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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방패 님의 서재입니다.

더 써드(사라져 버린 독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칼과방패
작품등록일 :
2021.10.13 10:08
최근연재일 :
2023.05.03 09:35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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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2,765

작성
23.03.1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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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7. 좋아서 한거잖아.

DUMMY

서경원의 잘게 씹은 면도날을 핏덩어리와 함께 뱉어내는 소리였다. 화들짝 놀라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던 나은채.


“일이 흐트러졌다 한들 저쪽에서 꼬리를 잘라내는 엄청난 출혈까지 한 마당에 이 정도 했으면 됐지 또 뭔데!”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년하고, 몸 파는 년이 한다는 소리가 고작이건가?”

“이봐!”

“회장님!”


눈에 쌍심지를 켜고 고함을 질렀지만 서진태회장의 독기 서린 눈빛에 차마 더는 말을 잊지 못하던 두 여인이었다.


“너희들 믿고 그간에 벌일 일들 중 뭣 하나 제대로 된 게 있어? 손발이 피가 나도록 빌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작당모의나 해대며 가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버러지 같은 너희들.”


말조차 섞기 싫다는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던 서진태회장의 시선이 어느 틈엔가 테이블 구석에 놓여있던 작은 가방에 멈춰있었다.

뭔가 말을 하려다 몸을 돌렸고, 미닫이문을 열고 나가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두 여인에게 주고 있었다.


“기회를 주려고 했건만, 쯧쯧쯧. 너흰 여기까지다. 앞으론 기회조차 없을게다. 두 번 다시는.”


‘드르륵. 쿵!’


“뭐라는 거야! 노망난 노인네 주제에!”


서회장이 앉았던 곳으로 자리를 옮겨 치마를 훌쩍 올렸다.

양반자세로 앉던 나은채가 신경질을 내보이자 다리를 쭉 뻗어 같은 동작으로 치마를 올리자, 서경원도 팬티가 보일정도로 다리를 포개며 테이블에 몸을 바짝 밀어 넣었다.


“신경 쓰지 마. 내가 5선이고, 네가 3선이야. 이쯤 되면 재벌하나쯤 우습단 사실 명심하라고.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저 노망난 노인네가 저런 반응을 보일 때는 지도 분해서 어디다가 화풀이 못해서 저런 거니까.”

“그나저나 언니 대단해. 어쩜 그리 당당하게 나가? 난 완전 쫄아 있었는데.”

“약세를 보이는 순간 훅 치고 들어오는 게 이 바닥이야. 더군다나 한번 굽히기 시작하면 영영 일어날 수 없어. 비겁하고 비굴하다는 생각 따위는 버리고 얼굴에 철판 깔고 끝까지 우기고 당당해야 저런 놈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거야. 명심해.”

“하여간 언니는 순하게 생긴 얼굴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야. 그나저나 가방에 녹음기는 켠 거야?”


회를 몇 점 집어 들어 붉은 초장에 흠뻑 적셔 입에 털어 넣던 서경원이 대답대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넌 몸만 팔지 말고 머리 좀 써.”

“언니!”

“결정적인 뭔가를 쥐고 있다는 액션이라도 취해야 상대가 겁 없이 덤비지 않아. 나도 뭔가를 움켜쥐고 있다는 일종의 경고를 준 것 뿐이라고.”

“그럼 그렇다고 말을 했어야지! 몸 판 년이 뭐야! 기분 나쁘게. 말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내가 잠자리해서 가져 온 정보 얼마나 유용하게 언니가 써먹었어! 지금 나만 좋자고 이런 거야!”


젓가락을 테이블에 혹이 날 정도로 거칠게 올려놓고는 팔짱을 끼며 거친 숨을 몰아쉬던 나은채였다.

머리를 숙여 회를 찍어 먹던 서경원이 힐끔 눈을 치켜뜨며 한참을 나은채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미안. 그런데 말이야. 너 좋자고 한 건 맞잖아?”

“어? 그. 건. 뭐···”

“먹자.”


서경원이 친근한 미소를 지어대자 같이 히쭉하며 테이블의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대기 시작했다.

나이게 걸맞지 않게 꼿꼿한 자세로 계산대 앞을 지나던 서진태회장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가증스런 년들.’


서진태의 더러운 표정 때문이었을까.

계산대에 서 있던 한 여인이 두 손을 가슴에 모아 고개를 조아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서진태가 그제야 문 밖으로 걸음을 옮겨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한발을 넣으며 주춤했다.

고개를 푹 숙여 땅을 내려다보았고.

큰 숨을 내쉬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다 뭔가를 결심한 듯 번쩍 고개를 들어 뒷짐을 지고 있던 짧은 스포츠머리에 양복을 바라보았다.


“해치워.”


* * *



벌써 두 시간째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물을 가득 담은 욕조 안에 있던 춘호였다.

