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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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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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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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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18,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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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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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11)

DUMMY

마트 한복판에서 괴물 수십을 상대하는 군인, 황승환이 악전고투하며 사람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위기 속에서 한 모녀를 구했고, 마트에서 과분한 일상에 몸을 맡기던 이들을 구해냈다. 허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알 수도 없는 일에 연루되는 것은 물론 그렇게 그를 연루시킨 주체는 괴이한 능력을 하나 건네고는 제 자취를 감춰 버렸다.


“좀 꺼져! 이 징글징글한 새끼들아!”


환영이라는 물질로 이루어진 검과 방패가 무참히 뜯겼다. 총은 이미 탄을 전부 소모해 있으나 마나 한 무기가 되었다. 괴물들은 드디어 그의 틈을 발견하곤 황승환을 향해 저돌적으로 다가왔다.

남은 선택지가 없던 황승환은 결국 방패와 검을 모두 놓고는 주먹을 쥐었다. 상상력은 이미 전부 소진해 따로 무기를 만들어낼 수도, 그렇다고 주변에 있는 조악한 장난감 따위를 쥐어 상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이제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 물러설 곳이 없는 이 상황에서 황승환은 도망칠 수 없었다. 그의 도망에 따른 결과는 누구보다 황승환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기에.


“이제 물러설 곳도 없어. 들어와라!”


괴물들의 피로 범벅이 되어 버린 그의 군복이 처절하게 발악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주먹에는 한 치의 상상력조차 들어 있지 않다.

평범한 주먹에 평범한 인간의 성품.

황승환의 인생은 그저 그렇게 평범하게 저무는 해가 될 줄 알았다.


“안 늦었네.”


황승환이 내지른 주먹 앞으로 누군가 나타났다.

흥무대왕의 상상력을 일부 공유받은 황승환은 본인의 앞에 있는 존재가 얼마나 아득한 지 실감했다.


스스슷!


황승환의 앞에 나타난 소년—이찬은 기도를 소환해 괴물에게 겨눴다.


“격 쓰기도 아깝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검이 유려하게 움직였고, 그 궤적은 가히 전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한 궤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궤적에 닿은 괴물들은 자신이 잘렸다는 느낌조차 받지 못한 채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질펀한 소리를 내뱉으며 쓰러진 괴물들의 틈새로 다른 괴물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그들을 응시할 뿐이었다. 기이한 압도감이 그들을 짓눌렀고, 이곳 전장을 향해 참전하려던 괴물들은 일제히 흩어졌다.

이찬은 뒤를 돌아보며 황승환에게 말을 걸었다.


“반갑습니다. 흥무대왕의 주민이시죠?”


이찬이 살갑게 맞이하자 황승환도 떨떠름하게 인사를 받아 주었다.


“네··· ···. 그런 메시지를 받긴 했습니다. 그런데 누구··· ···?”


황승환이 이찬의 정체를 묻자 이찬은 헛기침을 했다.


“그건 밝힐 수 없습니다만. 제가 당신을 도울 수 있다는 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를 도와주실 수 있다고요?”


이찬은 황승환이 대형마트를 찾은 저의를 알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바꾸기 위함이었지만 그의 진짜 방문 의도는 부모님께 전역 선물을 선사하기 위함이었다.

황승환의 부모님은 가난했다.

오 남매 중 맏이였던 황승환은 그런 부모님을 곁에서 지켜봐 왔다. 맞벌이를 하던 그의 부모님은 그가 입대하는 날에만 잠깐 얼굴을 비췄을 뿐, 그의 입대를 끝까지 지켜본 사람은 황승환의 친구들뿐이었다. 전역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얼마나 바쁜 것인지 전역일에 모습도 비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황승환은 단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한 적 없었다. 되려 감사했다.

황승환과 거의 단절되어 있던 그의 부모님 덕분에 황승환의 동생들은 좋은 삶을 살고 있었으리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전역하는 날 그는 군대에서 모은 돈으로 부모님에게 감사를 담은 휴대전화를 선물할 생각으로 대형마트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참사가 일어났고, 황승환은 부모님과 동생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고, 그 와중 모녀가 사선의 위기에 놓이자 망설임없이 전장으로 뛰어들어간 것이다.


“무엇이든 하나 말씀해 주시면, 제가 아는 정보를 토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황승환은 고민할 것 없이 이찬에게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가족이라. 인적사항을 간단히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도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


황승환은 순간 당황했다. 그토록 고대하던 부모님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일 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매일매일 생각했던 그 모습이 희미해졌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마주보지 않은 적 없는 그 얼굴이 이제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황승환은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싸매고 주저앉았다.

이찬은 그에게 간단한 가족 구성원과 그들의 나이를 듣고는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말 빠르게 전화를 받은 이는 운사였다.


[왜 전화를 걸었느냐.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고독한 것이냐?]


“얼마나 안 봤다고 그새 유머 감각이 발달하셨습니다?”


[용건만 간단히 말하게. 지금 좀··· ···바빠서.]


운사의 스피커 주변으로 굉장한 폭음이 전달되었다. 드문드문 풍백의 목소리와, 꽤나 자주 우사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혹시 사람을 몇 명 찾아 주실 수 있을까요?”


[범인(凡人)이냐?]


“예, 특별히 감지되는 상상력이나 격이 없어서··· ···.”


[그 사람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 있느냐? 가족이라던가, 친구도 괜찮다.]


