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디라프의 서재입니다.

미지의 편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8:00
연재수 :
158 회
조회수 :
7,699
추천수 :
30
글자수 :
718,955

작성
24.07.26 18:00
조회
9
추천
0
글자
11쪽

대멸종 (6)

DUMMY

분개한 파이몬이 운사와 우사를 향해 나무창을 던졌다.

그들은 여유롭게 피했을 것이다. 날아오는 나무창의 개수가 대략 보아도 스무 개를 넘지 않았다면 말이다.


[미친. 피해!]

[말 안해도··· ···.]


운사의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피하는 것에 급급했기에 대답할 여유 따위 남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지름 30cm가 넘는 나무창을 피하고, 부수고, 막아냈다.

물론 그것이 ‘평범한 나무창’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었다면, 그것을 막는 것이 훨씬 수월했을 것임에는 분명했다.


[비를 그쳐라.]


거두절미하고 우사에게 파이몬이 요구했다. 하지만 우사는 파이몬의 요구를 듣지 않았다. 그러자 그것은 요구에서 협박으로 그 양상을 서서히 옮겼다.

[너희는 이 난장판을 막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너희는 나와 맞대는 것보다 저 도심 한복판에 날뛰는 놈들을 잠재우는 것에 사력을 다해야 할 텐데?]


파이몬의 말이 맞다.

이미 그들도 도심에서 소위 깽판을 치고 있는 이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들은 갈 수 없다. 저것을 잡는다면 그것대로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게 될 것이고, 막상 전장에서 자신들에게만 온 집중을 기울이는 세 마신을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 둘은 최소 우사와 운사의 힘을 상회했다.

허나 그들은 평온했다. 말파스의 군단이 도심을 헤집는다 한들 아무 타격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가까스로 모든 나무창을 피해낸 우사가 힐끗 제 뒤를 일별했다.


[내가 왜?]

[뭐?]

[내가 왜 비를 그쳐야 하는데?]


파이몬이 순간 당황했다.


[그··· ···그렇지 않으면 놈들이··· ···.]

[도시를 다 부술 거라고?]


말파스가 하려던 말을 우사가 받아들어 이었다.

얼떨결에 수가 간파당한 파이몬과 말파스는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 얼버무렸다.


[너희들은 이 땅에 연고를 두고 있는 신 아닌가? 이 땅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너희들의 힘도 어찌 못할 수준까지 내려갈 텐데.]

[그래. 지금 당장이라도 저리로 가야··· ···.]

[푸흡.]


그 말에 우사가 아닌 운사가 조소를 터뜨렸다. 아니, 조소보다 광소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야, 너··· ···.]


운사의 반응에 가장 당황한 것은 한참 그들을 경계하는 파이몬도, 땅에 처박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안드로말리우스도 아니었다.

우사는 운사의 광소를 듣자 등에 식은땀이 나고 입이 굳었다.

‘운사’라는 단어와 ‘웃음’이라는 단어는 죽음과 삶, 끝과 시작처럼 양 반대에 위치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운사가 웃는 이유는, 우사가 알기에 단 한 가지였다.


[너··· ···재밌냐?]


운사 자신이 ‘재밌다’라고 느끼는 경우에만 그는 웃음을 터뜨린다.

뭐 재밌어서 웃는 게 뭐가 대수냐고들 말할 테지만, 그의 재미는 남들의 재미와는 동떨어진 감이 있다.

운사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느끼는 재미는 ‘즐거움’, ‘행복함’의 상황 따위에서 발현된다. 하지만 운사의 재미는 오로지 자신이 ‘흥미롭다’라고 느끼는 상황. 오직 그뿐이다.

그러니까 이 상황은 우사에게 흥미로움을 선사한 것이다.


[뭐가 그렇게 웃기지?]

[웃겨서 웃는 게 아니야.]


허나 이 정도로 끝이었다면 우사는 운사의 웃음에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을 것이다.


[오. 생각해 보니까.]


우사가 그를 일별하며 순식간에 물방울로 화했다. 그의 주력 격 중 하나인 「우화(雨化)」였다.


[너네는 도망칠 타이밍을 놓쳤어.]


후우우웅.


운사의 곁으로 구름이 내려왔다. 구름은 우리가 흔히 아는 흰색, 먹구름의 회색이 아니었다.


[고유격 발현. 「암운(暗雲)」.]


암운(暗雲)

직역하자면 어두운 구름. 먹구름이라는 뜻이다.

사실 구름을 위험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구름 공포증이라는 공포증도 없을뿐더러 구름에 다친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운사의 두 적.

