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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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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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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1)

DUMMY

가스페르는 자신의 뒤에서 잠깐 가공할 격을 느꼈다. 너무 짧은 시간이라 자세히 파악하지는 못 했으나 그 찰나의 힘을 분석한다면 믿기 힘들지만 우사나 운사 정도를 능가하는 힘이었다.


“그럴 리가.”


피로가 쌓여 잠시 착각한 줄 아는 가스페르가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세 곳의 격전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불안 요소는 없어 보입니다.”


[그래. 되려 너무 순조로워서 탈이야. 이대로 가면 분명 사고가 생긴다.]


“그걸 막는 게 저희 역할입니다.”


가스페르가 전장을 보더니 나지막이 읊조렸다.


“이찬은 어디 있는 거야··· ···.”


***


그 시각 이찬은 정지현과 황승환을 설득한 직후 북쪽으로 내달렸다. 어느새 이찬은 격전지에서 벗어나 서울을 넘어 북한의 지척에 도달했다.

이곳은 DMZ(Demilitarized Zone) 일명, 비무장지대.

이찬이 현재 벌어지는 전쟁을 외면하고 온 이유가 있는 장소였다.


“사람이 남아 있어.”


민사행정경찰이라 불리는 비무장지대를 감시하는 경찰이자 군인인 사람들이 철조망 앞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눈속임이야 쉽지.”


이찬이 풍백의 고유격 「풍화」를 발현하여 몰래 비무장지대의 내부로 잠입했다. 이찬이 「풍화」를 해제한 곳은 비무장지대의 어떤 숲이었다.

풀 밟는 소리가 고요하고, 또 동시에 부산스럽게 느껴졌다. 그곳에 있는 생명은 이찬만이 아니었다.

많은 동물과 식물이 공존하는 세상에 불청객인 이찬은 당연 그들의 회피와 경계를 한몸에 받아야 했다.

이찬은 그들을 애써 무시했다. 어떤 형식으로든 반응을 해 버린다면 적잖은 위기감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막막한데··· ···.”


이찬은 광활한 숲과 잔디밭, 다양한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곳. 그렇게 이곳에서 이찬이 원하는 단서를 찾기에는 너무도 막연하고 암울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못 느끼진 않아.”


이찬은 본능이, 자신의 감이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무장지대는 남과 북이 상호간에 협약해 군사 활동이 금지된 지역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이곳에서 나타날 가능성은 가히 0에 수렴한다고 봐도 무방했··· ···었다.


“사람?”


이찬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지금 이찬의 앞에 걸어가는 형체는 사람이었다. 민간에 흔히 알려진 대성동 마을은 아니었다. 이곳은 그보다도 훨씬 깊은 거의 군사분계선에 밀접한 비무장지대이니 말이다.

이곳에 사람이 왜, 어떻게, 언제부터. 등등의 무한에 가까운 상상 회로가 돌아갔고, 그로부터 도출한 결론은.


“단서다.”


이찬은 망설임없이 그 사람의 뒤를 밟았다. 행여 들킬까 그 사람의 보폭과 걸음걸이를 맞춰 풀을 밟는 소리가 겹쳐 들리게끔 움직였다.

이동 도중 사람의 형체가 더욱 확실하고 구체적이게 보였다. 우선 남성에 중절모를 눌러쓴 형태이고 키는 대략 190cm 이상으로 굉장히 거대해 보였다.

허나 특이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방금 서술에서 굳이 머리에 쓰는 ‘중절모’를 강조한 이유이기도 했다.

사람의 인상을 볼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옷, 그러니까 복장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고 기묘했기 때문이었다.


“호피무늬··· ···?”


상체와 하체가 이어진 커다란 옷의 재질이 호피였던 것이었다. 그것도 인공적으로 무늬를 박아낸 호피가 아니라 정말 범의 가죽을 벗겨 만든 것 같았다. 그에 대한 증거로 호피의 곳곳에는 묻은 지 오래되어 말라비틀어지고 검어진 피가 점철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대의 기술력으로 저런 질감을 표현하지 못 한다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문외한적 느낌을 주지만, 이곳을 능숙히 지나다니는 사람에게서 인공적인 느낌을 받는 것 또한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았다.


“음?”


대체 얼마를 앞 남자의 발걸음에 맞춰 걸었던가. 마침내 남자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이찬은 연달아 이어진 집중으로 인해 미묘한 차이로 발걸음을 늦게 멈추었고, 남자의 고개가 아주 미세하게 도는 것을 이찬은 보고 말았다.


‘들켰나? 지금이라도··· ···.’


하지만 남자는 단순히 고개를 돌린 것이라고 말하는 듯 다시 한번 발걸음을 옮겼다. 이찬도 이에 따라 재차 걸음을 디뎠고, 이번엔 얼마 가지 않아 멈추었다.

이번에 멈춘 발걸음은 휴식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남자를 따라 앞으로 향한 이찬은 눈이 부셔 손을 들어 빛을 가렸다. 이윽고 눈이 불빛에 적응했고, 서서히 눈을 떴다.


챙!


‘무슨 소리지?’


눈을 뜬 이찬은 면밀하게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것은 수포로 돌아갔고 이찬의 앞에 있는 것은 무수히 많은 병장기와 병장기의 주인인 호피무늬 인간들이었다. 그중에는 이찬이 따라온 남자도 있었다.


“넌···누···누구냐.”


