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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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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18,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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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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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7)

DUMMY

파각!


운사의 운집이 파이몬의 손짓 한 번에 소멸해 사라졌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듯 운집은 자아가 없는 병사일 뿐이다.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피조물. 오직 그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운집이 저런 식으로 손짓 한 방에 터져 나갈 병사냐 물으면 그것은 또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파이몬의 전력은 그들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풍백만 있었어도··· ···.]

[약한 말이다.]

[알아, 안다고.]


성단 <태극>의 세 농업신 중 풍백은 우사와 운사에 비해 한 단계 높은 격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전승된 설화의 양과 탄생의 기조부터가 그들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운사와 우사의 사는 스승 사(師)를 사용하여 그들의 위대함을 부각하지만 풍백은 사를 쓰지 않는다. 맏이 백(伯)을 사용해 그가 세 농업신 중에서 가장 큰 형제임을 과시하고 있다.

실제로 이 전장에 우사나 운사가 아니라 풍백이 있었다면 결과 혹은 기세가 달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풍백을 찾는 이유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언젠가 동자신의 행성에서 <올림포스>신들의 주민을 마주했을 적에.

공교롭게도 그들은 전부 뭉쳐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셋의 공유격. 「풍요기원」을 발현할 수 있었고, 덕분에 그들을 한 걸음 물리는 데 성공했다.


[언제까지고 멍청한 상념에 빠져 있을 순 없다.]


운사가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서서히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파이몬을 주시할 수 있었다.


[먼저 전장을 바꾸겠다.]


운사가 합장하며 격을 발현했다.


[고유격 발현. 「안개」.]


하늘에 있던 구름에서 일부가 떼어져 나오더니 흐릿하게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난 아직 흥미를 잃지 않았다.]


운사는 근접전에 그리 큰 이점을 갖고 있진 않다. 방금처럼 군사를 소환해 백병전을 유도하는 그림을 그리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고유격 「안개」는 운사가 가진 고유격 중에서도 가장 사용하기 힘든 격이었다.

이어 운사는 또 다른 자신의 고유격인 「운화(雲化)」를 발현해 안개와 동화(同化)되었다.


[찾아 없애라.]


파이몬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녀의 군단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명을 이행했다. 허나 명을 이행하는 것과 명을 달성하는 것은 분명하게 다름을 증명하듯 안개 속을 뒤져보아도 그들은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비겁하게 가린 시야 뒤에 잘도 숨어 있구나. 그런데 그렇게 숨어만 있어선 어떻게 나를 잡으려는 거지?]


파이몬이 조소하며 군단의 개수와 반경을 증가했다.


[아, 혹시나 원군을 바라는 것이라면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해 주고 싶군. 어떤 일이 있어도 이제 지구 안으로 성주들이 들어올 수는 없을 것이다.]

[원군?]


운사의 기롱하는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평범한 사람이나 운사를 상대하지 못하는 하신이었다면 그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겠지만, 파이몬은 앞선 어떤 상황에도 귀속되지 않는 부류였다.


후우웅!


자신의 입맛대로 개조한 나무창이 웅혼한 격을 담아 휘둘러졌다. 그 종착지는 자신의 바로 뒤였다.

역수로 잡아 찔러 넣은 나무창은 허무할 정도로 아무것도 찌르지 못했다.


[내 격이 그렇게 허술할 성싶으냐?]


그녀의 나무창은 허술하게 안개의 일부를 갈랐을 뿐이었고, 안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아물어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절망적이라면 절망적인 상황 속 파이몬은 한 가지 묘수를 떠올렸다. 그것은 얼마전 지구에서 있었던 사태였다.


일전에 아윤은 지구에서 신과 교전을 벌였다.

상대는 갈대의 요정 시링크스.

전투 중 아윤은 벨리알의 고유격 「암흑 안개」를 전개해 시링크스의 시야를 비롯한 감각을 차단했다.

결국 돌파구를 찾지 못한 시링크스는 자신의 무기인 갈대를 무작위로 상상력을 담아 휘둘렀고, 그것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너희는 상대를 잘못 골랐군. 나 같이 치밀한 마신은 이것저것 다 체험해 본단 말이지.]


파이몬이 나무창에 불을 붙여 안개를 향해 휘둘렀다.


후웅!


나무창이 휘둘러질 때마다 안개가 걷히는 듯 보였다. 실제로 안개는 나무창에 담긴 상상력에 밀려나 일부 공간을 드러냈다. 하지만 오직 그뿐이었다.


[너, 아윤과 시링크스의 영상을 본 모양이군.]


파이몬이 흠칫하며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렴. 신들은 그렇게 살아야지. 싸우지도 않을 텐데 격투기 영상을 정주행 하는 것처럼 말이야. 꽤나 철저하게 분석해 온 모양인데. 넌 하나를 간과했다.]


그게 뭐냐고 물으려는 시링크스의 앞에 다시금 안개가 자욱하게 몰려들었다.


[난 그렇게 호락호락한 신이 아니야.]


운사는 파이몬의 전략 허점을 정확하게 짚었다.