안드로말리우스와 파이몬은 명백히 저 검은 구름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황급히 안드로말리우스는 자신의 몸을 탈피하듯 벗어던지고 파이몬과 말파스의 곁으로 합류했다.

그들은 차마 서로에게 전략을 공유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고유격 발현.]


우리는 이쯤에서 운사의 이명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의 이명은 ‘농사와 군무의 구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연 ‘군무’였다.


군무.

군사에 관한 일을 일컫는 단어. 그러니까 그는 군대를 이끄는 신이라는 뜻이었다.


[「운집」. 「암」.]


사실 운사가 구름으로 제작한 병사를 소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운집」은 얼마전(사실 얼마전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최근이다) 태극본성의 전장에서 「운집」을 발현해 괴이한 이공간에서 넘어오는 마수들을 상대한 전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운사가 소환하는 구름 병사들은 어딘가 이질적인 힘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이곳이 없어지면 내 힘이 줄어든다고?]


운사의 주변 암운이 속속들이 제 위치를 찾듯 움직였다.

수십, 아니, 수백의 구름 덩어리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리를 잡았다.


[어디, 시험해 보지.]


구름은 일제히 자신의 모습을 변형했다.

무작위, 뒤죽박죽이던 구름들은 팔다리가 생겨났고, 머리통이 생겨났다. 인체(人體)를 갖추었고, 그들의 손에는 각자가 자신의 장기를 뽐내듯 병장기를 들었다.

검, 칼, 도끼, 총, 망치 등과 같은 병장기가 모든 병사들의 손에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심지어는 무기라고 취급받지 않는 식칼, 야구방망이 등의 일반 도구들.

또는 새로운 선진 무기의 등장으로 도태되었던 투석구, 활 등과 공방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방패 등도 있었다.


[앞으로.]


수백의 전 운집들이 전열을 갖추어 천천히 움직였다.

그 모습은 가히 천만 대군을 상회하는 모습임에는 분명했다. 말파스는 그런 운사의 모습에 위압을 느끼곤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활, 투석구, 총을 든 운집이 말파스를 향해 꽤나 많은 상상력이 담긴 투사체를 날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후웅!


허나 아무리 운사가 강하다고 해도 말파스 역시 39위의 마신. 운집이 던지는 대부분의 투사체를 피해냈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

총과 활은 대개 속력이 일정하다. 총알을 피하면 활이 날아왔다. 그러나 투석구는 다르다. 아무리 제구력이 좋다 한들, 반자동인 총과 튕겨 나가는 원리를 이용하는 활을 따라잡기엔 무리가 있다.

되려 그것이 이점이었던 것이다.


[크억!]


운집이 던진 마지막 돌은 말파스의 복부에 정확히 명중했고, 말파스는 상당한 고통에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때였다.

그의 눈앞에 물방울이 모이는 것을.

물방울이 모이는 것이 뭐 그리 큰 대수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말파스가 가진 까마귀의 눈에는 그것의 정체가 정확히 보였다.


[격(格) ··· ···.]


격의 응집.

말파스의 눈에는 저 물방울의 응집이 우사의 모습과 겹쳐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눈은 정확했다.


[맞았네?]


우사가 입꼬리를 씨익 끌어올렸다.


[고유격 발현. 「검우(劍雨)」.]


대차게 내리던 비가 일제히 검이 되어 가속을 받아 추락했다. 우사는 빗방울을 하나 낚아채 돌을 맞은 그 부위에 정확히 검을 내질러 넣었다.


푸욱!


우사의 검이 말파스의 깃털과 살결을 뚫고 장기를 통과해 다시 살결과 깃털을 관통했다. 한 마디로 검이 그의 복부를 관통한 것이다.


[커헉!]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지른 말파스가 복부에 검이 꽂힌 채 날개를 움직이지 못하고 고공에서 추락했다. 우사는 그런 말파스가 회복할 틈을 주지 않으려 그에게 돌진했다.

그 시각 운사의 시선은 한껏 그를 경계하는 안드로말리우스와 파이몬에게 고정되었다.


[전군 속도를 높여라.]


운사가 명령을 내리자 모두가 한 몸처럼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검은 구름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자마자 안드로말리우스는 황급히 정신을 집중해 땅에서 뱀을 끌어올렸다. 백 마리를 훌쩍 상회하는 뱀들은 그 크기가 인간과 유사했다.


[나만 저 괴물이랑 싸우냐? 좀 보태!]


안드로말리우스의 독촉에 파이몬은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안드로말리우스가 호통치려는 순간.


쿵! 쿵! 쿵! 쿵!


어디선가 북소리 같은 커다란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운사는 손을 들어 운집의 전진을 멈췄다.