어눌한 말투에서 이찬은 이들이 문명에 융화되지 않은 동떨어진 인간임을 알아차렸다. 이찬은 천천히 양손을 위로 치켜들며 적대 의지가 없음을 표명했다.


“이···이방인이다. 죽···죽여야 한다!”


그와 또래인 것처럼 청소년이 섬찟하게 창을 들이밀자 이찬이 뒤로 조금 물러섰다.

그때, 창을 든 사람들이 일제히 양방향으로 갈라졌다. 누군가가 올 길을 만드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그곳으로 등이 굽은 노인과 건장한 남성들이 다섯 등장했다.


“안으로 뫼셔라.”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명하자 다섯 남성이 이찬을 데리고 들어갔다.


“조···족장! 아···안 된다. 저놈···우리 미행했다. 분명 우···우리 죽이려고 할 거다.”


이찬에게 창을 들이민 아이가 족장이라 불린 노인에게 따졌다. 노인은 차가운 얼굴로 아이를 보았다.


“그건 내가 결정한다. 다들 해산해. 경계는 늦추지 말게나.”

“아···알았다.”


***


이찬은 과거 군인이 쓴 것 같은 막사 내부로 들어와 있었다. 막사의 내부 탁자에는 풀로 우린 차와 햇볕에 바싹 말려 놓은 나뭇잎들이 이찬을 맞이했다.

이찬이 막사로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족장이라 불린 노인이 들어왔다.


“반갑네. 변변찮은 노인일세. 마을의 형편이 좋지 않아 족장을 맡고 있지.”


이찬도 자리에 일어나 족장의 인사를 받으려 했지만 족장이 고개를 저으며 이찬의 인사를 거부했다.


“자네에 관해서는 알고 있네. 저 위대한 관념의 대적자라지?”


이찬은 굉장히 놀라웠다. 그리고 그 놀라움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예. 맞습니다.”

“뭐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짓고 그러나. 아무리 이곳이 변두리에서도 멀리 떨어져 문명이 닿지 않는 곳이라곤 하나 그 정도의 정보를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걸세.”


이찬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허나 그런 외적인 행동과는 달리 이찬의 뇌는 빠르게 사고를 시작했다.


‘지구의 사람이 이런 정보를 알고 있을 리 없어. 관념과 연관되어 있는 건가? 그것보다 나를 어떻게 알고 있지? 그 남자한테 들켰다는 건 알고 있다. 잠깐, 어떻게 통신 장치도 없이 내가 온다는 걸 마을에 알렸지? 그전에 저 남자는 왜··· ···.’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걷잡을 수 없이 부풀었고, 그런 생각을 걷잡아내 이찬을 일깨운 것은 족장이었다.


“생각이 많을 테지. 일단 차 한잔 들게.”


번쩍 정신을 차린 이찬이 찻잔을 조심스레 들어 차를 홀짝였다.


‘우와. 존나 맛없다.’


정말 더럽게도 맛이 없는 차였다. 이찬은 애써 표정을 숨기려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족장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곁에 있는 다과도 먹어 보게.”


다과.

이찬은 이 다과를 찾는 데 큰 시간을 소요했다. 어딜 보아도 다과로 보일 만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겨우 찾은 것은 말라 비틀어진 나뭇잎이었다.

얼핏 보면 어느 초등학생이 차 세트라며 만든 소꿉놀이처럼 보였다.

이찬은 못 미더운 생각으로 나뭇잎을 집어 입에 넣었다.


‘괜찮은데?’


생각보다 고소한 맛과 바삭한 식감을 잘 간직한 나뭇잎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왜 이곳을 찾아왔나?”


이찬이 먹는 것을 멈추고 나뭇잎을 꿀꺽 삼켰고, 숨을 쉬었다.


“혹시 여기 관념에 대한 문서가 있습니까?”

“관념에 대한 문서?”

“저자가 명시되어 있는 책 같은 것들 말입니다.”


족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에게 말해 줄 것은 없는 것 같군.”

“예?”

“그런 용건이라면 돌아가게. 우린 그런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


이찬이 당황했다.

일전에 ‘경계’에서 헤카테에게 가르침을 받았을 때, 헤카테는 이찬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너희 나라로 향하게 되면 북쪽으로 가거라. 자연이 제 자유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에 전대 행동자의 문서가 남아 있을 것이다.]


이찬은 헤카테의 말을 믿었다. 그랬기에 현재 대한민국의 북쪽이자 자연의 생태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 인간의 간섭이 최소화되어 있는 곳인 비무장지대로 왔고, 어쩌면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이들을 만났다.

이찬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혹여 이것이 헤카테가 제시한 정답이 아니더라도 이 기회가 헛되이 지나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잠시만요!”


이찬이 막사의 바깥으로 나가려는 족장을 멈춰 세웠다.


“아직 할 말이 남았는가.”

“성급할 필요 없지 않습니까. 천천히 얘기를 나눠 보시죠.”


그런 이찬의 시간 끌기에 속을 족장이 아니었다.


“자네는 지금 서울에 벌어진 참사를 막기 위해 움직여야 하지 않나. 정 이곳에 용무가 있다면 전쟁을 종식하고 오게.”


너무도 냉담한 반응에 결국 이찬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러자 족장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며 모든 주민들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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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범 (6) 24.09.01 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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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범 (3) 24.08.25 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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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 (1) 24.08.21 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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