“있습니다.”


[그럼 걔 머리카락을 하나 뽑아라.]


슬쩍 눈치를 보던 이찬이 재빨리 황승환의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았다.


“아악!”

“뽑았어요.”


[그쪽으로 구름을 하나 보내겠다. 그 구름 안에 머리카락을 넣어. 그럼 그놈이 알아서 찾아낼 거야.]


“만약 찾을 수 없다면요?”


[머리카락과 융합되자마자 다시 원형으로 돌아갈 것이다.]


“알겠습니다.”


끝으로 통화는 종료되었고, 통화가 종료되기 무섭게 이찬과 황승환의 곁으로 구름 덩어리가 하나 도착했다.

이찬은 심호흡을 하곤 황승환의 머리카락을 구름 깊숙이 꽂았다. 장내에는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이찬은 운사의 말을 의식했다.


‘만에 하나 발동되지 않기라도 한다면··· ···.’


찰나였으나 동시에 억겁의 시간이 흘렀고, 천만다행으로 구름은 인간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찬은 안심하며 황승환에게 설명했다.


“이 친구가 황승환 님의 가족을 찾아드릴 겁니다.”


비상식적인 사건의 연속이었으나 황승환은 그것을 이해했다.

이해했다고 하는 것보다 받아들였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했다.


“그럼 이제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이찬은 내심 놀랐다.

그 흥무대왕의 선택을 받았다고 한들 불과 한 시간 전까지 평범한 인간이었던 황승환이다. 그런데 이토록 놀라운 적응력이라니. 이찬의 얼굴에는 자신을 처음 본 관념인들의 모습이 비쳐 보이는 듯싶었다.


“별건 없습니다. 잠깐 휴식해 컨디션을 회복하고 곧바로 전장에 투입될 겁니다. 간단합니다. 잔챙이들만 정리해 주시면 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괴물들을 죽이세요.”


황승환의 얼굴이 결연하게 장식되었다.


“알겠습니다.”


이찬의 계획이 차분히 맞춰지고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었고, 남은 변수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구스타프. 또 다른 한 가지는··· ···.


“그럼 수고해 주세요.”


이찬은 그 말을 끝으로 황승환의 곁에서 사라졌다. 결연한 얼굴의 황승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은··· ···.”


주택 단지.

아윤이 감지한 두 가지 특출난 격 중 하나는 흥무대왕의 주민 황승환이었고, 다른 하나는 ‘태백산 호랑이’라는 이명을 가진 신의 주민이었다.

가뿐히 착지한 곳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바위가 하나 놓여 있었다.


“비석치기를 너무 큰 규모로 하는데.”


이찬은 펄쩍 도약하여 거대한 바위의 꼭대기로 향했다. 그곳에는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가 다리를 걸터앉아 있었다. 이찬이 오는 것을 알아챈 경찰이 뒤를 돌아 이찬을 경계했다.

이찬은 곧바로 양손을 들어 적개심이 없음을 밝혔다.


“누구십니까?”


거대한 덩치를 가진 신입 경찰 정지현이 물었다.


“반갑습니다. 태백산 호랑이의 주민.”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으로 흔히 알려진 대한제국 시기 항일 의병을 이끈 중인(中人) 출신의 의병장.

순경 신태호.


“의인을 뵙습니다.”


순간 정지현의 뒤로 호피무늬의 겉옷과 백의(白衣)를 입고 머리를 땋은 한 남자의 형상이 그려졌다.


“누··· ···누구십니까?”


당황한 듯한 정지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부탁··· ···이요?”


정지현의 입장에서 너무나 허황된 일이었다. 단 몇십 분 사이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정지현은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찬의 주변에서 느껴지는 상상력과 격이 정지현과 나아가 그의 성주 ‘태백산 호랑이’를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후에 큰 전쟁이 있을 겁니다. 그때 합류해 주십시오.”

“제가 그게 뭔 줄 알고 갑니까···?”

“본능적으로 느껴질 겁니다. 제가 말하는 이 기회가 지구의 종말을 막을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요.”


정지현의 마음 깊이 은은하게 피어난 이찬에 대한 신뢰가 발현되었다.


“그전까진 체력을 회복하시고 주변 괴물들을 소탕해 주세요.”


이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찬에게 가스페르의 신호가 도착했다.


-찾았습니다. 주소를 전송할 테니 아윤과 이노를 파견하세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순식간에 날아오르듯 도약한 이찬이 전장 속으로 합류했다.

어쩐지 그에게 영감을 받은 정지현과 황승환은 누구보다 많이 괴물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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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범 (7) 24.09.04 5 0 10쪽
151 범 (6) 24.09.01 6 0 10쪽
150 범 (5) 24.08.30 6 0 10쪽
149 범 (4) 24.08.28 7 0 10쪽
148 범 (3) 24.08.25 7 0 10쪽
147 범 (2) 24.08.23 8 0 10쪽
146 범 (1) 24.08.21 8 0 10쪽
145 대멸종 (13) 24.08.18 8 0 10쪽
144 대멸종 (12) 24.08.16 9 0 9쪽
» 대멸종 (11) 24.08.14 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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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도룡지기 (2) 24.08.07 8 0 10쪽
139 도룡지기 (1) 24.08.04 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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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대멸종 (5) 24.07.24 6 0 10쪽
133 대멸종 (4) 24.07.21 7 0 10쪽
132 대멸종 (3) 24.07.19 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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