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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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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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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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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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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멸의 비애 (5)

DUMMY

【급작스럽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현실이고 네가 깨달아야 할 네 위치니까.】


***


허억 하는 소리와 함께 급작스레 깨어난 이찬이 제 몸을 더듬으며 몸과 정신이 무사한지 확인했다.

다행히 이찬의 몸은 그 요상한 곳의 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는 것만 제한다면 멀쩡한 상태였다.


[깨어났니?]


상체를 세운 이찬의 뒤로 낯선 신언이 들려왔다. 이젠 익숙한 신언이었다.


“헤카테.”


쿠르르르릉!


[이름을 그렇게 스스럼없이 말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구나. 여차하면 시스템의 개들이 날 물어 죽일 수도 있거든.]


“그런 건 됐고. 그 남자에게 들었다. 태극본성에 나타난 놈들, 네 것이라며?”


[그렇지?]


“당장 그들을 회수해.”


[흐음?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걸··· ···, 몰라서 묻는 거냐?”


이찬의 주변으로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

「한계 돌파」의 돌파된 상상력 때문이었다.


[참, 격 하나는 잘 뒀단 말이지.]


“당장. 철회하라고.”


[너무 강압적이네.]


이찬을 골려 먹으려는 헤카테의 태도에 이찬이 결국 폭발했다.


“어서!”


스릉!


칼집에서 뽑혀 나온 이찬의 기도가 「한계 돌파」와 공명하듯 검명을 토해냈다.


후우우웅!


이곳의 악한 바람을 가르고 이찬의 기도가 헤카테에게 내리쳐졌다.

종으로 그어지는 기도에서 별안간 은빛의 기류가 방울방울 맺히며 그것을 장식했다.

이것은 이찬이 가진 어떤 격에서도 발현되지 않는 색이었다.


광개토대왕의 고유격은 고구려를 닮은 붉은색.

무디트의 「한계 돌파」는 금색.

뉴턴의 「중력장」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풍백의 여타 격들은 앞서 느꼈듯 연한 파랑이었다.


이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격이었지만, 어쩌면 짐작하기는 쉬웠다.


‘백룡의··· ···.’


백룡의 비늘이 심어진 기도가 마치 자신도 백룡의 파편이라는 듯 웅장한 검명을 질렀다.


촤라락!


기도의 칼날 전체가 비늘로 뒤덮이며 한층 단단해졌다.

마치 그 어떤 물체라도 뚫어 버리겠다는 듯 말하는 것 같았다.


쿠구국!


이찬의 비늘로 점철된 기도와 헤카테의 단단한 머리카락 뭉치가 맞붙었다.

헤카테는 그런 이찬의 기도를 나름 여유롭게 받아내며 말을 이었다.


[지금 나랑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을 텐데? 네 동료들이 걱정되지 않는 것이냐?]


“난 내 동료들을 믿어.”


이찬의 맹목적인 신뢰에 헤카테가 진절머리 난다는 듯 뒤로 크게 날아갔다.

이찬은 그 찰나를 결코 놓는 법이 없었다.


쐐애애액!


풍백의 격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도약한 이찬이 기도에 무게를 실어 공중에서 강하했다.


콰아앙!


이전과는 다른 마찰이 둘 사이에 발생했다.

그 답답하고 갑갑한 침묵을 깬 건 이찬이었다.


“너희는 대체 누구야. 적인가?”


그러자 헤카테가 저소하듯 피식 웃었다.


[네가 하기 나름이지. 기본적으로 우린 《현실》에서도, 《관념》에서도 버려진 이들을 데려와 관리하고 있다.]


“버려진 이들이라면··· ···.”


[그래. 완전히 소멸한 이들. 여긴 그런 가엾은 영혼이 발을 디디는 곳이다.]


“그럼 여긴 죽은 영혼 전부가 있는 건가?”


[딱히 그런 건 아니다. 환생을 원하는 이들에겐 환생을 쥐어 주고, 여기에는 전부 잊고 망인이 되길 자처하는 이들이 남는다.]


“망인?”