잠시 머리를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한참 후에 몸을 바로 세워 앉았다.

팔을 올려 관자놀이에 검지와 중지를 모아 가져다 대고는 눈을 감았다.


‘스스슷.’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공기 흐름이 피부에 느껴질 때 쯤 이었다.

서서히 눈을 뜨자 선명해 보이던 공간이 희뿌옇게 보이더니 순식간에 짙은 안개에 휩싸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변했다.

관자놀이에 있던 손가락을 모아 앞으로 쭉 뻗어 펼쳤다.

‘휘휘’ 젖는 알 수 없는 행동까지 하고는 이내 팔을 내려놓았다.

코앞에 있는 손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

팔을 휘저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10분정도 지나면 옅어지긴 하지만 완전히 없어지는 데는 삼십분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반대쪽 팔을 들어 아까와 같은 동작을 하자 잠시 후 거짓말처럼 짙은 안개가 사라진다.

그저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정신을 집중하면 생기고 없앨 수도 있다.

중요한건 수십 번을 반복했지만 피로감도 없었고, 신체에 이상한 반응도 전혀 없다.

귀신곡할 노릇이었다.

춘호는 반년 전쯤인가 발견한 기이한 현상에 어디에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무수도 없고 아리와 담이도 외출한 상황에서 작심한 일이었다.

몇 시간째 반복하며 다른 걸 떠올려봤지만 안개 이외에 더는 없었다.

몸에 해롭지만 않는다면 나쁘게만 볼 건 아닌데 불안감이 없는 건 아니다.

귀신과 도깨비가 친구하자고 금방이라도 찾아 올 것만 같았고, 산신령이 장기한판 두자며 보초로 양옆에 귀신과 도깨비를 장승 마냥 세워놓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왜 믿기 어려운 일에 계속되지?

임진년에 벌어진 왜놈과의 전쟁, 400년을 훌쩍 뛰어 넘은 시공간의 이동, 그리고 신기한 능력.

살아남으라는 건가?

왜놈들한테 죽었다 살아 난 것도, 지금 여기서 이런 능력을 갖게 된 것도, 결국 살아남아 조선으로 돌아오라는 건가?

어머님이?

조선에 혼자 계시는 어머님의 간절함이 이런 능력까지 준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일단 생각을 매듭짓고 찝찝함을 털어내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몸을 일으켜 세우자 요란한 물소리가 흘러나왔다.

욕실을 정리하고 마른수건으로 몸을 닦아냈다.

머리에 물기를 털어내며 화장실을 나왔다.


“원래 그렇게 목욕을 오래하나요? 잤죠?”


익숙한 목소리였다.

주수미요원이 거실 소파에서 서류와 씨름을 하다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낭패다.

머리로 향해 있던 두 손, 완벽한 나체, 멈춰진 움직임, 그리고 흔들리는 시선.

민망함과 창피함이 교차되면서 이성의 끈이 엉켜버리자, 가리고 피함을 잊은 채 그저 멍한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하던 두 사람이었다.

주수미요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데 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황했다는 건데 여기서 급히 중요한 부분을 가린다고? 아서라. 그게 더 민망함을 준다.

표정을 살피며 팔을 천천히 내렸고 중요부위에 다다르자 몸을 돌린 춘호였다.

그나마 엉덩이는 낳지 않을까?


“기척이라도 하지 그랬어요.”

“이렇게 요란을 떨고 있었는데 제가 있는 줄 몰랐다는 게 말이 되요?”

“그랬었나요?”

“한 시간이 넘게 이러고 있었는데 뭐에요. 빨리 들어가서 옷이나 입어요.”


춘호가 발걸음을 옮겨 방문을 향하자 그제야 시선을 돌리던 주수미요원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소파로 걸어 나오던 춘호를 보며 생수 한 병을 집어 들어 목에 털어 넣고 있었다.

그간에 보여준 씩씩함과 당당함이 무색할 정도로 홍조가 가득한 얼굴을 내보이고 있던 주수미요원.

붉은 입술을 삐쭉이고 있었다.

춘호의 시선을 느꼈는지 눈치를 살피며 서류를 다급하게 정리하는 모습이 어색했다.


“저.”

“저기.”


동시에 입을 연 두 사람.

시선이 마주치자 좀 전과 같이 움직임이 멎었고 잠시 후 시선을 떨궜다. 잔상이 머리에 남았다는 증거다.


“흠. 먼저 하세요.”


주수미요원이 붉어진 얼굴로 먼저 말을 꺼냈다.

때마침 붉은 석양이 거실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주수미요원의 눈을 밝게 비춰지자 묘한 매력이 춘호의 눈을 사로잡았다.

아름다웠다.

그러고 보니 훈련할 때 빼고 2년의 시간을 줄 곳 봐왔는데 나이 빼고는 아는 게 없다.