[역시 천신은 천신인가.]


북소리에 담긴 위압을 인지한 운사에게 파이몬이 감탄했다.


[잘 봐라. 내 군단을. 이 이후로 너희는 마신의 군단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간 크기의 뱀들을 뒤로 파이몬의 악마 군단이 강림했다. 그들은 검붉은 눈에 검은 염소의 뿔. 불그스름한 피부와 검은 손톱, 발톱.

타천사의 검은 날개를 등에 달았다.

그것은 마치 ‘악마’하면 전형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와 가장 유사한 존재들이었다. 말마따나 파이몬의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내 군단들은 이곳의 인간들이 생각하는 악마의 기조가 된 이들이다. 지구를 포함한 그 어느곳에서도 악마라고 하면 떠오르는 녀석들이 바로 내 군단들이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파이몬이다.


[그래서?]


여전히 운사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운사를 보곤 파이몬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상황파악을 이리도 못해서야 원. 넌 우리의 상상력 보충제가 되는 것이다.]

[악역은 원래 저렇게 다 단조롭고 단순하냐?]


운사의 곁으로 우사가 나타났다. 그의 몸 곳곳엔 말파스가 낸 자상이 길게 남았다. 우사에게 자상을 선사한 말파스는 지금 우사의 손에 대롱대롱 쥐어져 있다.


[야, 이거 가져가. 병 옮겠다. 으으으.]


곡선을 그리며 말파스가 하늘을 날아 그들의 앞에 떨어졌다.

파이몬은 씨익 웃었다. 그 모습에 안드로말리우스는 황당한 표정으로 파이몬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넌 이게 웃겨? 지금 우리 다 뒈지게 생겼다고.]

[우리?]


말파스의 곁으로 몇 마리의 군단이 접근하더니 말파스에게 달려들어 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살점이 뜯기고 깃털이 뽑히는 것을 본 안드로말리우스의 전신이 굳었다.


[뭐··· ···뭐야?]


콰득!


그때, 그의 어깻죽지가 욱신거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의 목덜미로 같은 통증이 나타났다. 파이몬의 군단이었다.


[야! 이 미친··· ···.]


안드로말리우스는 우사와 운사의 협공으로 지쳤던 탓에 속수무책으로 파이몬의 군단에게 잡아 먹혀 뼈조차 남지 않았다.

두 마신의 격과 상상력을 전부 가진 파이몬의 힘은 우사와 운사를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야, 원래 좀 쉬워 보였는데.]


우사가 장난식으로 쿡쿡거리며 웃었다.


[저걸 뭐라고 부르는지 아냐?]


별안간 운사에게 질문을 건넨 우사가 그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연속해서 말했다.


[2페이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미지의 편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미지의 편린> 업로드 날짜는 매주 일, 수, 금 18시입니다. 23.12.03 29 0 -
158 대멸종 (18) 24.09.15 3 0 10쪽
157 대멸종 (17) 24.09.13 4 0 11쪽
156 대멸종 (16) 24.09.11 5 0 10쪽
155 대멸종 (15) 24.09.11 5 0 9쪽
154 대멸종 (14) 24.09.08 7 0 10쪽
153 범 (8) 24.09.06 4 0 11쪽
152 범 (7) 24.09.04 5 0 10쪽
151 범 (6) 24.09.01 6 0 10쪽
150 범 (5) 24.08.30 6 0 10쪽
149 범 (4) 24.08.28 7 0 10쪽
148 범 (3) 24.08.25 6 0 10쪽
147 범 (2) 24.08.23 8 0 10쪽
146 범 (1) 24.08.21 7 0 10쪽
145 대멸종 (13) 24.08.18 8 0 10쪽
144 대멸종 (12) 24.08.16 9 0 9쪽
143 대멸종 (11) 24.08.14 6 0 10쪽
142 대멸종 (10) 24.08.11 8 0 10쪽
141 도룡지기 (3) 24.08.09 6 0 10쪽
140 도룡지기 (2) 24.08.07 7 0 10쪽
139 도룡지기 (1) 24.08.04 7 0 10쪽
138 대멸종 (9) 24.08.02 9 0 10쪽
137 대멸종 (8) 24.07.31 7 0 9쪽
136 대멸종 (7) 24.07.28 9 0 10쪽
» 대멸종 (6) 24.07.26 10 0 11쪽
134 대멸종 (5) 24.07.24 6 0 10쪽
133 대멸종 (4) 24.07.21 7 0 10쪽
132 대멸종 (3) 24.07.19 7 0 9쪽
131 대멸종 (2) 24.07.17 9 0 10쪽
130 대멸종 (1) 24.07.14 11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