[네가 방금 봤던 그 번개의 신의 수족과 같은 꼴을 말하지.]


“그럼 키트리노스는 스스로 망인이 되길 원한 건가?”


헤카테가 슬쩍 그가 있는 곳을 일별했다.


[그렇진 않았다. 그는 너를 죽이는 임무에 실패한 후 <올림포스>의 성주들로부터 망인형에 처해졌지.]


“망인형?”


[일부러 영혼을 죽여 이곳으로 보내는 형벌을 말한다. 안타까울 뿐이지.]


“그럼 키트리노스는 나 때문에 죽었다는 건가?”


[앞뒤 다 자르고 말하면 뭐 그렇게 되기는 한다.]


이찬이 짓누르던 기도를 슬쩍 놓으며 말했다.


“여기 남겠다.”


헤카테가 이찬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기에 남겠다고? 좋은 선택이 아닐 텐데.]


“알고 있다.”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내가 강해지기 위해선, 여기가 제일 적합하다.”


[왜일까?]


그녀는 능청스럽게 이찬의 말을 받아쳤다.


“여기선 상상력이 제한되지 않는다.”


그 남자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여기에선 격을 발현해도 상상력이 소모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여기선 상상력을 소모하지 않고 되려 모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또?]


하지만 헤카테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듯 추가적인 이유를 서술할 것을 요청했다.


“좋은 훈련 교보재가 너무도 많지.”


이찬은 헤카테와 함께 남자가 있던 장소로 넘어가기 전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는 키트리노스와 만났을 때, 그때와 매우 유사한 현상이었다.


“여기 망인형에 처해진 이들이 한둘이 아닌 것을 이미 파악했다.”


[똑똑한걸?]


이찬의 지식 수준에 감탄한 듯한 헤카테가 이곳에 머물 것을 허용했다.


[그래, 훈련을 허용해 줄게. 의식주는 알아서 해결하고, 교보재도 재량껏 잘 해 봐?]


“잊지 마라. 내 마지막 교보재는 너다.”


[하핫. 기대되네. 아 참고로 《관념》이랑 이곳의 시간 배율은 이곳이 정말 훠어어어얼씬 느리니까 충분히 연습할 만큼 하고 가렴.]


그 말을 끝으로 헤카테는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키트리노스!”


키트리노스를 깨운 이찬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


[고유격 발현! 「운무(雲霧)」.]


운사가 다급한 신언을 발하며 고유격을 쏘아 댔다.

운무(雲霧).

구름과 안개를 아우르는 말로 지금 상황에 이 격보다 좋은 격을 찾기는 힘들었다.

주변에 짙은 안개가 현현하며 적들의 시야를 가렸다.

운사의 고유격. 「운집(雲集)」으로 소환된 군사들은 운무로 펼쳐진 안개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한결 수월하게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전원! 공세를 유지하라!]


운사의 명령에 운집은 절대복종을 고수했다.

이미 주변엔 시신이 많았다.

태극본성의 주민들은 물론 운집의 군사들도, 운집의 군사들과 태극본성의 주민들이 사살한 망인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우사!]

[알고 있어!]


우사가 고유격을 발현했다.

네노쿠니에서 파멸적인 위력을 발휘했던 그 격이었다.


[고유격 발현. 「존멸의 비」.]


우사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대상 지정. 망인(亡人).]


쏴아아아아!


안 그래도 거세게 내리던 비가 이젠 아플 정도로 억수같이 쏟아졌다.


“아야!”

“이게 뭐야!”


대상에 지정되지 않은 태극본성의 주민들은 따가움에 고통을 호소했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다행이라는 듯 대상에 지정되고 만 이들은 고통을 호소할 틈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치이이익!


망수(亡獸)들은 이른바 고통을 느끼지도 못하고 그대로 사멸해 버리고 말았다.

진득하게 녹아가는 망수들의 사체가 마치 석유가 흩뿌려진 바다처럼 보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저 죽은 후의 짐승 따위가 아니었다.


[저 새끼는 어떡해?]


우사가 운사의 곁으로 와 한 망인을 지목했다.

그것은 마치 중세시대의 기사 같았다.