아윤이 아무리 관념 역사상 역대급 재능을 가진 주민이라고 여러 매체에서 띄워 주지만, 결국 관념으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새내기일 뿐.

반면 운사는 산전수전 모두 겪은 베테랑 중 베테랑이었다.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라.]


하지만 안개를 이용해 파이몬의 시야만을 차단했을 뿐 아직까지 그 어떤 타격도 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되려 파이몬의 군단이 조사 반경을 넓히면서 운사를 찾아 나서기에 이르렀다.


‘슬슬 운화의 지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실제로 운사의 신체 끝부분은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상상력을 초당 잡아먹는 격은 오래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설상가상 목소리를 내면 완벽히 자신의 위치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소위 ‘어그로 끌기’를 하기에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결국 운사는 운화를 해제하고 그녀의 앞으로 나섰다. 운사가 형태를 갖추기만을 기다린 파이몬의 군단이 운사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운사는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


콰득!


파이몬의 모든 군단이 마치 피라냐처럼 운사를 물어뜯었다. 그들의 이빨에서 스며 나온 마신 특유의 상상력이 운사를 잠식했다.

다리와 팔부터 썩어 들어갔고, 이내 심장으로 응집되어 죽음에 이르렀다.


[하하하! 천신이라고 별거 없구나.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칭찬해 주지.]


그때, 섬찟한 목소리가 파이몬의 뒤에서 속삭였다.


[누가 죽음을 받아들였지?]


방금 쓰러져 죽은 운사의 목소리였다.


[뭐··· ···뭐냐!]


좀처럼 소름에는 면역하다고 자부하던 파이몬의 온몸에 오한이 서렸다.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돌려 운사의 시체가 남은 장소로 향했다. 마치 군단을 모두 저리로 보낸 것은 자신의 죽음을 초래한 오판이었다고 속삭이는 듯, 운사의 시체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하얗고 빽빽한 밀도의 구름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돌아와! 돌아와라!]


파이몬은 위기를 짐작하곤 빠르게 그들을 회수했다.

회수하려 했다. 허나 그들은 파이몬의 명령을 이행하기는커녕 듣는 체하기만 할 뿐 누구도 파이몬을 도우러 오지 않았다.


[네 목소리는 저들에게 닿지 않을 거다. 저 구름엔 음파를 차단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지.]


운사의 나지막한 음성이 파이몬의 귀로 흘렀다.

누군가 듣기엔 나긋나긋하고 다정한 목소리일 테지만, 지금 파이몬이 듣기에는 마치 저승사자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이러고 당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파이몬은 자신의 머리 위에 놓인 왕관을 집었다. 그리곤 바닥에 왕관을 놓아 그 안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틈새로 스며든 상상력은 왕관과 결합해 일종의 향(香)을 피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신의 군단을 하나로 결집시켰다.

파이몬의 냄새가 나는 곳으로 군단이 따랐고, 그들은 결국 파이몬과 대립하는 운사를 발견했다.

운사를 향해 돌진하던 녀석들은 파이몬의 제지로 멈춰 섰다. 운사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파이몬은 천천히 모든 군단을 왕관으로 모았다.

왕관이 피는 연기에 닿은 모든 군단이 왕관 내부로 스며들며 천천히 어떤 형태를 만들었다.


[보아라. 이것이 내 군단을 모두 합쳐 만들어낸 최고의 군단이다.]


각 군단 하나하나가 하급신을 상회했던 만큼 수백의 그들이 모인 하나의 형태는 천신인 운사도 일부 압도할 만큼 강한 힘을 냈다.

그것은 왕관을 기점으로 자리를 잡아갔고, 이내 괴물이 뭉친 모습 그대로의 기괴한 인간형 괴물로 자라났다.


[넌 실수한 거다.]

[뭐?]

[야! 나 보이냐?]


운사가 안개를 걷고 운집을 소환해 그들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1인 군단과 파이몬은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왜냐하면 그들의 위에는 우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사가 있는 것이 물론 위협은 되었겠지만 우사’만’ 있었다면 그들은 자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이곳을 뜨려는 이유는 우사와 더불어 그의 옆에 위치한 거대한 검 때문이었다.

우사는 망설임없이 그 검의 손잡이를 집어 들었다.

너무나 거대해 휘둘러지지 않을 것만 같던 검은 우사가 쥐자 마치 깃털이 된 것처럼 가볍게 움직였다.


[고유격 발현. 「검우(劍雨)」.]


파이몬이 군단을 모두 모아 1인 군단을 제작했듯, 우사도 검을 한데 모아 역수로 취한 후 둘을 향해 검을 꽂아 넣었다.

청룡이 그려진 검의 검신은 마치 용이 하락하여 그들을 집어삼키는 것과 연관되어 보이게 만들었다.

운집이 무수히 들러붙어 그들의 움직임을 방해했고, 검이 떨어지기 직전 파이몬이 불기둥을 만들어 쏘아 올리기 위해 격을 사용했으나 그것은 제작되지 않았다.

결국 우사의 검은 그들의 정확히 머리 위로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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