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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방패 님의 서재입니다.

더 써드(사라져 버린 독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칼과방패
작품등록일 :
2021.10.13 10:08
최근연재일 :
2023.05.0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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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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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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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1593년 7월

DUMMY

춘호만 빼면 조선에 남아있는 가족하나 없다.

아리의 혈육이라고는 삼촌인 자신 밖에 없고, 자신 또한 아리가 전부다.

담이는 혈육이 없으니 아리만 있으면 되는 상황.

춘호에게는 미안하지만 가끔씩은 이 생활에 안주할까 고민도 해봤다.

배고픔, 신분제도, 지독한 전쟁, 과거로 돌아간다면 눈앞에 보이는 암담한 현실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딴 거 깡그리 잊어버릴 정도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카드하나면 원하는 거, 입는 거, 어디든 마음껏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지난 이년간 대한민국에 군사훈련이란 훈련 모조리 받았고 초등, 중등, 고등교육까지 이수했다.

몸에 배 과거의 생활 습관까지 전부 이 시대에 맞게끔 바뀐 상태다.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적응하지 못하고 분명히 다시 이 시대를 그리워할게 뻔했다.

그런데 왜?

자꾸 과거가 생각나고 그리운 걸까.

춘호 때문일까? 아니면 어머니?

자연스럽게 가슴에 두 손이 모아졌다.

셔츠 밖에서 만져지는 묵직한 물건이 손에 들어왔다.

어머니에 마지막 유품.

은장도였다.

목에 걸어 둔 은장도를 잡아 쥐고는 잠시 눈을 감던 무수.

결국 또 여기까지다. 매번 반복되던 이런 고민의 끝은 항상 어머니였다.


“후, 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어머니에 대한 미련, 후회와 연민. 치르지 못한 장례와 못 찾은 시신.

가슴이 답답해졌다.

천천히 숨을 크게 들이 마시려는 순간이었다.


‘지르릉.’


스마트폰이 울리는 진동 마냥 갑자기 떨리던 은장도였다.

깜작 놀라 두 손을 번쩍 들며 허리를 세웠다.

자고 있던 춘호를 제외한 이강백과 담이와 아리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시방, 급하면 말씀을 하시지라.”

“금방 휴게소입니다.”


담이의 말에 이강백이 답을 주고 있었다.


다시 가슴에 손을 얹던 무수였다.


“삼촌, 멀미? 등 두드려 줄까?”

“아니다. 하던 일 해.”


아리가 몸을 일으키자 이를 제지하고는 셔츠 안에 있던 은장도를 꺼내들어 살피던 무수였다.

목이 없는 그저 흔하디흔한 은장도다.

양날 하단부에 무수(茂壽)가 각 한자씩 새겨진 틈 사이가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칼집에서 꺼냈다 빼다를 반복하고는 다시 셔츠 안으로 밀어 넣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던 무수였다.



* * *




1593년 7월.


진주성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필사적으로 무수를 찾아와 마지막 말을 전하고 떠난 의형인 김형문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덩그러니 남은 유골함을 품에 간직한 채 경북 상주로 떠난 무수일행.

먼 길을 달려 다시 찾은 경남 사천 아래쪽 고성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었다.

사량도다.

사량도가 여전히 주변의 섬들을 품고 있었고, 자아내는 풍광은 여전히 눈을 즐겁게 하며 심신을 안정시키고 있었다.

무수의 친형 정인수의 무덤이 있던 자리였다.

평평하게 다져진 자리에 짙은 연푸른 잡풀이 무성하게 올라와 있었고, 상석만이 과거 봉분의 흔적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해가 정수리를 지나 강렬한 햇살을 내뿜고 있는 더위에 고스란히 몸을 내놓고 있던 무수였다.

걸리적거리는 소매를 팔에 말아 올리며 봇짐을 한 쪽에 몰아넣자 담이와 춘호, 그리고 아리가 함께 거들고 있었다.

잡풀을 제거하고 주변을 정리하자 금세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가기 시작했다.

주변의 나무를 베어 목책을 쌓았고 골을 곧게 파내어 폭우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도록 물길을 만들었다.

적당하게 땅을 파내 유골 항아리에 하얀 천과 새끼줄을 돌돌 말아 집어넣고 흙을 덮어 작은 봉분을 세워 손으로 다지고 있을 때쯤이었다.

담이가 덩치에 걸맞게 짙은 녹색의 풀을 산더미처럼 바닥에 쏟아내고 있었다.


“시방, 이눔으로 덮어 불면 한 두해쯤이면 여그가 온통 이눔들 천지어라.”

“고맙다.”

“그런 말씀을 뭐터러 한다요. 도련님 의형이면 지한테도 형님이고 가족인디 당연히 해야지라.”


풀을 뜯어내 봉분에 하나씩 올려놓던 담이의 한 마디였다.

