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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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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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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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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지기 (2)

DUMMY

존재하지 않던 시야에서 흐릿하고 물먹은 시야로, 그것이 또 다시 선명한 화질로 바뀌었다.

그 시야의 주인공은 3왕자. 구스타보 반 아이데. 가스페르의 형이자 왕족이지만 정치나 후계에는 그 어떤 관심도 가지지 않고 색욕과 술, 나태에 찌들어 소일하여 시간을 보내는 쓰레기.

천천히 눈을 뜬 구스타보가 인기척이 느껴지는 위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씨발··· ···. 너 누구야··· ··. 처음 보는 얼굴인데··· ···.”


이찬이 구스타보를 일별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대관절 욕부터 박으면 됩니까?”


이찬은 구스타보가 앉아 있던 왕좌 같은 자리에 앉아 구스타보를 깔보고 있었다. 구스타보는 그곳에 이찬이 앉는 것이 아니꼽다는 듯, 아니, 불쾌하다는 듯 상체를 일으켜 이찬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허나 이찬은 무감한 시야에 그 어떤 변화도 주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 하나로 구스타보의 손을 밀어낼 뿐이었다.


“일단 이 시야 가리는 수증기부터 치우시죠.”


일반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일개 평범한 존재에게 자연 현상 중 하나인 수증기를 치워라?

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장담한다.

이찬의 말이 이어졌다.


“뜨거운 물은커녕 수분이라고는 우리 체내에 있는 이 물이 전부인데 수증기가 올라올 수 있겠습니까? 걸리적거리니 치우시죠.”


구스타보가 이찬을 노시하더니 시선과 수증기를 거두었다. 그제서야 지하의 절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청색의 옥으로 한껏 치장된 방 내부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방 중앙 천장의 샹들리에와 중앙 바닥의 넓은 무대. 그리고 왕좌를 자처한 의자까지.


“추잡스럽네요.”


분명 이곳에선 불건전한 3왕자의 취미생활이 하루 온종일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거··· ···행성 최고의 마법사라는 위상이 날이 갈수록 추락하네요?”


구스타보는 벌떡 일어나 이찬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이찬은 태연하게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행성 내에서 왕족이라는 지위와 천부적인 마법 재능. 또한 더불어 형제와의 끈끈한 우애까지. 가히 행성 최고의 유망주였던 3왕자께서, 이리 망가지신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이 새끼가··· ··· 너 누구냐고!”


이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구스타보에게 목례했다.


“저는 행성 지구에서 온 이찬입니다.”

“이찬··· ···?”


구스타보의 시선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게 누군데?”

“모르실 것 같아 말씀드렸습니다. 혹여나 여기에 제 이름을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곤란해지거든요.”


이찬이 천천히 검을 소환했다.

확실하고 압도적인 무력에 구스타보는 경계심을 품었다. 마법사로서의 본능과 위험에 대한 감지가 동시에 깨어나 그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시니 이런 것 아닙니까. 이제 말씀해 보시죠.”


구스타보의 커다란 눈 사이로 불안과 압박이 스몄다.


“왜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죠?”


국가적 위기.

가스페르에게 상세히 들어 알고 있었다. 1왕자와 왕비가 협력하여 가스페르와 현 국왕을 시해하려 했다는 정보와 그 과정에서 《관념》의 개입. 해당 사태가 종식된 후의 참사까지.


“당신이 진정 마법사라면 그 위기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겁니다. 마법은 보기보다 정교하고 자의식이 강하니까요.”


이는 위기감이 발현된 상태에서도 전면에 나서지 않은 구스타보를 향한 직접적 비난과 의문.

이찬의 물음에 구스타보는 실소를 뱉었다.


“그래. 난 네 말대로 우리 행성의 위기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 몸에 내재되어 있는 마법들은 날뛰고 싶어 환장했지만, 난 그것들을 전부 억제했지. 굳이 나서야 할 이유를 찾지 못 했다.”

“정말 게으르고 자기중심적이군요.”

“보통 지성을 가진 존재들이란 대개 그래. 내 일이 아닌 일엔 게으르고, 내게 득이 되거나 실이 되는 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돌변해 전광석화로 해결되지.”


이찬은 구스타보의 폐부를 찌르는 말들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왕자님이 무너지신 게, 단순히 마법에 회의감을 느껴서는 아닐 겁니다.”


이찬의 말에 구스타보의 안면이 꿈틀거렸다.

가스페르에게서 들은 정보를 총망라해 자신만의 가설을 세운 것이다.


“왕자님은 천재적인 재능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같이 들어왔을 겁니다. 아니, ‘매일같이’라는 말은 수식하기에 한계가 명확하군요. 매일매일이라 해야겠습니다.”


이찬이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구스타보를 해칠 마음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왕자님께는 슬럼프가 찾아왔을 겁니다. 필연적인 것이죠. 세상에 어떤 일을 꾸준히 하며 같은 기량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것이 오래 지속되면 영구적인 손상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구스타보의 손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자신의 마법이 퇴보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찬은 그의 마법을 보고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되려 유창하게 말을 이었다.


“슬럼프 도중 왕자님은 2왕자의 부고소식을 들으셨을 겁니다.”