[일단 강환중.]


“예, 군사의 신이시여.”


[시간을 끌어 주게.]


“맡겨만 주십시오.”


강환중이 잽싸게 전장으로 복귀하여 망인에게 도를 휘둘렀다.


후우우웅!


웅혼한 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때려 박히며 은근한 기대감을 자아냈다.

사실 그들도 저 망인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날붙이를 들고 들러붙어 베고 찌르고 찍어 보기도 했고, 방금 본 것처럼 「존멸의 비」를 사용해 대상 지정도 해 보았다.

허나 모두 말짱 도루묵일 뿐이었다. 다대일의 상황을 타개하는 건 웬만한 성주나 전투형 영혼이라면 알고 있는 기술이었기에 크게 놀랄 일 없었지만, 그들이 극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존멸의 비」에 지정되었음에도 어떤 상태 변화도 없었다는 것.

천신의, 그것도 우사의 고유격을 견뎌냈다는 건 저 존재가 천신과 동급이거나 혹은 그 이상의 존재가 뒤를 봐 주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흐라아아앗!”


가뭄에 단비가 들 듯 지금 그들의 희망은 강환중이었다.

한반도에서 최강의 무력을 가진 신들을 ‘군웅신’이라 칭한다.

대표적으로 해상전의 신이라 불리는 이순신 장군.

귀주대첩의 위대한 업적으로 인해 죽어서도 신으로 추앙받던 강감찬 장군 등이 그 예시다. 그리고 그중 단연코 순수 무력의 끝판왕은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었다.


“성주시여 제게 힘을 하사해 주시옵소서.”


그러자 정말 김유신 장군이 그를 돕듯 그의 몸에서 감히 상상조차 못할 만큼의 막대한 상상력이 솟구쳤다.


“고유격 발현. 「용마의 목을 벤 자」.”


솟구치는 힘이 이내 검의 형상을 취하더니 강환중의 왼손에 쥐어졌다.

도란 본디 한 손으로 잡아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다.

두 손으로 꽉 잡아 힘을 실어 공격하는 무기로써 그 위력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다른 근접 무기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강환중은 남들과 달랐다.

도를 양손에 각각 쥐어 손맥을 최대로 도에 전달했다. 그에 상응하듯 도가 웅장한 검명을 토해냈고, 강환중도 그것에 호응했다.


콰아아앙!


강환중이 전력으로 지각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자 땅이 그대로 내려앉아 커다란 운석공(隕石孔)을 만들었다.

그가 운무 속으로 파고 들어가 전투의 결과를 알 수 없게 가렸다.


“흐앗!”


짧은 음성을 내던진 강환중이 도를 교차해 망인에게 일격을 가했다.


촤아악!


피가 솟구치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펼쳐지며 전투의 양상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강환중이 보여준 위엄과 상상력의 양을 보아 모든 이들이 추측컨대 그는 일합만에 승리를 거머쥐었을 것이었다.

물론, 추측일 뿐이었다.


“망인들을 벨 때는 피가 솟구치지 않아.”


유수가 첨언했다.

마치 일말의 희망을 가진 이들을 가차없이 저버리듯 말이다.


후우우웅.


마침내 운사의 운무가 걷히며 결과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털썩.


쓰러진 사체를 모든 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주목했다.

사체는 한복을 입고 있었다.

떨어진 목에서부터 아직 잔류한 상상력이 남았고, 양손에 들려 있던 도는 한 손으로 줄었다.

멍한 얼굴로 선 승현의 앞으로 무언가 데구루루 굴러 그의 발끝에 살짝 부딪혔다.

그것을 본 승현은 기겁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허억··· ···!”


그것은 아직 눈을 감지 못한 강환중이었다.

마치 그가 승현에게 절규하듯 외치는 것 같았다.


-도망쳐··· ···.


물론 강환중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끄아아아악!”


승현의 절규가 태극본성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것이 신호탄이 된 듯 전장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그중 침착을 유지하고 있는 건 강환중의 목을 주저없이 베어 버린 망인과 천신 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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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대멸종 (8) 24.07.31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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