올려놓은 풀들의 뿌리를 봉분을 덮고 있던 흙에 깊숙이 박아 도닥이던 무수의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머리가 땅에 맞닿을 정도로 떨궈지며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주먹을 불끈 쥐었고 이마를 봉분에 들이 박으며 오열을 하던 무수였다.

담이가 내뱉은 가족이라는 한마디에 털어내지 못한 한 수많은 감정이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효도라도 원 없이 해봤으면, 아니 진주성에 갔을 때 모시고 왔다면, 그것도 아니라면 시신이라도 건저 장례라도 치렀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쉬움, 미련, 연민, 그리고 또다시 아쉬움과 미안함이 머리에서 맴돌다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흐느낌을 멈추지 않던 무수였다.

2차 진주성전투에서 몸을 날린 어머니, 형수. 이제 남은 가족이라곤 조카 아리가 전부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어머니가 죽기 직전, 아니 그보다 훨씬 전인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으로 돌아가 가족끼리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으아아아악!”


봉분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울부짖던 무수가 흙먼지를 날리며 고함을 질러대자 담이가 무수 곁으로 다가와 등을 도닥이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춘호와 아리가 푹 처진 어깨를 뒤로 한 채 등을 돌리고 있었다.

한동안 가슴속에 한을 털어내던 무수의 흐느낌이 잦아들자 힘겹게 입을 열던 담이었다.


“으짜것소. 마님 마지막 소식을 전해준 의형 그만 보내 주고, 마님시신이라도 싸게 찾아 불게요.”

“그러자.”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봉분에 손을 얹어 몸을 일으키던 무수가 작업을 다시 시작하자 담이가 이를 따르고 있었다.

풀을 얹는 작업이 얼추 마무리 될 때쯤이었다.

다급한 아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삼촌! 여기요!”

“어?”


옆에 있던 춘호가 아리 곁으로 다가서며 의문의 목소리를 뱉어 냈다.


“여기 토굴에 사람의 흔적이 있어요. 그 흔한 거미줄도 없고, 저 안에 촛불이 켜있는데요?”

“어라? 무수야 이쪽으로 와봐.”


토굴 안으로 몸을 들이밀던 춘호가 무수를 부르고 있었고, 아리가 그 뒤를 이어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무수가 허리를 세워 시선을 돌리며 손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옷에 묻은 흙까지 털어 내며 발걸음을 옮길 때 들려오던 괴성.


“아아악!”


춘호의 다급한 비명이었다. 담이가 먼저 몸을 날렸고 무수가 뒤를 따랐다.

무수가 여묘(廬墓)살이 할 때 만들어 놓은 토굴이었다.

그리 깊지는 않지만 사람 몇은 생활 할 수 있는 공간, 하지만 깊은 산속에 동물들 빼고는 굳이 저런 곳을 들어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춘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불이 붙어 있는 초였다.

어두워야 할 공간에 최근에 가져다 놓았을 법한 기다란 초가 환하게 토굴을 밝히고 있었다.

잘 말려진 낙엽이 쌓여 있어야할 자리에 똬리를 튼 용이 그려진 비단이 깔려있었다.

뭐지? 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춘호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다 비단을 밟자 바닥이 훅 꺼지며 몸이 아래로 흙과 함께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삼촌!”


옆에 있던 아리가 뛰어들어 춘호의 팔을 맞잡자 이내 멈춰진 춘호의 몸.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춘호의 얼굴이 겨우 보일정도까지 빠르게 빨려 들어가자 발버둥 치는 아리까지 바닥을 쓸어내며 같이 딸려 들어가고 있었다.


‘부우웅!’


때마침 담이가 토굴에 들어와 몸을 날려 아리의 허리를 잡아 챘고, 무수가 뛰어 들어와 아리의 몸을 포갰다.

정수리만 살짝 보이는 춘호를 향해 손을 뻗어 아리가 잡고 있던 팔목을 낚아챘다.


“뭐야!”

“춘호아! 정신 차려!”

“당겨!”


동시에 터져 나오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바닥에서는 흙들이 소용돌이치며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정신을 잃었는지 손끝에서 전해오는 춘호의 반응이 싸늘했다.

다급한 상황이었다.

담이가 엉덩방아 찧듯이 주저앉아 아리의 허리를 사력을 다해 당기고 있었고, 자세를 바꾸며 한손으로 바닥을 짚고 춘호를 빼내려 애쓰던 무수였다.

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힘을 쓰면 쓸수록 몸이 자꾸만 빨려 들고 있었다.


“아리! 손을 놔! 내가 잡았으니까 손을 놓으라고! 너까지 위험해!”


아리와 담이는 일단 살려 보고자 한 무수의 절규에 가까운 고함.


“담아! 아리 당겨!”


목에 핏대가 터져가 소리를 치며 젖 먹던 힘을 다해 춘호을 끌어내려 힘을 줄 때였다.

번쩍거리는 강한 빛이 터져 나왔고 무수와 아리, 담이를 한꺼번에 집어 삼키던 구멍이었다.


