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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방패 님의 서재입니다.

더 써드(사라져 버린 독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칼과방패
작품등록일 :
2021.10.13 10:08
최근연재일 :
2023.05.03 09:35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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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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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글자수 :
272,765

작성
23.03.1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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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5. 시속1500킬로.

DUMMY

다시금 숨을 크게 내쉬었다.

떨리던 몸이 차츰 진정이 되는 듯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한국에 있는 자국요원들과 통화가 됐더라면, 아니 최정예 수하 일부만 보내 놓고 끝까지 이 작전에 집중했더라면 작전은 성공했다.

한국을 거침없이 구석에 몰아세울 수 있었을 것이고, 이를 계기로 미국에 요구한 무기들 전부를 수입해서 과거의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찾는 건 시간문제였을 텐데.


‘으드득!’


이가 갈렸고 손바닥에 핏기가 맺힐 정도로 꽉 쥐어졌다.

실수는 한번 뿐이다.

혼탁한 공기와 철철 끊는 용광로를 보는 것도 이제는 마지막이다.

눈앞에 보이는 저 죄 없는 꼬리역할을 해야만 하는 수하들을 눈에 담았다.

손발이 꽁꽁 묶인 채 억울한 눈빛을 한없이 그대로 받아 내고 있던 도조 히데끼였다.


“자백 받은 동영상, 로버트와의 관련된 파일 넘겼나?”

“하이!”

“너희들의 희생이 미래의 대일본제국의 커다란 영광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약속대로 남은 가족들을 내 명에를 걸고 죽을 때까지 돈 걱정 없이 살게 해준다.”

“음! 음!”

“처리해!”

“하이!”


몸을 돌린 히데끼였다. 차마 용광로에 던져지는 수하들을 쳐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 * *


오산비행장으로 가는 차안에서 국정원장 성훈과의 기나긴 통화였다.

자신도 직접 미국 대통령과 통화한 적은 처음이라 당황한 나머지 동의 없이 전화번호를 줘서 미안하다는 사과가 오히려 듣는 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부연설명이 길었다.

통화내용을 전해들은 VIP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초대에 당황해 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테러에 대한 감사표시가 있을 것이고, 국익에 절대 반하지 않을 거란 확신한 찬 기대감에 젖어 있다는 소리까지 전하고 있었다.

격양된 목소리가 고스란히 묻어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경험을 쌓아야 이 시대에 완벽하게 적응할까?

자꾸만 아른거리는 과거의 삶이었다.

전쟁과 굶주림만 빼면 웃을 일 만큼은 현재의 지금보다 비교조차 안 되는 건 분명했다.

생각에 잠긴 사이 활주로가 눈에 들어왔다.

오산비행장 검문소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렸고, 신분확인과 몸수색을 한 후 운전하던 요원과 헤어져 뚜껑이 없는 지프로 옮겨 탄 무수였다.

후끈한 열기만큼이나 따뜻한 미군병사의 배려 덕에 담배한대를 끝이 보이지 않는 활주로를 배경으로 느긋하게 꺼내 피울 수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들어지게 피워대던 담배였다.

활주로 한쪽에서 이륙준비를 하고 있는 비행기 앞에서 멈춰진 지프.

차에서 먼저내린 미군병사가 뒷좌석에서 무수의 가방을 꺼내 들고 서 있었다.

가방을 건네받고 바로 어깨에 걸치자.


“모시게 돼서 영광입니다. 좋은 여행되시기 바랍니다.”


배려만큼이나 멋진 거수였고, 유창한 한국말이었다.


‘풋.’


그런데 웃음이 나온다.

계급만 봐서는 신병은 아닌데 뭔가 어색했다.


“죄송한데, 여기에 싸인 한 장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정말이지 동영상을 천 번도 더 봤습니다.”


그렇지. 원래 하던 대로 해라. 어색해 보인다.

싸인 이랄 게 뭐있겠나. 그냥 이름 한번 써주었고.


“잠시 한 대 더 피고 가도 되나요?”

“전달해 놓겠습니다.”


히쭉거리며 건빵주머니에 종이를 우겨넣던 미군병사를 바라보며 담배를 한 개 더 빼들었다.

담배를 피며 춘호, 아리와 간단하게 통화를 했고, 전원버튼을 누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비행기로 향했다.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여객기의 꼬리에 태극무늬가 아닌 성조기 무늬로만 바뀐 형태였다.

무릎 닿는 좌석, 좁은 통로, 자고 또 자도 남을 것 같은 긴 비행시간을 떠올리며 씁쓸한 표정을 짓던 무수였다.