가족은 몇인지, 어디 사는지, 뭘 좋아 하는지, 애인은 있는지 말이다.


“일 끝났죠? 식사 같이 안할래요?”


춘호는 방금 전에 일도 있고 기억나지 않는 점심에 이른 저녁을 제안했다.

약간의 머뭇거림만 있을 뿐 말이 없었다.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점심도 안 먹었고 혼자 먹어야하는데 여기는 뭐 마땅한 게 없네요, 더군다나 나가서 혼자 먹기도 그렇고요. 같이해요. 우리.”

“우...리요?”


어색한 분위기만큼이나 불편한 감정을 내뱉는데 뭐 어쩌겠어. 게다가 못 볼 걸 봤으니 말이다.


“오다보니 보쌈집 있던데 거기로 가시죠.”


아예 등 떠밀 듯이 장소까지 정해버리고는 멈춰있는 주수미요원을 대신해서 서류를 정리해 가방에 우겨 넣던 춘호였다.

그 모습에 급히 손을 움직이다 털썩 춘호의 손을 움켜 쥔 주수미요원.

다시 경직 된 몸이었다.


“저기, 그게, 네.”


기어가는 목소리에 손을 놓을 생각도 못하고 ‘사르르’ 떨기만 하던 주수미요원이었다.

춘호가 손을 돌려 양손으로 손목을 지그시 눌러 잡고는 시선을 마주했다.


“제가 잘못했어요. 정말이지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단 말입니다. 그렇게 대놓고 평소답지 않게 삐쳐 있으면 제가 더 미안하잖아요, 수미씨.”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죠?”

“네.”


이건 진짜 같았다.

바로 대답이 나오는 걸 보니 말이다.

손에 힘을 쥐고는 위아래로 몇 번을 흔들다 손을 놓고 등을 도닥였고, 시원하게 시동 걸어 놓는 다는 말을 하고는 현관문으로 나갔다.

한동안 춘호가 사라진 현관을 쳐다보다가 축 늘어 내린 팔과 머리를 끌며 터벅터벅 뒤를 따르던 주수미요원이었다.

어색함을 털어 내려했을까? 식당으로 향하는 동안 춘호의 질문이 이어졌다.

대화가 오가는 도중 식당에 도착했고 언제 그랬냐는 듯 어색함은 서서히 저물어가는 석양과 함께 사라고 있었다.

연인들의 모습으로 식당에 들어섰고, 연인들처럼 즐겁게 식사를 했다.

짙은 어둠과 상점에서 내뿜어대는 빛의 조화에 귀뚜라미들이 한껏 목청을 가다듬고 있고 있었다.

이를 시샘하듯 덜컹 열리던 식당 현관문이었다.

보쌈에 쟁반국수, 막걸리 3병을 해치운 두 사람.


“아우! 모처럼 빵빵하게 먹었네.”


배를 어루만지며 활기를 되찾은 얼굴로 생긋 웃으며 걸어 나오던 주수미요원과 뒤를 따라 나오던 춘호였다.


“이 집, 기가 막히네, 오길 잘했죠?”

“아우! 두말하면 잔소리죠.”


만족할 만한 웃음을 지으며 아까의 어색함을 벗어 던진 두 사람이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근데 대리기사가 안된다고요?”

“거참 생각해보세요. 비밀안가를 대리기사를 끌고 들어가는 꼴이잖아요.”

“아.”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한 마디 말에 코웃음이 뱉어내자 춘호의 팔짱을 끼고는 머리를 살짝 비틀던 주수미요원이었다.


“요원분이 금방 온다고 했으니 차안에서 기다리시죠. 아참! 나도 질문.”

“뭐여?”

“왜 다들 춘심이래요? 그 좋은 춘호란 이름 멀쩡하게 있는데.”

“훗, 훗, 그게 제가 워낙에 음식 하는 걸 좋아하다보니 동료들이 그리 부르더라고요.”

“정말요? 그렇게 요리를 잘하세요?”

“드시고 싶은 거 뭐든 말씀하세요.”

“호. 호. 호.”


즐거운 연인들이 대화하듯 살갑게 걸음을 옮기던 두 사람이 주차된 차량에 거의 도달할 때 쯤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두 명의 남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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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 친구 합시다. 23.03.17 155 1 11쪽
15 15. 시속1500킬로. 23.03.16 17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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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단검하나 걸겠습니다. 23.03.10 175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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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봉지값이 100원이란다. 23.03.07 203 4 13쪽
6 6. 자신과의 싸움 23.03.06 208 3 13쪽
5 5. 다짐 23.03.06 247 4 13쪽
4 4. 1593년 7월 23.03.05 310 3 12쪽
3 3. 대통령 차규범 23.03.04 344 6 11쪽
2 2. 임무완수 +1 23.03.03 402 6 15쪽
1 1. 선물 23.03.02 575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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