“아아앗!”

“삼촌!”

“아리!”



부스럭, 부스럭.

인기척에 눈을 뜬 무수였다.

눈을 몇 번 껌뻑거리자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꽉 잡고 있는 춘호의 팔뚝이 먼저였고 익숙한 공간이 그 다음이었다.


‘토굴?’


허리를 세워들어 주저앉은 상태로 주위를 살피던 무수가 춘호를 흔들자, 머리를 흔들며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정신을 차리던 춘호였다.


“정신 좀 들어?”

“어. 그런데 무슨 일이지? 여기 토굴이잖아?”


무수의 질문에 춘호가 팔뚝을 연신 주무르며 대답을 했다.

긴박했던 상황만큼이나 시퍼렇게 멍이든 팔뚝이었다.


“아리! 담아!”


일단 아리와 담이를 깨웠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던 두 사람이 무수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시방 뭔 일이어라. 켁. 켁.”

“분명 빨려 들어갔는데.”

“긍께 시방 뭔 도깨비에 홀린 것도 아니고.”

“살다 살다 별일 다보겠네. 하여간 오래살고 볼일이야.”

“큼큼. 시방 열아홉 살이 혈말은 아닌 거 같은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담이와 아리가 몇 마디씩 주고받자 몸을 일으킨 무수가 토굴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마른세수와 함께 온몸에 흙을 털어내고 있었다.

빨려 들어간 건 맞는 것 같았다.

다들 흙탕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엉망이었고 강한 불빛과 몸이 빨려 들어가며 붕 뜬 느낌이 선명했다.

지금도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적당히 몸을 털며 주위를 살피자 눈에 들어온 희한한 풍경에 동작이 멈춰졌다.

분명 익숙한 산이고 사량도와 섬들이다.

그런데 뭔가 다른 물체, 색깔, 그리고 풍겨오는 냄새가 확연히 달랐다.

뒤따라 나오던 춘호와 담이, 아리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무수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바다에 떠있는 낯선 배, 기다란 검은 선들과 탑처럼 생긴 물건, 분명 논과 밭이 있던 자리인데 집들이 빼곡하게 늘어져 있었고 해안가를 따라 늘어진 널찍한 길이 생소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몸을 돌려 반대쪽을 바라 볼 때였다.

하늘에서 벼락같은 소리를 내며 뭔가가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 움찔하며 자세를 살짝 낮췄다가 봉분 주변으로 눈을 돌리자 생전 처음 보는 짧은 머리에 검은색 옷을 입고 있던 수십의 시선이었다.

조선인들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놈들?

놈들의 시선에 경계심을 뿜어내자 성큼성큼 다가오던 한 인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차규범입니다.”


악수를 건네던 선한 눈빛에 다부진 턱이었다.

조선말이었다.

일단 왜놈은 아닌데 악수도 받을 상황도 아니다.

멀뚱하게 서 있자, 손을 거두고는 표정에 변화 없이 이번에는 투명한 뭔가를 건네던 차규범이었다.

아차, 싶었나? 팔을 다시 거두어 투명한 뭔가에 목을 비틀자 드르륵 소리가 들렸고 먹는 시늉을 하고는 다시 건네고 있었다.


“물입니다. 일단 드세요.”

“물?”

“네. 일단 목부터 축이세요.”


팔을 내뻗어 투병한 물건을 받아 냄새를 맡아 보던 무수가 차규범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입에 가져다 댔다.

물이다.

닭 모가지를 비틀었는데 물이? 그리고 이 감촉은 뭐지?

일단 입안을 헹궈 뱉어내고는 몇 모금 들이킨 후 춘호에게 건네자 몇 개를 더 내주던 차규범이었다.

담이와 아리도 하나씩 받아들어 무수와 같은 행동을 한 후에 벌컥벌컥 목이 털어 넣고는 얼굴에 쏟아 붓고 있었다.


“정말이지 믿기 어려운 일에 연속이군요. 허허.”


고개를 좌우로 흔들던 차규범이었다.


“아무튼 만나서 반갑습니다. 대한민국을 아니지 조선반도를 구할 분이라고 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시 악수를 건네던 차규범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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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시속1500킬로. 23.03.16 177 1 11쪽
14 14. 애들 보는게 쉽다고? 23.03.15 160 2 12쪽
13 13. 2억5000만원. +2 23.03.14 15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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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단검하나 걸겠습니다. 23.03.10 175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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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봉지값이 100원이란다. 23.03.07 203 4 13쪽
6 6. 자신과의 싸움 23.03.06 208 3 13쪽
5 5. 다짐 23.03.06 247 4 13쪽
» 4. 1593년 7월 23.03.05 311 3 12쪽
3 3. 대통령 차규범 23.03.04 344 6 11쪽
2 2. 임무완수 +1 23.03.03 402 6 15쪽
1 1. 선물 23.03.02 575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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