가방을 건네받으며 안내하던 친절을 몸에 감싼 승무원의 상냥한 미소가 위로가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철 계단을 올라 비행기 내부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헉.”


발걸음이 순간 멎었다.

눈이 떡하니 벌어지는 광경에 방금 전 암울한 생각이 단박에 무너졌다.

오성급 호텔 방 하나를 떡 하니 가져다 놓은 것 마냥 화려한 조명과 인테리어, 탁 트인 공간에 기다랗고 푹신한 소파, TV, 냉장고, 무엇보다 낮은 테이블에 재떨이와 라이터가 눈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앉아 계시면 됩니다. 화장실은 건너편이고, 이륙 후 십분 후에 식사 준비하겠습니다.”


좀 전에 그 승무원이 맞나? 무슨 광채가 이리도 흐르나, 미간이 좁혀지자 작아지는 눈이었다.


“혹시 저 혼자 입니까?”


설마하니 혼자일까. 뜬금없는 소리를 뱉어내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설마요.”


그럼 그렇지. 김칫국 한 사발 했고.


“기장님과 부기장님. 저 포함 승무원이 넷. 정비사님이 아래층에 두 분이 더 있습니다.”


같이 나눠 마신 승무원이었다. 외국인인데 이정도면 됐지.

한국말의 깊은 함축적인 말까지 일일이 설명할 필요까지 있을까?

이 비싼 비행기에 혼자라니, 고스톱 치는 건 물 건너갔다.

상의를 벗어 소파에 앉으려 몸을 낮추자 들리는 남자 목소리였다.


“모시게 돼서 영광입니다. 기장 허드슨입니다. 최대한 편안하게 불편함 없이 모시라는 VIP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키 작고 잘생긴 미국영화배우와 비슷한 외모에 기장, 이내 몸을 세워 악수와 가벼운 포옹 그리고 몇 안 되는 사람들과 가벼운 목례까지, 대접 받는 느낌 때문이라도 예를 갖추어 화답을 했다.

가벼운 인사말이 오갔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몸을 기대자 출발 신호음에 안전벨트를 걸은 직후였다.

강한 엔진의 회전음소리에 약간의 덜컹거림, 거짓말 살짝 보태서 이강백이 운전하는 스틱차량보다 떨림이 덜했다.

솜털 같이 푹신한 구름위에 사뿐히 몸통을 내려놓은 듯 안정된 기체였다.

뒤이은 상냥한 승무원의 바지런한 모습, 이어진 두 번의 식사와 흥미로운 영화, 그리고 꿀맛 같은 깊은 잠에 지난 며칠간의 피로가 떨쳐 나간 느낌이었다.

미국영토에 들어왔고 어딘지 모르는 지명을 말하고 돌아서는 기장만 아니었더라면 계속해서 소파와 한 몸이었을 게 분명했다.

창밖에 풍경이 어딘지 모르는 이국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달달한 커피와 담배꽁초가 쌓인 재떨이가 테이블에서 치워지자 바닥과 조우를 한 타이어가 즐거운 비명을 한 차례 쏟아내는 것을 끝으로 서서히 멈춰진 기체였다.

뜨거운 햇살, 후끈한 열기. 습기를 잔득 머금은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메마른 공기였다.

덥다는 표현보다는 따갑다는 표현이 맞았다.

기체와 연결된 철제 계단에서 내려와 수고했다는 가벼운 목례에 거수로 답을 하던 기장과 승무원이었다.

준비된 헬기가 무수에게 손짓을 하며 ‘왕왕’거리기에 서둘러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문이 닫히고 으르렁되며 무거운 기체를 비틀며 날아가는 헬기가 멀어 질 때 까지 시선을 주고 있었다.

참 친절이 몸이 베인 사람들이다.

국적, 언어, 생김새, 모든 게 틀리지만 결국 인간이고 사람이다.

지금 저 모습이 어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인데 왜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피로 물든 전장의 끔직한 모습이 떠오르자 급히 마른 침을 삼키며 생각을 우겨넣었다.

그리곤 멀어지는 그들에게 손을 들어 주었다.

보일 턱이 없지만 말이다.

끝이 과연 어딜까 라는 질문을 한번쯤 하게 만드는 드넓은 사막을 삼십분 정도 날아간 헬기.

드문드문 보이는 건물들을 지나 푸르른 수영장과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건물 앞에 헬기가 내려앉았다.

좀 전에 따뜻한 미소를 생각나게 만드는 험악한 인상의 경호원들과 시끄럽게 짖어대던 몇 마리의 개가 무수를 맞이했다.

그리고 작은 키에 이마가 살짝 튀어나와 꽤나 명석하다는 인상을 주며 다가오고 있는 한 인물이었다.