이것은 이찬의 개인적인 추측이자 무수한 상상력에서 기반한 빅 데이터가 추출해낸 단 하나의 가설이자 결론. 그 말에 증빙이라도 하듯 구스타보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감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죄책감에 휩싸였을 겁니다. 자신과 가장 친하게 지내던 형이 사망했다. 그것도 돌연사. 사인을 모르는 돌연사. 당신은 그런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었고, 시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지워진 사인과 형의 생각 등이 무차별적으로 산개했을 겁니다.”


구스타보의 눈에 열기가 어렸다.


“거기까지.”


이찬은 슬쩍 일별하더니 천천히 장내를 걸었다. 넓은 장내에서 이찬의 신발 소리가 적막하게 울렸다.


“또한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은 외부의 비판적인 여론. 죄책감과 얽혀 버렸고, 결국 왕자님은 이성의 끈을 놓고 방에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그 때문에 당신은 국왕의 눈 밖에 났고, 지하로 보내져 철저한 관리와 감시 속에서 자신이 가짜로 원하는 것들에 만족하며 살아왔습니다.”


구스타보의 인내심이 끝에 달했다.


“닥치라고 했다.”


파아앙!


한 인간의 손에서 발생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빙하가 이찬의 주변으로 생성되었다.

이어 구스타보는 행동에 제약을 걸고 무차별적으로 이찬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쾅! 콰아아앙!


총탄, 활, 불꽃, 폭탄, 나무조각 등 마법에 한계란 없다는 것을 인증하듯 그의 손끝에서 기현상이 발생했다.


“헉. 허억.”


구스타보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분명 묶어 뒀는데, 타격감. 손에 닿는 느낌이 없다.’


그때, 구스타보의 뒤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성급하시군요.”


이찬이었다.

구스타보는 다급히 거리를 벌렸다. 구스타보의 마법이 폭발한 자리에는 깨져 버린 옥과 공존할 수 없는 마법들이 들끓었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한심하실 줄은.”


그의 이가 으드득하는 소리를 내며 분노를 억눌러 삼켰지만 그것은 아무쪼록 좋았다.


“내 과거를 읊은 죄는 경히 넘어가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런 말이 무색하게도 구스타보의 마법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 했다.

아직 수그러들지 않은 술기운과 흥분 때문에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상실한 상태.


“그런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현명하게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건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저버리는 일일 겁니다.”

“그건 내가 판단한다.”


파지직!


그의 뒤로 거대한 마방진이 생성되었다.


‘이건 좀 위험한데.’


사각(死角)이었다.

말 그대로 죽음을 면치 못 하는 각도.


‘피할 수 없다면, 부수면 돼.’


이찬은 풍백의 격을 발현했다.

경이한 바람이 발생하며 주변을 휘어 삼켰다.


“당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직시하십시오.”


이찬의 경고에 구스타보가 말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세상’이다.”


***


한편 가스페르는 허공을 날아다니며 허완의 감각을 기르고 있었다. 허완이 이 행성에 관여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시각뿐만이 아니었기에.


“뭐가 감지됩니까?”


[감지라는 건 말이다. 이 빌어먹을 후손아.]


허완을 도우려는 가스페르의 도움은 되려 혼돈을 일으켰다.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거란다.]


“알죠. 알고 말고요.”


[근데 이 새끼가.]


“들러야 할 곳이 있어서요.”


가스페르는 1층의 문을 조심스레 열어 어떤 방 내부로 진입했다. 그곳은 넓게 푸르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성 내부의 정원이었다.

과거 삶이 무료한 이들은 이곳에서 정겹게 식물을 기르며 정신을 회복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쿠우우우웅!


가스페르의 옆으로 거대한 발이 스쳐갔다.

소스라치게 놀란 가스페르가 위를 올려다보자 그것의 머리에는 이노가 있었다.


“가스페르. 이곳엔. 무슨 일로.”


이노가 살 곳이 마땅치 않았던 제퍼는 결국 거대한 정원을 통째로 이노에게 내어 주었다.

덕분에 당시 정원에서 식물을 키우던 이들의 통곡이 들려오기도 했다.


“원래 예쁜 꽃들뿐이었는데.”


어느새 정원 식물들의 체질은 변화하여 공룡의 무차별적인 짓이김에도 견딜 수 있게 진화하였다.


“갈 곳이 있어.”


가스페르는 「광휘의 발걸음」을 사용해 이노를 공룡의 머리에서 낚아채고는 다시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감지됐다.]


그 사이 허완은 상상력에 대한 분석과 위치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한 가지 어폐는.


“그건 저도 느껴지는데요?”


그것의 양과 질. 그리고 폭발력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


“저깁니다.”


가스페르는 의문스러웠다.

저곳은 몇 년 전부터 3왕자의 유배지로 쓰인 지하.

그런 곳에서 이토록 강력한 상상력이 발현되기란 쉽지 않았다.

차오르는 상상력과 폭발을 헤치고 들어간 가스페르는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이찬과 3왕자 구스타보 반 아이데가 혈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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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범 (5) 24.08.30 6 0 10쪽
149 범 (4) 24.08.28 7 0 10쪽
148 범 (3) 24.08.25 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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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도룡지기 (3) 24.08.09 7 0 10쪽
» 도룡지기 (2) 24.08.07 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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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대멸종 (6) 24.07.26 1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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