 진작 소멸해 버렸고, ‘나’의 정체성은 길을 잃고 배회했다.

착각을 일깨우듯 내지른 운사의 소리가 그녀? 혹은 그에게 급격한 혼란을 야기한 것이었다.


쿠우우우웅!


■■■■가 인지할 새도 없이 우사가 발현한 격이 ■■■■의 위로 마치 검집에 검이 꽂히듯 꽂혔다.


[야, 빡세다.]


그만한 격을 발현했으니 소위 빡센 건 당연한 수순이리라.

우사가 운사의 곁으로 착지했다. 운사는 침착한 얼굴로 반으로 갈라진 ■■■■의 그릇을 보고 있었다.


[취향 봐라. 이런 걸 보는 게 재밌냐?]


운사는 우사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그것을 응시할 뿐.


[움직이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아으, 고지식한 새끼.]

[이 마신들이 끝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우선 곳곳에 흩어진 금수 새끼들부터 처리해야 한다.]

[야 근데 우리··· ···.]


우사가 뜸을 들였다. 그 모습에 운사는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네놈은 그게 문제다. 말할 거면 빨리 말하지 뭘 그렇게 뜸을—]


우사가 운사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아윤이 어디로 간지 아냐?]


순식간에 두 신이 얼어붙었다.

이찬은 둘을 지구로 보내며 신신당부했다.


-지구에서 행패를 부리는 놈들을 먼저 해결하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동시에 아윤을 찾는 것도 잊지 마세요. 두 분의 격이 느껴지면 아윤이 합류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그렇다면 필시 아윤이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겁니다. 만약 전투가 종료되었음에도 아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위협에 대한 대응은 최소한으로 해 주시고 아윤을 찾아 주십시오.


이찬의 상정은 날카로웠다.

그들은 꽤나 대규모의 전투를 치렀고, 주변에서 알 수 없는 격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그중에 아윤과 관련된 것은 없었다.


[운집을 풀겠다. 금수에 대한 대응은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아윤을 찾아야 해.]


운사는 그 길로 자신의 상상력을 쏟아부어 만든 운집을 소환했다.


[내 상상력을 반 이상 소모해 제작한 녀석들이니 쉽게 죽진 않을 거다. 너희들은 즉시 불온한 격이 느껴지는 놈들을 찾아 죽여라. 그리고 벨리알과 비슷한 격이 느껴지면 보고하도록.]


운사의 명령을 뇌리에 깊게 장착한 운집 서른이 사방으로 뛰쳐나갔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너는 아윤을 찾되 다른 마신이 나타나면 마신을 상대해라. 아니, 꼭 마신일 필요는 없지.]


운사가 일목요연하게 설명했고, 우사는 즉시 운집이 미치지 못하는 위치를 향해 비상했다.

운사는 우사의 반대편을 향하기 위해 구름을 소환해 그 위에 올라탔다.

그때, 그의 뒤에서 긁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 ···억이 떠올랐다.]


반으로 쪼개진 ■■■■의 오른쪽 입에서 목소리가 줄줄 흘렀다.


[나■ 그■고■. 빌어먹■ 벨■■··· ···.]


몇몇 단어가 묵음 처리되며 파이몬이 서서히 죽었다.

영혼에게 죽음은 영멸을 의미했다.


[별 또라이를 다 보겠군.]


운사는 아랑곳 않고 하늘을 향했다.


***


그 시각 아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허억!”


거친 숨과 함께 상체를 일으키자 주변은 휑했다. 굳이 따지자면 휑하지는 않았다.

그저 허름할 뿐이었다. 다만 그 허름함이 정도를 넘어섰기에 휑하다고 표현했을 뿐이다.


“여긴··· ···어디야?”


아윤이 독백을 흘렸다. 독백일 뿐이었지만 주변에 듣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독백이 아니게 됐다.


“우리집.”


무심하게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아윤이 소스라치며 제 왼쪽을 바라보았다.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건만 그곳엔 누군가 있으매 분명했다.

굉장한 우연인가 혹은 당연한 필연인가 아윤을 집으로 데려온 것은.


“반장?”


아윤의 반인 2학년 9반의 반장이었다.


“여기가··· ···.”

“맞아. 우리집.”


사실 아윤은 반장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 그 이상의 호기심을 가져본 적도 없을뿐더러 상호간에 교류라고는 아윤이 가져오지 않은 가정통신문을 제출하라는 닦달뿐이었다.


“나를 왜 데리고 온 거야?”


아윤이 묻자 반장은 허공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너라면 이게 뭔지 알 것 같아서.”


반장이 힘을 끌어 모았다.

그녀의 뒤로 거대한 풍채를 지닌 남성이 떠올랐다. 그 모습은 가히 대장부를 떠올리게 했고, 그 모습에 벨리알의 주민인 아윤마저 잠시 압도되었다.

묘한 기시감이 아윤을 덮었다.

끌어 모은 힘을 빼자 그것은 다시 사라졌다.


“언제부터 저렇게 됐어?”


아윤은 본격적인 취조에 나섰다. 이것은 단순히 착각이 아니었다. 격과 상상력을 감지하는 데 도가 튼 인물이다.

그런 아윤의 주변엔 각기 다른 격과 상상력이 감지되고 있었고, 반장도 그중 하나였다.

아윤이 운을 떼려는 순간.


콰아앙!


반장의 집 문이 산산조각 흩어짐과 동시에 누군가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윤은 반사적으로 반장을 제 뒤로 밀친 다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곤 코셰흐샤비브를 이용해 문을 부순 괴한의 머리를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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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범 (8) 24.09.06 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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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범 (6) 24.09.01 6 0 10쪽
150 범 (5) 24.08.30 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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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범 (3) 24.08.25 6 0 10쪽
147 범 (2) 24.08.23 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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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도룡지기 (1) 24.08.04 7 0 10쪽
138 대멸종 (9) 24.08.02 8 0 10쪽
» 대멸종 (8) 24.07.31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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