“제이든입니다. CIA국장이기도 하지요.”


헬기에서 내려 걸어오는 무수에게 손을 내밀자 통역이 말을 건네주고 있었다.


“정기룡입니다. 무수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먼 길을 오게 해서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불편함 없이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가볍게 악수를 했고 한두 차례 흔들다 손을 놓으며 마주한 시선이었다.


“영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맑은 눈을 가지고 계시네요.”


이럴 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날이 덥습니다. 대통령께서 안에 계십니다. 이쪽으로.”


명석함에 눈치까지 제법이다.

말없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제이든과 나란히 발걸음을 맞추어 건물 내부로 향했다.

수영장이 고스란히 보이는 넓은 거실 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맞물려 눈이 신선해진 느낌이었다.

기억자로 꺾인 큼직한 소파에 앉아 있는 한 인물.

TV속에서나 볼 수 있던 미국 대통령 앤드류가 몸을 일으켜 무수를 반겼다.

새로울 것 없는 인사를 나눈 후 소파에 앉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이 만들어내고 있는 묘한 기류의 중심에 서있다는 사실이 지금에 이 자리를 만든 겁니다.”


살짝 벌린 다리 사이로 두 손을 맞잡고 있던 앤드류의 펼쳐진 손이 무수를 향해 있다가 다시 돌아간 직후였다.


“어떠한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원전 테러의 배경과 배후. 수습과 응징.”

“시내 한복판에서의 납치사건, 제 여식을 구한 테러사건.”

“더 나아가 북한과의 협상재개, 개성공단. 철도와 관련된 러시아까지 개입까지 말입니다.”


정말이지 날선 칼날을 잔뜩 품은 번득이는 말을 짧게 끊어가며 독특한 화법을 구사하던 앤드류.

뭔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던 무수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말을 흘려보냈다.

‘똑딱’ 거리는 시계바늘이 울려대는 소리만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고, 멍한 표정으로 앤드류와 눈을 마주한 무수가 제이든과 통역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앤드류에게 향할 때였다.


“해방이후 한국은 사소한 어떤 일에도 저희와 모든 걸 함께했고 공유를 해왔습니다. 경제, 외교, 자국의 정치문제까지도···, 듣기 거북하겠지만 저희 쪽에 보고를 해야 했고 승인을 받아 실행했던 나라입니다.”

“집권 이년차를 넘어선 차규범 정권입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크나큰 사건에 정신없음을 감안해도 며칠 전 사건엔 도움에 손길을 내밀었어야 합니다. 더군다나 제 딸이 관련되어 있어서 더욱더 그리 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고립된 외딴 섬에 홀로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한참을 듣고 있다가 입을 연 무수였고, 계속된 말 끊고는 깊게 눈을 감아 뜨던 앤드류였다.

앤드류의 행동을 잠시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상대를 잘못 골랐습니다. 제가 아닌 한국 대통령, 혹은 정치인, 아니면 이에 관련된 분들이 왔어야 했습니다.”


지구 반 바퀴나 날아와서 자리에 앉자마자 들어야 할 게 이런 거라면 더는 들어봐야 그 소리가 그 소리일게 분명했다.

아는 게 없으니 대답할 것도 없다.

서로에게 애꿎은 시간낭비는 불필요한 감정만 상할 뿐이다.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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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춘호와 수미 23.03.20 152 3 12쪽
17 17. 좋아서 한거잖아. 23.03.18 153 1 12쪽
16 16. 친구 합시다. 23.03.17 155 1 11쪽
» 15. 시속1500킬로. 23.03.16 177 1 11쪽
14 14. 애들 보는게 쉽다고? 23.03.15 160 2 12쪽
13 13. 2억5000만원. +2 23.03.14 158 2 11쪽
12 12. 어설픈 총격전 23.03.13 165 4 12쪽
11 11. 니들이 미어캣이냐? 23.03.11 162 3 12쪽
10 10. 단검하나 걸겠습니다. 23.03.10 175 3 11쪽
9 9. 축배드림 23.03.09 184 2 12쪽
8 8. 국밥 좋아하슈? 23.03.08 180 3 11쪽
7 7. 봉지값이 100원이란다. 23.03.07 203 4 13쪽
6 6. 자신과의 싸움 23.03.06 208 3 13쪽
5 5. 다짐 23.03.06 246 4 13쪽
4 4. 1593년 7월 23.03.05 310 3 12쪽
3 3. 대통령 차규범 23.03.04 344 6 11쪽
2 2. 임무완수 +1 23.03.03 400 6 15쪽
1 1. 선물 23.03.02 570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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